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3/29 18:37:33
Name 공염불
Subject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2)
생각보다 좋은 반응들을 보여주셔서 하하;;
망글이라 쓰고 지워야겠다 싶었는데 (그러면서 1을 왜 붙였니...)
갈수록 재미가 없어질 텐데 욕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억 회로를 돌려 봅니다.

3. 직원을 '가족'이 아니라 가'족'같이 대하네

당시 만들던 게임은 '모바일 타이쿤'류 게임이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그걸 모바일 화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아마 그 당시에도 몇 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놀이 공원에 기구 짓고 돈 벌고 아이템 사서 꾸미고 뭐 그런 류.

아, RPG '용눈x'는 뭐냐고?
이게 참 웃긴 게
이 쥐똥보다 적은 수의 인원들이 몇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앞서 언급한 아홉 명 중, 사장과 사모는 제외하면 일곱인데
그 중 프로그래머 둘, 그래픽 둘, 기획 셋이었다.
각 프로그래머가 프로젝트 하나씩 담당
그래픽 둘은 (흔히 그래픽 공장, 창고 시스템 혹은 공용 조직처럼) 양쪽 모두 작업 진행
기획자 둘이 하나씩 담당
이런 구조였다.
나는 시다바리로 양쪽 다 참여했다.
지금도 이야기하는 소위 '기획 잡부'의 길을 시작부터 열심히 걸었더랬다.
그리고 뛰쳐나간 기획자가 있었으니 열 명이었지만 아무튼 아홉 명이 됐던 것.

당시 경력자들에게 듣기로, 당대 손꼽히는 규모의 회사들 제외하고 (N모사 라던가 다른 N모사 라던가...) 대부분은 이런 작은 규모의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더랬다. (모바일 피쳐폰 쪽은 특히) 물론 카더라라 정확하진 않다.

어찌됐든 그 뒤로 타이쿤 게임은 새로 맡은 기획자가 어찌저찌 해서 출시, 돈은 그럭저럭 벌게 됐었고
나는 그 게임에서 유료화 아이템 기획이라던가, 일부 대사 수정 같은 잔업을 담당했다.
그래도 처음 게임이라는 걸 만들어 봤고 출시까지 했어서 정말 기분은 좋았었다.
(물론 뭐 인센티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요즘도 많이 듣는...위기다, 지금 힘을 모아야한다 등의 이유로 국물도 없었다.
회식 한 번 했나? 회식 자리에서 사장의 나이스한 판단력과 빠른 결정력,
트렌드를 읽는 능력으로 돈을 벌었다는 자랑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회식은 나중에 S모사 R 계열사 종무식 때 먹던 음식과 더불어 역대 최고로 소화 안 되던 음식 탑 쓰리에 꼽히겠다.)
아무튼 뭐, 그때까진 좋았었다.
그때까지는.
입사 후 한 두달 정도 됐을까 까지는 말이다.

"염불씨, 시놉 가져와 봐요."
타이쿤 출시 후 곧바로, 대망의 회사 메인 타이틀이자 무려 당대 탑3 모바일 유통사와 계약이 된 회사의 젖줄이자 희망
'용눈X2'의 기획에 들어간 후 어느 날.
사장은 내가 가지고 간 시나리오를 받아 들고 유심히 읽어보다가
"허허"
내 앞으로 집어 던졌다.
좋게 얘기하면 손으로 요렇게 휙, 하고 날린 것일테지만. (후리자 도돔파 비슷한 에네르기파 쏘듯이?)
천둥번개가 심장어택을 하는 상황. (후리자 에네르기파 맞고 죽은 크리링처럼)
그런데 그 소리가 넘나 가관이었다.

"이게 재미있어요?"
"스토리에서 캐릭터 네러티브가 안 보이잖아요? 어떤 인물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가 스토리에 임팩트가 없잖아요."
"알맹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써 왔네?"
...
사장과 사모의 지옥불 하모니에 귀에서 피가 나고 온 몸이 불타는 상황에서 멘탈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아, '가족'이 같이 하는 가'족'같은 회사여서 욕도 두 배로 듣는 셈.

