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홈피:
http://www.amarunsb.com/
만용으로 시작해서 결국 걸어서 완주한 이번 하프마라톤이, 처음에 생각한 대로 지금 삶의 자극이 되는 소소한 성취가 되길 스스로 바라며, 일상으로 복귀하기 전 기록을 남기고 싶어 글로 남겨보았습니다. 이 글에는 대회의 정보, 마라톤 내지 런닝 자체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제 개인적인 참가 동기 등 신변잡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거울을 볼 때마다 깊어지는 눈가, 이마, 미간주름, 팔자주름, 푸석해진 피부, 늘어지는 뱃살이 점점 더 거슬렸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마시는 소주, 폭탄주와 전자담배 시대에도 연초를 고집하며 하루 한갑을 피워대며, 병원에서 통보받은 놀랄만큼 높은 요산(통풍), 고혈압, 중성지방, 초기 당뇨(전당뇨) 증세(전당뇨) 수치에 잠깐씩 놀라는 중년의 아저씨가 서있네요.
30대 말에 시작했던 새로운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겉으로 번드레한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누구나 걱정할만한 시기에 걱정할만한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날이면 날마다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지난 4월 초에, 전날 마신 술의 여파로 힘들어하다가 문득 사무실 바깥편 창문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나가서 화창한 봄날 하늘 아래에서 잠시 걷다보니 돈이 없다고 건강까지 버려야하나, 혹시 지금 뭔가 잘 안되는 이유가 내가 건강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내가 못나게 하고 다니면 남들도 결국 나를 못난사람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이상한 현자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잠시 스쳐갔을 생각이 이상하게 그날은 잠들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다음날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졌습니다. 전날 숙취로 그날은 술을 마시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가서 걷기 시작했고, 동네 공원까지 가서 공원을 한바퀴 돌고와서 보니 한 시간 정도 걸었네요. 이 정도 거리면 뛰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가볍게 30분에서 40분 정도 뛰기 시작했고, 새벽 공기를 맡으며 피우는 연초향이 매력적이라는걸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11년 전쯤, 너무나도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때 운동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몇 달 동안 매일 5-7km 정도를 달렸었고, 주변의 권유로 하프마라톤도 두 번 정도 뛰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지속적으로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어렴풋이 하프마라톤 정도는 기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몇 주 준비해서 이악물고 뛰면 완주 자체는 가능한 정도의 난이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조깅 후 출근한 4월 말의 어느 날, 과거 추억이 겹쳐 인터넷을 검색해 서울에서 개최되는 몇 주 후의 마라톤 대회를 검색했고, 이 조건에 부합하는 제20회 새벽강변마라톤대회에 별 생각 없이 half 코스로 등록을 했습니다. 이런 조그만 성취가 현재 저를 답답하게 하는 많은 상황에서 약간의 돌파구가 되어줄 것 같은 기대를 했습니다.
등록 후 몇 주간 업무, 사람 관계로 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생각만큼 새벽운동을 자주할 수는 없었고, 식습관, 음주, 흡연도 그대로였고, 체중도 그대로였고, 큰 마음먹고 6월 초에 발분석 서비스를 통해 구입한 러닝화는 구입 후 신발장에서 잠들어버렸습니다. 어느새 마라톤 대회 전일이 되었고, 그 주에는 감기, 허리근육 염좌로 인해 평소보다도 몸이 힘들었습니다.
6월 17일 대회 당일, 새벽 6시에 잠이 깨어, 정말 참가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다가, 힘들면 바로 그만두고 집에 오자라는 생각으로 일단 대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여의나루 근처 대회장에 오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인파, 남년노소 할 거 없이 상기된 얼굴로 뛸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이 분위기 속에서라면 저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대회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half코스 참가자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0km 구간까지는 제 페이스대로 뛰었고, 그 이상의 영역은 11년만에 처음 뛰어보는 구간입니다. 12km – 15km까지는 페이스를 낮춰서 뛰었고, 18km 까지는 낮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그래도 ‘뛴다’는 정의에 부합하게 몸이 움직였습니다,
18km가 넘어가니, 이건 뛰는게 아닙니다. ‘뛴다’고 생각했지만 옆에서 걷는 사람들보다 느립니다. 온몸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11년 전 어렸을 때와는 모든게 달랐고, 내 몸은 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계속 저를 내리쬐고 있던 태양도 갑자기 너무너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동시에 지금 멈추면 골인 지점까지 다시 뛰는 것은 불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결국 이 마라톤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던 저는 18.5km 정도 지점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생각과 고민과 번뇌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중에 이동한 구간은 고작 500m 정도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앞으로 남은 2.5km 신나게 산책하자는 생각으로 걸어서 전진하다가, 잠깐 다시 뛰다가, 걷다가 반복하며 골인지점까지 도착했고, 도착하고 나니 최종적으로 완주 2시간 30분이 걸렸네요.
다음 목표는 10월에 있는 마라톤 full 코스입니다. 식습관, 음주, 흡연도 현재까지는 그대로이고, 이번 주도 저녁약속이 거의 매일 있는 스케줄러를 보니 한숨만 나옵니다. 다만, 다음 내용을 기억하고 다음 목표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1. 이번에 하프마라톤은 제 상황에 무리였다. 10km정도로 설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 운동은 하루이틀할 게 아니라 평생간다는 생각으로 하자.
3. 신발은 중요하다.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뛰니 새 신발임에도 발에 무리가 없었다.
4. 최소한 담배라도 끊던가 전자담배로 바꿔보자.
모두 행복한 한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