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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22 22:51:50
Name santacroce
Link #1 http://santa_croce.blog.me/220344746240
Subject [일반]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 어떤 공동체의 타락과 그 이면

1년 반 전에 썼던 글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불현듯 생각이 나서 다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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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아주 작은 섬나라인 나우루 공화국에 대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약간씩은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방송(SBS?)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우루 공화국을 한때 인광석이 풍부한 섬나라로 온갖 풍요를 누리다가 자원이 바닥나자 극심한 후유증에 빠진 곳으로 소개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뜬금없이 왜 이 시점에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2014년 10월 3일 금요일에 이 섬나라 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재판 결과가 나온 것을 계기로 차제에 이 작은 공동체의 흥망성쇠에 대해 정리해 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섬의 개요

 

나우루 섬은 호주와 하와이의 중간 정도에 있습니다. 남태평양 섬 중에서도 다소 외진 곳에 있는데 근처 섬나라로는 투발로와 좀 더 밑에 있는 피지가 있습니다.

 

나우루 섬의 크기는 21 평방킬로미터입니다. 제주도가 1,845 평방킬로미터이니 나우루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습니다. 국내 섬 중에는 가덕도나 덕적도가 비슷해 보입니다. 석모도의 반 정도 크기입니다. 그리고 이 섬의 인구는 10,000명 내외입니다. 

 

* 나우루 섬 모습 맨 아래 곧게 뻗은 활주로에 주목해 주십시오.

  

* 나우루 공화국 국기

 

나우루 섬의 어두운 역사

 

이 섬이 처음으로 서구인에게 발견된 것은 1798년입니다.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발견한 영국 선장은 이섬에 Pleasant Islan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실 나우루 섬은 다른 남태평양 섬들과 달리 매우 가치가 높은 천연자원이 풍부했습니다. 바로 비료의 원료가 되는 인광석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섬에는 당초 무려 12개의 부족이 모여살았는데 서구 문명의 접촉은 이 공동체의 뿌리 깊은 불화를 극단적인 살육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근을 지나던 포경선을 통해 총이 유입되자 12부족은 극렬한 전쟁모드로 돌입했고 무려 인구의 40%가 죽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 제작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라파누이가 떠오릅니다.

 

내전 후 쇠락한 이 섬의 잠재성을 알아본 독일인들이 1888년부터 섬의 식민지화를 시작합니다. 독일인들이 1900년대 초부터 인광석을 개발하여 수출하기 시작했으나 원주민의 운명은 좋아지기는커녕 독일인들과 함께 상륙한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인구가 더욱 줄었다고 합니다. 거의 30년을 독일인이 지배했으나 1차 대전 발발 후 호주가 이 섬을 접수하게 됩니다. 호주는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협정을 맺고 본격적으로 이 섬의 인광석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나우루의 운명은 4개의 백인 국가 지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이 이섬을 3년이나 점령하게 되는데 일본인의 지배방식도 원주민에게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풍토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병환자들에 대해서 일본군은 보트에 이들을 태워 태평양에서 배와 함께 수장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어진 미군의 공습을 받아 가며 추방과 전쟁을 견딘 나우루 주민들은 종전 후 600명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 미군의 공습을 받는 나우루 섬 

 

  

인광석 채굴의 저주

 

나우루 섬에서 인광석 채굴은 철저한 식민주의자들의 이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채굴지 땅 소유주에게 헐값으로 땅을 매입한 독일인부터 호주, 영국, 뉴질랜드인들까지 모두 원주민의 이해에 관계없이 약탈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우선 식민주의자들은 다수의 외국인을 이섬으로 이주시켰습니다. 2001년만 해도 12,000명 인구 중 4,000명이 외국인이었습니다. 호주인은 인광석 채굴회사의 매니저, 의사, 엔지니어로, 중국인은 식당 주인으로  그리고 다른 폴리네시아인들은 인광석 채굴꾼으로 섬에 들어왔습니다. 

