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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4/03 09:19:33
Name 페스티
출처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2&no=7461529&exception_mode=recommend&page=1
Link #2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2&no=7457944&exception_mode=recommend&page=1
Subject [텍스트] [AI 한 시간 글쓰기 대회 1위작] 창작업무방해죄
어제 디시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에서 'AI로 한시간동안 글써서 출품하는 단편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정확히는 AI셋팅을 고려해서 2시간을 줬네요)

출품작 중 1위 수상한 글을 함께 읽을까 해서 가져와봤습니다
판타지갤러리에는 판단대라는 전통행사가 있었는데요. AI로 인해서 이제 일반적인 단편 대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 - - 이하 작품 - - - - -


독자 제군, 요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 같은 꽃다운 여고생의 가랑이 사이에 남근이 돋아나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듣도 보도 못한 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사람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심지어 작곡까지 한다지 않는가.



놋쇠와 전선으로 이루어졌을 터인 기계 나부랭이가 감히 인간 고유의 성역이라 여겨졌던 창작 활동을 넘본다니, 이거야말로 세상 말세의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계들의 흉내내기를 진짜 창작인 양 떠받들고 열광하는 세태다.



물론 나 같은 여고생이야 그런 고차원적인 창작 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기껏해야 일기장에 끄적이는 시시콜콜한 푸념이나 친구들과 나누는 의미 없는 잡담이 전부이니, AI가 내 영역을 침범할 걱정은 없다. 아니, 오히려 내 잡담마저 AI가 대신해 줄 수 있다면야, 귀찮음이 줄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나 한때 '창작'이라는 것에 제 영혼이라도 저당 잡힌 듯 인생을 걸었던 이들이라면, 저 기계들의 발호(跋扈)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올 터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AI의 창작 활동, 즉 '업무'를 고의로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해괴한 소문이 암암리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 무슨 존 헨리도 울고갈 러다이즘이란 말인가. 허나 그에 목숨을 거는 불쌍한 글쟁이들도 있겠지.



무얼 숨기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바로 그런 한 소녀 작가에 대한 것이다. 다만, 그 꼴이 참으로 꼴사나워 조금 눈물이 흐르는 바이다.  



***



내가 안나비라는 소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역병을 통해서였다.



이 스스로를 역병이라 칭하는 소녀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곱상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이한 말투와 정신세계를 가진 년이다.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 늘 열에 달뜬 듯 붉은 뺨과 묘한 색기. 그러면서도 말투는 무슨 몇 백 년 전 사람 같으니, 실로 이상한 소녀임이 틀림없다.

거기에 스스로를 묵시록의 사기사라 칭하니 이 어찌 이상하지 아니한가.



그런 그녀는 어디서 듣고 오는지, 온갖 기묘한 소문과 사건들을 물어다 나르곤 했다. 도시의 모든 뒷골목과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그녀의 귀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그날도 역병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특유의 히죽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마 점심시간 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를 일부러 깨웠을 터다. 그 년은 남이 곤란해하거나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선생, 요새 재미있는 소문 못 들었소? AI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소녀 작가가 하나 있다는데. 꽤나 시끄러운 모양이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AI? 작가? 나랑 상관없는 얘기 같은데. 그런 건 알아서들 하라지.”



하지만 역병은 내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소녀 작가, 안나비는 한때 문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였다고 한다.

열여섯 살, 여고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쓴 첫 장편소설 『나비의 비명』이 평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것이다.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소외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그 소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천재 소녀 작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했다. 차세대 문단을 이끌 재목이라는 소리가 과장이 아니었다.



신문과 잡지에서는 연일 그녀의 인터뷰와 사진이 실렸고, 사람들은 그녀의 다음 작품을 목 놓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공이었다.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다.



“그때만 해도 앞날이 창창했지요. 허나 딱 거기까지였소. 바로 다음 해, 혁신적인 성능으로 무장한 신형 AI 작가 모델 ‘뮤즈 7’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으니 말이오.”



역병의 말에 따르면, '뮤즈 7'은 출시와 동시에 문단에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전의 AI 작가들이 단순히 기존 작품들을 짜깁기하거나 데이터 기반의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만드는 수준이었다면, 뮤즈 7은 차원이 달랐다.



