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픽사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일단 <월-E>, <업>, <토이스토리 3>을 제일 높은 위치에 놓고, 그 아래 단계에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을 놓는 편입니다. <코코>도 쓰다보니 그 근처에 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여튼, <엘리멘탈>이 칸 영화제에 처음 공개되고 로튼 지수가 나왔을 때는 그래서 꽤 걱정이 컸었습니다. 평가가 평범 내지 아쉬운 수준이었고, 픽사 영화 기준에서는 낮은 축에 속하는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또 픽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화' 내지, '스트레스가 적은 이야기'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칸 영화제 공개 당시의 평가는 좀 가혹했지 않았나? 싶기도 한 작품이네요.
영화는 꽤나 정치적입니다만 평이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원소를 서로 다른 인종에 비유하고, 주인공 앰버 가족의 서사를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로 그대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미 비슷한 소재였던 (개인적으로는 더 높게 평가하는) <주토피아>에 비해서 단순히 '물'과 '불'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고, 갈등이 굉장히 얕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갈등, 내지 이야기들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초반부 혹평이 가혹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물음표가 붙는 지점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어느 시점부터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스트레스 적은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도, 아이도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주는 것도 애매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플롯이든, 이야기든 비틀기에서 나오는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교롭게도 이번 영화 앞에는 <업>의 후일담에 가까운 <칼의 데이트>라는 단편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면, <업>의 이야기는 확실한 악역이 있었고, 그 악역은 '탐험'이라는 미명 아래 다뤄진 개척자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번 영화 <엘리멘탈>은 꽤 괜찮은 갈등 소재를 가지고 피상적으로 소모한 느낌이 있습니다. 더 깊고 진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까의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이야기의 방식이 굉장히 산만합니다. 영화의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인데, 메인 플롯만 따지면 30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조금 다른 측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그 메인 플롯 바깥에서 등장하고, 반대로 이야기 측면에서는 따로 놀거든요. 어찌보면 이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겠네요. 이야기가 보여주는 바와 들려주는 바가 어긋나 있고, 때때로 충돌합니다.
저는 갈수록 '스트레스 없는 이야기'를 지향하는 방식이 아쉽습니다. 그러니까, <코코>의 자백 생중계나, <소울>의 '오케이 원코인!' 같은 결말 방식이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가족 영화 지향에서 지나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피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사의 이야기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해야할까요.
픽사의 이야기를 단순히 '우화' 내지 '어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고 퉁치기에는 저는 아직 픽사에게 기대하는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충분히 즐거웠고, 원소들의 시각적 효과,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동시에, 이렇게 좋은 소재, 이야기 거리를 이렇게 소모하는 것이 맞는가. 또는,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라기 보단, 여러 이야기와 상황들의 교차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정도면 걱정보다 괜찮다는 묘한 안도와 함께, 조금의 아쉬움이 같이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