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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2/21 21: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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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EU는 러시아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역사가 로버트 컨퀘스트(Robert Conquest)가 스탈린의 범죄들을 다룬 매우 중요한 저서인 “The Great Terror”의 신판을 저술하고 있을 때, 그는 새로운 제목을 생각해 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책은 소련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가 난무하던 시대에 소련의 참상들을 묘사했던 책이었다. (그러나) 신판이 나오던 시기에는 당시 갓 오픈되었던 아카이브가 컨퀘스트의 서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친구인 소설가 킹슬리 에이미스(Kingsley Amis)가 함축적인 새 타이틀을 제안했다: “그러게 내가 말했지, 이 멍청한 바보들아!”

오늘날 유럽의 동쪽으로 향하면, 러시아에 대해 유사한 정서를 찾기가 쉽다. 발트해 국가들이나 폴란드는 EU 외무 장관 조세프 보렐(Josep Borrell)이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의 감옥 수감 이후 모스크바에 방문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보렐은 수모를 당했다. 기자 회견에서 러시아 외무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는 보렐이 옆에 있는 동안 EU를 두고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라고 일축했다. 보렐이 카탈루냐 독립의 확고한 반대자라는 점을 알고 있는 라브로프가 스페인 당국의 카탈루냐 정치인 처리 문제를 이야기로 꺼냈을 때, 유럽의 위선은 조롱을 당했다. 보렐은 심지어 감옥에 있는 나발니 방문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거기에 있는 동안,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 지지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독일, 폴란드, 스웨덴 외교관들을 자국에서 추방시켰다는 뉴스가 유출되었다. 동유럽의 정치인들이 에이미스보다 좀 더 정중했을지는 몰라도, 담고 있는 메세지는 동일하다.

러시아를 다루는 일은 EU에게 가장 시급한 대외 정책 문제이다. 또한 유럽 연합에게 일관성이 가장 결여된 분야이기도 하다. 유럽 각국이 중국 문제에 매우 잘 대처하는 방법이나 미국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를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절망적이게도 아예 갈라져 있다. 러시아는 당신이 프랑스에 있느냐, 독일에 있느냐, 폴란드에 있느냐에 따라서 잠재적인 혹은 필수적인 동맹이 될 수도,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도, 현존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EU 외무 정책의 개념은 가장 좋을 때에도 언제나 조잡하기 그지없었지만, 러시아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랬다. “덩치 큰 소년들이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폴란드의 유럽 의회 의원이자 전 외무 장관인 라데크 시코르스키(Radek Sikorski)가 말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다.

비둘기파의 태도는 실용주의, 비관주의, 냉소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호의적인 (대러) 전략의 근거로 문화와 지리를 든다: 러시아는 괴롭히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인내와 교류를 강조한다. — 비판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름을 붙인 전술 말이다. 러시아에 관하여, 마크롱은 수십 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강경한 조치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런 발언들이 정책통(policy wonk)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현명할지 모르지만, EU의 유일한 하드파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위로가 덜 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경제 논리가 지정학 논리를 능가한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드 스트림 2(Nord Stream 2)는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EU 차원의 전략을 약화시키지만, 계속해서 독일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 독일 총리 게라르드 슈뢰더(Gerhard Schröder)가 그 계획의 의장이라는 사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앙겔라 메르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행동들에 대해 제재를 이끌고 — 그리고 고수함으로써 — 비판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퇴임을 앞두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기독교 민주 연합(CDU)의 새 당수인 아르민 라셰트(Armin Laschet)는 더욱 비둘기파적인 성향이 강하다. 심지어 2015년 러시아 해커들이 독일 하원의 컴퓨터에 침입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공격조차도 (그녀의) 견해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EU의 동쪽의 매파 무리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프랑스와 독일만이 그러는 게 아니다. EU의 또 다른 대국들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마저도 러시아에 관해서라면 마찬가지로 온건한 편이다.

각자의 접근법은 EU가 러시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가정을 공유한 것이다. 그러나, EU는 자신들의 힘을 잊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보다 9배나 큰 경제 규모를 보유한 인구 4.5억 명의 블록이다; 러시아 경제는 스페인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고, 이탈리아보다도 작다. EU 국가들은 합쳐서 러시아 국방비의 3배 이상을 쓴다. 프랑스와 독일이 합쳐서 약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응할 때, EU는 마치 애원하듯이 행동한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동기 부여를 통해 보충한다: 사헬에서 벨라루스까지 러시아는 EU에 끊임없는 트러블을 일으키는 열정 넘치는 트롤이다.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푸틴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제재나 노르드 스트림 2 파기 등 러시아에 더 확고한 태도를 취할 수단이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그것을 사용할 의지이다. 벨기에 의원인 아시타 칸코(Assita Kanko)가 보렐에게 물었다. “EU의 공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비둘기들이 울 때

불운했던 그의 모스크바 방문은 러시아의 갱스터리즘이 더이상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정점을 찍는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가 유럽과의 건설적인 관계에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제재는 모든 정부의 매우 까다로운 만장일치 동의를 필요로 하고, 심지어 인권을 유린한 사람들을 더욱 쉽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EU 법률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행동들 때문에 그런 조치들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보통 러시아는 그 자체로 러시아 자신들의 최악의 적이다.” 동유럽의 한 관료가 말한다.

