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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7/09 18:49:25
Name 눈시BB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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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남한산성 - 12. 왕이 남한산성에 있다




전쟁은 왕들의 거래이다. - 드라이든(영국의 시인)

1. 칸과 임금
- 25~27일
25일에는 사자를 보내자는 논의가 왔는데, 인조도 싫지만 따르겠다면서 설날이 다가왔으니 소와 술을 보내라고 하죠. 다음 날 김신국과 이경직이 갔는데, 마부대는 그들을 되돌려 보냅니다.
"우리 군중에서는 날마다 소를 잡고 술을 먹으며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 이런 것을 무엇에 쓰겠는가. 너희 나라의 군신이 돌 구멍 속에 들어가 있어 굶주린 지 오래일 것이니, 자연 쓸 만할 것이다"
나만갑은 이에 대해 "성상이 욕을 당하신 것이니, 신하가 죽어야 할 날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신 보내는 걸 반대한 것 역시 잊지 않고 적었죠. 실록에는 이를 27일로 쓰고 있습니다. 이 날 강원도 영장 권정길이 검단산까지 와서 도착한 걸 알리는데, 청의 공격을 받고 패합니다. -_-; 한편 27일에는 충청 감사 정세규가 광주 낙생면의 험찬까지 왔다가 패합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몇 차례의 승리 및 근왕군이 도착한 것 때문에 힘을 얻은 인조가 강경하게 나갔다가 날씨가 추워지니 다시 화친 쪽으로 기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겁니다. 주화파들은 계속 화친을 권유하고, 상황도 그럴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정묘년보다 더 굴복해야 되는 것도 확실했고, 척화파들은 주화파들을 죽이라고 연일 떠들어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화전양면전술입니다. 한편 청군도 쉽게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전면전을 포기합니다. 대신 남한산성으로부터 1KM의 거리를 두고 포진해서 외부로 통하는 모든 통로에 목책을 구축하죠. 목책 사이에 새끼줄을 연결하고 쇠방울을 달아 사람이 넘어가면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말려죽이기였죠.

28일, 완천군 최래길이 적을 속인 후 몰래 성을 빠져나가기를 청했지만 인조는 듣지 않습니다. 한편 익위 허한을 보내 강화를 의논하게 하죠. 역시 별 성과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날 남병사 서우신이 군관 이이립을 보내 구원할 것을 알립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이는 감사 민성휘와의 갈등으로 이루어지지 못 합니다.

29일, 병자록에는 28일에 술사가 "오늘은 싸우든 화친하든 다 길한 날이다"고 해서 김류가 둘 다 하려고 했는데, 나만갑은 "한꺼번에 노래하고 울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일은 29일인 걸로 보이네요. 전체적으로 병자록의 기록이 하루씩 앞당겨져 있네요.
아무튼 김류는 북쪽에 청의 진영이 취약하다고 공격을 명합니다. 하지만 이 때 청군은 북문 아래에 다수의 병력을 숨겨놓고, 진영에는 약간의 병력과 다수의 물자를 쌓아 둔 상황이었습니다. 장수들은 반대하지만 김류는 밀어붙이죠. 그는 나가기를 주저하는 병사 수 명을 처형하고 출성을 재촉합니다. 선봉으로 100명이 나갔는데 그들은 청군 진지를 공격해 포로와 우마를 거두어 옵니다. 이에 후속부대 200명도 전진, 물자를 거두어 들이려고 하죠. 바로 이 때 매복한 청군이 퇴로를 차단했고, 주력도 돌아와서 조선군을 공격합니다. 김류는 화약을 소량만 지급해서 많이 쏠 수 없었고, 육박전을 벌이다 조선군은 전멸합니다. 살아 돌아온 이는 화살 9대를 맞고도 돌아온 조양출을 비롯한 수십 명 정도였습니다.

이 때 김류는 책임을 피하려고 홍두표에게 구원하지 않은 죄를 물으려 햇는데 좌의정 홍서봉이 변호해서 사형은 면합니다. 대신 홍두표의 중군이 곤장 80대를 맞아 죽다 살아나죠. 김류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못 해도 300명은 될 피해를 40명으로 축소 보고합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는 더 떨어졌고, 조정은 싸움 대신 화의에 매달리게 됩니다.