20세기 중반 인광석의 채굴이 활기를 띠면서 원주민의 경제력도 좋아졌지만 경제활동의 주체로 나서지는 못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섬이 원래부터 녹지가 많지 않았는데 인광석 채굴 과정에 섬의 자연은 점점 훼손되었습니다. 녹지공간이 점점 줄면서 농작물 재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1968년에 이르러 잔존 인광석이 1/3 이하로 떨어지고 섬은 황무지로 바뀌자 호주 정부는 나우루 섬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선포하고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퀸즈랜드 인근 무인도에 재정착할 것을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원주민들은 고향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다스리겠다고 의지를 모으면서 결국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호주, 뉴질랜드,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신생 독립국에게 미래 채굴 가치를 담보로 대출(일종의 유동화 대출이군요.)을 받아 기존 채굴회사의 지분을 되사도록 압력을 넣어 성사시킵니다.  

 

 

독립 이후 짧았던 영광의 시기

 

인광석이 비록 1/3만 남았지만 독립정부의 미래는 나름 밝았습니다. 신생 정부는 채굴 수입의 일정 부분을 섬의 정화에 배정하여 섬의 훼손을 복원하려고 하였으며 일부분은 경제발전과 인프라 구축에 배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인광석 고갈 이후의 미래세대를 위해 재투자 재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인광석 채굴에 따른 자연훼손을 막고 효과적 선적을 담보하기 위해서 아래 사진과 같은 캔틸레버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광석 수출 대상국가도 이전 식민주의자들을 넘어서 새로운 공업국으로 확대했는데 일본과 한국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 현대식 캔틸레버를 이용한 인광석 선적 장면

 

이러한 계획은 나우루의 부로 이어졌는데 1981년에는 연간 채굴수입이 1억2천3백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는 주민당 17,500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33년전 화폐가치를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한 인심과 생활상의 변화

 

자원부국은 자원의 저주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쉽게 벌어들이는 돈이다 보니 보조금을 남발하게 되고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할 유인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남태평양에 고립되다시피 한 1만여 명의 공동체가 자본주의 여러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을까 합니다. 

 

나우루 공화국은 사회주의 아닌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갔습니다. 세금이 없었고 거의 모든 일자리(95% 정도)는 정부가 제공했습니다.

의료는 모두 무상이었습니다. 나우루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은 호주로 건너가 치료를 받도록 하였으며 그에 따른 비용도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교육도 무상이었는데 호주 대학으로의 유학도 국비 보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높지 않아서 중학교 진학은 2000년대 초까지 1/3에 불과하였습니다. 물론 전기와 전화비용도 정부의 보조금 대상이었습니다.  

 

근무시간도 매우 탄력적이어서 평일에도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였으며 결과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녹지공간이 골프코스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정부가 주민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TV 채널이 3개나 되었는데 현장요원들이 중간에 딴청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 중단 사고는 예사였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주요 오락은 섬 둘레를 도는 20분간의 자동차 경주였는데 경주를 시청하며 마시는 수입 캔맥주는 빈캔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슈퍼마켓에는 비스킷 진열대가 다른 야채나 과일 진열대에 비해 3배나 컸으며 중국음식에 길들여져서 기름기 많은 볶음밥을 주로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때 가장 부유했던 이 나라는 2000년대에는 주민의 50%가 당뇨나 고도비만에 시달리는 가장 뚱뚱한 나라로 변해갔습니다. 물론 이 지역의 오랜 굶주림 속에 진화된 비만 유전자(다음 식사를 예상할 수 없다 보니 폭식을 유발하는)가 풍요와 여유를 만난 것도 주효했다고 합니다. 나우루 공화국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55살에 불과했는데 이는 뉴질랜드에 비해 20년이나 짧았습니다. 최근 통계는 73살로 증가하긴 했으나 이 역시 114위에 불과합니다. 

 

사실 나우루 사람들에게는 큰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 깊어 비만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매우 낮다고 합니다. 

