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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0/15 12:37:29
Name 솔로몬의악몽
Subject [일반] 우리는 어째서 인문학 '따위를' 공부해야만 하는가
안녕하세요. 솔로몬의 악몽입니다.
이 글은 작년에 회사 워크샵에서 발표할 예정으로 작성했던 것인데, 행사가 취소되면서 사장되었던 자료입니다.
사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이것을 올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인문학에 대하여 거의 모르는 사람이 인문학을 아예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든 자료이다보니, 너무나 모자라고 창피한 자료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올린 '영포티론' 관련 글에서 이런 항의(?)를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대략 글 리젠도 얼마 안되는 게시판에 영포티 관련 글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올라오냐는 댓글이었습니다.
비단 저를 공격하시는 마음은 아니셨겠지만,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영포티'를 제목에 쓴 것에 어그로를 끌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문이나마 글 하나라도 올려서, 게시판이 활성화되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만, 글을 빠르게 써낼 능력은 없으니 기존에 썼던 것을 재활용하기로 하였고 이에 어디서도 사용한 적 없는 과거 강의 자료를 올리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아래 글을 읽다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깊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많은 부분 건너뛰거나 희화화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 점 이해해주시고 주마간산으로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저는 굳이 따지자면 정치성향이 우파 쪽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정치성향을 배제하고 자료를 만들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좌파적 성향에 대한 저의 편견이 녹아들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누군가를 공격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단순한 저의 능력 한계 때문임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마음이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P.S) 제 개인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최대한 삭제하였습니다만, 혹여나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시더라도 모른 척 해주시기 바랍니다...;;

P.S) 내용은 PPT 이미지를 위에,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은 아래가 되도록 편집하였습니다.

P.S) 그럼에도 도저히 이 글을 용서 못할 인문학 애호가 분들은, 이 글을 인문학 NTR물처럼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하 본문 ------------

안녕하세요. 먼저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이해의 말씀을 하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유교철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학생 시절에는 철학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것도 고작 10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원래 저는 여러분 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을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이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큰 주제를 부여 받았기에, 최대한 준비를 하려 노력했습니다만,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부족한 점도 많을 것이며, 특히 인문학 안에서도 철학, 역사가 왔다갔다 할 것입니다. 문학은 크게 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왜 저는 항상 이상한 책을 읽고 앉아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변명이 될 것도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준비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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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강의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강의의 특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일찍 끝내야 한다는 것이죠. 10분간의 제 이야기가 여러분의 휴식 시간만큼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적어도 여러분들게 드릴 수 있는 지식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거겠죠.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인답게도 곱게 접어 벽난로 장에 끼워 넣을 지식의 정수라고 표현했습니다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안에서 여러분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 몇 개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맨 처음 인문학에 대해서 여러분들 앞에서 얘기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매우 고민이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쉽겠지요. 철학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의 현인들 몇마디 하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로 중세철학을 대표하고, 르네상스로부터 도래하는 근대철학을 설명했다면, 아마 이 강의를 쉽게 준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왜 다른가 이런 얘기까지 준비했다면, 저는 적당히 한 시간 때우고, 여러분들은 편안히 휴식을 취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아마 대다수의 분들께서 관심 없을만한 내용을 이 앞에서 얘기 한다는게, 여러분들의 시간을 뺏는 입장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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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주제는 결국 이렇게 시작을 해야겠죠?


오늘 말씀 드리게 된 주제는 인문학입니다. 그런데 인문학이란게 뭐죠? 사전을 보면 "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무슨 상관입니까? 일단 알 수 있는 것은 무척 재미 없고 지루한 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점이겠죠.

     

왜 재미가 없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쓸모가 없기 때문이죠.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머 코드가 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또 여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죠. 먹고 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보통 자연과학, 잘 쳐줘봐야 사회과학일테고, 철학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영화 한 편 더 보는 것이 재밌지 않나요? 인문학은 이제 쓸모가 없습니다. 먹고 살기에도, 즐기기에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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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있는 책은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여씨춘추"란 책입니다. 관우가 항시 곁에 두고 읽었다는 책인데요, 이 책을 살 때 서점 주인이 말하더라고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평생 처음 봤다고요.


