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진심이란 것에 더, 혹은 덜 이라고 재어볼 수 있다면 아마도 너무나도 더욱더,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동메달을 축하합니다.
저는 사실 중학 시절 아주 잠깐 핸드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핸드볼 공은 작고, 몹시 단단합니다.
하얗고 커다란, 그리고 새 가죽과 에나멜 냄새를 풍기는 축구공과 농구공들 사이에서
여러 해 바뀌지 않아 때묻은 잿빛 조그만 공들을 처음 끄집어냈을 때가 기억나네요.
손으로 저렇게 던지면, 슉 하고 들어가 버리는 게 아냐? 라고 생각했었지만
커다란 사내아이들이 지키고 선 골망을 흔들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핸드볼의 슈팅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가장 많이 바닥에 넘어지는 슈터는 핸드볼의 슈터일 겁니다
가장 다루기 쉬운 손으로 던지고 막기 때문에, 슈터는 전신을 허공에 던지다시피 힘을 실어서야
비로소 키퍼의 몸에 비하면 턱없이 좁아 보이는 그 골망을 가를 정도의 스피드를 얻게 되죠.
날렵한 반바지는 하루만에 포기하고, 수없이 까지는 무릎을 위해 한여름에 우리는 긴 바지를 입곤 했습니다.
그래야 운동장 흙바닥에 던져지는 자신의 몸 대신, 앞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자신의 공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크다는 이유만으로 키퍼에 자원했던 동기 녀석이 시합 전날, 샤워를 마치며 돌아섰을 때
소년답게 하얗고 근육이 채 자리잡지 못한 그 팔다리에 무수히 아로새겨져 있던 둥근 멍 자국들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첫 시합에서, 우리는 턱없이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의 마지막 시합이기도 했죠.
쉴새없이 주고받는 핸드볼의 공수교대에서, 3점 이상의 점수 차이는 아득할 만치 큽니다
그리고 이미 십여 점이 벌어진 그 아마추어 핸드볼 경기를 마치고 멍하니 주저앉고 나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십여 명의 우리 까까머리 중학생 모두가, 한 번씩은 서로의 손을 터치하고 코트에 섰었다는 걸요.
그해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같이 나뒹굴었던 우리 모두가
온종일 연습해왔던 것처럼 서로의 공을 한번씩 받아보고, 서로에게 패스를, 혹은 응원을 보낼 수 있었다는 걸요.
젊은 시절 무명의 핸드볼 선수였던 검은 얼굴에 멋대가리 없는 농담을 던지던 그 코치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그토록 어이없어 보이는 급조된 팀의 첫 경기에, 후보 선수들을 아낌없이 코트에 세웠던 것일까요.
매끄러운 LCD모니터 너머로 헝가리와의 3,4위전을 지켜보면서
저는 문득 그때, 경기 종료의 호각을 들으며 코트로 달려나와 우리에게 웃어 보이던 그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무려 여섯 골 차이, 한국의 승리는 확정적이었고, 벤치의 헝가리 선수들은 이미 패배를 예감한 듯 눈가를 붉히고 있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일 분 남짓,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팀의 작전 타임이 선언됩니다.
항상 두 눈을 치켜뜨고 코트를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임영철 감독이 메달을 목전에 두고,
손짓을 해가며 선수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마치 혼잣말처럼, 자신의 팀에게 하는 명령도 아닌 것처럼, 자신에게 되뇌듯이 마지막 작전지시를 내립니다.
너희가 이해해줘야돼. 마지막이야. 선배들 마지막이야. 너희가 이해해 줘야 돼.
성옥이, 정호, 영란이, 몇 명이야, 몇 명이야.. 너희들이 나가...
십대에 태극 마크를 단 후, 이제는 자식과 남편들을 남겨 두고 다섯 번째 올림픽, 마지막 올림픽에 나선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아줌마 선수들을 코트에서의 메달을 향한 마지막 일 분을 위해 하나씩 이름을 불러 내보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 몇 미터 떨어져, MBC의 중계석에 앉아 울먹이며 밀리지 말라고 외치던
오랜 전 동료, 임오경 해설위원이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제가 뛸 때는 이 기분을 몰랐어요, 이걸 몰랐어요 라며 울먹이던 오랜 한국의 에이스, 임오경선수가
자신과 함께 어깨를 겯고 달리고 넘어지고 던지던 동료들의 모습에,
이제 마지막 메달을 위해 일 분이 남은 코트에 들어서는 그들을 보며 넘치는 눈물로 마이크를 감싸쥐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고. 동메달. 금빛보다 찬란한 동메달.
이승엽의 야구처럼, 박태환의 수영처럼 스피커를 가득 메우는 환호도, 열광도 없었습니다.
단지 침묵하는 캐스터와 끅끅대는 임오경 해설의 울음만이 그 순간을 가득 채우고 흘러갔습니다.
사랑합니다, 여자핸드볼, 사랑합니다를 울먹이며 반복하던 십여 년차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선수와
그녀의 오랜 동료들의 졸업식이 눈물처럼 반짝이며 베이징의 핸드볼 코트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오래 달려온 아줌마 대표 선수들. 정말로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오늘, 어떤 금빛보다 찬란합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9-22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