 

* 평범한 나우루 사람들

 

 

반복되는 실수와 끝없는 방만함

 

넘쳐나는 재정이 복지 비용이나 소비성 예산으로만 소진된 것은 아닙니다. 독립하자마자 나우루 정부는 자원의 고갈을 염려했고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황당한 실수를 하기에 이릅니다. 

우선 피지와 같은 인근 국가 리조트나 다른 부동산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 나우루 정부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돈은 무려 1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투자가 면밀하게 투자성을 검토하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보니 부동산 가치 하락이 이어지거나 투자 이후 관리 부실로 잔존가치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이 급증하게 됩니다. 2000년대 초에 추정한 나우루 해외부동산 투자의 잔존가치는 1억 3천만 달러에 불과하였습니다. 문제는 많은 부동산 투자가 대출을 포함하였는데 위 추정금액은 이를 제외한 금액이란 점입니다.

 

거대 기업의 몰락에는 의외로 비행기가 관련된 경우가 있습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RJ 나비스코의 방만함( []" class="content_image" sr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a/View_of_Nauru_airport.jpg" alt="" width="500" height="375" "max-width: 728px; border-width: 0px; vertical-align: top; margin: 0px; padding: 0px; cursor: pointer; width: 500px; height: 375px;">

 

 

그리고 몰려드는 사기꾼들과 추락

 

방만함은 돈 냄새를 풍기게 되고 돈이 넘쳐나는 나우루에는 온갖 사기꾼들이 들끓게 되었습니다. 한 호주인은 나우루 정부를 설득해서 자기가 쓴 뮤지컬에 2백만 달러를 투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뮤지컬(A Potrait of Love)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을 소재로 했는데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단 4주 만에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기꾼은 복잡한 파생금융계약에 6천만 달러를 투자하도록 했는데 결국 이 투자는 종이장만 남았다고 합니다.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인광석도 1980년대를 정점으로 급격하게 생산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2000년대 초에는 이미 정점 대비 1/3로 채굴량이 줄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광석의 국제가격이 급락하면서 정부의 재정 적자는 2000년 GDP의 18%에 이르렀습니다. 

이쯤 되면 정신을 차릴 만도 한데 한번 가속도가 붙은 정부의 재정지출은 되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부가 고안해낸 방안은 빚을 남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광석 운영을 담당한 신탁회사로부터 계속 차입을 하다 보니 해당 신탁회사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는데 1993년에 경영을 맡은 경영자는 취임 2달 만에 부도 위험이 있다며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남은 자들의 처절한 생존전략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우루에서 인광석에 의존한 풍요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절박해진 나우루 정부는 1차로 국제기구의 지원금을 타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설득해서 1998년 5백만 달러를 지원받습니다. 명목은 방만한 공적 부분의 구조조정이었는데 나우루 정부는 1999년까지 공무원의 1/3을 내쫓습니다. 

그리고 나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국제규범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게 됩니다. 

 

우선 돈은 좀 있으나 국제적으로 고립이 심화되던 타이완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습니다. 덕분에 나우루에는 유일한 외국 대사관인 타이완 대사관이 형식적이나마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합니다. 그 댓가로 나우루는 저리의 차관을 지원받았습니다. 또한 시민권을 신분세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파는 것도 하나의 돈벌이 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낸 돈 줄은 이전의 식민 모국으로 자신을 약탈했던 호주 정부를 터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1968년 독립시 부채를 정리하긴 했지만 1989년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식민지 배상을 더하라고 소를 제기합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백호주의를 포기하며 양심적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던 호주는 7천2백만 달러에 법정 밖 화해로 소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산업이 별로 없는 섬나라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조세 피난처(Tax haven)입니다. 고율의 법인세를 회피하려는 대기업에서부터 불투명한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마피아까지 조세 피난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상 인기였습니다. 나우루도 이런 땅집고 헤엄치기 사업에 적극 끼어 들었습니다. 