서점 주인이 못봤을 정도면,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은 확실히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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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문학이 언제부터 이런 취급을 받게 된걸까요한 때는 철학이 '학문의 왕'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죠.


간단히 말하면 자연과학이 철학에서 분화되고, 그 능력이 절대적으로 증대한 20세기 이후로, 인문학 특히 철학은 쓸모 없는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이 철학인데, 실상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세상이 실제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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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가장 치욕적으로 여길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1922년 파리철학회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강의를 했답니다. 아시죠? 운동상태에 있는 물체의 시간은 천천히 간다. 여기에 대해서 프랑스 철학자인, 노벨문학상도 받았던 앙리루이 베르그송이 반격을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야 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요약하고 요약하면 "지속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주장을 했던 것이죠. 아인슈타인의 과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말이죠.


그리고, 결론적으로 대패하고 맙니다. 이 양반이 어떤 논리를 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건 딱 하나겠죠. 철학자 대장이 자기네 홈그라운드에서 물리학자에게 망신 당함. 그 정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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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스티븐 호킹이 그 제자인 토마스 에르호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돌아켜보면 어떨까요.


토마스가 최근에 쓴 책 시간의 기원에 따르면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게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정말로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토마스도 이렇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그건 철학적 문제 아닌가요?" 여기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말은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철학은 이미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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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건 골방에서나 말한 것이지, 2010년 책에서는 이렇게 쓰기까지 합니다 


"철학은 더 이상 과학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다. 전통적으로 철학이 탐구했던 문제들 예를 들어 세계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같은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철학에 의해서는 해명될 수 없다. 인류의 지식 탐구를 선도해 나가는 것은 결국 과학자이다"라고 말이죠. 요약하자면, 이것은 결국 과학자들의 철학자에 대한 항복 권고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요, 저는 과학자들, 특히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물리학자들의 말이 크게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선언문 또한, 그럼 철학이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끌어내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할 수 있겠지만, 너무 빈곤해 보입니다. 약간은 순환논법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일반적인 회사로 따지면, 주요 사업부를 모두 분사해내고 이제 홀딩스만 남은 철학은 이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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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인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씀을 드렸네요. 슬슬 이런 생각이 드실겁니다. 그럼 당신은 왜 앞에 나와 있고 우리는 왜 여기 앉아 있는거야?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한다는건지 말해준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다만, 우리 이것만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는거죠. 인문학은 더 이상 만능이 아닙니다. 마치 심리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컴퓨터공학과라고 해서 컴퓨터 조립을 잘하는 것은 아니듯이, 인문학 책 몇 권 읽는다고 해서, 세상이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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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실 인문학은 공부 해볼만한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세상은 객관적인 세상에 대하여 자연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세상이라고 하면, 하나가 빠집니다. 뭘까요? , 바로 나, 자신입니다


, 아주 먼 우주 저 너머에서는 블랙홀이 지금도 어떠한 행성을 집어 삼키고 있을 것입니다. 분명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 토성에서는 지구의 천 배가 넘게 강한 번개가 친다고 합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애초에, 이 지구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전쟁 중이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저에게는 밀가루 가격 외에는 큰 감흥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 저랑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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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고 하는 사람은 뭔가 이상합니다. 그리고 ''와 관계하고 있는 타인들도 마찬가지고요. 논리적이지 않고 감성적이며, 격정적이고, 한 시간 뒤면 후회할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고는 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술을 마시고 난 날 잠자리에 들면서, '아 좀 더 참아볼 수 있었을텐데'라고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이면, 저녁 7시부터 오늘은 무슨 술을 마실까 고민을 하고는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고등학생 때 시험 전날 도서관 대신 오락실을 가보신 경험은 없으신가요? 혹은 대학교 때 술김에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고백을 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없다 하더라도, 분명히 이성적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한 번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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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일까요


