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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3/27 21:12:59
Name 具臣
Subject [일반] 심심해서 쓰는 무협 뻘글 12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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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창룡출수蒼龍出水

7년 뒤.

제갈세가는 구정을 계속 찾고 있었다. 세월은 7년이 흘렀지만, 장마철 농번기 겨울 피해서 티 안나게 하다보니 땅을 파본 곳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제갈세가 내에서 장로들과 대주급 이상은 구정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전국새를 얻은 손견의 일을 들먹이며 외부에 알려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받았다. 물론 술법에 관해서는 오직 제갈린, 제갈민, 가주만이 알고 있었고.
화씨세가는 제갈세가에서 구정을 찾는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연산역과 법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에 그 목적을 잘못 짚었다. 구정이 무가지보임은 분명하나, 천하를 호령할만한 세력이 아니라면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물건. 힘은 딸려도 머리는 모자라지 않는 제갈세가가 그걸 모를리 없다. 그렇다면 천자에게 구정을 바치고 뭔가 엄청난 것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닐까? 제갈세가가 저렇게 비밀리에 돈을 쓰는 걸 보면 뭔가 있다. 그건 강호의 판도를 바꿀 일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고수들을 모으며 세가의 기관진식을 늘려나갔다.
3년 쯤 지나자 요업같은 헛소리는 믿지 않게 된 강호의 모든 방파에서도 속은 척하고 제갈세가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제갈민이 조급하게 일을 서두르려하면 제갈린이 몇번 말리기도 했거니와 구정발굴이 워낙에 물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보니, 이제 제갈세가 내에서 구정발굴은 거의 제갈민의 것이 되어버렸고 제갈린은 연산을 찾은 공로마저 제갈민에게 빼앗겼다는 평이 돌았다. 흔하디 흔한 성과 가로채기였으나, 제갈린은 짐짓 '제갈세가를 위한 일인데 누구의 공이면 어떠한가'라며 대범하게 처신했고 제갈세가 내에서는 그에 대한 동정론이 일어났다.
저런 분이 가주가 되셨어야 했는데.
제갈린은 숨어서 웃고 있었다.

실제 땅을 판 건 얼마였든 세월이 7년이나 흘렀으니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제갈민은 끝까지 찾아야 한다고 우겼으나, 세가의 거의 모든 장로와 대주들은 '도대체 언제적 구정을 지금 찾냐, 찾으면 좋긴 하지만 이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제갈민의 실패를 바라마지 않는 제갈천이 있었고. 연산과 구정의 법술에 대해 아는 가주는 제갈민처럼 구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이들의 여론을 아주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말할 수도 없고.
여기서 나선 것이 제갈린이었다.
ㅡ 마지막으로 한 곳만 찾아보세.

그날 저녁.
제갈린은 조용히 산책을 나섰다. 뒷짐을 지고 한가하게 걷자니, 사오장 뒤에 왜소한 종이 나뭇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제갈린이 전음입밀傳音入密을 보냈다.
ㅡ 내일 떠나오. 이번에 찾을거요.
ㅡ 오래 기다리셨소. 그럼 언제쯤 돌아올거요?
ㅡ 보름 안에 오리다. 첫 제물은 고루신마. 타죽어야 하오.
ㅡ 고루마공이라면 쉽지 않겠지만...준비해놓겠소.
ㅡ 일에 실패가 있어서는 아니되오.
ㅡ 우릴 뭘로 보고. 걱정 마시오. 헌데 제갈천을 삶고 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제갈세가가 격류에 빠질 거란 건 알겠소. 그렇다고 원주께서 뜻을 이루실 수 있겠소?
ㅡ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오. 축골공에 짓눌리는 당신 몸이나 걱정하시오.
ㅡ 크흐흐흐....강호에서 노부의 몸을 걱정하는 건 당신이 유일할 거요.

며칠 뒤.
발굴현장이 갑자기 시끄러워 지더니, 제갈세가로 전서구가 날아가고 파발마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바로 뒤, 다른 여러 곳에서도 전서구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강호의 여러 방파를 향해.

제갈린은 다급하게 지시했다.
ㅡ 저것들을 천으로 덮고 수레에 실어라. 호위대가 올 때까지 한걸음이라도 더 세가 쪽으로 가야 한다. 천막 따위는 그대로 두고, 일꾼들은 땅을 계속 파고 있으라고 시켜라. 우리만 빠져나간다.