시놉시스였다. 게임 전체 스토리를 기승전결 구조로 해서 아웃라인을 요약한 내용.
르귄 누나나 킹 아자씨, 아니 영도 횽님이나 민희 누나 불러다가 써 보라고 해 봐라. 몇 줄 짜리 시놉가지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지.
(물론 쓸 수도 있지만, 난 그 사람들이 아니잖아.)
더 문제는 피드백이랍시고 내 놓는 말들은 초등학생이 써도 그렇게는 안 쓸 것 같은, 감상문보다도 형편없는 내용들이었다.  

아무리 어버버 거리는 사회초년생이었다고 할 지라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나도 어설프게 방어를 했다.
세부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렇다고. 전체 시나리오를 요약 설명한 내용이라 그런 것이라고.
캐릭터 설정이라던가 스토리 흐름, 구성, 퀘스트 같은 알맹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시놉은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한 초안, 밑그림이라고.
하지만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스토리 작법서에 나온 단어들을 남발하며
넌 기본이 안 되어있다, 스토리 구성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부터
동생처럼 생각해서, 우린 함께 가는 가족이니까 이렇게 잘 케어해 주는 거라는 말
요즘 트랜드 (당시 스토리 트렌드의 정점 중 하나인 봉준호의 괴물을 예로 들며)에 대해서 연구를 안 하니 스토리가 이 모양이다 라는
옆에서 듣던 프로그래머가 실소를 터트리는 말까지 사자후처럼 내뿜었다.

원래 작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어찌나 퍼붓던지
누가보면 금모사왕 빙의한 줄.

"야, 아직도 모르겠어?"
만신창이가 되어 물러나, 밖에서 동생과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던 내게 다가온
그래픽 실장 직함을 단, 그래픽 총괄 형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시나리오에 쟤(사장)가 XX랑 YY는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거 안 들어가서 저러는 거야."


1818181818181818181818...