물로 경제학에서는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합니다. 자 생각해보죠. 여러분께서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사마시려 하는데, 5분 거리에서 똑같은 커피를 공짜로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커피를 사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5분 걸어가서 공짜 커피를 드시겠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5분 걸어가서 공짜 커피를 드실거라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근데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아파트를 계약하러 가셨습니다. 15억짜리 아파트인데 5분 걸어가서 계약을 하면 1499998500원에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걸어가시겠습니까? 아마 웃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만일 인간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면 같은 5분을 사용하여 1,500원의 이득을 보려 했을 것입니다. 전자의 5분과 후자의 5, 전자의 1,500원과 후자의 1,500원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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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물론 영리한 동물이지만 절대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인간은 긴 시간 동안 야생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진화란 항시 최선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리차드 도킨스의 책에서 읽었다고 생각되는데, 모든 진화는 '국부적 정상치'에서 머무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사실 인간의 척추는 해부학적으로 매우 불합리한 형태입니다. 한 개의 기둥으로 체중을 버텨야 한다니,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입니까. 건설팀의 누가 나서서 인간의 몸을 설계했어도 인간의 척추보다는 나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네발 짐승에서 진화하였고, 그 영향으로 하나의 척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엑스자 등뼈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생존에 불리한 진화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진화는 그나마 나은 상황에서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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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어떨까요? 인간의 정신, 이성은 항시 최선의 방향을 향해 진화하고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남성은 항시 잠재적 배우자의 성적 어필을 과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나타나서 수백만년 동안 진화했다면, 하다못해 내 앞의 여자가 지금 나랑 자고 싶은지 정도는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성적 어필을 정확히 이해한 남자보다 과대해석하여 밀어부친 남자가 더 2세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 착각은 대를 이어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죠


조금 재미는 없겠지만, 약간 학술적으로 영역을 넓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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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열'이나 '지위'에 연연하는 면이 강합니다. 이게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성일까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동물 세계에서 우두머리 다툼의 중요성은 모두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근연종인 침팬지도 마찬가지고요. 세계를 사회의 내부와 외부로 구분하고, 그 외부에서 온 인원을 차별하는 부족의식은 어떨까요?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특성을 숨기는 "그림자 인격"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정신병리학적 문제들은요? 이런게 모두 인간의 특성, 이성의 결과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자연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들이고, 이 문제는 인간의 수백만년 동안의 진화의 결과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면면에 타고 흐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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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인간은 괴상한 존재입니다. 이성만으로는 절대 이해하기 힘들어요


근데 문제가 하나 있네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남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괴상한 존재와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지만 명심하세요. 여러분의 가족, 직장동료,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더욱 끔찍한 것을 하나 더 알려드리죠. 큰 것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부터, 작은 것으로는 10조분의 1cm인 쿼크입자까지 이 모든 객관적인 세상을 아우르는 자연과학이, 하필 이 끔찍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힘을 크게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해하려는 인간이 만명, 십만명 단위의 거대한 군집일 때는 분석이 가능한가 싶다가도, 가장 중요한 것인 내가 지금 처한 상황,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려 하니, 안되더라는겁니다


철근과 콘크리트의 팽창계수는 언제라도 공식과 함께 답이 나오지만, 다른 아가씨와 식사하다 깻잎이 붙어 젓가락으로 떼줬더니 와이프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과학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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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우리를 괴롭고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날 시기하여, 날 흠집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편하자고 날 이용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는 항상 상대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다가 불시에 당한다는 점이죠


