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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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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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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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 조조의 권력을 그대로 승계 받습니다. 그리고 불과 일 년도 지나기 전에 제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 조조 생전에 그토록 많은 반란이 있었던 걸 고려하면 이건 상당한 위험부담을 지닌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이미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지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 조조가 친족을 통해 군부를 장악한 후 그걸 조비에게 온전히 물려주었습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조비는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조비는 아버지의 정책이었던 친족 중심의 군부 장악을 한층 더 강화합니다. 우선 대장군(大將軍)에 하후돈이 임명됩니다. 조인은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되어 도독형양익주제군사(都督荊揚益州諸軍事), 즉 형주와 양주와 익주의 모든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는 무지막지한 권한을 받습니다. 이후 하후돈이 사망하자 대장군이 되지요. 조홍은 위장군(衛將軍)이 되었다가 표기장군 (驃騎將軍)으로 승진합니다. 대장군/표기장군/거기장군/위장군이 차례로 군부서열 1 2 3 4 위라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조씨와 하후씨가 전부 다 해먹은 꼴입니다.
물론 국경의 주력부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진은 진서장군(鎭西將軍)에 도독옹량주제군사(都督雍涼州諸軍事)가 되어 옹주와 량주의 모든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합니다. 그리고 불과 2년 후에는 상군대장군(上軍大將軍) 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로 내외의 모든 군사 업무를 총괄한다는 무지막지한 벼슬에 오르지요. 조휴는 진남장군(鎭南將軍) 도독제군사(都督諸軍事)로 모든 군사 업무를 관할하다가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이 되어 장료조차도 자신의 지휘 하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 하후상은 정남장군(征南將軍) 도독남방제군사(都督南方諸軍事)로 남쪽의 군사 업무를 총괄하다가 곧 정남대장군이 됩니다.
이렇듯 조비는 친족들을 통하여 군사력을 한손에 움켜쥐었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요.
.......완벽했나요? 정말로?
친족 중심으로 사람을 쓴다는 건, 매우 제한된 인재풀에서 사람을 발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빛나는 능력을 발휘했던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흐르며 그 다음 세대의 자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러한 체제를 도입한 조조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그 문제점을 보완했습니다. 우선 스스로의 뛰어난 인재 보는 안목으로 친족들 중에서도 능력 있는 자를 선별하고, 이후 그들에게 우수한 부하들을 붙여 주었지요. 그러나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이건 본질적으로 조조 개인의 안목에 의존한 방식입니다. 조조의 계승자가 조조만큼이나 인재 보는 눈이 뛰어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체제는 결국 그 개인이 없어지는 순간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조비는 그나마 부족한 친족 인재풀 중에서도 또 일정부분을 배제해야 했습니다. 자신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형제들과 그 자식들 말입니다. 가끔씩 이걸로 조비를 까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지는 마세요. 물론 조비는 깔 게 많은 인물입니다만 이 문제만큼은 조비가 멍청한 게 아니라 무조건 그렇게 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예컨대 조식이나 조창에게 군권이 있었더라면 위나라는 건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내전으로 돌입했을 게 틀림없거든요. 건국된 지 얼마 안 된 위나라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 그들은 반드시 배제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조비가 쓸 수 있는 친족은 더욱 더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아버지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장은 아버지가 선택하여 물려준 친족들을 중용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그들이 늙어 갑니다. 그 후임은 스스로 뽑아야 했죠. 어떻게? 아버지 다음에는 아들이라는 식으로요. 결국 친족 중에서도 능력 있는 자를 특별히 뽑아 썼던 조조와 달리, 위나라는 후대로 갈수록 그저 고위 친족의 자식에게 높은 지위가 대물림되는 꼬락서니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하이라이트가 바로 조진의 아들 조상입니다. 위나라를 시원스럽게 말아먹은 바로 그 인간요.
또 이렇게 되면 친족이 아닌 신하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더 잘났는데도 황제 친인척이 아니라서 낙하산에게 굽실거려야만 한다? 그 낙하산이 능력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예전과는 달리 무능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인물이다? 열 받죠. 엎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그렇기에 결국 조조가 만들어낸 이 체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조조가 만든 체제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이었습니다. 조조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형태로 권력을 구축한 건 그게 그나마 최선의 방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소 일가를 소탕하고 승상이 되었을 때 조조의 나이가 이미 쉰 넷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입니다. 조급했겠지요. 이제는 자신이 이루어낸 것을 후계자에게 어떻게 안정적으로 물려줄지 그 방도를 고민해야 할 때였습니다. ‘빨리’요. 자신이 죽기 전에.
친족을 통한 군부 장악은 가장 신속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무력이 곧 권력인 시대였으니까요. 그랬기에 누차 언급하였다시피 조조는 자신이 신임할 수 있고 능력 또한 일정수준 이상인 몇몇 친족들이 핵심적인 무관직을 독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죠.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게 하나 있습니다. 조조는 군부를 장악한 반면, 무력(武力)과는 거리가 먼 문관직은 전혀 욕심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 문무 양쪽을 모두 친족들이 차지하기에는 애초에 친족의 절대적인 숫자 자체가 부족하다. 더군다나 재능 있는 친족의 수는 더더욱 부족하다. 둘째. 설령 전부 장악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권력에서 배제된 무수한 호족들을 전부 불만세력으로 만들어 잠재적인 적으로 삼는 꼴이 되니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조조는 투자대비 효율이 높은 무관직을 장악하는 데 주력했을 겁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죠.
이러한 기조는 아들인 조비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앞서 설명하였다시피 조비는 아버지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조가 당초 의도하였던 성과를 그대로 받아들인 거죠. 동시에 그 체제에 내포된 본질적인 한계도 함께 계승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비의 상황은 조조보다 훨씬 더 나빴습니다. 그 자신의 능력이나 정치적 카리스마는 아버지보다 훨씬 뒤떨어졌죠. 반면 제위를 찬탈하고 한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빼박캔트 역적이 되어 아버지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적개심을 샀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숙적 유비가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살아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손권은 비록 칭신(稱臣)하였다지만 언제 다시 배신할지 모르는 작자였고요. 여러 모로 곤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조비는 없는 답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조조의 체제가 지닌 문제점을 보완할 방도를 모색해야 했지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조비는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자. 여기서 드디어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이 나옵니다.
(계속)
ps. 글이 한가위 엿가락마냥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부작으로 기획했는데 쓰다 보니 욕심이 들어가서 글이 너덜너덜해지네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냥 완성한 다음에 나눠서 올려야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