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는 두 세상이 어떻게 충돌하는지에 대한 영화입니다. 유배를 온 정약전은 창대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일종의 거래로써 서로의 지식을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흑백 화면이겠죠. 이준익 감독의 전작이었던 <동주>처럼 흑백으로 찍은 영화이긴 한데, 아무래도 방향성은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전작의 흑백이 어두운 세계와 등불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자산어보>의 흑백은 자연풍광에 더해서 약간의 수묵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두 캐릭터가 만나고 서로의 가치관으로 인해 길이 갈라지는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정씨 3형제의 길이 각기 갈리게 되고, 정약전이 정약용과 다른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창대와 정약전의 길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넌지시 암시를 던져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의 변주라고 한다면 보통 양반 쪽이 외면적인 것, 혹은 기성의 질서를 중시하는 쪽으로, 반대로 백성 측이 개혁가적 이미지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양반 쪽인 정약전이 새로운 질서를, 반대로 창대가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정약전의 사상은 꽤 급진적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영화적 허구가 과한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요. 어떤 측면에서는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묘사된 건 아닐까 싶은 걱정도 살짝은 들 정도로 급진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두 철학이 맞붙어 충돌하고 두 세계가 뒤집히는 이야기에서 관객은 한쪽 편으로 강제로 쏠리게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한 그러다보니 이상주의적인 창대의 이야기가 이미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힘을 좀 많이 잃게 됩니다.
둘째로 아쉬운 점은, 영화 상에서 가질 수 있는 철학적인 탐구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느냐에 있을 것 같아요. 스펙타클한 재미나 화려함보다 단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에서 어떤 장면들은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약간은 밍밍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물음에 비해서 그 물음을 충분히 탐구하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난했다는 평가가 더 적합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굳이 몇몇 개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을까 싶은 의문도 들긴 하고, 약간은 관습적인 마무리 방식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고, 오히려 꽤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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