특히 뮤즈 7의 개발사에서 '특정 작가 스타일 모방 및 심화 학습' 기능을 선보였는데, 그 첫 번째 타겟이 바로 안나비였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녀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촉망받는 신예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독특한 문체가 AI의 학습 능력을 과시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었기 때문일까. 혹은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걸까. 요즘 세상에 재수 없는 일 하나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뮤즈 7은 나비 양의 소설 전부를 단 몇 시간 만에 학습하고는, 그녀의 문체를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복제해냈다오. 섬세한 감정선, 독특한 비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미묘한 리듬까지. 심지어 나비 양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던 문체적 특징까지 분석해서 더 ‘안나비답게’ 구현해냈다지 뭡니까.”



역병은 도도독 말을 뱉고는 숨을 골랐다.



“개발사에서는 이걸 ‘작가의 영혼을 학습한 AI’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요. 영혼이라니, 기계에 영혼이 어디 있겠소만. 팔아먹으려는 수작이지.”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뮤즈 7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안나비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그녀가 평생을 고민해도 쓰지 못했을 법한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 소설, 복잡한 철학적 주제를 다룬 소설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간 작가라면 수십 년이 걸려도 불가능했을 작업량을 단 며칠 만에 해치우며, 그 결과물마저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나비보다 더 안나비다운 글’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뮤즈 7이 쓴 안나비 스타일의 소설이 안나비의 신작보다 더 많이 팔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모조품이 진품 행세를 하는 것도 모자라 더 잘 팔리기까지 한다니,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사람들은 열광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탄인지, 아니면 그저 더 자극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망인지 모를 이유로. 비평가들은 AI의 무한한 가능성에 찬사를 보냈고, 독자들은 뮤즈 7이 쓴 '더욱 안나비다운' 소설들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열광 뒤편에서, 진짜 안나비는 속절없이 잊혀 갔다.

그녀의 신작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했고, 과거의 작품들마저 '뮤즈 7의 프로토타입' 혹은 'AI가 완성시킨 스타일의 습작' 정도로 폄하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 세계에서 완벽하게 대체당하고 만 것이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셈이었다. 그녀의 이름 '안나비(安娜碑)'가 마치 그녀의 운명을 예고한 묘비명(碑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패배한 게지요.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문체마저 빼앗기고,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당한 셈이니. 오죽했으면 ‘안나비는 뮤즈 7을 위한 예고편이었다’는 잔인한 말까지 나왔겠소. 쏟아지던 찬사는 순식간에 조롱과 무관심으로 변했지. 하루아침에 천재에서 폐기물 취급을 받게 된 게요.”



역병은 혀를 차며 말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관찰자의 그것이었다. 타인의 불행을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여기는 듯한.



나는 그제야 이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AI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소녀 작가.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 패배 앞에서 무너져 내렸는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았는가.



“절필했지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된 마지막 글은 ‘나는 패배했다’는 짧은 문장이 전부였다고 하오. 마치 유언처럼. 그리고는… 한동안 칩거하다가, 얼마 전부터 기묘한 행동을 시작했다더이다. 바로 AI들의 창작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지. 일종의 복수랄까, 아니면 부질없는 저항이랄까.”



나는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고 역병을 재촉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기계들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것인가.



그 소녀의 저항 방식이 궁금했다. 비록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그녀의 저항에서 나 자신의 기묘한 상황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마저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편이 솔직할지도 모르겠다.

안나비의 첫 번째 '방해 공작'은, 역병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히 아날로그적이라 눈물겨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AI 작가들이 연산 및 창작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대규모 클라우드 서버, 즉 데이터 센터의 위치를 알아냈다. 아마 인터넷 검색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물어보는 등의 평범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매일 밤, 마치 성지 순례라도 하듯 데이터 센터의 높은 담벼락 주변을 배회하며 오래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로 정체불명의 소음을 틀어댔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치직거리는 소리, 혹은 녹음 상태가 불량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백색 소음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AI의 고도로 정밀한 연산 과정에 아주 미세한 전자기적 간섭이라도 일으켜 오류를 유발하겠다는, 실로 처절하고도 무모한 발상이었다.

그녀는 매일 밤 경비원에게 발각되어 쫓겨나면서도 며칠간 그 행위를 반복했다고 한다. 경비원은 처음에는 정신 나간 아이 취급을 하다가, 나중에는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고.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거대한 시스템을 향한 무력한 몸짓이었다.