한편 부원수 심기원이 적 수백을 죽였다는 장계를 올립니다. 당시 심기원은 김자점과 함께 몸을 사리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전후에도 전후에 사실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죠. 이 때는 상황을 몰라서 움직이지 않는 김자점을 파직시키고 대신 그를 올리자는 논의가 나옵니다. 하지만 위급한 시기에 장수를 파직시킬 수 없다 해서 김자점은 "서로도원수"라 해서 원래 이끌던 병력을 이끌고 심기원은 "제(모두 諸)도 도원수"라 해서 팔도의 근왕병들을 지휘하게 합니다. 강원도의 병력과 함경도의 병력이 여기에 합류합니다만... 그들은 결국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병자년이 끝납니다. 이 때 성 내에는 닭도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물자 부족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 정축년 1월 1일
이 날 일식이 있었습니다. 광주 목사 허휘가 쌀떡 한 그릇을 인조에게 바치고 관원들에게도 가래떡을 나눠 주었는데, 그를 보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신국, 이경직이 이 날도 고기와 술을 가지고 갑니다만, 용골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황제가 오셔서 방금 산성의 형세를 순찰하고 계시니 이제부터의 일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황제께서 진중으로 돌아오신 다음에 회보할 것이니, 사신이 오고 싶지 않으면 안 와도 그만이고, 오려거든 내일 다시 오오."
더 이상 화의의 대상자가 일개 장수가 아닌 칸, 청 태종이라는 걸 확실시 하는 말이었죠. 거기다 엄청난 여유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 날 인조는 새해를 맞아 명을 향해 망궐례를 올립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 임금이 적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올린 것이죠. 그리고 이 날 남한산성 옆의 산에서 황색 양산이 발견됩니다. 청 태종은 성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이런 때에도 명에 절을 올리는 인조의 절박한 심정, 하필 황제한테 그 모습을 보여준 용골대의 당황,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본 청 태종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 망궐례까지 봤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전쟁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2. 관온인성 황제의 교서
1월 2일, 청 태종의 조서가 옵니다. 줄여보죠.

- 니네는 명을 도와 우리에게 해를 끼쳤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우리가 요동을 점령하자 니네는 우리 백성을 유인해 명으로 보냈다. 이게 어찌 강함을 믿고 약자를 업신여겨 이유 없이 군대를 일으켰다고 하겠느냐
- 너는 또 뭐 때문에 "힘이 약하니 무리한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제는 정의로 싸울 때냐"고 했느냐. 이제 내가 직접 왔다. 너는 왜 지모 있는 자로 계책을 만들게 하고 용감한 자로 싸우게 해서 일전을 시도하지 않았느냐.
- 짐은 결코 강함을 믿고 침략하는 게 아니다. 니가 오히려 약하면서 변경을 소란케 했고, 짐의 백성이 도망가면 받아들여 명으로 보냈고, 명의 공유덕, 경중명이 귀순하는 것을 막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원인은 너에게 있다.
- 짐의 아우와 조카들이 너에게 글을 보냈으나 받지 않았다. 정묘년에 화친을 애걸할 때 바로 그 왕들 앞으로 글을 보내지 않았더냐. 짐의 조카나 아우가 어찌 너만 못 하냐.
- 그리고 외번(몽골)의 왕들이 보낸 글도 거절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후손이다. 원나라 때 조선(고려)는 공물을 바쳐놓고 하루 아침에 이처럼 오만해졌단 말이냐. 그들이 어찌 너만 못 하냐.
- 무릇 황제의 칭호를 올리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늘을 도우면 평범한 지아비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도 한 이름 없는 사내가 되는 것이다" 니가 한 말은 심히 방자하고 망령스럽다.
- 짐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의 8도를 무찌르려고 하니, 니가 부모처럼 섬기는 명이 어떻게 너희를 구하는지 보고 싶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너는 스스로 무고한 인민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누가 너를 탓하지 않겠느냐.

저의 간단한 감상은... 소름끼치고 열 올라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의 명문이라는 겁니다. -_-; 외교문서나 상소, 임금의 말 등에서 나오는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는 아우성을 칠 정도의 글들만 보다가 이걸 봤으니까요. 아주 정확하게 조선의 약점을 찌르고 있으며, 반박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글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너는 유죄다"라는 말을 들은 느낌입니다. 번동아제님도 "이 글을 지은 사람을 추적하고 싶을 정도"라고 하시더군요. 특히 황제는 하늘이 돕는다는 것에서는 조선의 가치관인 유교 가치관을 넣었죠.

뭐 결국 침략자의 명분 쌓기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글에 대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_-; 한편 청 태종은 조선의 관리와 백성들에게도 글을 내립니다. 전체적으로 비슷합니다. 흔히 이 얘기 할 때 나오는 "원래 죽이기를 좋아하고 얻기를 탐해서가 아니라~" 하는 글입니다. 여기서 역시 인조의 잘못을 낱낱이 열거하고 반박한 후에 "너희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너희 군신이 재앙을 만나게 한 것"이라고 하며 "편히 생업을 즐기고 도망가다가 우리 군사에게 해를 당하지 마라"고 합니다. 항거하는 자는 죽이고 순종하는 자는 받아들이며 도망가는 자는 반드시 사로잡을 것이라고 했죠. 백성들의 기를 철저히 꺾고 조선을 배반하기를 권유하는 글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위의 글은 실록에 싣지도 않고 이 글을 넣었습니다. -_-

조정의 의견은 화의로 향합니다. 김상헌조차도 "이게 진짜 칸일지 모른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의견만을 했고, 답서를 잘못 보내 말꼬리를 잡힐 경우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고 의견을 모으죠. 인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해서도 오만한 말을 삼가해야 한다. 하물며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대해서는 한 층 더 삼가해야 한다"

이 때는 아직 근왕군들이 패하지 않았을 때로 반격의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김류가 말 하지만 "위세를 펼치는 데 혹은 화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정도였죠. 나머지는 원론적인 말들 뿐이었습니다. 의논은 다음 날까지 이어집니다. 홍서봉은 인조에게 "신하"라고 일컬을 걷을 말 하고, 인조는 울면서 "죽지 않고 오래 살아 이렇게 망극한 일을 당했으니, 어찌한단 말인가"라고 합니다. 최명길을 벌하고 답 하지 말라는 주장이야 계속 올라옵니다만... 선전관 민진익은 이 날도 어명을 받고 성을 나서지만 빠져나가지 못 합니다. 남한산성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죠.

