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같이 새벽 4시 20분쯤 눈이 떠졌다. 대한민국이 골을 먹기 바로 직전. 내가 봤기 때문일까. 핸드폰으로 경기 영상을 틀자마자 대한민국은 폭풍 골을 먹기 시작했다. 보고 웃음만 나왔다. 이건 아닌데..
생각보다 대표팀의 움직임이 심각해 보였다. 난 러시아전이 끝나고 나서도 절대 낙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상대하는 러시아의 전략이 정말 이상했기 때문이다. 카펠로 답지 않다는 느낌과 함께 그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결국 비겼고.. 어쨌든 알제리전에서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벨기에전에 들고 나온 알제리의 전술을 봤을 때 러시아보다 더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알제리는 더 벅찬 상대였다.
최후방 수비의 허술함전반전의 첫 번째 실점과 세 번째 실점은 최후방 수비의 허술함이 컸다. 두 실점 모두 알제리가 최후방에서 최전방으로 단숨에 찔러주는 패스였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수비들은 막지 못했다. 물론 최전방에 나가 있는 공격수들이 알제리의 최후방 수비가 전방으로 마음껏 긴 패스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나오지도 않았고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의 수비전술은 강한 압박보다는 지역 방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홍정호와 김영권은 손발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알제리의 첫 골 같은 경우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들어왔을 때 둘 중 한 명은 당장 몸싸움으로 슬리마니를 밀치거나, 최소한 끈질기게 붙어줘야 했다. 그런데 둘은 서로 양보하듯 평행선 달리기를 했고 슬리마니는 너무도 쉽게 슛을 쐈다. 세 번째 골의 경우도 최전방에서 볼을 받은 슬리마니에 김영권과 홍정호 모두 정신이 팔려 압델무메네 자부를 무인지경의 상태로 내버려두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전혀 두 선수의 호흡이 맞지 않고 합의된 수비 전략도 없다는 것을 너무 여실히 드러냈다.
몸이 무거운 한국 선수들
이걸 느낀 건 두 번째 실점 장면에서다. 두 번째 실점 장면의 리플레이를 보면 알겠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아무도 점프하지 않은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소 정성룡 선수가 위치선정이나 부족한 반사신경으로 인해 욕을 자주 먹고 이번 두 번째 골의 경우도 그와 비슷할 수 있지만, 이건 분명 정성룡 선수보다 경합을 전혀 하지 않는 선수들의 책임이 더 컸다. 알제리 선수들의 경우 점프를 하지 않아도 몸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하나다. 우리나라 선수가 편하게 헤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점프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몸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게 선수들의 몸 상태가 괜찮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라면, 질타받아야 마땅한 움직임이다.
한국 축구 수비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보여준 네 번째 실점정말 네 번째 실점은 한국 축구 수비의 문제점을 다 드러낸 실점 장면이었다. 페굴리가 공을 잡고 난 후 페굴리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든 사람은 뒤에 있었던 한국영이었다. 페굴리는 한국영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전방으로 침투해 야신 브라히미에게 패스를 했다. 그 상황에서 우리나라 수비는 수미인 기성용과 한국영 그리고 포백라인까지 더해 6명이었다. 하지만 페굴리와 야신 브라히미는 단 두 번의 패스로 우리나라 수비 전체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다. 강력한 압박축구와 유기적인 수비를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영과 홍정호는 적어도 페굴리를 의식하고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둘은 페굴리를 너무 자유자재로 내버려 뒀다.
한국은 처음부터 지역 방어 수비를 들고 나왔다. 강한 압박보다는 자리를 지키면서 상대 선수의 패스를 차단하고 역습을 하려는 전술을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는 우리나라의 지역방어를 보자 몸으로 치고 들어와서 수비를 흔들기 시작했다. 1:1의 대결에서 우리가 몸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이는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1:1에서 공을 가지고 파고드는 알제리 선수들보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몸싸움이 더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역 방어는 힘을 잃는다. 결국, 협력 수비가 필요했다. 내줄 공간은 내어주되 어떻게든 최전방으로 파고드는 선수들만큼은 협력수비로 막아내야 했지만, 홍명보호의 수비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카로움을 잃은 선수를 기용한 한국 축구의 공격이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느끼는 문제다.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우려한 한국 축구의 공격 문제는 결국 본선에서 너무나도 자명하게 드러났다. 박주영은 월드컵 두 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슈팅도 하지 못했다. 그의 다재다능함을 믿은 홍명보는 본선에서 엄청난 피를 보고 있다. 김신욱이 기용되지 못했던 이유는 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박주영은 골을 넣지 못했던 김신욱보다 더 심각하다. 공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알제리의 수비가 러시아의 수비와는 다르게 초반부터 전방에서 공격수와 미드필더가 강하게 몸으로 압박하는 수비였기 때문에 패스 자체가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너무 심각하다. 박주영의 침체는 당연히 측면 공격인 이청용과 손흥민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최전방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박주영 대신 손흥민과 이청용에게 수비압박이 더 거세지기 때문이다. 손흥민과 이청용은 최전방 공격수 없이 본인들이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한국 축구의 공격은 힘을 쓰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박주영의 문제는 오늘 교체되어 들어간 김신욱과 비교해보아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신욱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수비를 2~3명 달고 다녔다. 그의 위협적인 제공권 때문이다. 하지만 박주영은? 지금으로써는 가진 것이 없는 공격수다. 이는 자명하다.
러시아전이 할만 했던 이유
이것도 단순하다. 전반까지 러시아의 움직임을 보면 우리 선수들이 공을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중앙선을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이번 알제리전에서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반 15분에 실점을 가장 많이 했다. 초반에만 정신을 차리면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 점을 알고 있었을 텐데, 러시아는 초반에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볼 점유와 패스에서 앞섰고 공격을 꽤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승점 3점을 필요로 하는 상대로 우리를 생각해 공격적인 전술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알제리는 달랐다. 예상대로 강력한 압박과 빠른 역습, 다이렉트로 전방에 패스하는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고 우리는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총평홍명보 감독의 전술은 안정감이 있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실제로 보기에는 균형 잡힌 전술이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의 전술에는 색깔이 없다. 그리고 선제골을 먹혔을 때 그 균형은 급격하게 무너진다. 평소 생각한 전술대로 무난하게 흘러가지 않았을 때 홍명보 감독의 전술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플랜 B가 없다는 것은 결국 홍명보 감독의 역량 부족이다. 이는 이미 예상되었던 점이고 월드컵에서 그 곤혹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월드컵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벨기에전을 마지막으로 홍명보의 한국 축구는 막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블로그에 쓴 글을 퍼왔슴돠. 나누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