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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8 21:01:3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감히 황상의 총기를 어지럽히려 들다니, 무엄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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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한 황상의 자리에 있다는것은 만인의 위에 군림한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역으로는 수많은 아첨꾼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다는 이야기도 될 터이다. 사람이 달에 착륙하고 기계로 산을 깎아내는 시대에서도 허무맹랑한 사기꾼들의 요망한 소리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으니, 전근대 이전 사회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세상 모든 부귀를 가진 황제의 경우 두려운것은 오직 병마와 죽음 뿐일 터이며, 죽음에 대한 잘못된 사색등은 사람을 음침하게 만들며 허무맹랑한 요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만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수명 연장' 이니 '불로불사' 니 하는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스스로를 망치고 나라를 망친 군주들은 적지 않았다. 


 허나 강희 황제는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물론 강희 황제의 옆에도 수 많은 사기꾼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사이비 도사들로, 그들은 "늙지도 않고, 특별한 힘을 회복하거나 얻을 수 있다." 며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강희는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이들 모두가 불로장생을 말하는 허풍선이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어느날 강희제는 셰완청이나 왕자잉이라는 사기꾼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외단술(外丹術)에 능통하며,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강희 황제에게 과시하려고 안달이었다. 한참 동안 그 난리를 보던 강희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에 장생불사하던 사람들이 그런 술법을 한 가지 이상 습득하고 있었다거나, 장생불사에 이르는 문과 길이 넓게 열려 있다고 하는 도사들의 말 따위를 내가 믿는다면 반드시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나는 너희 같은 사기꾼들을 수백명이나 겪어 보았다. 너희들이 가진 구체적인 기술은 모두 다르지만, 그 근원은 모두 동일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엔 제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자는 죽기도 했다."


셰완청은 '일곱번쨰 달에는 몸 속의 기를 밖으로 빼내고 몸 바깥의 기는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고 말하면서 요망한 술수를 쓰려 했지만, 강희제는 그들이 재롱을 피우도록 조금 두고 보더니 두달 뒤에 셰완청이 정 반대의 소리를 하고 있자 '불로불사' 를 말하는 그들이 정작 눈은 흐릿하고, 이는 빠지고 없고, 머리는 희었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기력은 쇠약한, 즉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짐이 너희들이 도를 터득하려 갖은 애를 쓰더라도 그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거짓이 없는 알맹이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큰 도일 것이다! 큰 도는 누구도 속이지 못한다."


 강희제는 그들이 사특한 사기를 '작은 도' 로 치부해버렸다. 그렇다면 황제가 말하는 거짓이 큰 도는 무엇인가?


 "짐이 할 수 있는것은 세월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물이 빠지고 바위가 드러나는 것' 즉 시간이 흐르는것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순리란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황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갈했다.


 "짐은 장생불사에 대한 증언을 믿지 않는다. 허나 진짜로 그런 존재가 있다는게 확인되면 마음속으로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이처럼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강희제가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사기꾼들을 만나고 면박을 주었던 것은, 황제 자신이 대단한 호기심과 주의력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움과 지식에 대한 황제의 갈망은 대단했기에 황제는 '만사에 내포된 잠재적 가능성' 을 살피기 위해 사기꾼들이 자기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재롱을 부리면 일단은 지켜보았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다 그 사기의 본질을 찾아내면 터무니없다며 취급하지 않았다.


 하루는 황제에게 장난 지방의 한 백성이 내단을 통한 장로불사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책을 보물처럼 바쳤지만, 강희제는 그 책을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져다 버리게."


 건강에 관해서 강희제는 이런 요설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이 알아서 '웰빙' 을 취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데도 철저하게 식습관을 조절하는가 하면, 산책을 하는 시간을 만들거나 여행 중에도 청결을 유지했다. 그러나 깔끔한것을 좋아하는 강희는 옷이 흙에 좀 더러워졌다고 버리지는 않았다. 황제는 사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 부하들이 눈치없이 더러워진 신발을 신고 앞에서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남긴다거나 해도 지적하기 보다는 알면서도 모른체 했고, 일하는 심부름꾼들을 시켜 방을 계속 쓸게하는 일도 피했다. 황제는 다른 사람들을 번거럽게 하기 싫어서였기 때문이다.


