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야근이다 뭐다 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가 어제 그나마 일찍 들어와 야구 불판에서 농담따먹기 하고 오랜만에 PGR 글을 나름 정독하고 난 이후. 믿기지 않은 일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감기지 않는 눈을 애써 감고 누웠다가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뜨고 일어나 어제 제가 보고 들었던 일들이 모두 꿈이기를 바랐습니다만 요즘 많이들 하는 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더군요. 제가 몸담은 회사의 형편만큼이나 이 판도 참 뭣합니다.

이야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으레 나오는 이야기인 - 누구 말마따나 쉴드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사람 자신은 그렇게 느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사건 당사자에 대한 인품 이야기까지 나왔던데 '패스'자 뒤에 붙는 정말 인격적으로 안될 작자들이 아닌 다음에야 큰 잘못한 사람이라 해도 실제로 만나보면 나쁜 사람 그렇게 많지 않다더라는 말들을 생각하면 인품 이야기는 아니함만 못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나 미움이 눈 위에 덧씌워지면 객관적인 사실을 가려내기는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이왕 문제제기가 시작된 이상 누가 잘못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가릴 일입니다. 인품 문제 같은 것으로 문제를 쓸데없이 곁가지 치게 하지 말고요.


예전에도 했던 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e스포츠계의 숱한 사건들을 봐 오면서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대승적인 관점'이란 말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승적'이라는 말에는 이 판이 유지되기 위해 불편한 부분이 있다 해도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집단에서 불편한 진실이라 불리는 실수나 잘못이나 불합리함들이 있는 건 맞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사견이 들어가 사실과 전부 혹은 일부가 다른 것이든 아니면 자타가 공인하고 있지만 쉬쉬하는 것이든 말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불편한 진실들을 내부에서 고쳐내려는 생각 없이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덮어서 덧씌우는 일만 계속하다 곪아 터지고 이게 문제구나. 하고 드러난 뒤에도 그걸 도려낼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 판이 돌아간다 한들, 그들 당사자에게는 몰라도 팬들에게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사건이 어찌 전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전개되든 연맹의 입지나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직간접적 타격이 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혹여 저를 냉정하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일로 이 판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습니다. 타격을 입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당연히 욕을 먹고 비판을 받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지요. 그리고 내보낼 사람은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 한두 명쯤 없어도 판 안 무너지고, 이런 걸로 무너질 판이면 진즉에 무너져야 정상이지요. 하지만 저의 바람과는 달리 -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 이번 일도 누군가가 뛰쳐 나가고 누군가가 상처입고 누군가는 가슴을 앓고 누군가는 참아내는 방식으로 대강 봉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 너무 염세적인 말일까요.


개인의 처지로나 제가 몸담은 회사의 처지로나 '참 좋은 날들이었지.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싶은 요즈음인데.
게임 판에서 어떤 악의적인 집단이 깽판치는 것도 모자라 e스포츠 판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듯 한 요즈음이군요.

과연 제가 게임과 관련된 이슈를 편하게 보게 될 날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 The xian -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1-01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