그런 사람들은 종종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서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화를 내고 항변할 수야 있겠죠.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 뿐입니다. 타인만 저에게 그럴까요? 이런 혼란이나 무력감을 자신의 행동 때문에 느낀 적은 없을까요? 예를 들어 가족, 친구, 직장동료에게 기분 나쁜 말을 불쑥 내뱉은 적은 없나요? 태어나서 한 번도 무고한 타인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으신가요? 그럴 때 우리는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겠죠. "내가 미쳤지. 대체 뭐에 씌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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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쉬운 대답도 있습니다. "그 놈이 나쁜 놈이라서 그래. 완전 사이코패스였어" "와 나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기를 위로해봤자, 이것은 약속 드려도 좋습니다. 그 사이코패스인 것 같은 그 사람은 만날 마지막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같은 패턴은 계속 반복될 겁니다. 그럼 이렇게 여쭤봐도 좋겠네요. 그런 식으로 타인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피상적으로 살아간다. 타인이나 나 자신에 대해서 단순하게 살아간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기 편한 이야기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게 과연 좋은 삶일까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표면적인 이유 아래로 다이빙하여 그 깊은 아래를 볼 수 있다면 어떨가요?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진짜 뿌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왜 누군가는 나를 시기하여 망치지 못해 안달할까요? 왜 누군가는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자신을 틀릴 리 없다고 자신만만할까요? 왜 어떤 사람은 갑자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며 시커먼 속내를 드러낼까요? 만약 내 마음의, 다른 사람들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면 어떨가요? 그래서 만일 나에게 큰 상처를 줄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거나, 내 커리어를 망칠 사람을 멀리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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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인문학이 등장합니다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인문학을 뭐라고 했었죠?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라고 했군요. 이거라면 우리에게 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과거의 비슷한 사례가 많이 있었으니, 이를 참고하여 성공 사례와 비슷한 행동을 취하면 된다


그럴듯 합니다. 아주 흔하게도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말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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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코주의자 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수많은 맥락들이 얽혀있는 총체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흔히 배수진을 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시초는 한나라 시대의 한신이 조나라와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훈련도가 낮은 병사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일부러 강을 등지고 진을 쳤고,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오 그렇다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배수진을 치면 되는걸까요? 임진왜란의 탄금대 전투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명장이라 평가받던 신립은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칩니다. 그리고 한 번에 전 병사 16천명을 잃고, 본인도 전사했으며, 조선 왕조는 몽진을 결정합니다. 야 그럼 배수진은 나쁜거야? 제가 생각하는 배수진의 최고봉은 삼국지에서 나옵니다. 장비가 장판교에서 20여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조조군을 막은 장면이 나오죠? 이거 정사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 배수진은 그대로인데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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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흔히들 모택동이 농촌을 중심으로 한 혁명 활동으로 중국 공산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것에 감명을 받고, 이 전략을 그대로 채택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1970년대 일본 대학생 공산당원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에 쫓기던 대학생들이 시골에 들어가 농촌을 중심으로 공산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순진한 발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근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토건국가'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일본은 자민당이 토건사업을 일으켜 돈을 지방에 뿌리고, 그 혜택을 지방민들이 입으면, 그 대가를 표로 돌려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농촌이 자민당 지지의 중심 세력 중 하나였는데, 1930~40년대 중국에서 통했던 전략을 맥락 없이 가져다 썼으니 성공할 리가 없었죠. 나중에 혹시 시간 되신다면 '아사마 산장 사건'이라고 검색해 보시면 재미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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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만일 이렇다면 인문학으로 뭘 알 수 있다는거죠? 인문학에서 명확한 교훈을 끌어낼 수 없다면,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는 한 소설의 도입부를 인용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입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인류 최초의 역사서가 시작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기원전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수많은 사건들과, 인간 군상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다른 이를 해치려 하기도 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며, 인생을 망치기도 합니다. 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유형도 상당히 많지요. 그 유형을 하나하나 건건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아까 말했던, 그 괴상한 존재인 사람이 여러분을 망치려 하는 그러한 유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대처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인문학을 내 인생의 정답 노트가 아닌, 오답 노트로 생각한다면 좀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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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풀어서 이야기해 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영화 변호인을 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서 임시완이 읽다가 불온서적이라고 해서 잡혀간 책이 뭐였죠?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2년 전 이사하면서 책 정리할 때, 실수로 버린 책 중 하나인데 정말로 이 책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쓰립니다


하여간, 이 책에서 에드워드 카는 말합니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의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 없는 존재이다.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역사는 결국 역사가의 해석을 의미하며,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 