 1684년 11월, 산동의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묘를 방문한 강희제는 어떤 절벽으로 가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듣자하니 그 절벽은 부모가 있는 자식들이 자살을 하는 곳인데, 이렇게 자살함으로써 부모의 수명을 높일 수 있다는 기원이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헌데 강희제는 그 말을 듣자 크게 분개해서 소리쳤다.


 "내가 그런 장소로 간다면, 나는 그런 행위를 묵인하게 되는 것이다! 효도를 위해 자살한다고?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삼는 행위는, 부모를 도울 모든 기회를 방기하는 짓에 불과하다!"


 아첨을 올리는 것은 사이비 도사들뿐만 아니라 신하들 역시 마찬가지다. 광시성 순무인 천위안룽은 어느날 강희에게 보내는 상소에서, 신비한 영지버섯을 발견했는데, 이 버섯은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이는 필시 폐하의 성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껏 아첨을 부렸다. 강희제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답을 보냈다.


 "역사는 이와 같은 이상한 징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런 징조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징조는 풍년이 드는 것, 그리고 만족해하는 백성일 따름이다."


 그 이후 아첨으로 가득찼던 천위안룽의 상소는 짦아졌고, 향기로운 버섯에 관한 언급 따위도 찾아볼 수 없어졌다.


 물론 강희가 여러 징조를 완전히 무시한건 아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크고 작은 징조는 왕조의 정통성과도 관계되는 아주 커다른 일이었다. 강희제 역시 점쟁이에게 징조를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황제는 그저 징조에 몸을 내던지진 않았다. 강희제는 메뚜기는 그저 자연재해니 손쓸도리가 없다는 식의 의견에 대해, 직접 메뚜기를 관찰하며 포황설(捕蝗說)이라는 메뚜기의 습성에 관한 논문을 저술하고, 쟁기질 등을 통해 메뚜기알을 없애 수확에 도움이 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마련하였다. 


 강희는 여러 운명적인 징조에 대해 이런식으로 말하였다.


 "우리의 삶은 운명이 좌우하지만, 그 운명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행복은 우리 스스로가 추구하는 것이다."


 웰빙을 좋아하던 강희였지만 순행 중에 백성들이 바치는 음식은(물론 강희는 남순 중에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재물을 강탈하는 행위 등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굳이 마다하지 않고 먹었다. 설사 그것이 덜 익은 과일이라고 해도 아예 먹지도 않고 버리지는 않았는데, 백성들이 앞에 있다면 강희는 일부러 먹는 시늉을 하며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강희제는 순행하는 동안 농민들에게 지방관료들이 어떠한지 물어보거나, 남편이 억울하게 노예가 된 여자를 구해주거나, 세관의 너무 많은 통행세에 불평을 터뜨리는 개상, 자신의 사원이 무너져내려 곤란에 빠진 승려, 투자금 200냥을 가지고 가다 강도를 당해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도와주는 등 여러 크고 작은 일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황제가 모든 일에 귀를 기울인것은 아니다. 너무 과장하거나 익명으로 남을 비난하는 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항저우에서 배를 타고 가던 강희제는 어떤 사람이 목에 탄원서를 걸고 이렇게 소리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내 원수는 천하제일의 악한이다!"


 그러자 강희제는 수행원을 시켜 이렇게 소리치게 했다.


 "그러면 두번째 악한은 누구냐?"


 강희는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났다. 


 여타 크고 작은 일에 현혹되지 않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로는 사형판결에 대한 일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강희는 중국 전역에서 올라오는 사형판결 등에 대해 범죄자들의 이름과 호적, 사형이 선언된 이유등을 꼼꼼하게 살피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강희가 중요시 여긴것은, 단순히 사형을 '목록화' 해서 목록에 맞춰 처리하는것이 아닌, 그때마다 살인의 동기와 배경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었다.