다음날 홍서봉, 김신국, 이경직은 답서를 가지고 갑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 특사를 보내 글을 올려 정성을 드리고 싶지만 군사가 성을 감싸고 있어 전할 수 없었고, 황제께서 이런 촌까지 오셨다니 믿음과 의심이 상반되고,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렸습니다. 이제 옛 맹약을 잊지 않고 가르쳐 주시니 제 죄를 알겠습니다.
- 소방이 정묘년의 맹약을 지켜야 할 것은 확실히 알지만, 제가 심히 혼암하여 일을 살피지 못 했습니다. 공유덕, 경중명 때의 일은 본심이 아니었지만, 의심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대국의 관대하신 용서를 입으면, 소방은 진실로 넓은 도량 가운데 오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지난해 봄의 일 (사신 내쫓은 것) 은 소방의 신민이 지식이 얕아서 사신을 노여워하게 한 것이고, 지나치게 염려해서 변방의 신하들에게 글을 보낸 건데 글 지은 이가 잘못 지어서 대국의 노여움을 범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 신하들 탓을 하겠습니까?"
- 명나라와 우리는 부자의 나라입니다. ( 이러다가 뜬금 없이) 대국의 군사가 우리 나라에 와도 화살 한 번 쏘지 않아 맹약을 중히 여겼는데, 모해하는 말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이 역시 소방의 정성이 부족했던 탓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마장(마부대)가 호의로 왔노라고 해서 그걸 믿었는데, 이렇게 크게 될 줄이야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 죄가 있으면 치고 죄를 알면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정묘년의 맹약을 소중히 여겨 용서하신다면 마음을 씻어 복종하겠습니다. 만약 군사로 치려 하신다면 그저 죽을 뿐입니다.
- 가르치심을 기다리겠습니다.

최명길이 지은 글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제가 다 잘못했으니 군사를 물려 달라는 거겠죠. 마부대는 이번에도 청군이 다 모인 다음 얘기하겠다면서 돌려보냅니다.

3. 희망과 절망
1월 2일, 이서가 숨집니다. 그는 병으로 수비직에서 벗어난 뒤에도 군무에 몰두하다 병이 악화되었다고 하죠. 남한산성이 지금까지 버티게 한 일등공신이었습니다.

3일, 추위가 약간 누그러지면서 적의 탐색전이 재개됩니다. 이 때 포격으로 3명을 죽였다고 하죠. 또 도망쳐 온 사람에 의해 몽고군이 도성 내를 약탈하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됩니다. 홍서봉은 마부대를 통해 토산 전투의 패배와 청군이 강화도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 또한 듣게 됩니다. 청군은 근왕군에 대비해 좌익군 3군 병력 7000여 명을 수원, 용인으로 진출시키고, 본군 4군 6000여명을 여주, 이천 방면으로 진출시킵니다. 이후 남한산성에는 한 동안의 정적이 감돕니다. 한 차례 크게 항복을 권고한 청 태종은 조선이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려습니다. 그 동안 조선군의 식량 사정은 더 열악해져서 군졸들은 3홉, 문무 백관은 5홉으로 감량하게 되었습니다. 땔감도 부족해서 성내의 개원사와 광주 관아의 옥사까지 뜯어 연료로 써야 될 정도였죠.

그러는 가운데서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5일에는 전라 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승리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 왔고, 강원 감사 조정호도 검단산에서 패배했지만 다시 군졸을 수습해 공격할 거라고 알려 왔습니다. 한편 평안 병사 유림과 함경 감사 민성휘의 장계도 도착하죠. 전라 감사 이시방의 장계도 도착하는데, 전라도군과 수군을 이끌고 진격하겠다고 했습니다. 인조도 성을 지키는 게 급선무라며 지구전에 대비하라고 합니다. (이 때 남은 군량이 2800석이었다고 합니다) 청이 국서에 제대로 답을 주지 않은 것도 이유일 테고,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는 척화파도 있었으며, 구원군도 있는 상황에서 마냥 화의에만 매달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머뭇거리는 김자점에게 독전관을 파견하기도 합니다. 이를 본 청 태종은 경계를 더욱 강하게 하라고 명하면서 9일 이후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못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국서를 보내는 문제는 진척돼서 1월 13일, 두 번째 국서가 성 밖으로 나갑니다. 이 때 나만갑은 장유에게 "애걸함만 적지 말고" 이치를 따져 적으라고 했고 그렇게 했는데, 영의정 김류가 "애걸하게만 적은" 최명길의 글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 병자록 전체적으로 나만갑 자신과 인조를 변호해주는 내용이 많네요 - -a

