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입장에 동의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해도 너무한다 싶을 때', 지극히 기득권을 쥔 보수 입장에 충실한 태도로, 공포와 분노를 드러내던 주필들의 글을 흥미롭게 읽고는 있습니다. 총선 직후에 '저 병적 오기가 총선 이어 대선도 엎을 것'이라던 양상훈 칼럼이 대표적이죠.

어제 자 송희영 주필의 칼럼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3/2016060303314.html

구의역 청년 사건을 지켜보면서 뭔가 '해도 너무한다' 싶었나 봅니다. 1등 국민, 2등 국민이라는 노골적인 수사를 깔고 '야 이거 우리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글을 안 읽어보실 분을 위해 중간의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찬찬히 들여다보니 1등 국민의 조직인 서울메트로에서 내려간 낙하산 직원들은 용역 회사에서 월 442만원 정규직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 용역 회사엔 월 200만원, 월 140만원을 받는 사원들이 더 있었다. 사망한 기술자는 2등 국민 가운데 밑바닥이었다. 제2국민 집단은 '친구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하며 제1국민의 조직체를 공격하고 있다."

이 칼럼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납니다.

".. 정당들도 여야 할 것 없이 제1국민 이익을 감싸고 돌았다. 변변한 협회도, 노조도, 조합도 없는 B급 시민들은 여의도에 접근할 수도 없다. 정치가 이들에게 숨통을 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변칙적이고 과격한 싸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대로 2등 국민의 거사(擧事)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이렇게 노골적이고 솔직할 수가 있을까요. '숨통을 트여줘라, 그렇지 않으면 애네들 폭동 일어난다', 이 말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사실 얼마 전 중앙일보 단독 기사를 이 곳 pgr21에도 소개하며(https://ppt21.com/pb/pb.php?id=freedom&no=65534&page=3) 저는 개인적으로 메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강력하게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론은 물론 언론들도 곧 잠잠해지더군요. 건드리기엔 너무나 큰, 철저한 관행처럼 이미 자리를 잡아버린 구조적인 부조리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기업, 공기업은 물론 어지간한 사기업들도 자회사에 낙하산 꽂고 서로 좋게 좋게 가는 일이 이미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잘못이다, 라고 지적하기에는 애매해버린 분위기.. 다 수긍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그 과정에서 낙오되고 떠밀리는 분노에 찬 '2등 국민'들이 오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고, 하현우는 오늘 영광스럽게 가면을 벗었는데. 저는 자꾸 저 노회한 보수 주필의 예민한 후각에 신경이 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