, 흔하게들 여러분들이 인생에서 아까 말한 이상한 인간들을 만났을 때 스스로 말하고는 합니다. "잊자. 새롭게 시작하자.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런 말은 틀린 것입니다. 지난 역사 안에 미래가 담겨 있고, 지금 가진 인간관계 안에 미래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는 끊임 없이 떠올리고 반추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만이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은 것은 그저 떠내려갈 뿐이지요. 주체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국가의, 세계에 대한 역사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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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여기서 제가 뭔가 약을 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초의 역사서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사가 쓰여진 것이 약 기원전 400년 정도입니다. 그 이후로 2400년 동안 역사서가 얼마나 많이 집필되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역사서들의 시각은 또 얼마나 많이 다를까요. 이걸 뭘 기준으로 찾아서 읽고 해석해서 내 인생에 대입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제 경우에도 출퇴근 편도 2시간씩 총 4시간, 근무시간 9시간, 취침시간 6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시간은 거의 남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 한 페이지에 3분을 잡고 책을 읽는데, 하루 1시간 반씩 30페이지씩 읽는다 하더라도, 600~700페이지 양장본 책 한권 있는데 한 달이 걸립니다. 자 이쯤에서 여러분들 마음에는 이런 의문이 드실겁니다. 상식적으로, 책만 읽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조금 삶에 대한 지혜를 얻겠다고 인문학 서적을 읽고 있는게 맞는걸까?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게다가 역사학이고, 철학이고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다 다르던데. 같은 행복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제러미 밴담은 공리주의라 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 하고, 토마스 칼라일은 공리주의를 일컬어 인간의 정신을 증기기관에 종속시킨 바보 같은 이론이라고 하던데? 이걸 일일히 공부한다는 것은 회사 때려치고 파고 들어도 모자를 것 같은데?

     

이야 들켰네요. 역시 감사인의 인터뷰는 매섭습니다. 빠져 나갈 길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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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답변하는 것은 사실, 저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에게 예를 들어, "자 서양 철학사을 공부합시다. 철학을 공부하려면 순서대로 공부하는게 제일 좋겠지요? 플라톤은 세상이 불, , 공기,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오늘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거죠. 요즘 초등학생도 안 믿을 이야기를 여러분께 한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철학 진짜 쓸모 없네". 


다만, 이 한 마디는 꼭 가슴에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엠마누엘 칸트가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쓴 내용입니다. 물론 저도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때려치운 책이니, 굳이 읽어보시라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만 외워놔도 어딘가에서 아는 척 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겁니다. 이해하기 편하게 말한다면, "원리가 없는 방법론은 무의미하고 방법론 없는 원리는 공허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감사보고서를 적을 때도 항상 유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여러분들이 살아가시면서 흔들림에 힘드신 적이 있으셨다면,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시다 생각하신 적이 있으시다면 인문학의 공부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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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 상으로는 마무리하는 분위기인데요, 사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 제가 "이제부터 자유로이 명상 시간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좋으시겠지만, 제가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인문학을 공부하셔야 할지는 제가 말씀을 못드려도, 어떤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지는 한 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제 독서의 폭이 좁고, 특히 이사 다니면서 버린 책들도 많아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책들도 꽤 있겠지만, 그래도 쉽고 편하게 읽으실 수 있는 책들로 최대한 준비해봤습니다. 여기서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는 일부러 뺐는데요, 왜냐하면 자기계발서는 원전을 인용할 때,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 인문학을 근간으로 해서는 추천드리기가 어려웠고, 게다가 같은 이유로 이런 쪽 책을 잘 읽지 않아 잘 모르기 떄문입니다.

     

첫번째로 추천 드리고 싶은 책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입니다. 저는 무언가 새롭게 공부하고 싶을 때는 일본책으로 먼저 분위기를 따지는 편인데요, 일본은 중간필자가 잘 되어 있고, 책이 일본 특유의 정리가 깔끔하고 짧게 되어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이 책은 세계 1위 경영 인사 컨설팅 기업인 콘페리헤이 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인 야마구치 슈가 쓴 책인데요, 철학과 비즈니스를 접목시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솔루션으로서의 철학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난해하거나 고리타분한 이야기 하나 없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인 철학 서적이며, 그러면서도 내용을 쉽게 풀어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책입니다.