이 때 마부대는 긍정적으로 받고 황제에게 즉시 보내겠다고 하며 강화의 가능성을 품었습니다. 그 내용을 줄어 보면...
- 이전에 글을 올리고 "폐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만 열흘 넘도록 꾸짖는 말씀이 없으시므로 다시 아룁니다.
- 쟁반의 피(정묘년의 맹약)가 마르기도 전에 의심이 생겨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 모든 게 저의 잘못이니 잘못을 꾸짖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책망이 너무 심하면 도리어 형제의 의리에 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 소방은 약국이고 약함이 강함을 섬기는 건 당연한데 어찌 상국과 겨루려 하겠습니까? 다만 명나라의 은혜가 두터워서 배반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 소방이 잘못을 지었으니 잘못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와지기를 허락하시어, 종묘 사직을 보존하고 오래오래 대국을 받들게 해 주시면 그 감사함을 대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 한 때의 병력으로 형제의 은혜를 상하게 하면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 할까 두렵습니다.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망한 자를 구원하는 것이 패왕의 사업입니다. 황제께서는 새로 천지의 도리를 본받으시어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하시니, 소방이 전의 허물을 고치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야말로 고개를 땅에 박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전의 국서에 비해 약간 협박도 들어가 있죠.

한편 이 날 다행히 심기원의 장계가 도착했는데, 좋은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병이 대부분 패했다는 거였죠. 특히 쌍령 전투의 결과도 이 때 전달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서의 답은 오지 않았죠. 최명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수에게 조정의 명이 없을 때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묘당은 화친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성 내의 장사는 수비에 힘 써야 하며, 외부의 구원병은 전투를 임무로 삼아야 하니, 이 세 가지를 병행시켜야 할 것입니다."

16일, 다시 사신을 보냈지만 "새로운 말이 없으면 다시 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날 적은 "초항招降"(항복하라)는 깃발을 크게 내걸었는데 바람으로 쓰러졌죠. 먄약 이겼다면 이게 하늘의 뜻으로 여겼겠습니다만...

청 태종의 뜻은 간단했습니다. 그 역시 장기전을 걱정하고 있었고 그게 조서에도 보입니다. 하지만 조선을 반드시 굴복시켜야 했고 최대한 빨리 해야 했습니다. 용골대가 말한 "새로운 말"은 곧 왕의 출성과 무조건 항복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의논했는데 사책에는 쓰지 말라고 명합니다. 다음 날, 청 태종의 답서가 도착합니다. 당최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조선의 국서에 비해 정말 간단명료한 말이었죠.

- "책망이 너무 엄하면 형제의 의리에" 라고 씨부렸는데, 니들이 계속 타일러도 결국 맹약을 깼고, 내 사신이 니가 전쟁 준비하는 편지를 얻어 그걸 알고 사신 및 상인들에게 경고했으니 속임수로 군사를 일으킨 게 아니다. 니 말대로 니가 맹약을 어겨 천벌을 받은 것인데 깨끗한 척 하늘 天자를 들이대느냐.
- 너는 또 "소방이 궁벽해서 시, 서를 일삼고 전쟁을 익히지 않았다" 고 했는데 말이다. 기미년(심하 전투)에 이유 없이 침략했고, 이번에도 전쟁 준비했는데 병사 익히지 않았다고 하냐? 너는 원래 군사 좋아하는 놈이니 아직도 항복 안 할 거면 훈련이나 더 해라.
- 너는 또 "임진년의 난에 나라가 망하게 됐을 때 신종 황제가 천하의 군사를 동원해 구해 주었다"고 했는데, 천하는 크고 나라는 많다. 니네 구한 나라는 명나라 하나 뿐인데 뭔 놈의 천하 모든 나라의 군사 타령이냐? 명과 너네는 망령됨이 끝이 없구나. 니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아직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헛소리만 하느냐?
- 너는 또 "한 때의 잘못으로 병력으로 형제의 은혜를 상하게 하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막는다면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 할까 두렵다"고 했는데, 그래 맞다. 니가 형제의 우의를 깨고 전쟁을 계획하고 짐이 명을 칠 때만 기다려 군사를 내려고 했는데 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게 있느냐? 니네는 이런 걸 "모든 사람의 신망을 끊지 않는 것"이라 하고, 스스로 "고명(高明)하다" 하고, 스스로 "장구한 계책"이다고 하는데 내가 이걸 정성이라고 받아들여야 되냐?
- 또 "황제는 모든 나라를 안정시켜 새로이 관온인성 넉 자를 내세워 천자의 도리를 본받아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함이다"고 했는데 이건 여러 왕들과 대신들이 진작부터 내게 존호를 올린 거다. 나는 패왕의 사업에는 관심 없다. 이유 없이 너희를 헤치려는 게 아니다. 천도에 순응해 착한 자에겐 행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 재앙이 오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네가 짐과 적이 되었기에 병력을 끌고 여기로 왔다. 만약 너희가 우리 판도에 들어오면 어찌 자식처럼 사랑하지 않겠느냐?
- 또 너는 말이 전혀 다르다. 니네 문서들을 보면 우리를 노적이라 불렀는데, 우리를 도둑이라 부른 거다. 내가 도둑이면 어찌 너를 잡지 않고 그대로 뒀겠느냐? 이거야말로 "양의 탈을 쓴 호랑이"라는 속담에 어울린다. 우리 사람들은 늘 겸손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데 너네는 교활하고 간사한 것이냐?