나우루에서는 2만 5천 달러만 넘으면 누구든지 은행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나우루에 역외은행을 설립한 사람이 벌써 400명이 넘었는데 모두 주소지는 나우루 우체국의 사서함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조세 피난처에 비해 나우루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라부안이든 케이만이든 조세 피난처들은 거래의 세부내역을 남기게 하되 이를 외국 당국의 눈으로부터 숨겨주는 역할로 손님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나우루는  손님들에게 어떤 기록도 요구하지 않다 보니 완벽한 돈 세탁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 마피아들은 나우루를 통한 불법자금 세탁에 열을 내게 됩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1998년에는 러시아에서 7백억 달러나 나우루 은행에 송금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G7의 돈세탁 방지 블랙리스트에 나우루가 오르게 되고 개선의 조짐이 전혀 없자 선진국 은행들은 나우루 은행들과 모든 거래를 차단하게 됩니다. 결국 나우루의 조세 피난처 운명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동아줄과 자업자득

 

나우루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동아줄이 하나 내려오게 됩니다. 바로 스리랑카나 이라크 등에서 건너오는 불법 난민으로 골머리를 썩던 호주가 돈을 주고 난민을 가난한 이웃 국가에 수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나우루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2001년 9월 난민 283명을 처음 수용하게 됩니다. 이 댓가로 2천만 호주달러에 해당하는 지원(8개월치 연료, 발전기 2대, 호주 대학 유학생 10명 비용, 그동안 빚졌던 호주 병원 비용 탕감 등)을 받게 됩니다. 사실 이 사업 직전에 나우루는 물과 전기를 배급에 의존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나우루 난민수용소

 

 

그런데 13년이나 지속된 난민 수용 사업은 현재 1300명의 난민으로 늘어났지만 처참한 말로로 끝날 운명입니다. 바로 나우루 경비원들이 자행하는 여성과 아동 수용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계속 보고되면서 유엔 인권위와 호주 정부가 조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주로 보고된 케이스는 부족한 물을 매개로 샤워 허용을 대가로 한 성관계 요구 및 아이들 대상 성학대였습니다. 

호주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자 결국 호주 정부는 나우루와의 계약을 종결하고 새로운 후보 국가인 캄보디아로 난민들을 이송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그나마 있었던 나우루의 거의 유일한 돈줄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벌처펀드의 등장과 판결 그리고 새로운 희망(?)

 

난민 사업의 종결과 함께 나우루 정부를 괴롭히는 것은 죽어가는 동물 위를 맴도는 독수리입니다. 바로 벌처펀드의 등장입니다. 얼마 전 아르헨티나의 준디폴트 상황을 이끌었던 것도 헤지펀드였는데, 나우루 몰락 속에 등장한 헤지펀드가 계속 나우루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방만한 재정 운영을 감당하기 위해 나우루 정부는 채권을 남발했는데 현재 그 가치는 1달러 당 5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크본드를 대량으로 사모은 헤지펀드가 계속 원리금 상환 협상을 요구하다가 통하지 않자 급기야 호주 정부가 나우루에 지급하는 돈의 창구이자 나우루 정부 재정 창구인 뉴사우스웨일즈 은행의 나우루 정부 계좌를 동결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주에서 돈이 들어와도 나우루는 꺼내 쓸 수 없게 되었고 다급해진 나우루 정부는 호주 재판소에 이 계좌에 대한 동결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결국 10월 3일 판결이 나왔는데 그동안의 불운과 달리 판사는 나우루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나우루는 급한 대로 공무원에 대한 임금과 물자를 지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민 사업도 끝나고 섬은 이제 거의 황폐해져 농작물도 키울 수 없고 물도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 되자 차제에 나우루 섬을 버리고 새로운 섬을 구입해서 집단 이주를 하자는 이야기가 심각히 논의되고 있답니다. 

누가 이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넘기고 관리를 맡길 생각을 할지 의문이지만 역사는 다시 돌고 돌아 1968년 호주가 새로운 섬 이주를 권할 때로 돌아 온 느낌입니다. 사실 1968년에는 이주할 섬이라도 있고 팔아넘길 자원도 있을 때이니 상황은 더 안 좋아 보입니다.