이때 깨달았다.
이 인간한테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은 우리 게임이 아니라 '지(사장) 게임'이었구나
바로 '사장'이 만드는, (사장의, 사장에 의한, 사장을 위한) 예술이자 제품이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PS : 쓴 글 댓글도 다 알림이 오는군요...몰랐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3/29 18:4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xx랑 yy가 뭔지 무척 궁금하네요흐흐
3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싸우지마세요
22/03/29 19:15
수정 아이콘
여기까지 나온 정보로 추리해보자면 디XX 회사로 추정됩니다?!
암튼 3편 결제는 어디서...
그럴수도있어
22/03/29 19:19
수정 아이콘
이런건 10편 정도 미리쓰고 하는거 맞죠? 먼저 퇴사한 여기획자랑 몇 편에 만날지 설렙니다.
잉차잉차
22/03/29 19:29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빈 줄 좀 넉넉히 추가해주시면 읽기 더 편할 것 같아요!
바이바이배드맨
22/03/29 19:37
수정 아이콘
예전에 바나나 후숙 보는 느낌이네요. 정말 재밌었는데
신류진
22/03/29 19:38
수정 아이콘
그래서 XX랑 YY랑 결합해서 XY가 되는건가요
12년째도피중
22/03/29 19:50
수정 아이콘
오오 빠른 업뎃. 이맛에 결제들을 하는구나.
22/03/29 20:15
수정 아이콘
꿀잼 입니다 크크크
홈랜더
22/03/29 20:55
수정 아이콘
갈수록 흥미진진 합니다
다음편 기대되요
22/03/29 21:19
수정 아이콘
흔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잖아..?
이웃집개발자
22/03/29 21:20
수정 아이콘
일단 빨리 추천드시고 다음편좀..
나혼자만레벨업
22/03/29 21:29
수정 아이콘
용눈X2 는 나름 성공했나요? 퍼블리셔가 괜찮던데...
헤으응
22/03/29 22:07
수정 아이콘
게임을 검색했더니 동명의 PC98 19금 게임이?!
야크모
22/03/29 23:35
수정 아이콘
으아 궁금합니다!
22/03/30 08:38
수정 아이콘
사장이 매우 보편적인 중소기업 사장형 인간이군요.
티케이
22/03/30 08:44
수정 아이콘
아 잼남니다 다음편 주세요 크크
22/03/30 09:59
수정 아이콘
아 피지알에 왜 결제버튼이 없는겁니까...
리니시아
22/03/30 10:27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너무 공감되네요
직장생활 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 을 만드는 것 보다 '사장이 원하는것' 만들어 드리는 것이 대부분이죠.
이래서 때려치고 다들 내 사업하겠다 싶기도 하고..
상큼발랄개구리
22/03/30 11:46
수정 아이콘
어서..어서어서 뒷편도 써주세요~
완전 재밌어요 크킄
Blooming
22/03/30 12:28
수정 아이콘
오너와 경영자가 분리되지 않은 게임회사들은 오너의 에고를 실체화하는게 주된 업무인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덟글자뭘로하지
22/03/30 14:22
수정 아이콘
옛날일이라고요? 회사 규모가 좀 커서 오너가 직접 개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만 떼면 제 지금이랑 똑같은데...? 크크크
22/03/30 15:16
수정 아이콘
멀리 안 가고 엔씨소프트가 맨날 리니지만 내는 이유도...
22/03/30 15:26
수정 아이콘
선생님 유료연재분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른취침
22/03/30 15:51
수정 아이콘
무삭제판은 어디로 가야 볼 수 있나요???
기사조련가
22/03/30 18:30
수정 아이콘
게임개발물로 소설 써보세요 잘팔리는 장르입니다.
유료구매수 1-2천 나오더라구여
이장도면 직장인 뺨싸대기 때릴 수익이라
22/03/30 19:31
수정 아이콘
와 이거 리얼 꿀잼이네요 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344 [일반] 후쿠야먀가 보는 우크라이나 사태 "자유주의는 결함이 있지만 지켜져야 한다" [46] 숨고르기12896 22/03/31 12896 8
95343 [일반] [WWE] 전혀 기대되지 않는 레슬매니아 38 (로먼-브록매니아) [51] Love.of.Tears.11160 22/03/31 11160 1
95342 [일반] 재택근무, 자율출퇴근 근무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52] BRco9923 22/03/31 9923 6
95341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4) [86] 공염불11226 22/03/31 11226 29
95340 [일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7] 쩜삼이5946 22/03/31 5946 12
95339 [일반] 속이 좀 쓰리긴한데 좋은제품 쓰고있어서 올립니다. [20] 키토13586 22/03/30 13586 0
95338 [일반] 그알 가평계곡 다이빙 익사 사건 결론 나왔습니다. [95] 깐부17969 22/03/30 17969 9
95337 [일반] 피자헛 페이코인 이벤트 [28] 바둑아위험해8577 22/03/30 8577 6
95336 [일반] 전 정신 질환으로 공익을 갔습니다... [19] 산딸기먹자14070 22/03/30 14070 23
95335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3) [17] 공염불10359 22/03/30 10359 33
95334 [일반] 충청남도 1인당 GRDP(GDP) 통계 [12] 버들소리7814 22/03/30 7814 1
95333 [일반] 울산 아파트도 분양가 8억 시대 접어들었네요. [49] 10210005 22/03/30 10005 0
95332 [일반] 자동차 블루투스 연결 여우짓(feat. 유게) [92] 카미트리아10132 22/03/30 10132 6
95331 [일반] 소소한 학부시절 미팅 이야기 [45] 피우피우10539 22/03/30 10539 37
95330 [일반] 되도 않는 오션뷰보다는 성냥갑뷰가 좋다 [44] 나쁜부동산14009 22/03/29 14009 18
95329 [일반] 분유포트 관련 잡담 [41] 랑비12473 22/03/29 12473 14
95328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2) [26] 공염불10093 22/03/29 10093 24
95327 [일반] 오늘로 등업됐습니다 [10] 리뷰모아5604 22/03/29 5604 11
95326 [일반] [테크 히스토리] 결국 애플이 다 이기는 이어폰의 역사 [41] Fig.1108056 22/03/29 108056 19
95325 [일반] 전세계 COVID-19 사망률 수치(WHO 기준) [54] 톤업선크림10533 22/03/29 10533 15
95324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1) [34] 공염불11189 22/03/29 11189 38
95323 [일반]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관련 보도할때는 보안관련 상식은 지킵시다. [48] giants11069 22/03/29 11069 14
95322 [일반] 요즘 시대는 연애말고 즐길게 많다는 말이 있죠 [58] 챗셔아이11988 22/03/29 11988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