"이제 네가 살고자 하느냐? 마땅히 빨리 성에서 나와 항복해라. 싸우고자 하느냐? 또한 빨리 나와 한 번 붙자. 하늘이 처분을 내려 주실 것이다."

이전의 조서처럼 보기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손에 땀이 차는 글이죠. 자. 위에서 한 것처럼 명문이니 하는 얘기는 열불이 터질 거 같으니 집어치우고 분석해 봅시다.

청 태종은 이번에도 미사여구 없이 조선의 주장을 반박했고, 도발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강력한 협박도 되겠지만 청의 사정도 크게 들어 있다고 봐야겠죠. 그 역시 빨리 결판을 내길 바랬습니다. 자신의 목표도 확실히 완수하면서요. 약속은 코 앞인데 장기는 이겨야 되는 사람이 장은 불러놓고 한 달 째 끝내질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요구는 너무나도 단순했습니다. 성을 나오라는 거였죠. 청이 그렇게 원하던 "새로운 말"이었고, 인조가 세자를 보내는 걸 감수하고도 피하려고 하던 거였습니다.

다음 날, 청군은 남문 밖에서 "화친을 하려면 나오고, 하지 않는다면 19일과 21일에 결전하자"고 소리질렀습니다. 최명길은 이에 대해 답서를 쓰고 인조에게 올리는데 삼사에서 의논하며 내일 보낼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경석의 경우 문자에 고칠 게 많으니 내일을 기다리자고 하는데 이 때 최명길이 꾸짖죠.
"그대들이 매번 작은 걸로 다투느라 이렇게 위태로운 치욕을 맞게 되었다. 삼사는 단지 臣이라는 글자가 옳은지만 논하면 된다. 사신을 언제 보내느냐는 묘당의 책임이다."

한편 최명길이 국서를 가지고 다시 수정하는데 김상헌은 비변사에 들어와 그 글을 보고 통곡하며 찢어 버리고 통곡하며 자기를 벌 해 달라고 합니다. 최명길이 그걸 밥풀로 다시 붙였다는 얘기는 유명하죠.
"신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성상의 의도는 압니다. 그러나 한 번 허락하면 모두 저들이 조종하게 될 것이고, 성에서 나가지 않으려 해도 되지 않을 겁니다. 예로부터 군사가 성 밑에까지 이르고서 그 나라와 임금이 보존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전하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모든 신하들이 울었고, 세자도 울어 그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 일단 실록을 보면 흔히 알려진 것처럼 김상헌, 정온 등 척화파가 화친하는 걸 극렬히 막은 것과는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도 화친 논의에 참석했고 화친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걸로 여긴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때의 모습에서는 화친 자체보다 임금이 출성해야 되냐의 것에 중점을 둔 걸로 보이구요.

병조 판서 이성구는 김상헌에게 노해 "대감이 척화하다 이렇게 됐으니 대감이 적에게 가시오"라고 했고, 김상헌은 "나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있소. 나를 적진에 보내 준다면 죽을 곳을 얻은 것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금식하며 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적은 국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결국 "폐하"라는 두 글자를 더하게 됩니다. 애초에 적었다가 반대로 지운 글자였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 조선 국왕 아무개는 절하고 글을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께 올립니다. 책망하심을 들으며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대국의 위엄에 모든 번방이 귀순하는 가운데 소방은 도리어 죄를 지어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만 마음을 고치고 지난날의 습관을 깨끗이 씻고 다른 모든 번방과 같이 명을 쫓고자 할 뿐입니다.
- 오늘에 있어서 출성하라신 명령은 실로 맞는 것이지만, 겹겹이 둘러싼 포위가 풀리지 않았고 노여움이 대단하시어 여기 있어도 죽고 나가서도 죽을 것이므로 자결하고 싶을 뿐이니 부끄럽습니다.
- 옛 사람도 성 위에서 천자에게 절 한 적이 있으니 황제의 덕이 하늘과 같아 반드시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역시 제법 긴 글이지만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출성만은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거였죠.

4. 성에서 나와라
1) 臣이라는 글자
이에 대해 청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습니다. 이성구는 "아침에 요망스러운 여우가 울더니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김상헌을 탓 했죠. 참찬 한여직은 臣자를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지적했고, 최명길은 옳게 여겨 더합니다. 이걸 들고 가니 용골대는 "부원수가 이미 잡혔고, 강화도 역시 함락됐으니 대세를 알 수 있을 거다"고 답 합니다. 이 때는 그냥 협박으로 들었죠. 청은 계속 압박하면서 성 안에 대포를 쏩니다.