수레 아홉대와 무사 삼십기騎가 부리나케 한참을 달리다가, 말이 지쳐 쉬게 되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사내 종 하나가 맹인 악공 넷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혼자서 오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뭐야 싶어 지켜보는데, 맹인들이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이 쪽으로 온다. 가만히 두니 구정 옆까지 오더니 갑자기 벼락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떤다.
맹인들을 에워싸는 무사들을 눈짓으로 막고, 제갈린이 물었다.
ㅡ 어디의 누군가?
ㅡ 예, 쇤네들은 행화촌의 악공들이옵니다. 석가장 노태태 생신연에 불려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옵니다.
ㅡ 아까 보니 누구와 목소리를 높이던데?
ㅡ 예, 보시다시피 저희는 앞을 보지 못해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인이 저희를 데리고 왔고 다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하인이 여기까지 데려다 줬으니 그냥 알아서 가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소연을 했는데도 저희를 팽개치고 가버렸습니다.
ㅡ 그런데 생황 퉁소 비파 칠현금을 들고 있군.  악기구성이 이게 맞나?
ㅡ 본래 다른 악기잽이들도 있었습니다만, 다 죽거나 흩어져 저희만 남았습니다요.
ㅡ 사정 딱하게 되었군. 짐수레에 타게. 행화촌이면 가는 길이네.
ㅡ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나으리.
제갈린은 전음을 날렸다.
ㅡ 송장 파묻을 틈이 없다. 강에서 해치워라.
그렇게 구정 곁에 앉게 된 맹인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칠현금을 든 맹인이 말했다.
ㅡ 이 음악은 무슨 음악입니까? 생전 처음 듣습니다.
ㅡ 음악? 무슨? 아무 소리도 안나는데.
그러자 비파를 든 맹인도 거든다.
ㅡ 어? 이게 안들리십니까? 이렇게 신묘한 곡조는 처음 듣습니다.

이놈들 수작 부리는군. 무공을 익힌 흔적도 없는 맹인들을 대뜸 죽이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던 무사들도 생각이 달라졌다. 맹인들이 하독하거나 암기가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살펴보고, 맹인들이 주의를 끄는 사이 누가 습격하는 건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수레가 배에 실려 강심江心에 이르자, 제갈린은 눈짓을 했다. 무사들이 검을 뽑자, 그 소릴 들은 맹인들이 당황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명치에 일검씩 맞고 물에 던져진 맹인들. 발버둥도 못 치고 가라앉는가 싶더니...

머릿속에서 아까 들은 형언할 수 없는 음악이 들리면서 물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뭍으로 밀려나왔다. 상처도 없어졌고, 언제인지 모르게 놓쳤던 악기도 손에 있다. 자신도 모르게 그 곡조를 연주하니, 귀안鬼眼을 뜨게 되었다. 앞에 무사 몇이 다가오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이들에게 다가온 것은 하북팽가의 고수들. 마침 근방의 무림명숙을 뵙고 인사를 드린 뒤 돌아가던 길인데, 제갈세가에서 뭘 찾았는지 확인해 보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ㅡ 어이, 악공. 말 좀 묻지.
ㅡ 이히히히....
ㅡ 이놈들이 미쳤나? 말 좀 묻자니까 웃어?
성질급한 막내 팽신영이 한 대 때리려 다가서자, 맏이 팽일영이 막았다.
ㅡ 잠깐.
이봐, 묻는 말에만 제대로 대답하면...컥.

