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군대가서도 소중한 시간들 쪼개가며 기록 했었습니다.
이등병, 일병때는 그게 약간 병적으로 변해서
수양록에 별별걸 다 썼습니다.
문제는 제가 관물대를 개인공간이라 생각했던것

이등병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일병 선임이 저를 막사 뒤로 부르는겁니다.
다짜고짜 불만있냐 라고 하길래 저는, 없다고 대답했지만 날아오는건 배빵
물론 죽을만큼 강하게 때리진 않았지만 오히려 압도하는 분위기때문에 더 숨이 탁 막혔습니다.
왜이럴까, 왜 이럴까 저는 순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 수양록에 기록했습니다 멍청하게

얼마뒤, 이번엔 상병이 저를부릅니다. 보통 상병은 이등병 터치 안했습니다.
12개월차이나는 아버지 군번 상병이 챙겨주고, 그 위로는 오히려 잘해줬죠.
우리내무실은 그랬습니다.
근데 제 아버지군번이 저를 불러서 똑같은 말을 약간 부드러운 어조로 던졌습니다.
요즘 내무생활 불편하냐? 억울하게 혼났어?

저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이사람들이 나의 수양록을 보고있었구나.
제가 수양록에다가 억울하게 까인상황을 조목조목 적어놨었거든요.
내가 맞는데, 틀렸다고 대답해야하는 상황이 불편하다
왜 나의 말을 믿어주지않는걸까?
이런거요.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일석점호전에, 칭찬과 반성의 시간이란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분대장보다 선임인 병장이 반성할거 없어? 라고 묻는겁니다.
원하는 대답이 있다는걸 알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저들의 비위를 거스르지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짬좀 먹으면 다알죠. 이놈 지금 머리굴리고있구나.
머리굴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개갈굼의 시간이 왔었습니다.

제가 군생활할땐, 폭력이 없지는 않지만 거의 사라졌던 과도기였습니다. 제 위로는 선임의 폭력을 경험했었죠.
자기들은 당했지만, 아래로는 물려주지 않던시기.
반작용으로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그만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는 도가 텄었습니다.
저는 억울하지만 죄송하다고 죽은듯 엎드렸습니다. 근데 잘 알죠. 진짜 죄송하지않아한다는것까지도 아는건지, 아는척했던건지
진심으로 죄송해하지 않는다며, 계속 뒤에서 괴롭혔었습니다.

이 모든게 수양록에서 비롯된건 아니었을겁니다만, 저는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한참동안은, 나의 편지도 선임들이 보는게 아닌가 검열해가며 썼었던 기억 나네요.
앞으로 죽을때까지 만날일 없겠지만 혹시라도 만난다면, 묻고 싶습니다.
나는 수양록을 남이 볼줄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조차 선임을 한번도 욕한적이 없는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기록한것도 모른척 넘어가주지 못할것이었나?


뒷이야기지만 이후 제가 행정일을 하면서, 중대원 마음의 편지나 분대장수첩, 병영생활기록부 등을 다 보게될줄은 몰랐습니다. 군대라는곳이 그렇게 돌아가더라구요. (혹시 불합리한거 찌르려면 무조건 상급부대에 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거 봐도 한번도 티냈다거나 한적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 잊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