PGR21.com


Date 2002/07/22 14:55:44
Name Let It Be
Subject With Pgr21.com
취미를 쓰는 란에다 컴퓨터 게임이라고 쓰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날 외톨이로 만든다.
어떤 게임을 좋아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스타크래프트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들은 나를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취급하곤 한다.
XX여자고등학교 1학년 6반 XX번.
가장 수업 분위기가 좋은 반의 활기찬 부반장.
여자로서, 고등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자신의 잣대로 갈라둔 사람들은 날 한 쪽으로 몰아세운다.

내 책상 한 쪽에 붙여둔 프로게이머들의 사진에는 그들의 이름과 별명이 적혀있다.
그게 뭐냐고 묻는 물음들은 나를 부풀게 만들지만, 나의 대답 후 그들의 반응은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공부할 때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입시제도란 것이 워낙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 나라에 고등학생들이 할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으니까.
시험기간에 개막한 리그들을 볼 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것은 성적과 대학에 대한 걱정들 뿐이었다.
역시나 성적은 떨어져 있었고, 집에서는 TV를 없앤다고 했다.

그들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또래의 아이들처럼 연예인이 아닌, 프로게이머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어떤 선수의 슬럼프라고 했을 때, 난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선수도 나름대로의 연습을 한 후에 경기에 나왔을 텐데, 쏟아지는 기대와 응원을 받았을 텐데.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는 슬럼프는 팬이란 이름의 무게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혼자 떨리는 마음으로 조용하게, 응원의 말 한 마디조차 남기지 않은채 경기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그들의 마음은 편할까.
친구, 동료.
어떤 이름을 붙이더라도 그들은 경쟁자란 다른 명칭이 따라다니곤 하는데.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그들을 이기기 위해 불타오르고 있을까.
아닐거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Pgr21.com
이 곳을 안지 얼마되지 않았다.
즐겨찾기에 추가시키지도 않은 채, 매 번 도메인 네임을 직접 쳐서 들어오는 이 곳엔 잠시 경쟁이란 단어 사이에 쉼표를 찍게 하는 것 같다.
모든 곳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쉼표를 찍기란 정말 힘든 일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 곳에 들어오는 순간 순간이 쉼표가 된다.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에 찬사와 비난을 아끼지 않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이 곳의 분위기는 내가 느끼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와는 틀린 듯 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맏게 되는 방학의 중요성이야 이루 말 할 수 없겠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생긴 듯 하다.
중독성을 내뿜는다하는 이 곳에서 나를 조금 더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 분위기를 사회로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기르는 것.
내가 결심한 방학 중에 꼭 해야할 일이다.

언제까지 내가 게임에 대한 이런 생각을 이러갈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그 뒤에는 Pgr21.com이 함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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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이
02/07/22 15:30
수정 아이콘
그나이에도 스타를 취미라고 하면 외톨이가 되나요?
저는 제 나이는 되야 그래되는 줄 알았더니만...
저는 아예 별로 그쪽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말 잘 안 하거든요
02/07/22 15: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고등학생이라고 하셨는데 글을 아주 잘쓰시네요...
언어영역은 아주 잘하실것 같네요 ^^

저도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몸이지만 주위에 스타를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스타한다고 하면 아직도 스타하냐고 면박을 주더라구요 ^^
사우론저그
02/07/22 15:43
수정 아이콘
전 대학교 3학년이나 된 놈이 매일 스타만 본다고 아버지께 구박받는답니다..
-_-;;;;
02/07/22 16:13
수정 아이콘
제동생이 고1인데 학교에 겜아이 하이 1500의 여자가 있다고 하더랍니다. -0-;;; 실제로 대단한 실력의 보유자 였습니다. 스타는 국민게임!!
Rodeo_JunO
02/07/22 16:14
수정 아이콘
전 게임쪽에서 일하다보니
아직도 부모님께선 제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건지 정확히 모르시지요 - -;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스타를 하는 절 아예 이해 못하구용 - -;
똘이장군
02/07/22 17:14
수정 아이콘
요새는 젊은 친구들보다 노땅들이 많이하는것 같습니다.
우리회사의 경우 회사의 지원을 받는 정식동호회가 있어서..
활발히 활동합니다. 동호회원이 50-60명이고..
그중 30-40명정도가 활발히 활동하죠..
다들 나이는 30대 초중반이죠.. 애아빠들..
내부리그도 있죠..번개모임도 자주하고
MT도 가고, 플겜머초청도 하죠..
차/부장급에서도 스타하는 사람있습니다.
나는 거래처 과장들하고도 맥주한잔하고 한번씩 합니다. 겜방가서.. 고교친구하고도 가끔 모이면..한겜하죠..
스타..아직까진..할만해요..
유카립투스
02/07/22 18:50
수정 아이콘
저도.. 중3여자 -0-;;;
한창 연예인 좋아하고있는 친구들사이에서 저만..
"얘들아얘들아~ 내가 어제 헌터에서 3:3 팀플을 했는데.."
뮤탈겐세이 -- 등등 얘기 나오면 ;; 걍 무시당하죠 ㅋ
선생님들께서도.. 제 얘기를 들으시며 눈쌀을 찌푸리십니다.
"의외네.. 여자가 게임을 좋아한다는게.. 정말.. "
이런말 들을때마다 가슴 아프고.. 가끔 제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해요.. ;;
하지만.. 남들과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프로게이머에 대해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게임에 대해 설명해준다는것 자체가..
의미있고.. 또 재미있는것 같습니다..^0^
02/07/22 20:48
수정 아이콘
움.... 같은 나이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써 이런 말을 드리고 싶네요
고등학교 와서 처음잇는 방학이자 방학으로 쓸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라고 여기고 여가생활에 치중하면 어떨가 싶습니다. 뭐 공부 이래나 저래나 시험때만 준비 바싹하면 어느정도는 나오더군요 방학 열심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02/07/23 11:42
수정 아이콘
반가운 동지들이 많네요.. ^o^
저도.. 내년이면 박사논문 심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요즘 저희 랩에서 스타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_-
저도 잘은 못하지만..
매일 점심먹고 겜아이 들어가서 2~3게임정도 하는데도.. 후배들 눈치가 보여서 숨어서(?) 합니다.
집에선.. 온겜넷, 겜비씨, 겜티비 안빼놓고 다보는데.. 저희집 사모님의 온갖 구박을 다 받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의 태교에도 안좋다느니 어쩌느니 등등.. --;;;
(결국.. 일주일에 10시간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 )
02/07/23 11:51
수정 아이콘
아기에게 태어나기전에 생존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겜이 아닐런지 -_-;;
brecht1005
02/07/23 17:49
수정 아이콘
전 제 칭구들하고 아직까지 겜방에서는 스타만 하는데요.^^ 칭구들도 다른 게임에는 취미가 없어서리..(제가 제일 늦게 배웠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고-_-;) 아마 중고등학교 때 스타가 나왔으면 지금 뭘하고 살고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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