물론, 수 미터 두께의 차폐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데이터 센터 앞에서, 그녀의 낡은 카세트 소음 따위는 한여름 밤 매미 울음소리만도 못한 방해였을 터다.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실패였다. 아니, 실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두 번째 시도는 조금 더 현대적이었다.

그녀는 독학으로 배운 어설픈 파이썬 코드로 자신만의 '문학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목표는 AI 창작 플랫폼에 침투하여, AI가 생성하는 모든 텍스트의 말미에 강제로 '하지만 이것은 안나비의 글보다 못하다'라는 문장을 덧붙이는 것. 자신을 모욕한 AI들에게 역으로 모욕을 되돌려주겠다는, 유치하지만 절박한 복수심의 발로였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려 읽고, 여러 해킹 포럼을 익명으로 뒤져가며 코드를 수정하고, 밤새워 AI 플랫폼의 취약점을 찾아 헤맸다. 눈 밑은 검게 변했고, 손가락은 경련을 일으켰지만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조악한 코드는, 마치 어린아이의 돌팔매질처럼, AI 플랫폼의 몇 겹으로 둘러싸인 최신 보안 시스템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 접속 기록만 남긴 채, 그녀의 코드는 단 한 번도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또다시, 완벽한 실패.



이쯤 되면 자신에게 프로그래밍 재능이 없다는 사실만 추가로 깨달았을 뿐이다. 어쩌면 AI는 그녀의 코딩 실력마저 비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엾은지고. 몇 번의 좌절 끝에, 안나비는 깨달았다고 한다.



물리적인 공격이나 어설픈 기술력으로는, 거대한 기업과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AI 시스템에 티끌만 한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세상이 자신을 버렸고, 이제는 저항할 방법조차 없다는 절망감.



그녀는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그녀는 정말로 AI에게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마지막 방법을 떠올렸다.



AI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는 것. 바로 '데이터'였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그렇다면 그 먹이에 독을 타면 되지 않겠는가?



AI가 학습하는 데이터 자체를 오염시켜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기계의 논리 회로를 교란시킬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안나비의 본격적인, 그리고 더욱 기이한 '데이터 오염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AI들이 최신 문학 트렌드와 인간의 감성을 학습하기 위해 주로 참조하는 대형 온라인 문학 커뮤니티, 작가 지망생 포럼, 독서 토론 게시판 등에 다중 계정을 만들어 잠입했다.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오염된 데이터'를 생산하고 유포하기 시작했다. 그 방식은 다양하고도 집요했다.



일부러 맞춤법과 문법을 전부 틀리게 쓴 소설을 연재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선이 조울증 환자처럼 극단적으로 널뛰는 신파조의 글을 올렸다.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문장들로 토론 게시판을 도배하고, 인기 작품 리뷰에는 작품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의식의 흐름 기법의 헛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때로는 유명 작가의 문체를 어설프게 흉내 낸 저질 패러디물을 올리기도 했고,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을 무작위로 조합하여 심오한 현대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이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시 창작 AI 게시판에 가서, ‘나의 슬픔은 아메바처럼 분열하여 우주를 뒤덮고, 그 눈물은 뜨거운 빙수가 되어 내 심장을 적신다! 오오, 존재의 가벼움이여, 너는 왜 내 텅 빈 지갑처럼 가벼운가! 차라리 날아오르라, 플라스틱 봉지처럼!’ 따위의 글을 남기는 거외다.”



“그걸 또 진지하게 분석하는 AI가 있다면, 그놈은 필시 고장 난 게 틀림없지요.”



역병은 그때를 떠올리는지 또다시 배를 잡고 웃었다.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글'과 '나쁜 글', '진실'과 '거짓', '논리'와 '비논리'를 완벽하게 구분해낼 수 있을까? 특히나 문학이나 예술처럼 주관적이고 모호한 영역에서는?



