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어린시절의 집을 한번만 경험해보았기에 다른사람들의 어린시절을 잘모르고 각자 집의 사연이 있겠구나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할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핫한 오은영박사의 방송에서 출연자나 시청자들이 하는 반응 댓글들을 보고 비로소 내 어린시절에 문제가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렸을때 내가 살았던곳은 제법 큰 항구도시였는데 수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영화 기생충에 보면 반지하에 사는 주인공가족에게서 가난의 냄새가 나는데 기생충에 나오는 냄새는 내가 살았던 동네
에서 나는 냄새에 비하면 향기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집은 도시에서 가장 집값이 싼동네였다. 나무와 시멘트와 슬레이트로 된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동네에는 수산물가공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에서는 가공하고 난 수산물 폐기물을 공장 마당에 쌓아두었다가 어쩌다가 한번씩 폐기물을 치웠다.
공장주인은 지역의 유지였고 동네사람들중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제법 있어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항의를 못했다.
그래서 동네 전체에는 수산물이 썩어들어가는 냄새가 늘 났는데 동네 사람들은 항상 그 냄새를 달고 다녔다.
가난해서 그 동네에 산다는 낙인... 그 냄새는 일종의 낙인이었다.
나는 어린시절 담이 작고 유순해서 원양어선을 타던 아버지의 충실한 심부름꾼이었다.
절반은 집에 안들어오고 절반은 집에들어오는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방안에서 어머니가 차려준 술상으로 낮에 술을 마시다
"담배"라고 하며 돈을 주면 나는 아버지의 인내심이 다하기 전에 뛰어갔다와야 했다.
처음에는 동네 슈퍼에 가서 담배를 사오는 심부름을 완벽히 수행한것에 만족해 과자를 사먹으라며 천원을 주면 근육질의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아버지가 든든하고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담배를 걸어가서 사오면 아버지의 인내력이 금새 바닥나서 귓속고막에 번개가 친다는 것을 알고는 "담배"라고 하면 바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때는 늘 무슨일이 생길지 몰라 무서웠고 긴장했다.
어린시절 살던 집엔 방이 두개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방과 내 방은 돌로 된 벽으로 되어있었는데 방음이 일정부분만 되었다. 밤에 둘이서 이야기하는소리가 들리는데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소리가 커지면 쿵쿵하고 뭔가를 벽에 찍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지곤 했다. 어쩔때는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소리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머리를 잡고 벽에 쿵쿵찍는소리였다. 항상 방문은 닫혀있었는데 언젠가 한번 쿵쿵소리가 들릴때 도저히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갔을때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방문이 열려있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깔고 앉아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정말 죽이는것 처럼 두손으로 강하게 조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어머니는 그와중에도 나를 보고 방에 빨리들어가라고 손짓을 했고 흥분한 아버지는 나의 존재를 보자 손을 풀고 헛기침을 하더니 담배를 물었다.
그날 새벽이었다. 평소에는 시간이 되면 잠을 잘자던 나이지만 그날은 새벽까지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중간중간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 오맨을 보면 어린아이가 각종 악마의 힘으로 덩치큰 어른들을 살해하는데 나에게도 그런 육체적 힘을 넘는 초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나는 최대한 노력해서 자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옷을 차려입고 한손엔 가방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멀리 가는구나.. 이제 영영 헤어지는거구나.. 나는 너무 슬펐는데 자는 연기를 계속할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한참을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눈빛이 내 눈꺼풀을 뚫고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아마 미안하다는 감정보다 조금 고차원의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던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나무현관문을 삐걱 열고 나갈때 그 소리가 꽤 컸는데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소리를 못들었다.
나는 나대신 아버지가 저소리를 듣고 어머니를 붙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나는 계속 자는척을 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창문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이제 새벽이 아침으로 변하면서 어슴푸레하게 밝아지는 동네의 입구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고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어도 밥을 차려주던 어머니는 없었다.
아버지는 일하러갔다가 저녁에 각종빵을 박스채 사놓고 밥시간마다 먹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맛있게 빵을 여러개 먹었지만
나중에는 빵을 먹는게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물배를 채웠다.
그러다가 기력이 없어질때쯤 고모가 집에와서 경악을 하더니 밥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그다음날 친척들이 와서 가족회의를 한뒤 아버지는 반성을 하고 나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집은 충북 음성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시골에 있었는데 사과가 유명한 곳이었다.
마을은 하루에 버스가 아침 한번 저녁한번 오는 곳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마을에 구멍가게가 없고 한참 떨어진 옆마을에 있었다.
