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가 무너져 사람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나마 있는 것은 미국에서 대량으로 원조받은 밀가루였는데요. 많은 사람이 이 밀가루를 이용해 식품 개발에 뛰어들었죠.
1953년에는 즉석 굴곡면으로 특허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1955년에는 즉석 중화면이 시판됐어요. 1956년에는 일본의 남극탐사대가 즉석면을 챙겨 떠나기도 했지만, 실용성과 맛이 떨어졌죠.
이를 해결한 것이 1958년 등장한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라면'인데요. 치킨라면은 면을 튀겨 양념을 입힌 다음 다시 건조한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었어요.
이 치킨라면은 편리하긴 했지만, 면을 반죽할 때 간을 해 별도의 양념 스프 없이 물만 붓는 방식이라 맛이 부족했는데요. 묘조식품을 창업한 오쿠이 기요스미가 스프를 따로 포장한 '스프 별첨 묘조라면'을 1962년 출시함으로써 이 문제도 해결됩니다.
2. 꿀꿀이 죽을 대체하기 위한 삼양라면
삼양라면 © 삼양식품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동방생명(현재 삼성생명)의 부회장이었던 전중윤 창업주가 사람들이 꿀꿀이죽을 사 먹는 것을 보고 라면 개발을 결심했다는 일화가 있죠.
라면의 출시 가격은 10원으로 당시에도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낯선 음식인지라 잘 팔리지 않았어요. 삼양라면은 라면을 알리기 위해 무료 시식을 했고, 이것이 대히트를 쳐 1965년 연 매출 2억 4천만 원을 기록하죠.
라면은 1966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의 수혜를 받게 됩니다. 특히 1968년에는 큰 흉작까지 들어 혼분식 장려 정책이 더욱 강화되었는데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음식점에서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이 때문에 정부로부터 가격 통제를 받기도 했어요. 1973년 국제 우지 가격 인상과 1975년 밀가루 가격 인상으로 라면 업계는 라면 가격을 인상하려고 했지만, 정부는 허가하지 않았죠.
3. 2개의 태양, 삼양과 농심
삼양라면이 주목을 받자, 여러 업체가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1964년 삼양라면의 포장지를 인쇄하던 업체가 ‘풍년라면’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닭표라면, 해표라면, 아리랑라면, 롯데라면 등이 생기는데요. 하지만 대부분 6개월 안에 문을 닫고, 삼양식품과 롯데공업만이 살아남죠.
롯데 공업은 1975년에 농심라면을 출시합니다. '형님 먼저 드시오, 농심라면, 아우 먼저 들게나, 농심라면'이라는 텔레비전 광고가 대히트를 치면서 1978년 롯데공업은 아예 농심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롯데그룹에서 독립하게 됩니다.
4. 찬밥신세였던 초창기 컵라면
닛신식품의 컵라면 © 닛신식품
최초의 컵라면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든 안도 모모후쿠가 1971년 개발했어요. 컵라면은 치킨 라면의 해외 판매를 위해 기획한 상품이었는데요. 일본과 달리 해외에는 라면 그릇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릇에 담겨있는 상품을 개발한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었고, 자위대 대원들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소비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1972년, 일본에서 유명한 인질극인 아사마 산장 사건이 TV에서 방송되었는데요. 당시 기동대원들이 컵라면을 먹는 것이 방송을 타면서 일본 전역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일본에서 컵라면이 개발된 지 불과 1년 뒤, 삼양라면에서 컵라면을 선보였죠. 당시 컵라면은 지금과는 달리 직사각형의 얇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었어요. 컵라면이 등장했을 당시에는 봉지라면보다 4배나 비싼 가격과 생소함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삼양식품에서 판촉을 위해 서울 다섯 곳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중심지에 컵라면 자동판매기를 설치했음에도 단종되었죠.
1981년에 농심에서 사발면을 내놓으면서 삼양식품도 1982년 다시 삼양 컵라면, 삼양1분면 등을 출시하면서 컵라면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죠.
5. 농심 천하?!
농심은 천천히 라면시장을 제패하기 시작하는데요. 1983년에는 안성탕면과 너구리가 등장하죠. 안성탕면은 안성에 위치한 라면 공장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데요. 농심이 이를 내세워 성공하자, 삼양에서도 1984년 호남탕면, 영남탕면, 서울탕면을 개발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죠.
1984년 농심은 짜파게티를 출시했고,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에는 농심 신라면이 나왔습니다. 삼양의 짜짜로니도 선전했지만, 상대가 되지는 않았죠.
이대로 삼양은 영원히 농심의 아성을 넘지 못할 것인가 했지만, 2014년 한 유튜브에 등장한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역전하게 됩니다.
6. 2부 리그 - 팔도, 오뚜기, 빙그레
팔도는 1983년 한국 야쿠르트에서 내세운 브랜드로 그다음 해에 팔도 비빔면을 출시했죠. 이 팔도 비빔면은 계절상품이었지만 반응이 좋아서 사계절 상품으로 바뀌었어요.
오뚜기는 1988년 진라면, 참라면, 라면박사를 내놓으며 라면 시장에 데뷔했고, 빙그레는 1986년 닛신식품과 기술 제휴를 하고 ‘우리집라면’으로 시장에 진출했죠. 1996년에는 MSG 무첨가를 강조한 뉴면을 출시했는데요. 이후 MSG 무첨가는 한국 라면의 대세가 되었고 국내 모든 라면에는 MSG가 빠지게 됩니다. 그래놓고 빙그레는 2003년 라면 시장을 철수하죠.
7.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다'공업용 우지 파동 기사 © 조선일보
1989년 10월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다'라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전해졌어요. 이를 계기로 검찰은 미국에서 우지를 수입한 라면 기업 대표 등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죠.
이는 서양과 다른 식문화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는데요. 서양에서는 사골, 내장 등을 먹지 않아 우지가 대부분 폐기되었고, 국내 라면사들은 이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죠. 따라서 한국식품과학회와 보건사회부 장관이 우지를 사용한 라면이 무해하다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1997년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지만, 우지 파동에 휘말린 기업들은 큰 피해를 받았고 문을 닫은 곳도 많았죠.
8. 라면계의 반짝스타, 하얀 국물
꼬꼬면 © 팔도
1988년에는 농심이 사리곰탕면을 출시했는데, 당시 하얀 국물을 내세워 아침 식사 대용이라며 홍보했죠.
2011년에 본격적으로 하얀 국물 열풍이 불었는데요.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개발한 꼬꼬면이 팔도에서 제품으로 출시되면서 큰 인기를 끈 것이었죠. 덕분에 그보다 한 달 전 출시된 삼양의 나가사끼짬뽕 매출도 좋았어요. 오뚜기도 같은 해 기스면을 출시하면서 하얀 국물 라면 경쟁 대열에 합류했었죠.
<참고문헌>
하야미즈 겐로. (2017). 라멘의 사회생활. 따비
김정현, 한종수. (2021). 라면의 재발견. 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