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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6 12:33
1. 에도막부로부터 차별을 받은 지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세우면서 에도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부터 자신의 일가, 핵심가신, 원래부터 따르던 다이묘, 세키가하라 이후 귀순한 다이묘 순으로 영지를 배분했습니다. 그래서 에도에서 제일 먼 사츠마, 쵸슈 지방은 에도막부로부터 가장 차별을 받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에도막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을 수 없었죠 2. 외래 세력과의 접촉가능 에도에서 제일 먼지역이면서 가장 서쪽끝에 있는 지역이라 유럽국가같은 외래세력과의 접촉이 가능했습니다. 에도막부는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와의 교역만을 공식적으로 허가했는데, 사츠마 쵸슈는 외진곳이라 몰래 외래세력과의 거래가 가능해서 서양세력을 통해 몰래 힘을 기르는게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사츠마 세력은 오키나와를 정복해 그들한테 조공도 받았죠.. 1번의 이유로 반 에도막부 세력은 사츠마, 쵸슈를 중심으로 커갈 수 있었습니다. 사츠마, 쵸슈에서 난 유능한 인물들(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은 자연스레 반막부파로 성장을 한거고 그들이 2번에서 만들어진 힘을 등에 업고 막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거죠
12/06/16 13:08
막부 말기 1841년에 막부의 권력강화와 재정의 안정을 목표로 덴포개혁이 시도되었는데 농민, 다이묘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반대로 덴포개혁을 전후로 서남지역의 조슈, 사쓰마, 도사, 히젠 등에서는 개혁적인 하급무사와 다이묘들이 힘을 합쳐 시도한 개혁이 성공하게되는데, 이 개혁으로 유능한 하급무사가 번정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고 재정이 재건되어 막부 말기에 웅번으로 떠오르게 되는 중요한 토대를 구축하게 됩니다.
12/06/16 15:07
소위 말하는 유신의 4대 번인 조슈, 사쓰마, 도사, 히젠(삿쵸도비)는 바쿠후의 개혁과는 별개로 자신들 스스로의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애초에 변방 지역에 위치했던 다이묘의 성향에 기인하는데요, 세키가하라 이후에 도쿠가와를 따르게 된 도요토미파였던 다이묘들은 그 충성심을 의심받아서 에도(도쿄)와는 먼 지역의 다이묘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신킨고다이(다이묘가 강제로 에도에 와서 사는 것) 등을 통해서 강력한 통제와 홀대를 받게 됨으로 인해서 바쿠후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래서 꽤나 중앙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신자가 된 다이묘도 있었고요. 이후 에도 바쿠후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개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위의 리플에서 말씀하신 덴포의 개혁은 대기근 이후의 개혁이라 꽤나 많은 신경을 썼지만 내부 반발과 사정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지의 다이묘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 개혁을 했는데. 많은 다이묘와 농민들의 사정을 고려해야만 했던 바쿠후와는 다르게 일개 영지 내부의 개혁이었고 상대적으로 먼 변방 지역이라 바쿠후의 눈이 크게 미치지 않는 점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개혁파 하급무사들을 등용하여 세대교체와 탈바꿈에 성공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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