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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27 17:14:58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심슨을 신은 남자.

바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넓은 홀에서 알미늄 배트를 붕붕 휘두르며 타격자세 교정을 하던 중에, 홍대의 모 까페에서 일하는 K에게 메세지가 왔다. 야식 생각 있으면 가게 끝나고 놀러오세요, 하고. 그렇게 새벽 세시 반 정도에 가게를 정리하고 홍대로 터벅터벅 넘어갔다. 엄밀히는 합정역에 가까운 홍대지만.

까페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함께 있던 손님과 함께 야식을 먹으러 나갔다. 냉면집에서 냉면과 게장과 냉면곱배기와 소주를 시키고 마셨다. 전날의 숙취가 가시지 않아 피곤했다. 생각해보니 전날도 K와 마셨다. 전날 우리는 갈비탕에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우리의 인생에 삼십줄에 들어가면서, 고무줄이 다 풀린 고무동력기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해가 뜰 때 까지 그렇게 마시고 각자 집에서 잠깐 자고 출근해서 그도 술을 팔았고 나도 술을 팔다가 약 24시간만에 감격의 해후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러니 둘 다 정상일 리가 없었다. 조용히, 느린 템포로, 추적추적 냉면을 건져먹고 간장게장을 파먹고 그랬다.

먹을 것들을 대충 건져먹고 가게를 나오니 새벽이 아닌 아침이었다. 태양이 도동실 떠올라 푸르푸르른 구름이 많이 끼어 어둑어둑한 한적한 오후 같은 아침. 그러나 사람도 차도 별로 없는 그런 아침. 일행을 택시에 태워 출근시키고 우리는 산책을 시작했다-라기보다는 그가 나를 바려다줬다는 편이 옳을 지도 모르겠지만. 홍대에서 시작된 산책은 휘적휘적 동교동에 달했다. 팔락팔락 고무줄이 다 풀려버린 고무동력기마냥 목적 없이 그냥 밀리는 곳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러다 우리는 마주쳤다.

심슨을 신은 남자를.

까페 골목. 그러니까 수 많은 바리스타들이 내 바나 그가 일하는 까페에 비할 바 없이 예쁜 까페에서 커피를 비비는 그 골목을 내려오는 중에, 우리는 심슨을 신은 남자와 조우했다. 왁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 비비드한 컬러의 드레스셔츠. 적절한 베스트를 위에 걸치고, 스키니한 바지를 그냥 입은 것도 아니고 <무릎 까지 걷어올려 입고> 그 아래 바트 심슨이 그려진 흰 양말을 신은 한 청년. 한 손에는 빈 맥주 페트병을 들고, 다른 손에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들고.  그렇게 휘적휘적 걸어오던 그는 우리 앞에 와서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제 신발 못보셨어요?"

뭐 이 신발? 이라는 반응 대신 우리는 그냥 네? 라고 되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술 좀 마시고 놀이터에서 자고 있었는데, <두 번 밖에 신지 않은> 페라가모가 없어졌어요. 누가 벗겨갔나봐. 이게 말이 되요? 아 나 신발 지하철 타고 집에 가야되는데 사람들이 이 꼴 보면 뭐라그러겠어. 아니 근데 믿겨져요? 사람이 자고 있는데 신발을 훔쳐갔다니까. 경찰서에 신고는 했는데..."

여기까지 어딘가 언더그라운드 마초힙합스러운 말을 뱉어낸 그는 침착하게

"그러니까 담배불좀 빌려주세요." 라고 말을 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든 것 같았다. 무언가 민망함을 느꼈으리라. 몇 보금 빨고 그는 자기 발을 가리키며 나즈막히 읊조렸다.

"이거 심슨 아시죠? 심슨"

심슨. 알고말고. 그렇게 우리가 벙찐 사이 그는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덕분에 우리도 정신이 들었다. K는 심슨, 아아, 심슨. 바트 심슨이 나랑 동갑인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두리반 근처에 도착했다. 두리반이나 갈까요? 에이, 아니, 그만두죠. 저리로 돌아서 나가요. 저리로 돌아서 큰길가에는 커다란 폐허같은 건물들과 몇 대 없는 자동차와 몇 명 없는 사람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핵전쟁이 일어난 다음날 오후같네요. 날씨도 선선하고...몇가지 잡담을 나누며 산책을 조금 더 한 우리는 이내,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간헐적으로 귓속에 "이거 심슨 아시죠? 심슨" 이란 말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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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天君
11/05/27 18:32
수정 아이콘
느낌 좋은 글인데요? 실화인가요?
11/05/27 20:25
수정 아이콘
참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재미있게 쓰나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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