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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0/19 01:51:24
Name DEICIDE
File #1 sera_gaejookyi.jpg (93.5 KB), Download : 82
Subject [일반] 사랑해보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을 키워보려 합니다.


(사진은 오늘 분양받은 두 아이들. '세라' 와 '개죽이' 입니다.)

세라와 개죽이를 받아든 날.

꽃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자동문이 굉장히 천천히 열리는 거에요.
스르르르르르르 꾸물거리면서 열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꽃가게 여주인분과 눈이 마주치고서는 씩 웃었습니다.
그렇게 그 가게에 처음 들어서는 발걸음부터 평범하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어떤 것 찾아 오셨어요?"
"요즘 마음이 너무 메마른 것 같아서, 작은 화분을 하나 키워보고 싶어서요."

그 말대로였습니다. 요즘 제 자신이 너무 대책없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챙겨주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요.
제 안에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바싹 말라 있으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관심과 애정만 목말라하는 모습. 참 이기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화분으로나마, 조금씩,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회복해가려 합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동물도, 심지어는 선인장 하나도 키워본 적 없는 저였습니다. 그러니 화분에 대해서 뭘 알리가 있나요.
그래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 식물과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무언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제가 고른 화분은 '세프렐라' 였습니다.
예쁜 꽃이 있는 화분도 좋고, 향기로운 허브도 좋지만, 저는 꽃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잎을 가진 세프렐라를 골랐습니다.
햇빛 잘 받지 못하는 연구실 안에서도 튼튼하게 잘 자라니, 저같이 무신경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기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목마르면 잎이 축 늘어지게 되니 아이들 상태를 잘 확인해 주면서, 5일에 한 번 정도 물만 잘 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세프렐라 화분을 사들고 가려는 참에, 여주인분이 잠깐 기다리라는 거에요.
그러더니 보관하고 계시던 음료수병에 예쁘게 포장을 해서, 대나무 줄기 하나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름은 '개암죽' 이라고 하고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람한테 주는 것이라며 저한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도 기분 좋아 보였고,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들 이름은 세프렐라는 줄여서 '세라', 개암죽은 '개죽이' 로 지었습니다. (작명센스 하고는 ㅡ_ㅡ;;;;)

그렇게 살아있는 것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비록 말도 못하고, 눈도 마주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이지만
살아 있는 것을 잘 키워야 하는 책임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저에게는 작지만 분명한 삶의 반전입니다.



PGR 자게를 보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느낍니다.

삶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PGR 자게입니다.
그 무겁기로 유명한 PGR 의 글쓰기 버튼이라, 많은 분들이 신중함과 세심함이라는 무게를 담아서 글을 쓰시는데
제 마음이 그 무게를 헤아리고, 깊이를 쫓아가면서 글을 읽을 만큼 여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PGR에 들어오면,
일단 겜게에 들어가서, 글 제목들만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자유게시판으로 이동.
그리고 자유게시판에서는 이리저리 글을 클릭하더라도 읽을 엄두를 못내고 휠만 스르륵 스르륵.
그러다가 유머게시판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짧은 유머들에만 킥킥대다가 나가는 것이 요즘 제 PGR 활동입니다.

마음의 여유라는게 별다른 것일까요.
지금 내 상황, 내 처지, 내 문제들에만 골몰하여있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고,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함께 반응하는 것.
그런 것이, 지금 우리들한테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 아닐까요.

사랑하고 싶다고 끊임없이 외쳐대지만, 이미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
때문에, 사랑해보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을 키워보려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따스한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서 움틀 수 있겠지요?

Th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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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린
09/10/19 01:55
수정 아이콘
저는 자그마한 병에 물고기 두마리를 키웁니다. 그 안에 다슬기? 소라? 도 있는데 신기하죠.

자게는 확실히 좀 삭막하긴 하지만, 그만큼 많은걸 볼 수 있어서 좋더군요. 그리고 그 기분을 유게가서 풀수 있으니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09/10/19 02:35
수정 아이콘
자게에서는 왠지 공부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지요 흐흐
R U Happy ?
09/10/19 04:12
수정 아이콘
개죽이.... 개죽이 크크크
09/10/19 06:10
수정 아이콘
저도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힘드네요.
놀기는 작년보다 훨씬 많이 놀고 공부 역시 학년이 올라가니 어려워져서 이리저리 바삐 지내는데
오히려 제 인생을 생각해보고 돌아보는 시간은 늘은것같네요.
우울하고 외롭습니다. 허허...
좋은 여자친구가 있어야되는건가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는 자유로운 솔로를 추구해왔는데
09/10/19 08:45
수정 아이콘
개죽이...크크크..왠지 저 대나무에 매달린 귀여운 강아지 표정이 떠오르는건...디씨질을 너무 많이 해서인가요

피지알을 좋아하는 이유가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이 같이 있어서이죠. 자게에서는 진지함을 유게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원래 사람도 진지함과 재미를 겸비해야 멋진 사람 아닐까 싶네요. 한 가지만 있으면 매력이 없죠 ^^
밀로비
09/10/19 10:21
수정 아이콘
마린블루스의 선인장양이 생각나네요
역시 생물과 함께한다는 건 정서함양에 좋은 것 같습니다.
09/10/19 10:23
수정 아이콘
저도 길러보고 싶네요.
루크레티아
09/10/19 10:42
수정 아이콘
사랑해도 안생겨요...