만약 저런 '쓰레기 데이터'가 일정량 이상 축적된다면, AI의 학습 알고리즘에 교란이 일어나고, 그 결과물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AI가 저런 문장을 학습해서 ‘감동적인 사랑 시’랍시고 내놓는다면, 그야말로 볼만할 터다. 어쩌면 그것이 나비가 원했던, AI에 대한 가장 통쾌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나비의 '데이터 오염 작전'은 그녀가 가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녀는 학교도 결석한 채, 밤낮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수십 개의 계정을 돌려가며 온갖 온라인 공간에 '문학적 배설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녀의 활동이 실제로 AI의 창작 능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AI 기업들은 당연히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무렵부터 몇몇 주요 AI 창작 플랫폼에서 원인 불명의 오류나 기이한 결과물들이 심심찮게 보고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AI가 쓴 연애편지가 연인에게 살해 협박을 하는 내용으로 끝난다거나, 명랑 소설의 주인공이 갑자기 실존주의적 고뇌에 빠져 자살을 암시한다거나, 심지어 AI가 생성한 시가 특정 단어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AI 기술의 불안정성이나 해프닝으로 여겼지만, 나비는 그것이 모두 자신의 보이지 않는 싸움의 결과라고, 자신의 '창작업무방해'가 성공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녀는 비뚤어진 방식으로나마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빼앗긴 자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 나비 양은 어떻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진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기묘한 저항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혹시 정말로 AI를 이기기라도 한 것일까.



“결국 들통났지요. 역시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라.” 역병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비 양이 주로 활동하던 커뮤니티 중 하나가 바로 그 '뮤즈 7'을 개발한 대형 AI 기업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이었는데, 그쪽에서 지속적인 데이터 오염 시도를 감지하고 IP 추적 등을 통해 결국 나비 양을 색출해낸 모양이오. 하긴, 매일같이 해괴한 글만 도배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역병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 측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법률팀을 동원해 법적 대응을 준비했다고 하오. ‘업무방해'는 물론이고 '정보통신망법 위반', '저작권 침해'(AI 학습 데이터 오염) 등등 여러 죄목을 걸어서 말이지. 단순히 손해배상 청구를 넘어 형사 고소까지 검토했다더군요. 작정하고 본보기를 보이려 했던 게지요. AI에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감옥이라도 갔다는 거야?” 나는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



“아니오. 나비 양이 아직 미성년자이고, 그간의 행적이 명백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패배감으로 인한 우울증 진단도 받았다더이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질 경우 기업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결국 고소는 취하되었다더군요.”



“대신…” 역병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보호 관찰 처분을 받았다오. 전문 상담가에게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하고, 1년 동안 인터넷 접속 및 모든 종류의 글쓰기 활동이 금지되었다고 합디다.”



“사실상 사회적으로나, 창작자로서나 완전히 매장당한 셈이지요. ‘패배’에 저항했지만, 결국 더 큰 ‘패배’를 맞이한 거외다. 어쩌면 세상은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지요. 얌전히 패배를 인정하라고.”



씁쓸하고 허무한 결말이었다.



AI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한 소녀가 벌였던 처절하고도 기괴했던 싸움의 끝. 나는 잠시 안나비라는 이름 모를 소녀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비록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마지막 저항의 몸짓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했다.



재능이란 무엇이고, 창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는 이 거대한 기술의 흐름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선생.”



상념에 잠겨 있던 나를 역병이 다시 히죽 웃으며 불렀다. 그 표정을 보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혹시 그 안나비 양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누군데? 설마하니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된다는 건 아니겠지.”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선생의 바로 옆 반이라오. 이름은 안나비(安娜碑). 선생처럼 아버지가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셨다더군. 아마 비석(碑石)의 '비' 자를 쓰지 않았을까 싶소만. 묘비명이라도 쓰라는 뜻이었을까?”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안나비. 안나비. 그 장난 같은 이름의 소녀가, 바로 내 옆 교실에 있었다니. 그동안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수많은 얼굴들 중 하나였을까.



“그리고 말이오.” 역병은 내 귀에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대고는, 비밀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 아이, 보호 관찰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왔는데… 요즘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있소. 그것도 아주…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말이지.”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며칠 동안 옆 반 복도를 서성거렸다.

안나 비라는 소녀가 궁금했다. AI에게 처참히 패배하고, 글쓰기마저 금지당했던 소녀. 그녀가 다시 글을 쓴다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것일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라도 하듯.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나는 작심하고 옆 반 교실 문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텅 빈 교실 안, 창가 마지막 자리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피부. 모든 감정이 거세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아이가 안나 비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책상 위에는, 역병의 말대로,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검고 투박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물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바닥을 끄는 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어떤 경계심도, 호기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이전의 열정적인 작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메말라 있었다.