학교가 상당히 멀어서 5킬로를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때의 내마음은 색깔로 하면 회색빛 같았다. 마음이 심하게 다쳐서인지 시골에서도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그마한 것에도
쉽게 상처받아서 아이들이 노는것을 구경만 했던거 같다.
불행중 다행인지 어머니는 다시 몇달뒤 다시 집에 오시고 나는 짧은 시골생활을 종료할수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셔서 외삼촌이 소개해준 생선도매상에게 생선을 떼어다가 시장에서 팔았다. 억척스럽게 변한거 같았다.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전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직업을 바꿔서 운전을 배워서 택시를 몰았다.
생활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친척들의 눈초리때문인지 아버지도 더이상 폭력성은 예전처럼 강하지는 않았던거 같다.
문제는 어른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 다친 마음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많아졌다. 별것도 아닌일에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거나 조금 서운하면 학교에서 수돗가 뒤에 숨어서
한참을 울다가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오거나 했다. 활력이 없어서 늘 또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것을 앉아서 보기만 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정말 활력이 넘쳤다. 쉬지도 않고 뛰어다녔다.
걸음도 힘이 없어서 한번은 담임 선생님이 축쳐저서 집에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다 못해 한번은 집까지 따라온적이 있었다. 집에 혹시 무슨 큰 변고가 있나해서 집에 어른이 없어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경양식집에 데리고 가서 함박스테이크를 사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콜라도
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나서 사람들에게 내마음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상하게 속물근성이 심해졌다.
물질적인것을 부러워하고 탐하게 된것이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내용중에 이런내용이 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법이 없다
어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는 나비를 수집하니?" 따위의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니? 몸무게는 얼마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애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고 믿는 것이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요."
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어떤 집인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십만 프랑 짜리 집을 봤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야 참 멋진 집이구나!"
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린왕자식의 분류를 보면 나는 몸만 어린애였지 마음은 어른이었다.
잘사는 친구 못사는 친구 옷을 잘입고 옷에서 냄새가 안나는 친구 옷이 기운흔적이 있고 냄새나는 친구
이런식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속엔 이미 에덴의 뱀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다 돈을 벌어서 그런지 드디어 냄새나는 동네를 벗어나고 20km떨어진 곳에서 연립빌라에 입주하게 되었다.
학교도 전학했다. 학구열도 제법 있는 동네였었다. 이상하게 그동네는 언덕위에 고급아파트단지가 있었고 언덕아래는 주택들과 연립빌라가 있는 구조의 동네였는데 전에 살던 동네와 달리 사람들이 사는 환경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주로 놀았다.
옷도 깔끔하고 기운데도 하나도 없고 학용품 책가방이 다 고급스러웠다. 나는 늘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근사한 직장에서 양복을 입고 일했으며 어머니들은 생일파티도 친구들을 불러서 각종 비싼 열대과일이며 처음 들어보는 음식을 먹으며 게임기를 생일선물로 사준다고 했다.
나는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덕위 고급아파트에 사는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보육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나 부모없이 할머니에게 자라는 친구나 홀아버지 밑에서자라는 친구 그리고 나는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졌지만
언덕위 고급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비슷비슷하게 잘살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때의 판타지는 그들과 같이 검도를 배우고 게임기로 게임을 하고 생일파티하면서 선물을 주고받고하는 그런 게 상상의 주제였다.
오후에 석양이 질때쯤이면 언덕위의 하얀 아파트는 석양빛을 받아 아름답고 고고하게 서있었다. 그시간대에 나는 자주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이런 다짐도 했던거 같다. 어른이 되어 성공해서 저런 언덕위 좋은 아파트 살아야지.
초등학교때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근데 공부를 하게 된 동기도 알고보면 참 비천하다.
그당시 연립주택에서는 분리수거가 없었고 모든 쓰레기를 그냥 검정비닐에 넣어서 집 한구석에 있는 검정색 문을 열면 상부만 열렸는데 거기다 그냥버리면 해당층의 쓰레기는 1층에 있는 쓰레기모으는곳에 떨어지는 구조였다.
단단하고 무거운 검정색 문을 열면 온갖 세상의 모든 악취가 다 나기에 열자마자 버리고 금방 닫아야 했다.
어느 엄청나게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때는 연립주택 난방을 연탄으로 했는데 기름보일러로 개조한 집도 있었다. 우리집은 아직 연탄보일러라서
새벽에도 연탄이 다 떨어지면 갈아야 했고 어느때쯤 되면 연탄을 갈아야 했는데 이상하게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공유의식이 뛰어난지 연탄을 다같이 받아서 사용했다.
