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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21:29
조선도 마지막에는 대한제국으로 '한' 을 강조했는데.. 나중에 언젠가 통일된다면 국호가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한vs고려 중 한이 우세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한은 중국에도 같은 한자의 한이 있어서. 스탄 같은 나라 부족의 의미인가도 싶고
22/10/03 22:41
한이 우세할 것 같긴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고려(코리아)로 부르고 있어서 영문명의 기원이 된 고려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22/10/04 13:56
고려라는 이름이 무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단군의 조선이 고조선이 됐던 것처럼 왕건의 고려는 고고려라 불리겠네요. 꾜려
22/10/03 21:50
약간 쓸데없는데 묘한게, 신라 -> 고려 ->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각나라의 주도세력의 지역이 신라고 고구려 백제를 다 망라한게 재밌네요
신라는 말할것도없이 경주쪽중심이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며, 조선은 전주이씨 전주! +함경도
22/10/03 21:52
예맥과 숙신의 경계가 예전에는 명확했을까가 궁금하긴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신라의 삼한일통 후 예맥계인 고구려 유민과 숙신계인 말갈족이 합쳐서 발해을 건국했다고 배웠는데요. 한 - 예맥 - 숙신 의 관계가 (한 - 예맥) - 숙신 일지 한 - (예맥 - 숙신) 일지 말이죠. 사는 영역으로 보면 한족은 한반도 남쪽에서 좀 떨어져 살았고 예맥과 숙신이 만주에서 부대끼면서 살았을테니까요.
22/10/03 22:06
숙신을 퉁구스어족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차이가 커서 알아서 구분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가 러시아와 카자크족의 관계(근데 이제 말이 안 통하는)와 비슷했다고 봅니다.
22/10/03 22:10
신라는 성골 문화에서 보듯이 왕족은 이민족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도층이 폐쇄적인 혈연을 유지하려는 것은 왕권을 다른 핏줄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인데, 신라 성골문화는 자기 핏줄을 중요시 여긴다기 보다는 성골이라는 집단을 중요시 여기는 걸로 보이고 이건 이민족이 지배계층이 되었을 때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죠.
22/10/04 09:49
고조선계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신라이고, 그 유민들이 오기 전부터 진한 세력권 안에서 살아가던 이들과의 단절 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신라가 세워질 때 변한을 전부 통합한 상태로 세워진 것도 아니고, 경주 일대에서 농사 짓던 고조선계 유민들의 작은 6개 마을이 합쳐 나라를 세운 뒤 주위 소국들을 병탄해나갔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아주 재밌는 기록들이 나타나는데 신라와 왜 양쪽 국가들의 서로에 대한 어마어마한 증오와 전쟁입니다. 백제도, 주위 변한 소국도, 가야도 아닌 하필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에 대한 증오말이죠. 심지어는 수도가 포위된 적도 있죠. 이는 알렉산더 보빈의 학설에서 추론해볼 때 한반도 남부 일부에 잔존해있던 고 일본어계 화자(이들 중 먼저 바다를 건너 규슈에 간 이들이 초기 야마토를 세우는 도래인이라고 생각합니다.)들이 신라와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고 그 영향이 바로 소위 극우 일본이 말하는 임나일본부설이겠죠. 남한 잔존 고일본어 화자들의 식민지가 바로 규슈 일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2/10/03 22:10
한 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한(韓)은 가야의 고대 중국식 음차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면 삼한일통 역사관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 가야가 사실 한의 근본이란 거니까요.
22/10/03 22:41
재밌네요. 본문을 제가 이해했는지 되새겨볼겸 본문의 내용을 제가 이해한대로 늘어놓아 보자면...