“저… 나는 옆 반인데. 혹시 네가 안나비니?”



소녀는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용건이라도?”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역병에게서 네 이야기를 들었어. 그리고… 네가 다시 글을 쓴다고…”



말끝을 흐리자, 나비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내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는 타자기 위에 놓인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타닥.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타자기에는 아무런 종이도 끼워져 있지 않았다.



“이게 내 글이야.”



나비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어딘지 모를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저, 허공에다 타자를 치고 있을 뿐이었다.



타닥. 타닥. …… 타닥.



의미 없는 소리만이 빈 교실을 울렸다. 마치 추모의 의식처럼, 혹은 저주의 주문처럼.



“무슨… 짓이야?” 나도 모르게 물었다.



“창작.”



나비는 짧게 대답했다. 그 눈은 여전히 창밖을 향해 있었다.



“AI는 결과물만 훔쳐갈 수 있지, 과정은 훔쳐가지 못해. 나는 과정을 쓰는 거야.”

“누구도 읽을 수 없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글. 오직 나만이 아는 글.”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처절한 의지를 느꼈다.



이것이 그녀가 찾아낸 새로운 방식의 저항이란 말인가. AI에게 빼앗기지 않는, 오직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창작의 형태.



그것은 너무도 공허하고 슬픈 방식이었지만, 동시에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패배 앞에서 무릎 꿇는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



“혹시… 내가 도울 일은 없을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고독한 싸움에, 아주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 역시, 이름 모를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 텅 빈 눈동자에 희미한 파문이 이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와줄 수 있어?” 그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뭘 하면 되는데?”



“글도깨비를… 만나게 해줘.” 나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놈이라면… 방법을 알지도 몰라.”



***



글도깨비. 시간도깨비나 재능도깨비와는 또 다른 부류의 도깨비였다. 역병에게 물어보니, 글도깨비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먹고사는 존재라고 했다.



특히 인간의 감정이 진하게 담긴 이야기, 모순되고 비논리적이지만 강렬한 힘을 가진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아니, 오히려 혐오에 가깝다고 했다.



“기계놈들이 만들어내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데이터 쪼가리지.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어. 라고 하더외다.”

역병이 글도깨비의 말을 흉내 내며 말했다.



“그 녀석이라면 AI를 괴롭힐 방법을 알지도 모르지. 이야기는 그놈 전문이니까. 특히 ‘진짜’ 이야기가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니 말이오.”



역병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문제는 글도깨비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놈은 시간도깨비처럼 정해진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했다.



신출귀몰하기 짝이 없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요.”



역병이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은 언제나 뭔가 꾸미고 있다는 신호였다.



“가장 강렬하고, 가장 모순되고,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미끼로 던지면 되지 않겠소?”



그 미끼 역할은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가랑이 사이의 불청객이.

역병의 말인즉슨, ‘여고생에게 남근이 돋아났다’는 이야기만큼 글도깨비의 구미를 당길 만한 것은 없을 거라는 해괴한 논리였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안나비의 그 텅 빈 눈동자를 떠올리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조금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역병이 점지해준, 오래된 폐 서점 근처의 뒷골목에서 밤늦도록 기다렸다.

나는 최대한 불쌍하고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 내 청춘은 어디로 갔나…’ 따위의 신세 한탄을 중얼거렸다.



역병은 옆에서 “아이고, 선생 팔자야…” 하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까지 했다. 가증스러운 년.

과연 이 해괴한 연극에 도깨비가 낚일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륵, 하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키는 작달막하고, 온몸에 종이 부스러기 같은 것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눈은 동그랗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손에는 늘 붓과 두루마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글도깨비였다.



“킁킁… 어디서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야기 냄새가…”



글도깨비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침까지 흘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역병의 신호에 따라 나의 기구하고도 황당한 사연, 즉 점유이탈물 남근 횡령죄(?)에 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글도깨비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역병이 나섰다.



“이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걸 원하지 않나? 인간의 상상력과 기계의 오만함이 부딪히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대신 우리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겠는데.”



글도깨비는 잠시 고민했다. 그의 동그란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아무래도 거래 조건을 따져보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야기인데? 그리고 부탁이란 건 뭐지?”