 

정말 얄궂은 운명인데 그래도 이 작은 공동체의 어두운 초기 역사를 보면 동정이 가면서도 독립 이후의 상황과 난민에 대한 성학대를 보면 이 가혹한 운명을 모두 식민주의자들의 원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나우루 공화국의 불운한 운명을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즉자적 목표일 수야 있겠지만 문명사의 관점으로 보면 공동체가 그 고유하면서도 세련된 가치체계를 가꾸고 이를 평화적 수단을 통해 외부에 전파하는 것(즉, 식민주의와 같은 침략이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이 진정한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나우루 공화국의 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황당한 조세 피난처 사업에서 인권유린으로 종결된 난민캠프 사업까지를 보면 나우루 공동체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지속 가능성과 내부통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재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위 글은 이코노미스트, FT, 로이터의 나우루 기사를 중심으로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를 참조하여 다소 자의적이면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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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열무
16/04/22 23: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4/22 23:04
수정 아이콘
이 나라에 대한 인프라를 조사하면서 황당했던 게, 이 좁아터진 나라에도 화물철도가 깔려 있던 전적이 있더군요. 인광석 채굴용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21제곱킬로미터면 서울시의 1/25 수준이니 그야말로 일개 구에 불과한 면적에 굳이 그런 것까지 깔아둘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설치 자체는 백 년도 넘게 된 것이긴 합니다만...
santacroce
16/04/22 23:06
수정 아이콘
위 사진에도 나와있지만 캔틸레버와 연결된 철도라면 나름의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피지알볼로
16/04/22 23:08
수정 아이콘
똥으로 흥했던 나라군요..!!
cadenza79
16/04/22 23:08
수정 아이콘
국민학교 때 사회과부도의 별표를 보면서 대체 뭐길래 이렇게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을까 의아해했던 나라였죠.
인광석 고갈 이야기는 그 후 알게 되었지만, 독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이 글 보고 처음 알았네요.
결국 잘 나간다고 생각했던 시절 역시 잘 나가던 건 아니었고, 그들도 이미 끝을 보고 있으면서 몸부림을 치긴 했군요.
하긴 인구가 아파트단지 하나에 불과한 나라의 정부라면 입주자대표회의 수준이라는 것인데 자기들끼리 꾸려 나간다는 건 정말 어려울 듯합니다.
피아니시모
16/04/22 23:11
수정 아이콘
자원의 저주라는 게 정말 무섭더라고요
몇가지 찾아본 게 있는데 이 자원의 저주 걸린 나라치고 정상적으로 돌아간 나라를 못봤습니다
16/04/23 00: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한국가의 흥망성쇠는 교육의 힘이 중요한것 같더군요.
나우루는 자원이 풍족한 나라라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소홀했나 보네요.
santacroce
16/04/23 00:20
수정 아이콘
그런데 만 명의 인구를 생각하면 공동체 운영에 근본적 제약이 크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좋은하루되세요
16/04/23 00:28
수정 아이콘
여의도가 29km^2이라니까 딱 여의도 만한 나라군요..
가만히 손을 잡으
16/04/23 00:32
수정 아이콘
반복되는 실패와 어리석은 선택들을 보니 저 지경이 되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궁지에 몰린적이 여러 번인데 타개책은 더한 악수일 뿐이고요.
푸른음속
16/04/23 00:44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재밌네요
16/04/23 01:17
수정 아이콘
요즘 잠도 줄여가면서 위키로 여러 나라의 흥망성쇠 보는 맛에 빠져서 그런지 이 글이 정말 넘나 재밌네요.
어쩜 이렇게 쭉쭉 읽히게 글을 잘 쓰시는지 이야기 주머니 같은게 있으신가..(?) 정말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16/04/23 01:2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카멜리아 시넨시스
16/04/23 02:15
수정 아이콘
자업자득이네요. 참나... 자기보다 약자인 난민들을 상대로 성학대나 저지르고... 전혀 동정이 들지 않습니다
16/04/23 07:49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런 필진이 계속 있다는 것도 pgr의 복입니다.
16/04/23 09:32
수정 아이콘
감사히 읽었습니다
16/04/23 10:28
수정 아이콘
정성어린 글 감사합니다.
16/04/23 11:47
수정 아이콘
국가 단위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저주라는게
개인 단위에서는 로또 당첨자들이 결과적으로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한 현상인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에서처럼, 역사는 늘,
어떤 사회 혹은 개인이 감당할수 있는 "부유함" 혹은 "힘" 의 크기를 초과하게되면
파국적인 결과로 귀결된다는것을 알려줍니다.