     

두번째로 추천 드리고 싶은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니시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기가 없거나, 가난하거나, 좌절하거나, 부적절한 존재이거나, 상심했거나, 어려움에 처하거나, 이런 상황 중 하나는 겪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줄 수 있는 책입니다. 역시 쉽고 편한 문체로 쓰여져 있어 읽기 편하고요,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위로가 되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추천드리는 책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드렸던 말씀을 좀 정정해야겠네요.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은 읽을 떄마다 난해하고 어려워요.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드리는 것은 감사인의 입장에서 볼 때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악은 나쁜 마음을 먹고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 범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느낀 것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녀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그냥 보통의 사람이었으며,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어리석거나 악한 사람이 아니라, 사유의 불능임을 알았고, 자신의 의무가 사실은 전쟁 범죄였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저희도 감사를 하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악해서 부정을 저지르는게 아니라, 이게 악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의무인양 꾸준하고 성실하게 잘못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사형이 언도되기 까지, 아이히만은 자신이 전쟁범죄를 저질러서 죽는 것이 아니라, 패전국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감사를 하면서 나쁜 사람을 내보내는게 아니라, 사유 불능자를 내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한 생각에 영향을 많이 준 책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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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략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고요. 원래 이 시점이면 Q&A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겠죠. 근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질문 시간을 가지면 앞에 계신 여러분들도 힘들거니와, 아는 것 없이 앞에서 질문을 받아야 하는 저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일단 저희 팀에서 틈틈히 저에게 물어본 것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먼저 답변을 드릴까 합니다.

     

먼저 C 차장이 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나쁜거에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굉장히 멘붕이 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단 저는 98학번이고, 학교 내에서 공산주의, 운동권을 공부하던 세대는 아닙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잘 아는 세대는 아니죠. 오히려 저의 편견이 다수 들어간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일단 공산주의란 무엇이냐는 답변이 먼저 나와야 할테고, 그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해야 할테니까요. 근데 말이죠, 공산주의란게 뭐죠


일단 말은 간단하죠.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통하여 노동자들의 자기해방을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국가와 지배와 피지배를 나누는 사회적 계급이 소멸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이죠. 근데 이게 말로는 간단한데, 이걸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이 문제란 말이죠. 일단 C 차장이 이걸 물어본게, 제가 공산주의자들의 평전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 때문일텐데, 공산주의자들이 일대기를 읽어보다 보면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며칠에 걸쳐서 토론을 했다”, “사상투쟁을 했다”, “자아비판을 했다”. 


