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6/21 16:00:14
Name 수국
Subject [일반] (수정)DNA, 미생물, 그리고 뒤샹의 '샘' (수정됨)
1. 고교 시절, 모 과학관에 가서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모형화하여 어둠 속에서 빛나게 한 것을 보고 처음 과학책에 나오는 주제에 대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중 나선 구조의 사다리 같은 모형이었는데 푸른 빛을 기조로 사이사이에 흰 빛과 붉은 빛이 돌고 있었죠.
(자동차 계기판 떠올리시면 그 색들 조합을 대충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구아닌-시토신, 아데닌- 티민. 재밌지는 않던 그런 조합에 관한 내용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어요.
만들어 놓기에 따라 이런 것도 이쁘게 보이는구나 하고 느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2. 그 무렵이었던 것 같네요. 대형 서점 외국 도서 코너에서 미생물의 모습을 드로잉하여 도안으로 쓸 수 있게 한 책을 본 것도요.
흔히 말하는 모 명품의 페이즐리 무늬 같은 걸 떠올리시면 될 거예요.
저는 그걸 지금도 무심결에 '미생물 무늬'라고 부릅니다만.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작은 세계, 그 안에도 상당히 아름다운 형상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그 때 꺠달았습니다.

3. 바다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산호초나 해초류들을 볼 때도 비슷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죠.
어떤 경이로움과 함께요.


위에 쓴 세 가지 경우 중에 마지막 경우에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의 두 경우는... 공감하기보다 저를 별나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떤 브랜드의 스카프가 이쁘다고 하면 따분한 사람은 될지언정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서설이 길었네요. 마르셀 뒤샹의 '샘'이란 작품을 보다가 든 생각입니다.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두고 '샘'이라고 했다죠.
어려운 미학 용어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뭘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 상당 부분 사회의 고정관념이 작용한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처음 '샘'을 봤을 때는 튀고 싶어하는 미술가인 건가 했었어요. 이런 걸...하고요.
뒤늦게 뒤샹에게 공감하며 글을 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원래 쓴 글입니다.
그런데 댓글들을 보니 제가 뒤샹의 '샘 '을 잘못 이해한 것 같네요.
잘 모르고 글을 쓴 게 부끄럽지만, 댓글들이 달려서 글은 그대로 둘게요.
좋은 댓글들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0/06/21 16:22
수정 아이콘
저도 미알못이지만 뒤샹 말하고자 했던 건 발상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관점이 뒤바뀔 때의 쾌감, 절대적인 것 같았던 본질이 무너질 때의 전율 뭐 그런거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듯 가치가 전도되는 상황에서 뿜어져나오는 창조성, 생명력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잉크부스
20/06/21 17:22
수정 아이콘
사실 뒤샹의 샘은 소변기를 아름답다고 전시한게 아니긴 합니다.
다다이즘은 기존체계에 대한 저항운동이었죠.
정확한 해석은 이딴 소변기도 예술가의 사인하나면 예술가의 권위를 빌려 작품이된다.. 라는 예술의 허구성을 까기 위한 전시였죠
이선화
20/06/21 18:39
수정 아이콘
[이 소변기도 내 작품이고 예술이다. 그걸 인정해라]라는 의미의 저항운동 아니었나요? 예술을 정의하는 건 너희들 평론가가 아니라 예술가들이다. 지금의 정의는 협소하다.. 뭐 그런 얘기였다고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
잉크부스
20/06/21 19:20
수정 아이콘
다다이즘은 예술가와 평론가의 대립이라기 보단
기존 엘리트 예술에 대한 대립적 가치로 나온겁니다.
고전의 아름다운 미술만 예술이냐.. 이딴것고 예술가가 예술이라 칭하면 예술이다 라는 비꼼, 저항 이랄까..

그래서 다다이스트 들이 자기 미술을 아름답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 예술에서 금기된 추악하거나 유치한것도 예술이라 주장함으로서 저항했죠.

