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게시판에서 dokzu님의 질문글에 코멘트를 달다가, 어제 올렸던 글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기도 하여 한 번 글로서 짚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 옮겨보았습니다.
https://ppt21.com/?b=9&n=153073
Q ) 왜 중원 지역 미드필더들이 리베로라고 불리울까?
1. 발생 : 왜 리베로가 처음에 최후방 수비수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골을 넣기 위해서는 공격을 해야 합니다.
2) 공격은, 최후방에 있던 볼을 최전방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3) 여기서 볼을 <어떻게 옮기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킥이 정확한 선수라고 해도 매번 단 한 번의 롱 패스로 최전방으로 볼을 전달시킬 수는 없고, 아무리 드리블이 대단한 선수라고 해도 매번 혼자서 수 명을 돌파하고 최전방까지 단독 드리블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선수와 선수 간에 짧은 패스를 거듭하여 확률 높게 볼을 전진시키는 것이 대개의 경우 기본적인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물론 기본적인 방법임은 유일한 방법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4) 이는 한 두 명이 행하는 작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참여하는 작업이므로, 자칫 손발이 맞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선수 사이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아줄 선수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후방) 플레이메이커라고 부르는, 제가 빌드업 리더라고 부르길 즐기는 선수들입니다.
5) 최후방 수비수는 마크할 선수가 없어 자유롭기에 이런 역할을 맡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6) 최후방에 있기 때문에 모든 선수와 전 필드가 자기 눈 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럽게 경기장 전체를 조망한 상태에서 판단을 내리고 공격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맵핵이 생활화 된 상태입니다.
7) 애초에 볼을 최후방에서부터 옮겨나가야 하기 때문에, 최후방에 있는 선수가 이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가령, 동네 축구에서조차도 축구 잘하는 사람이 최후방 수비를 맡으면 수비가 안정될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부터 공격을 풀어나가기가 참 편해지지요. 최후방에 있는 선수가 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야 다른 선수가 해야겠지만, 만약 최후방 수비수가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최후방 수비수가 하는 쪽이 낭비가 없을 겁니다.
이러한 최후방 볼 운반자/공격작업 지휘관의 <원초적인 필요성> 때문에 최후방 수비수는 자연스럽게 리베로가 되었습니다.
2. 쇠퇴 : 그러나 최후방 수비수를 따로 두는 전술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이 이유도 살펴봅시다.
1) 최후방은 경기장에서 가장 외따로 떨어진 위치입니다.
2) 중원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아무래도 한정적입니다. 아무리 공격 능력이 좋고, 무브먼트가 영리하다고 한들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지요. "최후방에 있다가도 중원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중원에 있던 것만은 못한 게 당연합니다.
3) 그리고 중원 싸움의 비중은 점점 올라갔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고의 백패스를 골키퍼가 손으로 잡지 못하도록 한 것이지요. 예전에는 중원 싸움 좀 밀리겠다 싶으면 골키퍼에게 백패스하고, 백패스를 받은 골키퍼가 이를 손으로 잡은 뒤, 멀리 차내면 그만이었습니다. 압박을 닭 쫓던 개 꼴로 만들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근데 이걸 못하게 만들었으니, 중원 싸움에서 밀려버리면 바로 상대팀의 압박에 갇혀서 두들겨 맞게 된 것입니다.
4) 이런 과정을 거쳐 중원 싸움의 비중이 올라가면서, 중원 요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각 중원 구성원 간의 분업화도 정교해졌습니다.
* 안첼로티의 밀란이 좋은 사례입니다. 후방에서 빌드업을 리드하는 레지스타 피를로-전방에서 찬스메이킹을 주도하는 트레콰르티스타 카카-공격을 지휘하는 컨트롤 타워 둘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볼 탈취를 전담하는 가투소-전후방을 오가며 삼자를 보조하는 스윙맨 셰도르프.
이런 전국 중원 자랑 시대에 잉여 인원을 최후방에 두는 것은 비효율적인 배치로 판명이 났습니다.
3. 변용 : 그러나 여전히 리베로는 존재합니다.
1) 위에서 말했듯, 최후방에 있던 볼을 최전방으로 옮기는 작업을 리드할, 그러니까 후방에서부터 전방으로 볼을 운반해주고 공격작업을 지휘할 선수는 <원초적>으로 필요합니다. 최종 수비수는 사라졌습니다만, 최종 수비수가 수행하던 역할 자체가 필요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2) 해서, 이 역할을 최종 수비수 대신 중원에 있던 선수들이 맡게 된 것이지요.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위치로 내려와 경기장 전체를 조망하여 공격 작업의 계획을 세운 뒤, 수비수로부터 볼을 전달받고 전방으로 보냅니다.
- 여기서 자신도 전방으로 올라가서 그 위치에서 다시금 공격 작업을 지휘한다면, 그야말로 자유인의 의미에 충실한 리베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챠비를 전형적인 리베로로 언급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방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전방에 볼을 보내면, 후방을 지키고, 전방에 있는 다른 창조적인 선수가 공격 작업을 지휘하도록 바톤 터치를 하며 볼이 후방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요. 사비 알론소 같은 선수가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최후방 수비수가 맡곤 하던 리베로 역할을 중원에 있는 선수들이 맡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중원에 위치한 선수들에게 리베로란 명칭을 붙이는 것을 어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후방에서부터 볼을 운반하고 팀의 후방에서의 공격작업을 지휘한다면 그 누구라도 리베로겠지요.
여하튼 챠비 님이 체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