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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07/08 11:56:47
Name 반대칭고양이
Subject 빛보다 빠른 것들 (1) - 정말 짧아져 보일까?
지난 6월8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중성미자와 우주물리 국제학회’에서 국제 중성미자 실험그룹인 오페라(OPERA)는 ‘중성미자의 비행 속력이 빛의 속력(광속)보다 더 빠르게 관측됐다’는 애초 관측실험의 결론을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광속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비행 속력을 관측했다는 실험 증거는 지난해 9월 오페라 그룹이 처음 밝힌 지 아홉 달 만에 실험오류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로써 현재까지 “대격변을 일으킬만한” 빛보다 빠른 것들은 단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대격변을 일으킬만한”의 뜻은 차차 설명하기로 하지요.(뒤집어 말하자면 별 “의미없는” 빛보다 빠른 것들은 꽤나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글보다도 훨씬 더 좋은 교양과학서가 시중에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림 속으로 여행하는 상대성 이론(Relativity Visualized), 루이스 엡스타인”, “특, 특수 상대성 이론(Very Special Relativity), 산더르 바이스”, “우주의 구조(The Fabric of the Cosmos), 브라이언 그린”을 추천합니다.

이 글은 궁극적으로 빛보다 빠른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상대성 이론을 접한 일반인(심지어 물리학 전공자마저도)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개념들에서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두 가지 기본 원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정지하고 있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구별할 수 없다.”입니다. 이때 움직인다는 의미는 등속운동 즉 한 방향으로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특수한 경우만을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원리를 항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태양에 대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인간의 경험적인 스케일에 비해 지구는 거의 등속운동을 하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인다는(공전) 사실을 느낄 수 없죠.
이것을 뒤집어 말한다면 등속운동이 아닌 경우 즉, 급히 방향을 바꾸거나 혹은 급가속 하거나 급정거 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빛의 속도는 누가 관측하던지 항상 똑같다.”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아예 빛의 속도를 299,792,458 m/s 로 그냥 정해버렸습니다. 어차피 빛의 속도는 항상 똑같기 때문에 어떤 값으로 정하던지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널리 쓰이는 미터법에 잘 맞도록 정한 것이죠.
우리는 속도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빛의 속도만은 예외라는 것이 대단히 이상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경험과 매우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본 원리로부터 아인슈타인은 3가지 중요한 결과를 얻어냅니다.
1. (나에 대해)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는 방향으로) 길이가 짧아진다.
2. (나에 대해)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3. 지금(now)과 여기(here)의 의미가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첫 출발은 로렌츠 수축(Lorentz contraction)이라 불리는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에 대한 오해입니다.

테니스공이 내 앞에서 매우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테니스공은 내 눈에 어떻게 보일까요? (혹은 사진을 찍으면 어떤 모양으로 찍힐까요?)

상대성 이론을 접한 사람들은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가 짧아진다.”라고 알고 있으므로 아래 그림과 같이 보일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즉 움직이는 방향으로 찌그러진 럭비공 모양으로 보일 것이라고 예측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면 제가 이 글을 쓸 이유가 없겠지요.^^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테니스공은 그 모양이 변하지 않고 원래 공 모양 그대로 보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인슈타인은 분명 움직이는 물체는 길이가 짧아진다고 했단 말이요!!!

네 맞습니다. 분명히 움직이는 물체는 그 길이가 짧아집니다. 하지만 실제로 짧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점점 더 모를 소리만 한다구요?

이걸 살짝 뒤집어 봅시다. 물체가 짧아 “보이면” 정말로 길이가 줄어든 것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긴 막대기가 짧아 보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회전시키면 됩니다. 나의 시선과 막대기의 방향을 일치시키면 긴 막대기라도 길이가 아주 짧아 보이죠.
또한 멀리 있는 물체 역시 가까운 물체에 비해 짧아(혹은 작아) 보입니다.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보는 것(혹은 사진을 찍는 것)은 물체의 모든 곳을 다 관찰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실제 물체의 모양과 그 물체가 “보이는” 모양은 상당히 달라집니다.
<span class='bd'>[image loading]</span>
황제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분명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짧아집니다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회전된 것처럼 “보입니다.”
아래의 왼쪽은 정지한 물체, 오른쪽 그림은 빛의 속도의 80%로 움직이는 물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테니스공은 회전시켜도 같은 모양이므로 여전히 테니스공으로 보입니다. 다만 매의 눈을 가진 분들은 테니스공의 줄무늬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Uploaded with ImageShack.us

이러한 효과를 처음 지적한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펜로즈-테렐 회전(Penrose-Terrell ro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재미있게도 이 사실은 1969년에야 알려졌는데 상대성이론이 나온 지(1905년) 무려 54년 후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는 물리학자들도(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미처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직접적인 실험없이 오직 머릿속에서의 생각만으로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교훈이라고 할까요...

그 다음 이야기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에 대한 오해를 얘기하겠습니다. 그 유명한 쌍둥이 패러독스입니다.


ps. 눈팅족이라 pgr에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7-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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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lfishgene
12/07/08 12:07
수정 아이콘
우와.. 특수상대성이론에 관심이 많은 생명과학도입니다.
펜로즈-터렐 회전에 대해서는 처음 알았네요. 이런 즐겁고 유익한 글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12/07/08 12:35
수정 아이콘
우와 정말 어렵네요! 신경을 쓰고 읽어봐야겠습니다. ㅜㅜ
글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연재글을 따라가지 못할까봐 두렵네요... [m]
12/07/08 12:4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완전히 이해란만한 지식을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서도 앞으로의 연재글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깨알같은 원근감
12/07/08 12:50
수정 아이콘
이보시오 원글자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나도 짧아보이는 줄 알았단 말이오

...

는 농담이고, 가끔 오셔서 고퀄의 글을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
Jamiroquai
12/07/08 12:56
수정 아이콘
어렵네요... 속도가 빠르면 빛이 휘어져서 회전된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감모여재
12/07/08 12:57
수정 아이콘
처음 알고 깜놀했던 기억이 납니다.
http://www.spacetimetravel.org/ 에서 사진을 봤던 기억이..
거간 충달
12/07/08 13:32
수정 아이콘
황제가 뒤에 서있군요...
12/07/08 14:01
수정 아이콘
회전된것처럼 보이는것은 시간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수축에 따른것인가요? 재미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사티레브
12/07/08 15:12
수정 아이콘
'눈팅족' 이요?!!!!!!!!!!!
전에 올리신다는 글 안잊고 있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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