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4/24 03:18:22
Name ohfree
Subject [일반] 비오는 날.


1.
대학 시절 어느 한 선배가 있었다.

돈은 없었지만 멋은 있었던지 비오는 수요일만 되면은 학생회실에 빨간 장미 한송이를 가지고 와서는 여자 친구 줄 거라며 분위기를 잡았었다.

“형. 진짜 여자들이 좋아해요?”

새내기 후배의 물음에 선배는 오른발로 꼰 다리를 왼 다리로 잔뜩 폼을 잡는다.

“디지제”
“오오”

잠시후 내 선배이자 그분의 여자친구가 학생회실에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는 선배.
후배들의 입에서 오오~~ 하는 자연스런 비지엠이 깔린다.

배시시 웃던 선배 누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새내기때 그런 선배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지 나도 나중에 비오는 수요일이 되면 저리 하리라 마음 먹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 수요일에 비가 오지 않은건 아니었다.






2.
국민학생 시절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는 창밖의 비를 한참 바라 보시곤 했다.

그리곤 노는것에 열중해 있는 막둥이를 돌아 보시며

“비도 오는데 부처리나 부쳐 먹을까나?”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럼 철없는 막둥이는

“고기 넣는거 잊지 말고.”

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랬다. 고기 좋아하는 자식 때문에 우리집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잡채, 비빔국수, 라면 등등 의 거의 모든 음식에 고기가 들어갔다.


엄마가 부처리를 부쳐 오면 후후 불어가며 찢어 먹는다.
엄마는 두번째 부처리를 부치러 다시 부엌으로 향하신다.

“엄마. 빨리와. 앉어.”
“응. 이것만 부치고 갈게.”
“아따. 같이 먹어야 맛있지.”

그렇게 두장, 세장, 넉장을 부치고 오셔야 자리에 앉으신다.
한장, 두장, 석장을 혼자 다 쳐 먹고도 네 장째를 엄마와 노나 먹는다.

“엄마. 근데 왜 비오는데 부처리 부쳐 먹어?”
“……”



이때 엄마가 뭐라 대답 하셨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집에 내려 가거들랑 엄마에게 부처리 부쳐 달라고 떼 쓰면서 슬며시 물어봐야겠다.




이후 나도 자식을 낳으면 비오는날 부처리를 부쳐 먹어야 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019년까지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극심한 대가뭄이 온건 아니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04/24 03:20
수정 아이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완전 훈훈한 이야기네요. 근데 에필로그가 왜케 슬픕니까.
에바 그린
19/04/24 03:31
수정 아이콘
아 이게 내 피지알이지!!! 너무 좋네요 흐흐.

부처리는 또 처음들어보네요. 찌짐, 부침개는 들어봤는데
오히모히
19/04/24 03:53
수정 아이콘
부처리?!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솜씨가 심상치 않으시네요 흐흐
Dowhatyoucan't
19/04/24 04:49
수정 아이콘
생깁니다. 생겨요.
19/04/24 08:13
수정 아이콘
아래 해로운 글 보다가 이 글 보니 힐링이 되네요. 올해는 생기실 겁니다. 저도요. ㅠㅠ
Hammuzzi
19/04/24 08:26
수정 아이콘
아이고... 눈에 눈물이... 곧 좋은사람 만나실겁니다.
스타본지7년
19/04/24 08:55
수정 아이콘
막줄이 핵심인가요..
미숙한 S씨
19/04/24 09:24
수정 아이콘
아 좋다.. .

아랫글 보고 속이 답답했는데 이 글 보고 속이 편안~ 해지네요. 크크크...
이래야 내 피지알이지....
WhenyouinRome...
19/04/24 09:53
수정 아이콘
아맛...아아아아.....
이건 재밌고 슬픈 글이다..
미나리를사나마나
19/04/24 10:01
수정 아이콘
편안..
저도 고등학생 때 생각나네요.
여친이랑 서로 수줍어서. 가까워질 계기가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어 가방 안에는 항상 우산이 있었는데, 그 해 가뭄이 들었던..
handmade
19/04/24 12:13
수정 아이콘
가뭄만 아니었으면 꽤나 풋풋한 하이틴 로멘스 그림인데 흐흐흐
19/04/24 14:34
수정 아이콘
좋네요. 주제도 좋지만 표현 방식도 좋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0888 [일반]  [8]부모가 되어가는것 [22] 스컬리7112 19/04/24 7112 25
80887 [일반] (노스포) 어벤저스 엔드게임 소감문 [33] 내일은해가뜬다10079 19/04/24 10079 5
80885 [일반] 비오는 날. [12] ohfree5530 19/04/24 5530 14
80883 [일반] [8]남편'을' 덕질한 기록을 공유합니다. [115] 메모네이드19577 19/04/24 19577 60
80882 [일반] 어제 공개된 테슬라 자율주행 정말 놀랍네요 [37] AUAIAUAI12569 19/04/23 12569 0
80881 [일반] 열 번째 이사를 앞두고 [5] 보편적인노래6164 19/04/23 6164 23
80880 [일반] 내가 사랑했던 연예인들은 모두... [11] Secundo9535 19/04/23 9535 0
80879 [일반] 무더운 여름 7월, 난방요금이 오를 수 있습니다. [20] 치열하게10392 19/04/23 10392 2
80878 [일반] 여야4당이 선거제 개혁과 공수처 법안의 패스트트랙을 추인했습니다. [72] 아유10118 19/04/23 10118 12
80877 [일반] 어벤져스4 : 엔드게임이 내일 개봉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41] 빵pro점쟁이11883 19/04/23 11883 0
80876 [일반] 780억원 천안 야구장 사건 무죄 과연 진실은? [53] 삭제됨10756 19/04/23 10756 5
80875 [일반] [8] 픽션 - 마속의 가정 상황을 가정하여 쓴 가정 전투 Intro [16] 미카엘5816 19/04/23 5816 6
80874 [일반] 시험 2시간 남겨두고 pgr공부법 갑니다.-상- [41] 태양연어9410 19/04/23 9410 7
80873 [일반] 엔드게임 화장실 전략 [102] 검은우산12274 19/04/23 12274 0
80871 [일반] 주식투자 혼자해도 될까요?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67] 청운지몽8946 19/04/23 8946 1
80870 [일반] 홍준표와 유시민의 콜라보 방송이 열립니다. [67] 홍준표12716 19/04/23 12716 4
80869 [일반] (스포 X) 엔드게임 티저 영상 대사 번역 - (1) [17] 니나노나7124 19/04/23 7124 0
80868 [일반] (약혐)전쟁도 스트리밍으로 보며 후원하는 세상 [50] 오리공작15121 19/04/23 15121 22
80867 [일반] [나눔]어벤져스 왕아맥 4월 24일-완료 [70] Le_Ciel7921 19/04/23 7921 21
80866 [일반] 우크라이나 코미디언 대통령 당선 [43] 나디아 연대기11317 19/04/22 11317 0
80865 [일반] 도대체 중간따윈 없는 우리나라 날씨 [62] 사업드래군14838 19/04/22 14838 10
80864 [일반] 어떤 회사의 장례식 [45] 삭제됨16325 19/04/22 16325 18
80863 [일반] 윤지오씨와 박훈, 박준영 변호사 [85] 10217063 19/04/22 17063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