농담이고요, 저도 화분 하나 키우고 있는데 이것 저것 쫓겨서 물 좀 안줄라 치면 푹 죽어버리는 애 때문에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그러다가 물 좀 주면 다시 조금씩 살아나는데 왠지 배시시 웃는 기분이 들어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기왕 따뜻한 마음을 먹으셨으니 잘 키우셨으면 합니다. 정신없는 생활에선 가끔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요.
09/10/19 10:48
수정 아이콘
동물은 무서워하고 어떻게 다룰줄 모르겠고..식물은 꾸준히 관리해주기 힘들던데..T.T
좋은 일 하시는 걸 보니 부럽네요..
09/10/19 11:29
수정 아이콘
저는 이미 화분도 여럿 죽여봤는데...ㅠ_ㅠ
그래도 자꾸 시도하다 보니 어찌저찌 화분이 다섯 개로 늘었네요.
뭐 깜빡깜빡 하는 탓에 물 주는 걸 간혹 잊어버리는데, 시든 잎 잘라주고, 가지 정리해주고, 물 주면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고 그래요.^^
이수철
09/10/19 11:35
수정 아이콘
마음이 메말라 간다는 말에 심히 동감을 하네요.
BoSs_YiRuMa
09/10/19 12:00
수정 아이콘
생각보다 쉽지 않으실겁니다.
식물은 동물보다 면역력이 약하고, 신경을 많이 안 써준다면 오래 가기 어려운것이라..
그래도 키우시기로 마음먹으셧으니, 잘 키우시길 바라고..
잘 키우신다면 다음의 사랑이 찾아온다면 분명 잘 키우실수 있다고 봅니다. 파이팅입니다.
09/10/19 12:29
수정 아이콘
사무실에 후배가 놓고간 샨세베리아? 키우고 있습니다.. 별로 신경 안써도 쑥쑥 잘 자라는거 보니..
(물론 물은 일주일에 두번 안까먹고..;;).. 문득 이글 보곳 생각나서 몇자 남겨봅니다..
여자예비역
09/10/19 13:08
수정 아이콘
저도 삼실 놋북 받침대 위에 '개죽이' 하나 있습니다.. 흐흐.. ( 비록 식당 개업선물로 받은 쪼꼬만 놈이지만..)
잘 지내 볼려구요...^^
AnalysiStratagem
09/10/19 15:32
수정 아이콘
저도 deicide 님과 같은 이유로 화분 두개를 키우고 있답니다.

한놈은 벌써 5개월이나 지났는데 잘 자라줘서 참 고맙고

다른 한놈은 2개월째 맞고 있습니다.

두번의 성공으로 이번에는 조금 큰 화분으로 도전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삭막한 삶에 하나의 오아시스가 되주는 것 같습니다. ^^
타인의하늘
09/10/19 16:52
수정 아이콘
아..저것의 이름이 개암죽이었군요.
저는 식물에는 도통 관심도 없고..애정도 없는지라;; 그동안 숱하게 본의아니게 많은 식물들을 죽였는데요..
얼마전 꽃가게 홍보차 오신 분에게 저 개암죽을 하나 받았답니다.
처음엔 신경도 안쓰고 모니터 옆에 놔뒀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잎파리가 쑥쑥 자라나는걸 보면- 어라-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근데 물을 담아만 놓으면 되는건지,, 이러다 뿌리가 썪는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어서요.
물'만'이라도 제대로 주고싶어서 항상 뿌리가 물에 잠기도록 담궈놓고 있는데..그래도 되는건지..
잘 키우는 tip좀 주세요. ^^;
09/10/19 19:06
수정 아이콘
타인의하늘님// 주인장님께서 물'만' 잘 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갈아주면 좀더 신선한 물을 마실수 있을 테니 좀더 좋겠지만, 그냥 물이 떨어지면 채워주기만 해도 쑥쑥 잘 자란다고 하니까요.
정지율
09/10/19 20:43
수정 아이콘
저희집에도 산세베리아 하나가 있는데 제가 온갖 애정을 다 줘가면서 키울때는 쑥쑥 잘 자라더니 요즘 제 생활도 바쁘고 그러다 보니 신경을 못쓴탓에 애가 비실비실하네요.. 미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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