맹인이 불던 퉁소에서 마기가 스르르 나와 땅으로 스며들더니 맏이의 발 밑에서 솟구쳐 팽일영의 몸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팽신영이 칼을 뽑는 순간, 비파를 든 맹인이 비파를 튕겼다.
팅~ 마기가 철환처럼 쏘아져갔다. 허공에 칼질을 하며 쓰러지는 팽신영.
칠현금에서는 현들이 머리카락처럼 수북하게 자라나더니 너풀너풀 춤추듯 무사들 쪽으로 간다. 마기 한가닥한가닥이 검기같다.
태어나 처음 보는 말도 안되는 광경에 멍하니 있던 다른 팽가 고수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칼을 뽑았다. 팽월영과 팽성영이 오호단천도법을 펼치며 직도로 들어가 표두격으로 내려베는데 그 기세가 위맹스럽다. 각자 마기 스무가닥은 넘게 벤 듯 하다. 그러나 마기는 수백가닥. 팽성영의 견정혈과 중완혈에 마기가 꽂혔다. 팽성영은 이를 악물고 과좌격으로 베어올리더니 그대로 다시 익좌격으로 내려베며 타돌해 들어갔다. 선창 맞은 멧돼지 마냥 뚫고 들어가는 품이 과연 팽가구나 싶다. 팽월영이 함께 베어젖혔더라면 마기를 뚫고 칠현금 앞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팽월영은 머리카락 같은 마기가 스무가닥 쯤 밖에 잘리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몸을 뒤로 뺀 다음. 수십가닥의 마기가 팽성영의 머리를 꿰뚫으며 싸움이 허망하게 끝났다.
팽월영은 그대로 몸을 날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ㅡ 저건 내꺼야.
생황에서 마기가 연기처럼 솟아오르더니 구름처럼 모양을 갖춘다. 이무기 모양으로 되고 있는데, 비파에서 팅~ 소리가 나더니 팽월영이 풀썩 쓰러진다.
ㅡ 이히히히.... 빨리 했어야지.
짜증이 난 생황잽이 맹인이 팽가 고수들의 시신을 짓밟으며 소리질렀다.
ㅡ 벌레처럼 짓밟던 것들에게 밟혀보니 어때?

그날 이후 강호에서 사맹四盲, 邪盲 또는 死盲으로 불리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름도 없었다. 그저 맡은 악기로 불리는 맹인들. 앞을 보지 못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생황은 날 때부터 장님이었고, 칠현금은 병에 걸려, 퉁소는 어릴 때 혼자 놀다 다쳐서 장님이 되었고 버려졌다. 심지어 비파는 원래 맹인도 아니었다. 어릴 때 밥한술 얻어먹어보겠다고 맹인들 떼에 잘못 들어왔는데, 맹인들이 눈이 보이지 않아야 음감音感이 좋아진다며 눈을 빼앗아 버린 사람이었다. 이들의 삶은 뻔했다. 먹는 날이나 굶는 날이나 비슷했고, 평민은 커녕 거지들도 보자마자 반말부터 하는 그런 신세였다. 남운처럼 운이 좋지 못했고 채홍처럼 억세게 인생을 개척하지도 못했다. 아니, 사맹에 비하면 채홍은 행운아였다. 비참한 삶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뒤틀려져갔고 악만 남았다. 그렇게 사악해진 심성이 구정과 공명共鳴한 것이다.

강 건너에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르고, 제갈린 일행은 길을 서둘렀다. 구정 때문에 큰길로만 가야하는데다가 그나마도 길이 붇지 않아, 여기저기서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ㅡ 여~ 어딜 그리들 *빠지게 뛰어가시나?
ㅡ 흑각칠귀 따위가 제갈세가의 길을 막는게냐?
ㅡ 싸움도 못하고 책만 파는 **들이 어디서 **이야?
제갈린이 흑각칠귀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들을 상대하던 무사를 꾸짖었다.
ㅡ 지금 뭐하는게냐! 빨리 베어버리지 못하고!
제갈세가의 무사들 십여명이 발검하고 뛰어들자, 흑각칠귀는 당황했다. 이들은 제갈세가에서 무엇을 가져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무공이 강하지 못한 제갈세가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운반하는 걸 알고, 시비 좀 걸어서 돈이나 적당히 뜯어내 볼 생각이었다. 제갈세가 무사 열명 쯤은 이길 실력이니 제갈세가에서도 돈 좀 쓰고 그냥 갈 줄 안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열몇명이 덤벼들어, 꼬리를 내리기는 뭐하고 싸우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ㅡ 열명 더 도와라!
제갈린이 호령하자 무사 너댓 빼고는 모두 흑각칠귀를 공격했다. 제갈세가 무사 둘이 가벼운 부상만을 입고, 흑각칠귀는 모두 쓰러졌다.

한시진 쯤 뒤에 시작한 또다른 싸움은 그리 쉽게 끝나지 못했다. 녹림의 탕건채에서 백여명이 몰려와 난전을 벌였는데, 채주의 무공이 뜻밖에 강해서 제갈세가 무사 넷이 쓰러지고야 길을 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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