이 날 이조 참판 정온이 강력한 차자를 올립니다. "최명길이 나라를 팔아 넘겼다"는 거였죠. 그는 항복은 어쩔 수 없다 해도 "臣"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미 나라가 망한 거라고 강력하게 말 합니다.
"최명길은 한 번 신이라고 일컬으면 포위당한 성도 풀 수 있고 군부도 온전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이것은 부녀자들이나 소인의 충성밖에 되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망하기보다는 차라리 정도를 지키며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명에 대한 부자와 같은 은혜는 잊을 수 없으며 군신의 의리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없는 법인데 최명길은 두 개의 태양을 만들려고 하며, 백성들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데 최명길은 두 임금을 만들려 합니다."

이전부터 척화신으로 이름은 올렸지만 그의 이름이 제대로 등장하는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여기서 그가 집중한 것은 화친이나 임금의 출성이 아닌 "臣"이라는 글자 하나였습니다. 글쎄요. 그는 아직도 굴복하지 않고도 화친할 수 있으리라 여긴 걸까요?

20일, 답서가 도착합니다.
- 네가 뉘우치는 것을 보고 용서하려 한다. 이 성을 공격해 얻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불러서 스스로 오게 한 것이다. 이 성이야 공격하면 그만이고 이것도 못 얻으면 어떻게 명을 치겠느냐.
- 네게 출성을 명하여 짐을 만나게 하는 것은 너의 성심을 보고자 함이요, 은혜를 베풀어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다. 너의 잘못을 용서하여 남조(명)에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 네가 머뭇거리면 지방이 유린당하여 재앙의 괴로움이 날로 더해질 것이니, 조금도 늦출 수 없다.
- 처음에는 너희 신하를 모조리 죽이려 했지만, 네가 성에서 나와 귀순하려 한다면, 먼저 주모자 몇 사람만 결박해 보내라. 그들을 효수해 뒷사람을 경계할 것이다.

조건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출성과, 척화신을 붙잡아 올 것이었죠. 더 얘기해 보려 했지만 청 사신은 떠났고, 최명길은 비밀리에 마부대, 용골대에게 뇌물을 주려 했습니다.

2) 청군 총공격
한편 소규모 접전이 계속 일어났는데, 18일에는 어영 부사 원두표가 성 밖으로 나가 적 6명을 사살하고 병기와 마필을 노획해 왔고, 다음날 청이 공격해오자 포격으로 격퇴합니다. 한밤중에도 야습을 당했지만 어영 별장 이기축의 활약으로 물리치죠. 하지만 이 날 얼어죽은 병사만 9명으로 조선군의 상황도 좋지 않았습니다.
20일에는 훈련 대장 신경진이 200명을 이끌고 정찰 부대를 기습, 30여 명을 살상시켰고, 23일에는 직접 장병들을 독려, 각 문을 동시에 열고 출격해 50여명의 청군을 사살합니다. 그 날 밤에 야습이 오자 이시백은 세 차례에 이어진 공격을 악착같이 막아내죠. 새벽에 또 다시 동문을 공격하지만 천자총통으로 수십명을 죽이자 물러납니다. 24일 아침, 이번엔 500여 명이 남문을 공격하려 하자 구굉이 4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선제 공격하자 뿔뿔히 흩어집니다. 저녁에도 접근했지만 역시 물리쳤고, 새벽에 수십 문의 화포로 공격해 와서 여러 곳이 파괴됐는데, 조선군도 적 포대에 포화를 집중, 적의 화약이 폭발해서 다수가 폭사합니다. 이 때 10여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 조선군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 짤려서 댓글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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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BB
11/07/09 18:52
수정 아이콘
이 모두는 조선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한 거였습니다만, 오히려 조선군이 승리하며 청의 사기만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청 태종은 대노해서 총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내일은 전군이 총공격하여 산성을 도륙해라. 그러나 조선 국왕만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청군 장수들은 성을 힘으로 공격할 수 없으니 지쳐서 항복하게 해야 한다면서 뜯어말리죠. 청 태종도 그걸 듣고 분을 가라앉혔지만, 공격은 그대로 하게 합니다.

25일 아침, 청군은 산성 주변 500m지점까지 포위망을 압축시켜 하루종일 포격을 가합니다. 조선군도 대응 포격을 하며 파괴된 부분을 급히 복구하고 물을 부었습니다. 한 겨울이라 파손된 부분은 금방 복구되었죠. 청은 새벽까지 계속 공격을 시도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물러납니다.

청이 남한산성을 말라 죽기를 그냥 기다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깨뜨릴 수 없었고, 가능하더라도 크나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더 이상의 공격은 필요 없었습니다.

