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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2 04: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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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2

[우리는 여전히 체면을 존중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 사람이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체면에 손상되는 일을 누군가 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서는 내내 어머니와 아내들이 그 천역을 감쪽같이 감당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이 경쟁사회에서 남자들이 그럴듯한 현실과 맞서 공훈을 세우는 동안, 일반 주부들은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자질구레한 현실, 그렇기에 가장 진정한 현실과 끝없이 실랑이를 벌여왔다. 여자들은 얼굴을 감추는 대신 몸을 드러냈으며 그 몸으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오랫동안 삶과 생명을 유지, 관리해왔다. 그래서 여성의 익명성은 우리 생활의 사실성이 되었다.]

[삶을 개혁한다는 것은 말들이 지니고 있는 힘의 질서를 바꾼다는 뜻도 된다. 개혁의 시대에는 열정을 지닌 개인의 과격한 언어들이 밑바닥 진실의 힘을 업고 관행의 언어들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개혁 프로그램들이 한때 무기로 삼았던 과격한 말들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무산되고 말았던 예를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그래서 진실을 꿰뚫으면서도 해석의 여지와 반성의 겨를을 누리는 새로운 문체의 개발이 개혁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함직도 하다.]

[고서 시장이 움츠러든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태도에 있을 것 같다. 눈앞에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문제로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는 정황에서는 누가 옛날에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지경에서는 무슨 말끝에 이 말이 나왔는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 이 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진정으로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의는 원점에서 항상 다시 시작한다. 한번 사라진 책은 영원히 사라지는 이 사정이 한번 낙오하면 영원히 패배하는 우리 교육제도의 원리와 같다고 해야 할까.]

[불투명한 것들이 투명한 것의 힘을 만든다. 인간의 미래는 여전히 저 불투명한 것들과 그것들의 근거지인 은밀한 시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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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2 16:26
수정 아이콘
연이어 덧글 남깁니다. 아줌마라는 '익명성'은 제게는 신선한 통찰이네요. 집단의 익명성이라는 두루뭉술한 규정대신 구체적인 익명성에 대해서 고려할 수 있게 해주는 듯 합니다. 아저씨라는 익명성에는 어떤 단어들을 연관지을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생각거리네요. 네티즌이라는 익명성이나 피지알러라는 익명성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문단에 관해서 저는 일반적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커뮤니케이션을 구분하는 방식이 너무 기계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기계적인 구분으로도 얻을 수 있는 통찰이 있겠습니다만 만약 주제가 '관계'라는 다분히 복잡한 층위에 걸쳐있는 대상이라면 기계적 구분을 넘어서는 더 깊은 통찰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보다 관계가 사람을 구성하는 포션이 훨씬 크니까 말이죠.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불투명한 부분에 있던 것들이 투명해지고 오히려 투명하던 것들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개인의 경험을 충분히 고려한 집단의 경험으로서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한 것이겠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4/03/23 00:18
수정 아이콘
생활세계를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칼로 자르듯 구분해낼 순 없겠지만, SNS의 활성화가 생활세계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없던 문제가 생겼다면 일단 SNS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고요. 공간 개념을 중심으로 그렇게 변화된 관계 양상에 대해 고찰해보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지만 저로서는 그저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진통이 크니 앞을 헤아릴 정신이 없습니다 크크
15/05/13 10:54
수정 아이콘
퍼온 부분만 남기고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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