삼국시대에는 명백히 서로의 천하관이 존재했었고 이것이 충돌하고 있었기에 하나의 민족 형성이라고 보기엔 무리였음. 영토가 작은 신라가 삼국시대의 승리자가 되면서 민족 통합의 명분이 필요해짐, 그래서 내세운 것이 '삼한의 통일' 그러나 여전히 고구려, 백제 민족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것이 발현된 것이 후삼국 시대 고구려의 뒤를 잇겠다며 나선(국명도 같은) 고려가 등장하여 후삼국시대를 통일하며 기존 신라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고구려계 민족도 수용하게 됨. 고려의 등장으로 민족주의만 빠졌지 거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은 발현된 상태. 고려를 엎어버리고 나선 조선은 다시금 등장할 고려 부활 기치 등을 억누르기 위해 아예 완전히 새로, 근본중의 근본인 '조선(고조선)'이라는 개념을 꺼내옴. 조선이 성공적으로 민족을 묶어내며 신라 시대때부터 유지해내려오던 '삼한'과 합쳐저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
22/10/03 23:38
사실 본문의 요지만 따지자면...
고구려: 예+맥+마한 일부를 통일. 예+맥+한 통일론으로 최초로 삼국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상상. 신라: 삼한+예맥 일부를 통일. 고구려 땅의 태반이 날아간 관계로 예맥한 일통이라고는 못 하고, 고구려를 마한과 등치시켜서 삼한일통론 주장. 고구려는 이때부터 예맥이 아니라 한과 연결됨. 근데 정작 신라는 중앙정치에 지방세력을 배제해 잘 섞이지 않았고 결국 멸망. 고려: 전국의 지배층을 귀족사회로 편입시켜 통일성이 높아짐. 고구려적 문화를 부흥시켜 문화정체성의 한 축으로 격상. 근데 줄어들긴 했지만 유민의식이 아직 있었고, 이름이 고려인 이상 연상작용을 피할 수 없었음. 조선: 삼국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어느 한쪽이 아닌 공통시조를 강조. 이로써 유민의식이 소멸했으나 지역이 삼한이라는 인식은 남음. 대한: 삼한을 합쳐 대한. 삼한에 걸려 있었던 정치적 의미가 퇴색된 뒤라 단물 다 빠진 조선의 이미지를 대신할 신선한 이칭으로 사용할 수 있었음. 이 정도가 됩니다.
22/10/04 07:41
신라 6촌중 양산촌이 얻은 성이 "이씨"이며, 경주 이씨입니다.
이명박이 경주 이씨를 자처하고, 이재명 또한 그러합니다. (이재명, 이재용 항렬이 같음.)
22/10/04 09:30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인데 이병철은 어디에도 없네요?
그리고 돌림자가 끝에서 가운데로도 쉬프팅 되는건지? 그나저나 좌파 맨 왼쪽과 우파 제일 오른쪽 항렬이 같은건 재밌네요
22/10/04 18:42
돌림자는 항렬별로 가운데나 끝 한군데에 사용하죠. 이명박씨는 39대로 가운데에 '상'자 돌림이고 이재명씨는 41대로 가운데에 '재'자 돌림입니다. 이건희씨는 40대 '희'자 돌림입니다.
이명박씨가 족보에 올리는 이름과 실제 사용하는 이름이 다른 경우일 뿐입니다.