이러한 명쾌함은 유럽의 비둘기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기후 같은 문제에서 함께 협력하자는, 러시아와의 더 나은 관계에 대한 그들의 비전은 충분히 호소력이 있다. 이 세상에서 러시아는 매우 올바르게 행동하는 G8 회원국이 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러시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유럽 국가들은 자신의 정적을 살해하려고 하고, 대리전에 불을 지피고, 이웃 나라들을 해킹하고 있는 정부와 마주하고 있다. 그 나라는 일부러 협력이 아닌 대립을 선택하는 나라이며, 따라서 EU는 — 회원국 정부들과 EU 각 기관들은 — 이러한 점을 인지해야 한다.

진짜 러시아의 모습은 서유럽 국가들이 떠올리는 무해한 이미지보다는 동유럽 국가들이 설명하는 방식에 훨씬 더 가깝다. 아무도 마크롱더러 러시아가 결국에는 (유럽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그의 희망을 버리라고 강요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독일의 정치인들에게 지정학적인 이득을 위해 단기적인 경제 타격을 감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https://www.economist.com/europe/2021/02/13/the-european-union-must-face-up-to-the-real-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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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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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EU에 러시아를 (푸틴 이전에) 가입시켰어야 했다고 봅니다. 잠재적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었다고 봐요.
지금와서도 유효한게, EU까지 러시아를 완전히 적으로 돌리면 결국 러시아 중국이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게 더 격한 미국+EU vs 중국+러시아 경쟁(세계대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이는)을 유발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물론 그것을 더 원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영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네오콘이라든가...
21/02/21 22:34
수정 아이콘
러시아 문제는, EU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지요.
EU의 경제규모가 얼마고 군사적 지출이 얼마고 하는 건 다 EU가 통일되어 있거나 최소한 통일된 외교안보적 조치 (대표적으로 EU의 독자적 전쟁 수행력) 가 가능해진 정도로 통합된 이후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지금 현재 EU의 입장이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건 매우 단순한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바 프랑스, 독일, 동유럽의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다르고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지 그 중 누구도 순진하거나 바보라서가 아니에요.

동유럽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의 안보적 위협이고, 전통적으로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러시아와 경쟁해온 독일은 현재 지정학적 야심에 거의 전적으로 무관심한 상태죠. 우리가 장사할 수 있는 한 다 괜찮아 이거저거 귀찮게좀 하지 말아줄래? 라는 태도인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태도. EU에서 유일하게 지정학적 전략이란 걸 갖고 있는 프랑스의 주 관심은 사헬과 중동 지역이고, 프랑스의 입장은 EU멤버가 실제적 위험에 처한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제공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별로 없는 러시아와의 전면전보다는 남쪽으로부터의 위협으로 EU가 안보적 초점을 확장해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몇백년간 러시아는 프랑스에게 유용한 동맹이었고요.

이 문제들의 한 가지 원인은, 사실 러시아가 너무 무섭다기보다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 프랑스도 독일도 러시아를 진짜 위협으로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통일이 안되는 거죠. 프랑스가 볼 때 러시아의 유이한 진로는 자신들이 영프독과 같은 체급의 중규모 열강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고 1) 중국의 하위파트너로 정착하거나 2) 유럽화되면서 유럽-중국 사이를 잇는 실용적인 중개국가로 경제적 도약을 꾀하거나 둘 밖에 없고, 현재와 같은 허장성세를 몇십년이면 모를까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는 없다는 건데요. 두고 봐야겠죠.
elaborate
21/02/21 23:31
수정 아이콘
러시아의 현재 스탠스 고집은 내부 역량만 깎아먹을 거 같긴 합니다.
21/02/21 23:53
수정 아이콘
마크롱 관점이 그거죠. 현 러시아는 지속불가능하다. 유럽이 더 가혹하게 적대할수록 러시아는 1)중국화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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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2 07:22
수정 아이콘
하지만 마크롱의 말은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 국제 사회의 룰을 준수하고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의미가 생기는 건데, 지금 러시아의 행동은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어서 골치 아픈 부분이군요.
21/02/22 09:22
수정 아이콘
그런 비판은 본문과 같은 의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죠. 경제재제를 강화하고 노르드스트림을 중단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증명됐거든요. 본문 논리에서 가장 빈약한 부분도 거기에요. EU는 의지가 없을 뿐 확고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그럼 당연히 제기될 "그 수단은 결과를 가져올 건가?" 라는 질문은 회피하고 있거든요. 그럼 누가 이익이냐는 거죠. 영국은 원래도 폴란드 등 동유럽을 EU에서 불-독 동맹에 대응하는 자신의 주된 동맹대상으로 삼고 있었고, 유럽의 안보를 미-영 해양세력의 시각에서 보니까, 독-불이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는 나토의 노선에서 이탈하여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노선으로 가려는 낌새가 보이면 순진한 몽상가들이라고 쏘아붙이면서 동유럽의 안보불안감을 자극하는 겁니다. 나는 나갔지만 늬들이 늬들 맘대로 하려는 꼴은 못보겠어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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