요는,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라는게 다 달랐다는 말이죠. 공산주의가 촉발되는 자본주의의 숙성 정도는 어느 정도이냐, 하다못해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농업국가,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냐,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면 그 속도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느냐. 이런 입장에 따라서 누군가는 좌파적 모험주의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우파적 보신주의자가 되었단 말이죠. 예를 들어, 모택동 평전을 보면 모택동 이전에 공산당 주도권을 잡았던 리리싼이란 인물은 대도시를 거점으로 한 폭동 노선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마오쩌둥은 농촌을 거점으로 한 농촌혁명주의자였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리리싼은 실패 후 실각하고, 그 이후 주도권은 모택동이 잡게 되죠. 그 이후로 리리싼은 좌파주의자로 모택동에게 호되게 당합니다. 공산주의자에도 좌파 우파가 있다는게 놀랍지만 하여간 그랬어요. 근데 나중에 등소평이 집단농장 정책을 추진할 때는, 떨어지는 생산성 때문에 할당량 이상의 생산물을 사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가 모택동에게 우파주의자로 또 공격을 당합니다. 이 때문에 아주 호되게 또 자아비판을 해야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공산주의란 말은 있지만, 그게 뭔지, 그리고 어떻게 달성할지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도자가 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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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산주의란 것의 실체가 있다고 하죠. 그렇게 놓고 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경제계획 수립 및 실행을 맡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트로츠키는 소련의 공산주의는 일종의 국가 자본주의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 어느정도 그 평가에 동의하고요. 근데 문제는 국가가 모든 결정을 했기 떄문에 그 책임은 국가에 귀속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분노를 할 때 그 대상은 국가가 되는 것이고요. 국가가 그 공격에 직면했을 때, 공산주의 국가는, 특히 그 특성상 공산주의 엘리트 관료가 자리를 차지한 권위주의적 국가는 어떻게 반응을 하게 될까 생각을 해봤을 때, 그 반응은 국가의 인민에 대한 공격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엘리트 체제라 해서 모든 것을 완벽히 처리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즉 공산주의의 수립은 인민에 대한 국가의 억압 및 폭력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의 운명을 생각하면요,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티라이 간의 모순이 극에 달하면 폭력적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가 탄생한다고 예견했습니다. 근데, 그건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의 정치적 힘이 강력할 때나 가능한 생각 아닐까요? 실은 AI의 시대가 다가온다고 언론이 난리쳤을 때, “와 이건 공산주의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면서 자본론 요약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결론은 공산주의 국가는 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제러미 리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을 보면, 하위 노동자의 업무가 더더욱 기계로 대체되며, 사실상 노동자 계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까지 예상했습니다. 이게 1995년 책인데, 지금 와서 보면 하위 노동자 뿐 아니라 이른바 지식 노동자부터 대체되고 말 것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원자화된 시대에 힘을 잃어버린 노동자 계층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저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 결론은 공산주의란, 그 실체도 불분명한데, 설령 실체화된다 하더라도 유지되기 어렵고, 이미 실체화 되기에는 그 생명력을 잃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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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K차장의 질문인데요. 이 질문은 제 평생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인 것 같네요. "성선설과 성악설 어느 쪽이 맞는 것 같으냐" 이건 정말 장난 아니고 한 해에 한 번은 꼬박 듣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쯤은 궁금하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근데 반대로 여쭤볼게요. 맹자는 기원전 300년 정도의 사람입니다. 전국시대죠. 전국시대라니, 이름만 들어도 벌써 세상이 혼란스러울 것 같지 않나요? 근데 맹자가 바보도 아니고, 그러한 세상에서 "아니에요 여러분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랍니다" 이런 말을 했을까요


맹자가 위나라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이 이렇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어르신께서 천리길을 마다치 않고 오셨으니, 역시 내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여기에 맹자가 답한 말이 "왕은 하필 이로움만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였습니다. 이 대답이 그 후 수많은 유학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여기서 나왔던 것이죠. 윗사람이 이로움만을 탐하면, 아래도 이로움만을 탐할텐데 그럼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위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장하는 것이 왕도정치이고요


왕도정치란 백성의 안정과 인간다운 삶을 우선으로 하고, 그 실현이 강제가 아닌 통치자의 인격과 덕에 감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왕이 어떻게 답변하겠습니까? "~ 그건 내가 하기에는 좀 힘들겠는데요." 이렇게 답하지 않았겠어요? 이거에 대한 맹자의 답변이 바로 성선설이라고 보면 됩니다. 선한 행위란 선함을 배우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람이 외부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마음을 키워 나가면, 그리고 그 감정에서 출발하여야 자발적으로 선함을 행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왕들이 딱히 대답을 못했던 것이죠


반대로 순자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배가 고프면 울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떼를 씁니다. 그게 아이잖아요. 이런 것은 누가 봐도 정돈된 상태가 아니라 혼란한 상태입니다. 순자가 말한 악은 나쁘다는 뜻보다는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면이 더 강합니다. 그럼 이런 아이를 그냥 놔두나요? 아니죠. 가르치고, 사회에 맞게 키워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교육의 중요성을 논한 것이 바로 순자의 성악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하게 되면 설령 사람이 착해지지는 않더라도 착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위선'이라는 개념까지는 갈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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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요즘 개념으로 이 질문을 이해해보면요, “사람을 교육시키는데 대형 학원 같은데 넣어서 같은 공부를 시켜서 사람들을 착하게 만드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한 명 한 명 붙잡아 그 착한 마음을 발현시키는게 좋을까요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이 되는 것 같네요. 중요한건 사람이 어떠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양성해야 하느냐, 이것인 것 같습니다