22/10/04 12:20
삼한이 예맥과 대립되는 좀 더 한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기원적으로 보면 맞는데, 그 자체가 좀 현대적 사고방식이고 당시 용례로는 달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23620 "그러나 6세기 이후부터는 그 삼한의 실체와 다른 후대의 역사 인식이 전개된다. 즉 삼한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대한 역사가 아닌 요하 동쪽과 한반도 지역 전체의 역사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삼한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삼한이라는 명칭이 요하 동쪽의 동이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된 이유는 기자조선과 연결 지어 삼한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삼한 인식은 신라에 그대로 전해졌다. 신라 사료에서는 7세기 후반 이후의 자료부터 삼한의 용례가 나타난다. ...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삼한이 곧 삼국을 의미하는 용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삼한을 곧 삼국이라 인식하며, 삼한과 삼국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사례는 9세기 말에 가서야 나타난다. 한편, 고대 일본에서도 8세기 초반부터 한반도 지역 또는 그 지역에 있었던 삼국을 삼한이라 부른 것이 확인된다. 이와 같이 삼한이라는 명칭은 역사성과 함께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한반도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쓰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 좀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래 중국의 지명 또는 종족에 대한 명칭은 그렇게 엄밀하지 않고 대유법과 그 반대 방식을 막 섞어서 써요. 이를테면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부를 때 과거에 그 지역에 있던 범위가 다른 나라 이름을 가져와서 부르거나, 그 나라의 한 지역 이름을 부르거나 등등. 요즘 식으로 보자면 네덜란드인 한명이 왔는데 로마에서 왔다 라는 서술도 가능한 거죠. 로마=유럽이었으니까. 뭔가 좀 격을 높이고 싶다거나 오히려 격하하고 싶다거나 또는 독자에게 연관된 어떤 고사를 상기하게 하고 싶다거나 등등 다양한 문맥적인 목적이 지리적 엄밀함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 것에서 춘추필법도 나오고.. 암튼 말이 좀 샜는데 요점은 삼한일통론에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으나, 삼한이라는 말이 예맥족+한족의 강역 전체를 포괄하는 말로 쓰인 건 오히려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용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신라에서 삼한을 막연한 강역적 의미가 아니라 삼국에 일대일 대응시키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수백년 지나서인데 이는 아마도 의식적인 정치적 작업이라기보다는 흔히 있는 역사적 혼동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라는 것. 중국에서 기자조선의 문화권으로 인식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는 또 진국이 고조선의 후예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죠. 진국과 진한을 혼동하는 서술들도 간간이 있는데 진국은 진한과는 다르고 삼한 전체를 통칭하는 명목적이거나 상징적인 개념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고조선의 준왕이 최초의 진왕가 또는 마한왕가(건마국)를 열었다는 설도 있고 마한에서 가장 강성하던 목지국에게 밀려서 목지국의 진왕이 곧 명목상 삼한의 맹주를 맡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고조선-준왕-건마국-목지국의 계승 과정을 통해 (https://namu.wiki/w/%EA%B1%B4%EB%A7%88%EA%B5%AD) 보여지는 지배층의 지리적, 계층적 이동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조선'과 '한'의 정치체제/혈족성의 변증법을 현대 한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가늠하는 꽤 중요한 부분일 것 같군요.
22/10/04 14:08
진한쪽 초기 묘제같은거 보면 실제로 고조선과의 연관성이 좀 보인다고 전에 들은것 같기도 한데...뭐 물론 연관성이 보인다고 진한이 곧 진국으로 치환될 수 있는건 아니겠지만요.
22/10/04 16:23
그게 진한이 아니고 제가 위에 나무위키 링크 걸어놓은 목지 이전 마한의 중심이었던 걸로 추정되는 건마(또는 한마) 얘기일 겁니다.
22/10/04 16:58
사로국쪽 초기 묘제를 보면 서로 상이한 두가지 양식이 병존하는 시기가 한동안 관측된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는 조선계 유이민 계통 하나는 선주민 계통 아닌가 추측한다고...
22/10/04 18:37
고조선계 유민의 자취와 북방 문명의 유입은 삼한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준왕의 남하 및 건국이라는 문헌기술과 고조선계 집단의 소규모 국가형성이라는 고고학적 성과의 연결 자체는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더군요. 마한이라는 데 합의가 있을 뿐 그게 건마인지 목지인지 진국인지 영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요. 뭐 신라도 고조선 유민과 한계 원주민이 같이 건국했다고 하고 백제는 고조선계 부여계 한계까지 섞여서 혼란스러울 정도니 예맥계 고(구)려와 한계 백제신라의 종족적 경계란 것 자체가 후대에 생겨난 환상일 수도 있고요. 뭐 사실 한반도 남부와 북부라고 해봐야 중국이나 미국으로 보면 좀 큰 주나 성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이즈의 역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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