 천루셴이라는 관리는 『세원록』(洗冤錄)에 실린 유형에 따라 범죄의 중형을 가릴 것을 말하였다. 이 책에서는 범행을 쇠로 만들어진 '살인무기'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목재도구로 단순하게 구분해놓았다. 강희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사람은 주먹에 맞거나, 발에 차이거나, 나무 몽둥이로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만일 살인에 있어 무기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경중을 정한다면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바늘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아주 작은 물건이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런데도 바늘은 살인무기가 아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는 단순 살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강희는 사형판결을 내리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중국 전역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공식적으로 사망한 숫자는 매해 50~70명 안팎에 머물 때도 있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황제의 노력은 의술에 있어서도 열성적이었는데, 당대 중국 사회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강희 황제는 서양의 의학에 대해여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체 해부학』이라는 서양의 저서를 번역하게 하면서 강희제는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신체적으로 비록 미세한 작은 부분일지라도, 반드시 상세히 번역하고 조금도 빠진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짐은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으니, 경 등에게 명하여 이 책을 상세히 번역시킨 이유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필시 사회에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이고,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문물이나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배움을 받는 일에 열성적이었던 강희제는 역으로 성리학을 신봉했다. 그는 주희를 공자만큼이나 칭송하며, 늘 유교경전을 탐독했다. 그러나 강희제는 성리학을 읽힘에 있어도 주체적인 입장이었다.


 "성리학 경서들은 입신의 근본이니, 읽지 않으면 아니 되고, 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성리학은 스스로의 사상만 옳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폐단이다. 고서에서는 무턱대고 믿고 따를 수 없는 점들이 있다. 경서를 읽으면서도, 스스로의 주관을 뚜렷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게 평생에 걸쳐 사기꾼, 학문, 범죄, 건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현혹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강희 황제는, 죽기 전에 남긴 상유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였다.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출처 : 
조너선 스펜스 - 강희제
왕리쥔 - 강희제 평전
등예쥔 - 수신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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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킬칼켈콜
13/12/08 21:10
수정 아이콘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시야가 넓을 수 있을까요?
루크레티아
13/12/08 21:11
수정 아이콘
황상의 총기를 어지럽힐 능력이 부족하나이다..
일각여삼추
13/12/08 21:11
수정 아이콘
현대인이 환생한 거 같군요 (...)
키니나리마스
13/12/08 21:12
수정 아이콘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1년에 사형으로 죽는 사람이 50~70명 밖에 안 되었다니 대단하네요.
13/12/08 21:15
수정 아이콘
존경합니다 황제폐하
강가의 물안개
13/12/08 21:16
수정 아이콘
오늘은 지식과 지혜를 두루 겸비한 강희제에 관해 준비하셨네요. 잘읽었습니다.
13/12/08 21:46
수정 아이콘
중국 황제 중 올타임 레전드라고 생각합니다 강희 옹정...
황금사과
13/12/08 21:46
수정 아이콘
실질강건이 흘러 넘치는군요
스웨트
13/12/08 21:49
수정 아이콘
태평성대는 올바른 왕이 있어야 함이 필수로다
jinosama
13/12/08 21:55
수정 아이콘
그런데 어떻게 저 시대에 저란 생각을 가질수 있는거죠..
성장함에 있어서 교육이 차지하는 부분을 무시할수 없는데
저 당시 교육으로 저런 생각을 가질수는 있었을까요...
그냥 태여날때부터 성인이였나......................
13/12/08 22:14
수정 아이콘
말린 사과였나..선물 받은 말린 과일을 먹는 법까지 적어 궁으로 보내는 자상함도 겸비했죠..
가만히 손을 잡으
13/12/08 22:30
수정 아이콘
역사속의 성군들은 정말 팔방미인이네요.
강희제도 그렇고 세종대왕도 그렇고.
바스테트
13/12/08 23:02
수정 아이콘
진짜 중국 역대 올타임 넘버원이죠....그 다음은 그 아들인 옹정제고요
(그리고 그 손자인 건륭제는 거품이 좀 많이 낀 황제라고 생각.....)
루크레티아
13/12/08 23:44
수정 아이콘
건륭은 그냥 폭군..
스타본지7년
13/12/09 00:19
수정 아이콘
강희-옹정 이 두 황제 때가 아마 제일 사람들 속이 후련했을 때가 아닌가... 그러나 건륭제..ㅡㅡ;;
13/12/09 05:29
수정 아이콘
단 관련 사이비도사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낚고 있으니 하하
be manner player
13/12/09 13:5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네요.
꽃보다할배
13/12/09 15:06
수정 아이콘
모 이런 먼치킨이 다 있습니까? 지금같은 대한민국 현실보단 오히려 왕정하의 강희제나 세종대왕이 더 나을지도...합리적 독재에 편들게 되는 이 상황이 안쓰럽긴하네요.
13/12/10 01:48
수정 아이콘
뭐이런생각을 댜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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