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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14 02:00:53
Name nickyo
Subject [일반] 아는 형과의 시담.
하늘은 높고 푸르고
땅은 넓고 단단한데

유독 발 아래 휑-하니 바람 분다.
넓고 단단하여 근심없을 땅 위에서
무엇이 그리 무서워 두 눈 뜨일새라 꽈악 감고 한 발 한 발 움직이니

꽉 감아버린 눈 앞에는 푹 꺼진 천길 낭떠러지라.

그저

두 발을 놓기도 힘든 위태위태한 좁은 돌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섰다.

구름위에서 조소하는 어린 것들과
꺼릴 것 없이 나다니는 바쁜 것들 속

새하얀 이만이 같은데

사방팔방엔 새까맣게 울렁거리는 아구 목구녕.
알면서도 모른 척 무서워 애써 아니라 되새기며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를 뚜벅거리며 위 아래로 옮긴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땅은 넓고 단단한데

새하얀 이마저 삭풍에 누래진 지금에야
까마귀만이 벗삼아 부리질에 붉다.

-----------------------------------------------------
최근 힘들고 지치는 심경을 그냥 시로 풀어봤습니다.
제가 상당히 존경하는 주변 형을 보여주며 2~3번의 퇴고를 거쳤네요.
그 형에게는 글솜씨나 문학/비문학적 양식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에
절망적인 시를 다 쓰고나니 즐거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시는 참 매력적입니다.
그 불친절한 듯 사람의 마음을 참 잘 담아내는 듯한
오묘한..

제가 쓴 글이야 조잡스런 잡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날에는 왠지 시집을 읽고 싶어지더군요.

시는 참 매력있는거 같습니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절망이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절망을 만드는 사회구조의 움직임은 우리가 예상하지도,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우리를 파국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결국 그 당사자들은 그러한 풍파속에서 절망을 겪는 순간 희망의 빛을 잃게되고, 그 주변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어린것'과 '바쁜것'들은 그러한 낭떠러지 한 가운데에 버려진 사람을 함께 버리곤 합니다.

모두 열심히 살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서 있어야만 했던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 절망을 메꾸는 건 사회와 우리가 할 일이지, 절망을 건너오라고 어줍잖은 희망예찬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사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좌절을 던저주고 썩은 동아줄을 알아서 기어올라오는 자만을 좋아하곤 합니다.


억지가 심한 이야기입니다만, 원래 글재주 없는 사람의 이야기라는게 그런가보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시네요.

오늘도 불면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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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4 02:07
수정 아이콘
시가 참 좋군요 ^^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문득 마이 제네레이션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10/01/14 03:16
수정 아이콘
<니 인생은 뭐 다를 거 같아? 너나 나나 한 발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인건 마찬가지야>

제 좌우명 중 하나입니다 ^^;;
부엉이
10/01/14 05:26
수정 아이콘
2시가 불면증이면 5시반에 리플다는 저는-_-....
Hypocrite.12414.
10/01/14 05:31
수정 아이콘
좋은 시 읽고 갑니다. 요즘 저의 마음을 시에 담은것 같아요 ㅠㅠ

부엉이님// 부엉이시니까요 ^^;;;;;;;;;;;;
Ms. Anscombe
10/01/14 09:48
수정 아이콘
OrBef2님// 그런데 이미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은 잘못 디딜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10/01/14 09:53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 아놔 크크크크 님은 스스로 선택하신거잖아요!! 지금이라도 어여 나오시면 된다능... -_-;;
10/01/14 10:18
수정 아이콘
정말로 잔인한 것은, 어느 누구도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의지가 없어, 결국 스스로 빠져나와야 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현실이죠.
OrBef2님// 정말 한 발짝의 차이가 너무나도 위태위태한 걸 새삼스레 느끼고 있습니다..ㅠㅠ
Ms. Anscombe님// 그 시크함과 고고함의 극치에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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