뒤샹의 샘은 그 정점이구요.. 물론 이후 설치예술에 영향을 줬지만 뒤샹의 의도가 아름다움을 표현한건 아니었단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전립선
20/06/21 17:42
수정 아이콘
DNA double helix structure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라면 아마 여러 분들이 공감하시긴 할 텐데
20/06/21 21:33
수정 아이콘
좋은 댓글들 모두 고맙습니다. 제가 뒤샹의 '샘'을 잘못 이해했나봐요.;;;
잘 모르고 글을 쓴 게 부끄럽지만 댓글들도 달렸고 글은 그냥 두겠습니다.
20/06/21 22:12
수정 아이콘
뒤상이라면 아마도 창작자인 자신의 의도 따위와는 관계없이 나름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걸 오히려 기뻐했을 거 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6862 [정치] 이제 한국도 핵을 가질 때가 되었습니다. [105] 송파사랑11143 20/06/23 11143 0
86861 [일반] 지금 돌아보면 오싹했던 일. [17] 공기청정기9618 20/06/23 9618 5
86858 [정치] 왜 빠가 되는걸까요? [75] 움하하9343 20/06/22 9343 0
86857 [정치]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정부와 여당. [312] 움하하17781 20/06/22 17781 0
86856 [일반] [일상글]담배 끊고 싶다. [50] 정휘인8158 20/06/22 8158 5
86855 [일반] 국민연금 2054년 고갈이 된답니다.. [93] 박세웅15748 20/06/22 15748 4
86853 [일반] [서브컬쳐] 사랑은 기다림이 아닌, 쟁취하는 것! 러브코메디 애니 노래 모음(2) [43] 라쇼10329 20/06/22 10329 0
86852 [일반] 시트콤 프렌즈와 빅뱅이론 [49] 샤르미에티미9885 20/06/22 9885 5
86851 [일반] 네이버 해킹 당했습니다. feat.카톡 사칭 사기 [21] mcu9686 20/06/22 9686 0
86850 [일반]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2 [17] PKKA7928 20/06/22 7928 13
86848 [정치] 공기업의 비정규직 직고용. 이젠 제발 그만... [399] 24cm18042 20/06/22 18042 0
86847 [정치] 홍영표 '도덕성검증 비공개' 인사청문회법 발의 [122] 쿠보타만쥬11392 20/06/22 11392 0
86846 [정치] [폭로] 볼턴이 원했던 대북해법은 무엇이었나? [75] aurelius12397 20/06/22 12397 0
86843 [일반] 새벽감성에 꽂혀 올려보는 알고리즘추천노래영상 문문문무6530 20/06/22 6530 1
86842 [일반] [개미사육기]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진 있어요) + 사진 추가요 [32] ArthurMorgan8256 20/06/22 8256 28
86841 [일반] [개미사육기] 신설비 설치 (사진 있어요) [20] ArthurMorgan7581 20/06/22 7581 20
86840 [일반] 사회인 야구에 입문해 봅시다. [45] 기사조련가12374 20/06/22 12374 6
86839 [일반] 소고, 장기에 바라는 점 [55] 수국7773 20/06/21 7773 0
86838 [일반] 혹시 재벌가 3세대에 의한 기업경영에 대해 자세히 아는 분 있으신지요...? [39] nexon10388 20/06/21 10388 1
86837 [일반] 자동차 후면에 전진등을 달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86] VictoryFood10265 20/06/21 10265 0
86836 [일반] Oldies but goodies 플레이리스트 [6] FLUXUX7345 20/06/21 7345 2
86835 [정치] '묶음 할인' 금지 이틀 만에…슬그머니 '없던 일'로 돌린 환경부 [171] 쿠보타만쥬15943 20/06/21 15943 0
86834 [일반] (수정)DNA, 미생물, 그리고 뒤샹의 '샘' [7] 수국6862 20/06/21 686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