3) 저항의 한계
최명길은 용골대를 만났지만, 긍정적인 답을 듣지 못 합니다. 그 역시 확고했죠.
"황제가 심양(瀋陽)에 있다면 문서(文書)만 보내도 되겠지만 지금은 이미 나왔으니 국왕이 성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인조의 말입니다.
"저들이 기필코 유인하여 성에서 나오게 하려는 것은 잡아서 북쪽으로 데려 가려는 계책이다. 경들은 대답을 우물쭈물하지 않았는가?"
인조는 성을 나갈 경우 자기를 심양으로 잡아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22일, 인조는 김류, 이성구, 최명길 등과 의논하다가 결국 척화신들에게 자수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조 참판 정온, 사간 이명웅 등이 자수하죠. 하지만 인조도 차마 그들을 내보내라는 명은 내리지 못 합니다. 김수현 등이 결전을 벌일 것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노여움을 살까 봐 거부합니다. 김상헌 역시 죄를 청했고,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오랑캐의 진중에 가는 것을 피하려고 그랬다고 할 것이다"면서 밥도 다시 먹습니다. 윤집과 오달제 또한 자수합니다. 소현세자도 자기가 가도 동생들이 있으니 상관 없다면서 성을 나가겠다고 비변사에 전합니다.

23일, 성을 지키던 수원부 병사 수백 명이 대궐 앞에서 척화신을 내보내라고 요구합니다. 신경연, 구굉 등 성을 지키던 장수들이 공모한 거였습니다. 그들은 "명사(名士)들의 고론(高論)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를 망친다"거나 "나라에 문사(文士)가 없으면 편안할 거다" "그들을 볼 때마다 칼자루를 잡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척화신들은 명분 때문에 싸운다는 거였죠. 26일에는 훈련도감과 어영청 병력들까지 시위에 참가합니다.

성 내에서도 이미 한계는 오고 있었습니다. 군량과 물자는 다 떨어졌고, 월동준비도 덜 돼서 얼어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죠. 병사들의 시위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진 총공격을 잘 막아내고, 배반자도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천운입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성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성 내의 상황과는 별개로, 인조는 성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

홍타이지의 협박부터 인조의 대응, 척화신들의 모습까지... 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한 달음에 여기까지 왔네요. 에휴... -_-
다음 편은 근왕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 방에 너무 길게 나가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_-; 오죽 열이 뻗쳐야지요. 다음 편은 좀 짧게 가려고 노력해 보죠 ㅠ
물여우
11/07/09 19:35
수정 아이콘
길어도 좋습니다. 너무 짦으면 감질맛나요! 잘보고 갑니다~^^
11/07/09 20:1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11/07/09 20:20
수정 아이콘
열불이 터져야 마땅한 이야기인데 청의 국서와 우리 신료들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우리쪽에 울화가 돋고 빨리 좀 잡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_-;;;;

마지막 장수들과 병사들의 반발은 진짜 뼈에 와닿네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들은 명분 때문에 싸운다....하아.....;;;
11/07/09 21:10
수정 아이콘
2.의 청의 조서는 아테네와 밀로스의 대화에서 아테네와 제1차세계대전 후의 윌슨을 떠올릴 정도의 수준인거 같네요
국제정치학도로서 보기에 실리와 명분을 온전히 표현한, 즉 아름답습니다

이정도의 국제정세를 읽는 감각이 있는 자가 칸(황제)이었거나 그런 능력이 있는 자를 수하로 거느릴 능력이 있는 자가 칸이었다면 중원을 가질만 하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2.말고도 이어지는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열불터질정도(눈시BB님의 표현을 빌려)의 답조서도 같은 판단이네요
11/07/09 21:15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때부터 계속 잘 보고 있었는데 댓글을 잘 안남겼네요. 꾸준한 연재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 임진왜란때는 당하다가도 갚아주는 맛이 있었는데, 호란은 보면 성질이 뻗쳐서... -_-

이번 남한산성은 농성 자체는 잘 했으니 군량만 있었다면 그래도 끝까지 버텼을까 그게 궁금하긴 한데, 버텨봤자 나중에 다시 털렸을거 같아서 의미없었을거 같네요. 차라리 이번 한번만 털리고 만것이 다행인건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청나라, 국서 정말 잘 썼네요. 딱히 논리적으론 반박할 말이 없군요..
무리수마자용
11/07/09 22:25
수정 아이콘
조상님들의 꼴불견을 시리즈로 읽다보니 성 정체성을 깨달을것 같네요. 글쓰는 분은 오죽하겠습니까 ㅠㅠ 항상 잘 읽습니다. 홍타이지 글이 참 -_- [m]
11/07/09 23:13
수정 아이콘
저 김류라는 자가 강화도 날려먹는 사람의 아버지이지 않나요?
김자점도 그렇고 참...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인재기용이라고 할수 있는데 그런면에서 봤을때 인조는 무능한것 같습니다.
애초에 비슷한 부류들끼리 한편이었겠지만요.
호떡집
11/07/10 13:06
수정 아이콘
인조 34권, 15년(1637 정축 / 명 숭정(崇禎) 10년) 1월 2일(임인) 2번째기사
귀순하라는 내용의 황제의 글과 그에 대한 의논