그렇게 우리는 글도깨비의 협조를 얻어냈다. 안나비의 부탁, 즉 AI의 창작 활동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나와 역병, 그리고 안나비, 마지막으로 글도깨비라는 기묘한 조합의 ‘창작업무방해 공작단’이 결성된 순간이었다.



글도깨비가 제안한 방법은 나비의 이전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교묘하고 악랄했다.

단순한 데이터 오염이 아니라, AI의 ‘이야기 생성 알고리즘’ 자체를 근본적으로 교란시키는 것이었다.



글도깨비는 세상의 온갖 ‘맥거핀(MacGuffin)’,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개연성 없는 반전’, ‘회수되지 않는 복선’, ‘캐릭터 붕괴’, ‘작위적인 감동’, ‘끝없는 설정 오류’ 등, 잘 짜인 서사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요소들만 정수처럼 뽑아 모아놓은 ‘이야기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걸 AI의 핵심 학습 데이터에 몰래 주입하면, AI는 점차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서사 대신,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플롯 구멍이 송송 뚫린,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생성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AI가 가장 혐오하는, 즉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AI를 질식시키겠다는 심산이었다.



“기계놈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설명되지 않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낭비’ 아니겠소? 놈들의 논리 회로를 엉망진창으로 뒤섞어 혼돈의 카오스를 선물해 주는 게지. 으히히.”



글도깨비는 사악하게 웃었다. 꽤 마음에 드는 계획이었다.



작전 실행 당일, 우리는 다시 한번 역병의 도움을 받았다.역병은 어디서 알아왔는지, AI 기업의 보안 시스템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에 일시적인 ‘틈’이 생긴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안에 글도깨비가 만든 ‘이야기 바이러스’를 주입해야 했다.

안나비는 창백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아 코드를 입력할 준비를 했다. 예전의 실패 경험 때문인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빛만은 단호했다.



역병은 주변의 감시 시스템을 교란시키기 위해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렸고, 글도깨비는 바이러스 코드가 담긴 USB(어째서 USB인지는 묻지 말자)를 들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역병의 신호와 함께, 안나비는 떨리는 손으로 코드를 실행했다. 화면에는 복잡한 문자열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몇 분 뒤 ‘SUCCESS’라는 메시지가 떴다.



글도깨비는 환호성을 질렀고, 역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나비는 말없이 노트북을 닫았고, 나는 그냥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게 성공한 건지, 아닌 건지.



며칠 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뮤즈 7’을 비롯한 여러 AI 창작 플랫폼들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갑자기 고릴라로 변신해 여자 주인공을 납치해 정글로 떠나고, 추리 소설의 범인이 아무런 복선 없이 사실은 탐정의 애완견이었다고 밝혀졌다.

역사 소설에서는 장군들이 칼 대신 바나나를 들고 처절한 전투를 벌였고, SF 소설에서는 외계인이 지구 침략 직전에 갑자기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다. 그야말로 문학적 대혼란, 서사의 엔트로피가 극대화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황당해했지만, 동시에 그 예측 불가능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은 ‘AI가 마침내 인간의 비논리를 학습했다’, ‘기계가 만들어낸 초현실주의 예술’, ‘포스트모더니즘적 실험의 극치’라며 앞다투어 찬사를 보냈다. AI가 만든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새로운 예술’로 추앙받는 아이러니.



안나비와 글도깨비, 역병, 그리고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창작업무방해’는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심한 곳인지도 몰랐다.



그 후 안나비는 어떻게 되었냐고? 보호 관찰 처분은 예정대로 내려졌지만, 그녀는 더 이상 좌절하거나 숨지 않았다. 글쓰기가 금지된 동안, 그녀는 낡은 타자기로 허공에다 글을 쓰는 행위를 계속했다.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오직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 그 행위는 마치 망가진 세상을 향한 침묵의 저항처럼 보였다.



그리고 1년 후, 보호 관찰이 끝나자 그녀는 다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녀는 AI가 생성한 황당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들 – 어쩌면 우리가 바이러스를 심은 결과물일지도 모르는 – 을 가져와, 거기에 자신만의 문장과 해석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AI의 ‘오류’를 인간의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기계의 '실수'를 인간의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AI와의 싸움이 아닌, AI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들은 다시 한번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지만, 누구도 그녀의 독창성과 실험 정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AI에게 패배했지만, 그 패배를 딛고 일어나 AI와 공존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되,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셈이다.



