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고, 부모님에게 갈때마다 부모님의 대화 레파토리가 하나씩 늘어간다.
주된 레파토리는, '네가 저만할때는~'으로 시작되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이야기들이다.
어디가서 길을 잃었다거나, 어디다 실례를 했다던가, 뭔가를 부쉈다던가 등등..
장인어른도 아들을 보러 오시면서, 아내에게 비슷한 소리를 하신다.
'네가 어렸을때는 어땠는줄 아냐~'로 시작하는, 아내는 정작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들..
아내에게나 나에게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여물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부모님들에게는 아직까지 간직되는 소중한 추억의 이야기인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져도, 부모님 눈에는 어린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아이로만 보인다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아내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아이의 어린시절은,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인것 같다고..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하다보면, 이 돌잔치라는건 정말로 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돈을 집던지 실타래를 줍던지, 그 행사 자체는 아이에게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니, 아이에겐 기억에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의미깊은 행사이다.
아이가 돌잡이때 무엇을 잡았는지는, 아이가 자라서 부모곁을 떠나가고 손주를 안겨주고 설령 만나기 힘들어지더라도 계속해서 부모의 기억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는 아이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아이가 아프면 함께 마음아팠고, 열이나서 병원을 찾아다니고, 주사바늘이 혈관에 꽂히지 않아서 몇번씩 피부를 쑤시는 것을 보면서 슬퍼했었다.
아이가 웃을때 함께 웃었고, 아이가 하나씩 하는 행동이 늘어날때마다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처음으로 눈을 뜨고, 처음으로 소리를 내고, 처음으로 뒤집고, 처음으로 기어다니고, 처음으로 걸어다니고, 처음으로 말을 하는 그 모든 순간들..
너무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것 같은 그런 순간들은, 그럼에도 순간순간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의 인생은 부모의 것이 아니고, 아이들 개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어린시절은, 그렇기에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훗날 아이가 부모를 떠나더라도, 부모가 계속해서 아이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의 발달도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막연한 기억과 몇장의 필름카메라로밖에 남기지 못하셨으니까..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발달한 시대에, 아이의 어린 시절을 영상과 사진으로 한가득 남겨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참 다행한 일이다.
더 많이 사진찍고, 더 많이 영상을 남기리라.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인 아이와의 시간을.. 더 많이 남기고 간직하리라.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너희 어렸을때는~'이라고 말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아이에게 언젠가 '네가 어렸을때는~ ' 이라고 말할 날이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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