홍서봉·김신국·이경직 등을 오랑캐 진영에 파견하였다. 홍서봉 등이 한의 글을 받아 되돌아왔는데, 그 글에,
“대청국(大淸國)의 관온 인성 황제(寬溫仁聖皇帝)는 조선(朝鮮)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고유(誥諭)한다. 짐(朕)이 이번에 정벌하러 온 것은 원래 죽이기를 좋아하고 얻기를 탐해서가 아니다. 본래는 늘 서로 화친하려고 했는데, 그대 나라의 군신(君臣)이 먼저 불화의 단서를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짐은 그대 나라와 그 동안 털끝만큼도 원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그대 나라가 기미년1366) 에 명나라와 서로 협력해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를 해쳤다. 짐은 그래도 이웃 나라와 지내는 도리를 온전히 하려고 경솔하게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동(遼東)을 얻고 난 뒤로 그대 나라가 다시 명나라를 도와 우리의 도망병들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치는가 하면 다시 저 사람들을 그대의 지역에 수용하여 양식을 주며 우리를 치려고 협력하여 모의하였다. 그래서 짐이 한 번 크게 노여워하였으니, 정묘년1367) 에 의로운 군사를 일으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때 그대 나라는 병력이 강하거나 장수가 용맹스러워 우리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나 짐은 생민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끝내 교린(交隣)의 도를 생각하여 애석하게 여긴 나머지 우호를 돈독히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 10년 동안 그대 나라 군신은 우리를 배반하고 도망한 이들을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명나라 장수가 투항해 오면 군사를 일으켜 길을 막고 끊었으며, 우리의 구원병이 저들에게 갈 때에도 그대 나라의 군사가 대적하였으니, 이는 군사를 동원하게 된 단서가 또 그대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명나라가 우리를 침략하기 위해 배[船]를 요구했을 때는 그대 나라가 즉시 넘겨 주면서도 짐이 배를 요구하며 명나라를 정벌하려 할 때는 번번이 인색하게 굴면서 기꺼이 내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특별히 명나라를 도와 우리를 해치려고 도모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신이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여 국서(國書)를 마침내 못보게 하였다. 그런데 짐의 사신이 우연히 그대 국왕이 평안도 관찰사에게 준 밀서(密書)를 얻었는데, 거기에 ‘정묘년 변란 때에는 임시로 속박됨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의에 입각해 결단을 내렸으니 관문(關門)을 닫고 방비책을 가다듬을 것이며 여러 고을에 효유하여 충의로운 인사들이 각기 책략(策略)을 다하게 하라.’고 하였으며, 기타 내용은 모두 세기가 어렵다.
짐이 이 때문에 특별히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대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은 실로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단지 그대 나라의 군신이 스스로 너희 무리에게 재앙을 만나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집에서 편히 생업을 즐길 것이요, 망령되게 스스로 도망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해를 당하는 일이 일체 없도록 하라. 항거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고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며 도망하는 자는 반드시 사로잡고 성 안이나 초야에서 마음을 기울여 귀순하는 자는 조금도 침해하지 않고 반드시 정중하게 대우할 것이다. 이를 그대 무리에게 유시하여 모두 알도록 하는 바이다.”
하였다. 상이 즉시 대신 이하를 인견하고 이르기를,
“앞으로의 계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겠는가?”
하니, 홍서봉이 대답하기를,
“저들이 이미 조유(詔諭)란 글자를 사용한 이상 회답을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한(漢)나라 때에도 묵특의 편지에 회답하였으니, 오늘날에도 회답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하고, 김류가 아뢰기를,
“회답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신하들에게 널리 물어 처리하소서.”
하였다. 상이 각자 마음속의 생각을 진달하게 하였으나 모두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최명길이 아뢰기를,
“신의 뜻은 영의정·좌의정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고, 김상헌이 아뢰기를,
“지금 사죄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노여움을 풀겠습니까. 끝내는 반드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해 올 것입니다. 적서(賊書)를 삼군(三軍)에 반포해 보여주어 사기를 격려시키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최명길이 아뢰기를,
“한이 일단 나온 이상 대적하기가 더욱 어려운데, 대적할 경우 반드시 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첩(城堞)을 굳게 지키면서 속히 회답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김상헌은 답서의 방식을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다고 하면서 끝까지 극력 간하였는데, 최명길은 답서에 조선 국왕(朝鮮國王)이라고 칭하기를 청하고 홍서봉은 저쪽을 제형(帝兄)이라고 부르기를 청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이야말로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위급한 때이다. 위로 종묘 사직이 있고 아래로 백성이 있으니 고담(高談)이나 하다가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라. 예판은 여전히 고집만 부리지 말라.”
하니, 김상헌이 아뢰기를,
“이렇게 위급한 때를 당하여 신이 또한 무슨 마음으로 한갓 고담이나 하면서 존망을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신은 저 적의 뜻이 거짓으로 꾸미는 겉치레의 문자에 있지 않고 마침내는 반드시 따르기 어려운 말을 해올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이성구(李聖求)가 장유(張維)·최명길·이식(李植)으로 하여금 답서를 작성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당시 비국 당상이 왕복하는 글을 소매에다 넣고 출납하였으므로 승지와 사관도 볼 수 없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4책 662면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왕실-국왕(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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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풀버젼 찾아봤는데 확실히 매끄럽게 잘썻네요.
아아...m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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