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4/13 04:15:33
Name 슬픈운명
Subject [일반] 뒤늦은 후회와 반성
벌써 새벽 3시 36분이다. 어제 아침에 수업을 위해서 먹은 카페인의 효능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본 시간이다.

나는 병역을 마치고 2년전 24살의 나이에 신입생으로 들어간 대학생이었다.

입학하고 며칠 후에 학과 선배님들과의 술자리가 여럿 있었다.

당시의 나는 소심한데다가 극도로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아싸였다.

처음 선배들이 나를 봤을 때에는 살갑게 반말했다.

"반갑다" "여어!" "이리와"

선배지만 상대는 이제 군대가야 할 동생들이었다. 내가 보여야 할 정상적인 반응으로는

'저 선배님들보다 나이 많은데요...'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심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냥 가까이 해봤자 나만 힘들어지겠지....'

당시에 나는 그런 심리가 깔려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심리가 맞다.


그리고 그 선배들이 내 나이를 알게 되면서

'아, 반말해서 죄송합니다 형.'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러나 나의 반응은

'아 괜찮아요 흐흐'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에이 괜찮아요 말 안놓을게요. 어차피 선배님들이잖아요.'


돌려서 말했지만 친애의 표시에 대한 명백한 거절.


2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식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온 사람들을 뿌리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멀게는 20년전, 가까이는 지금까지.

지난 20년간 나는 그닥 좋은 교우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때로는 나를 괴롭혔기에 죽도록 미운 놈들도 있었고, 얄밉게 싸움을 부추기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노, 증오, 고통과 절망에 눈이 멀어서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사람들을 못알아봤다.

심지어 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사람에게 '뭔가 나를 괴롭힐 속셈이 있어서'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욕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나쁜놈이었다. 나는 나를 괴롭힌 놈들만 죽도록 미워했지만, 정작 나는 알게모르게 상대의 호의를 수없이 깎아내린 '인간미 없는 놈'이었던 것이다.

무지했던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몹쓸 짓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악질인 것은 아니다. 정말로 무지했으니까.

하지만 무지가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동안 죽도록 미웠던 그놈들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에 무지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들도 마찬가지였을테니까.
만약에 만날 기회가 생겨서 그들이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해줄 의향이 있다.(물론, 지금도 개차반이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다.)

반성한다. 나란 녀석.



최근에는 지난 과오들에 대한 속죄로 짝사랑을 하고 있다. 과거에 나한테 먼저 다가와준 여자가 여럿 있었는데, 역시 그 여자들도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호의를 깎아내렸다.

짝사랑을 하는 이유는 심플했다. 반해버렸으니까.
하지만 짝사랑 도중에 또 한가지 이유가 추가됐다. 지금껏 내가 버린 인연들의 심정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렇게 상처가 치유되고, 성장하나 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pppppppppp
19/04/13 07:16
수정 아이콘
저도 반성합니다.
지니팅커벨여행
19/04/13 09:08
수정 아이콘
저도 하나 기억나네요.
전 직장에 막 입사했을 때 이전 회사 경력을 2년 반이나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무렵 들어 온 경력사원이 있었습니다.
한살 어렸는데 회사 서열 상으로 1년 위라 제가 선배 대접을 해줬거든요.
근데 새로 들어온 사원들끼리 뭘 준비해야 해서 자주 만나 이런 저런 일들을 했고, 한번은 그 친구가 메신저 쪽지로 '형'이라는 표현을 썼죠.
저는 직장 후배이니 형이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장을 보냈고요.
직장 선배니까 나름 대우해준다는 표현이었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당황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몇달 지나 생각해 보니 그는 동기들이 있는 우리가 부러웠고 외로웠나 봐요.
그런데 그런 친근감의 표시를 회사 위계질서라는 명목으로 걷어 차 버린 거죠.
차라리 그때 편하게 받아 줬으면 지금까지도 마치 같은 입사동기처럼 친하게 지냈을텐데 하는 후회를 가끔 하곤 합니다.
19/04/13 10: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스스로 인정하고 돌아보는 마음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만, 비슷한 성향에 비슷한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말씀드리자면, 스스로를 벌해서 과거의 잘못을 회복하려 하는 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굳이 '지금껏 내가 버린 인연들의 심정'을 느끼려고 하실 필요 없고요, 그것을 짝사랑의 이유로 삼으시는 건 더 위험합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그냥 잊어버리시고 행복해지세요. 앞으로 잘 하면 됩니다. 사실 잘 못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외로우니까 중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 '버린 인연'들은 사실 막상 별 생각 없었을 거에요, 그쪽은 다른 인연들이 있는 사람들이라...)
19/04/13 15:36
수정 아이콘
저도 스스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성격이라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를 만들고 넖혀가는게 너무 싫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0801 [일반] 인공지능은 종교를 가지지 않을까? [103] 루트에리노10969 19/04/15 10969 35
80800 [일반] 소설 군림천하를 보다 중단하게 된 느낌적인 느낌. [58] 미사모쯔12006 19/04/15 12006 1
80799 [일반] 한동안 만들어 놓은 비즈들 [17] 及時雨12772 19/04/15 12772 5
80798 [일반] 한국당 도의원 망언 "학자금 대출 못 갚는 건 99% 본인 잘못" [93] Lucifer14532 19/04/15 14532 4
80797 [일반] [동동이의 회계 이야기] 아시아나항공은 어째서! [24] 복슬이남친동동이8296 19/04/15 8296 21
80796 [일반] 쿠팡 작년 매출 65% 성장,영업 손실 1조 970억 [80] 크레토스15600 19/04/15 15600 1
80795 [일반] [육아] 9개월 육아 후기 [32] qtips10382 19/04/15 10382 20
80794 [일반]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8] matthew7017 19/04/14 7017 26
80792 [일반] 한국(KOREA)무술에 대한 생각(3) [42] 성상우8281 19/04/14 8281 13
80791 [일반] 일본 총인구 8년째 감소…70세 이상 20% 첫 돌파 [91] 군디츠마라14236 19/04/14 14236 1
80790 [일반] 이세계물과 일상 [29] chldkrdmlwodkd8392 19/04/14 8392 1
80789 [일반] Pc? 페미코인 때문에 평이 좋다? (영화 미성년)(노스포) [24] 삭제됨10430 19/04/14 10430 2
80788 [일반] 갤럭시 S10 필수 어플 두가지 추천 (s7, s8, s9, 노트시리즈 포함) [39] 삭제됨16380 19/04/14 16380 8
80787 [일반] 매형에게 실수했네요. [62] April23315969 19/04/14 15969 26
80786 [일반] 안드로이드 최고의 앱 [29] 다록알13405 19/04/14 13405 4
80785 [일반] 어찌 그 때를 잊으랴. ㅡ 사물탕. [10] 이순7102 19/04/13 7102 19
80784 [일반] 임실치즈를 만든 지정환 신부가 88세로 선종하셨습니다. [36] 홍승식12596 19/04/13 12596 56
80783 [일반] [보드게임] 트릭 테이킹 게임에 대하여 알아보자! [22] 8668 19/04/13 8668 7
80782 [일반] 호러블한 꿈 이야기 [8] iiiiiiiiii5653 19/04/13 5653 1
80781 [일반] 한국(KOREA)형 주류모델(2) [57] 성상우8742 19/04/13 8742 26
80779 [일반] 역시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44] 다록알15306 19/04/13 15306 3
80778 [일반] 뒤늦은 후회와 반성 [4] 슬픈운명6555 19/04/13 6555 3
80775 [일반] 거미들, 실험실 수난의 역사 [29] cluefake11116 19/04/12 11116 3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