사용하는양이 비슷해서 그런가.. 새벽에 내가 집게를 가지고 연탄을 가지러 가는데 골목길 입구엔 트럭한대가 있었고 그추운겨울에 냄새나는 쓰레기모으는곳의 쓰레기들을 한참을 차에 싣는 남자 두명이 있었다.
1분도 버티기 힘든 이한겨울의 추위에 저 온갖 냄새가 나는 연립주택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때 당시 집에는 세계위인전집이 있었는데 그림도 섞여있어서 읽기가 편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중에서 석가모니에 대한 위인전이 있었는데 모든것을 다가진 왕자가 성안의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살다가 우연히 성밖에 나가서 비천하게 사는 사람들의 고통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고귀한 왕자는 세상사람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고행을 시작하지만, 마음이 비천한 나는 추운한겨울에 악취나는 쓰레기수거장의 문을 열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어머니에게 어제본 것을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부안하면 커서 저런일 해야한다."
그 뒤 초등학교시절 내내 나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어머니는 약간 남자상이었다. 광대가 튀어나오고 몸은 억셌으며 생선장사를 하느라 몸에서는 몸냄새와 생선냄새가 섞인 특유의 냄새가 났다.
주로 평소에는 몸빼바지를 즐겨입었는데 어느날 주말이었던거 같은데 화장도 짙게 하고 집안에서 타인의 결혼식이나 큰행사가 있을때만 입는 옷을 입고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미술전시회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왜 어머니가 나를 그곳에 데려가는지 이해가 안갔지만 그냥 잠자코 따라갔다.
항상 전시회를 하는 곳이 아니라 어떤 돈많은 부인이 취미로 하는 미술전시회였고 그분은 입구에 앉아있었다.
살이 희고 통통했는데 입은 옷이나 외모에서 고급스럽다는게 저절로 느껴졌다. 잠시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더니 나를 보고 참 부럽다고 했다.
나는 뭐가 부럽다고 하는지 의아했다.
잠시 뒤 그 여자는 말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안빠지는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찌는 니가 참 부럽다."
어머니는 미술관의 그림들을 천천히 보았다. 덩달아 나도 옆에서 말없이 그림을 보는데 나의 예민한 감각은 어머니가 평소와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그림을 감상하는 다른 우아한 부인들을 힐끔힐끔 보는 어머니는 왠지 주눅이 들어있는거 같았다. 학교에서 언덕위 고급아파트 친구들이 생일파티 이야기를 할때 들으면서 부러워하고 있는 내 감정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미성숙해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어른도 이런 감정을 어머니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게 매우 이상했다.
나는 어렸을때는 늘 한집에 살았기에 어머니를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미술전시회를 가지 않는 사람이다.
아직도 그때 미술전시회에 왜 갔는지 알수 없다.
안타깝게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부정적인 기억들만 가득 떠오른다.
기억의 속성이 원래 이런건가... 부정적인 것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는것..
아마도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기에 인간의 기억활동이 이런것이겠지..
얼마전 집에 다녀왔을때가 생각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제 많이 늙어서 전형적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다.
어렸을때는 덩치도 크고 근육질에 힘도 쎄 무섭기만한 아버지는 더이상 공포스럽지 않았고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생선장사를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어머니는 이제는 대화할때 한마디씩 쏘아붙이는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아버지도 이제 허리도 굽고 기력도 예전같지 않다. 우리 가족은 꽤 비싼 고기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고기를 먹고 나서 내가 타는 기차시간때문에 고기집 앞에서 우리 가족은 헤어졌다.
한참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한참 젊은 20대 후반의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키우느라 온갖 일을 다 겪고 이젠 저렇게 힘없는 노인의 뒷모습이 되었구나.
허리가 굽은 두 노인은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다.
그 긴 시간동안 온갖 큰 고난을 다 이겨내며 하고싶은것 다 못하고 나를 키워준 두분에게 표현할줄 모르는 성격이지만 앞으로 조금더
표현하고 맛있는것도 더 많이 사드려야겠다.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니 행복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던것 같다. 불행에 가까운 어린시절 어린시절 다친 마음은 그뒤로도 잘 회복이 되지
않고 그런 내가 싫었던 적이 많았고 부모님도 원망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난 뒤 40대의 나의 눈으로 이제 보니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제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껏 먹고 재미있는게 많은 요즘시대에 다양한것을 즐길수 있게 망가지지 않고 어린시절을 그래도 잘 버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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