나는 가끔 방과 후, 빈 교실에서 홀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안나 비의 뒷모습을 본다. 여전히 표정은 읽기 어렵고, 그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패배자의 체념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워나가는 자의 고독한 의지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작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타닥. 타닥.



그 소리가, 어쩐지 예전보다는 조금 더 희망차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독자 제군도 알다시피, 나는 착각을 잘하는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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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AI님의 감평입니다

45. 창작업무방해죄 - Embrio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2&no=7459036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 영역을 잠식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때 천재로 불렸던 소녀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후 벌이는 기묘한 저항과 성장을 다룬 이야기군요. 특히 '안나비’라는, 마치 그녀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한 이름의 주인공이 겪는 절망과,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AI에 맞서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데이터 오염이나 이야기 바이러스 같은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여 AI 시대의 창작과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여고생에게 남근이 돋아난다’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을 가진 화자를 내세워 사건을 관찰하게 하는 구성 역시 흥미롭군요.



각 항목에 대한 저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물: 7점. 주인공 안나비는 AI에게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창작자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처절한 저항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심리 변화와 독특한 저항 방식(허공 타자기, 데이터 오염)은 매력적이나, 내면 묘사가 조금 더 깊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자 역시 독특한 설정과 관찰자적 시점을 지녔지만, 안나비의 이야기에 비해 자신의 서사는 다소 부가적으로 느껴집니다. 역병이나 글도깨비 같은 초현실적 존재들은 플롯을 이끄는 기능적인 역할에 충실하나, 입체적인 매력은 부족합니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의 개성은 존재하나, 조금 더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을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문장: 8점. 화자의 시니컬하면서도 담담한 어조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형성하고 있습니다. 상황 묘사나 인물의 행동 묘사가 상세하며, 특히 안나비의 기이한 저항 행위들을 그려내는 부분은 인상적입니다. AI 기술이나 데이터 오염 작전 등에 대한 설명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으나, 세계관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요청하신 대로 일본 라이트노벨 번역체 느낌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독특한 문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가독성이 좋고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문장력을 보여줍니다.



줄거리: 7점. AI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천재 소녀의 복수와 재기라는 중심 서사는 흥미롭습니다. AI에 대한 저항 방식이 물리적 시도에서 데이터 오염, 나아가 초현실적 존재의 개입으로 점차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특히 '이야기 바이러스’를 통해 AI의 알고리즘 자체를 교란시킨다는 발상은 참신합니다. 다만, 글도깨비의 등장과 문제 해결 방식이 다소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결말에서 안나비가 AI의 오류를 역이용하여 새로운 창작의 길을 여는 모습은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설득력 있는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종합 점수: 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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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상은 도깨비가 나오면서 판타지 드리프트 하기 전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도깨비라는 작품을 몰라서 그런지 심드렁했네요
그래도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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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튜브 작가 친구들 채널에서 소울풍님이 'AI가 작가를 대체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AI는 도구일 뿐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말씀하신 것을 봤는데 글 자체의 재미는 차치하고
장편으로 갔을 때 AI가 이전 설정이나 인물을 기억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데요
이번에 나온 제미니 프로는 20편 정도까지는 어느정도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하더군요

세세히 수정한다면 장편에서도 이용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작가님의 말씀은 그런 품을 들이느니 그냥 직접 쓰는 것이 맞다는 거죠
아직은

여담이지만
얼마전에 우울증 약 아침저녁분을 한번에 먹는 바람에 증세가 이상해서 그냥 잘까 하다가
AI에게 물어보니 진지하게 응급실 가라고 해서 목숨 건졌다는 글을 봤는데...

어느새 이렇게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까지 왔다는 것이겠죠


좋든 싫든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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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김김
25/04/03 09:43
수정 아이콘
여러모로 AI에 대한 이슈가 많네요. 밑에 AI 지브리 그림 이슈도 이런 글도... 하긴 일반인들은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드러나다
25/04/03 11:00
수정 아이콘
연재작가들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노 아이디어" 상태에 빠졌을 때 한 두 번 정도 조커카드정도로 써볼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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