대부분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멍청함을 비웃으며,
그런 행운이 닥치면 나는 다를것이다, 결코 불행해 지지 않을것이라 확신하지만,
저주에 당하지 않고 빗겨보낼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것 또한 우리의 과거가 알려줍니다.

한 개인의 차원이나 한 사회의 차원에서나,
얼마만큼 감당할수있는지 직시하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인것 같습니다.

과연 나는 얼마정도의 행운까지 감당할수 있을까?

본문 말미에서 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관하여 좋은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공동체가 아닌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과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감당하기 어려운 행운이 닥쳤을때의 결말도 정해질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santacroce
16/04/23 11:56
수정 아이콘
뜻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 구성원의 능력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16/04/23 12:21
수정 아이콘
제가 가진 상상력 내에서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실 기본적인 도덕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추구하는 가치 그자체보다는
공동체 내부에서 어떻게 의사소통하느냐 어떻게 의사결정하느냐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티켓의 문제에서 부터 법률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기술의 문제에서까지..

기본적으로 모든 개개인이 모두 상이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작은 단위의 공동체에서 조화시키느냐
또 더 큰공동체에서의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것은 분명 단지 인문학적인 그리고 사회학적인 문제뿐 아니라 기술의 진보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미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나갈지는 아직도 안개속에 있는 셈이죠.


인류자체는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속에 있고
개인으로써의 저는 답을 알지못하고 생을 마감하게되겠지만, 감히 추측하여 보자면
결국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존하는 집단이 해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비교 우위(힘의 문제)를 가지면서,
그 비교우위를 또 지속가능한 형태(도덕의 문제)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 집단이
최종적으로 살아남게 되겠죠.

내가 만일 미래로 갈수있다면 미래의 공동체의 모습에서 확인해보고 싶은 사항중에 한가지는 민주주의입니다.
분명 민주주의는 분명 최종적인 승자가 된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을 개념이라고 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구현되어있을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이진아
16/04/23 12:04
수정 아이콘
로또 당첨자에 대한 분석글을 봤는데요
많은 로또 당첨자가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사는데
로또 당첨되고도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로또가 아니어도 이미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하긴 국가단위로도 생각해봐도 이미 안정적인 국가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자원까지 주어진것과
자원 하나로 벼락부자된 나라를 생각해 본다면...
쓰신댓글 많이 공감이 되네요.
16/04/23 12:32
수정 아이콘
과거 산업화 시대때 땅값폭등으로 졸부가 된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대학교때 그런 집 자제들( 오렌지족이라고 했었던것 같기도..)이, 자신이 돈이 많다는것을 주변에 드러나게 하고 싶어하는 그런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한세대도 못가고 불행한 가족사로 귀결되더군요.

어쩌면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것 자체보다,
부유하고 안락한 삶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지혜를 추구하는게 더 먼저 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진아
16/04/23 11:58
수정 아이콘
무슨 소설에 등장할법한 이야기같네요...
흥미롭게 잘읽었습니다.
피오라
16/04/23 12:52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윌모어
16/04/23 14:2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보고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서쪽으로가자
16/04/23 14:5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6/04/24 09:22
수정 아이콘
한 공동체의 형성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우두의 사례처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서구 근대화(식민지)가 제3세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지요. 공동체의 자립을 미끼로 한 착취의 구조는 심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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