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어떤 명확한 구분이 있는지는 밝히는 것만해도 꽤나 많은 내용이 필요할 것 같으나
결론적으로 중요한 건 대다수의 시청자가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귀결될거 같습니다.
용의 눈물과 태조왕건을 보고 자란세대로서 정통사극에 대한 갈증은 있으나
드라마 자체의 이야기로서의 개연성과 주제의식만 있다면
굳이 정통이다 아니다 이걸 따지는 건 크게 의미가 없는거 같네요.
정도전이 처음 나왔을때 아버지 세대에 '조선왕조 오백년'과 '용의 눈물'이 있다면,
우리 시대는 '정도전'부터 가즈아.. 라고 외쳤으나..
현실은 시궁창..
'육룡이 나르샤' 같은 팬픽을 사극으로 분류해야하나..
뭐 그래도 신세경은 이쁘더라.. 라고 만족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고,
역사왜곡의 올바른(?) 예시를 보여준 드라마 한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통사극 보다는 트렌디 드라마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지만
사극 매니아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작품이 바로 '공주의 남자' 되겠습니다.
2. 시대 배경
이미 많은 사극에서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왕과 비, 한명회 등) 계유정난입니다.
문종, 단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김종서 등등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으나
관련 내용은 너무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본작은 이 와중에 김종서의 아들과 세조의 딸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나게 되는
발칙한(?) 내용이 주요 스토리입니다.
3 . 역사적 사건 혹은 인물의 재해석
군사 정권의 영향인지는 알수 없으나 8~90년대에 무인정사와 계유정난을 다루는 사극들은
이방원이나 수양대군을 구국의 결단이나 권신 타도 등 대의명분의 화신으로 그리는게 정통이었죠.
최근에는 이런 기조가 많이 바뀌긴 했습니다.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야 정몽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니? 내는 임금하면 아이 되니?' 라고 외친다거나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이 권력을 얻기위해 상투를 틀고 흑화해서 정도전과 정몽주를 도륙낸다거나 [사도]에서 노론이고 나발이고 인간의 정신적 결함이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제 더 이상 역사속의 인물들은 대의명분의 틀안에서 고루하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고 각자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사극의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는 변곡점 쯤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작의 세조는 더 이상 대의명분 따위를 따지지 않는 권력욕의 화신으로서
역대 세조중 가장 악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종서는 비교적 전통적인 묘사에 가깝긴하나,
수양과 일시적으로나마 관개개선을 시도하는 등 추후 대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입체성을 부여합니다.
문종에 대한 묘사는 좀 아쉽긴 합니다.
그 와중에 가장 신선한 건 신숙주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본작의 신숙주는 기존의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을 넘어서서
자발적으로 세조의 행적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야심찬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죠.
역사적 고증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퓨전 사극에서
실존인물에 대한 설득력 있는 재해석을 시도하는 부분은
역사 매니아도 한 번 쯤 고민 해볼만한 지점을 여럿 만들어냅니다.
4. 그 외 잡설..
사실 본작을 순수하게 드라마로 바라본다면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긴 합니다.
문채원은 한복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배우이기는 하나, 극초반 연기력이 다소 아쉬우며,
계유정난 하나에 집중하는 스토리 구조상 중간 중간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김영철의 세조와 이순재의 김종서는 역대 어느 사극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으며,
정종과 경혜공주를 맡은 이민우와 홍수현의 커플링도 상당히 볼만한 요소이긴합니다.
최근에 볼 사극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혹은
문채원과 홍수현의 10년전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쯤 보셔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1편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네요. 그럼 다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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