,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요,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을 일정한 교육기관에서 교육하여, 모든 인원들의 교육 하한선을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최근 AI 등 기술의 발전을 보면,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결국 소수의 엘리트이고, 이들 엘리트 들의 능력이 시대의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른바 화이트 테크 브로의 신화에 매몰된 것인가란 의문이 들 때도 있으나, 일단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시민의 하한선만큼이나 엘리트 들의 상한선 관리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고, 또한 이들 엘리트 들이 어떠한 세상을 만들기를 꿈꾸는가라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 아닐까요? 이를 본다면 엘리트 후보군을 위한, 성선설에 입각한 교육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 그럼 이제 제가 준비한 말씀은 모두 드린 것 같습니다. 아마 인문학에 대해 관심이 좀 있으셨던 분들은, “아직 배움이 얕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텐데, 이에 대해서는 다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식적인 Q&A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제가 즉석으로 드리는 답변은 오히려 여러분의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대신, 여러분께서 나중에라도 뭔가 여쭤보신다면 곰곰히 고민하여 나름의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아까 C 차장, K 차장의 질문에 제가 답변을 드린 것 처럼 말이죠.,

     

오늘 드린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조금더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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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5 12:49
수정 아이콘
전반부는 사실 좀 뻔하다면 뻔한 내용인데 작성자님의 해석이 들어간 사전 질문 응답 코너는 아주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3:04
수정 아이콘
사실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 그곳이었는데,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전기쥐
25/10/15 12: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과학 없는 철학은 공허하고 철학 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다.

철학이라는 걸 어떤 현상 체계에 대한 메타인지 체계라고 봤을때, 과학철학이라는 건 과학에 대한 메타인지죠. 그래서 철학은 과학에도 필요합니다.

다만 과학적 내용을 인지한 채로 철학을 해야 하는 시대죠.
솔로몬의악몽
25/10/15 13:05
수정 아이콘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과학 관련 서적들도 찾아서 읽고는 하는데, 워낙 아는 바가 없어 머리에 들어오는 것도 없네요 크크
25/10/15 13:06
수정 아이콘
과학철학쪽은 유튜브로 보세요. 과학/기술은 영상부터 보는게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더라고요
전기쥐
25/10/15 13:07
수정 아이콘
궤도의 안될과학이나 과학을보다만 봐도 유익하더군요
솔로몬의악몽
25/10/15 13:09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부끄럽지만 과학 쪽은 무엇을 검색해서 봐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어서 유튜브를 제대로 활용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꼭 찾아서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기쥐
25/10/15 13:12
수정 아이콘
과학을 보다BODA 채널 추천합니다. 이미 보셨을수도 있겠지만.
솔로몬의악몽
25/10/15 13:13
수정 아이콘
아뇨 처음 들어보는 채널입니다. 꼭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기쥐
25/10/15 13:1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도 소통하는 과학철학 교수님도 있고 평소에 굉장히 관심많은 주제였거든요..
다크템플러
25/10/15 14:02
수정 아이콘
과학'철학'의 경우에는 국내 대중서적중엔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이게 제일 낫다고 봅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4:1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겠습니다. ^^
전기쥐
25/10/15 14:15
수정 아이콘
크리스토프 코흐 - 나는 곧 세계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394527

이는 이 책의 제목에도 밝히듯 “나는 곧 세계”로서, 마음에 남겨진 자아의 중력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신경과학적으로 고찰한다.

혹시 의식에 대한 과학철학적 책에 관심 있으신가요? 조심스럽게 소개합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4:23
수정 아이콘
이건 다음 책으로 장바구니 넣어놓겠습니다 크크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합니다 다만 어느 책이 좋고 어떤지를 잘 모를 뿐이죠 민음사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책 세네권 정도만 사서 읽어본 정도입니다 크크
퍼펙트게임
25/10/15 13:07
수정 아이콘
추천박았습니다.

공학으로 밥먹고 살지만 결국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일을 하는건 결국 사람이니까
솔로몬의악몽
25/10/15 13:11
수정 아이콘
회사에서 지위가 올라갈 수록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임원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이크
25/10/15 13:08
수정 아이콘
감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태클 하나 걸자면 연의의 관우가 열독했던건 춘추의 주석서인 춘추좌씨전 아니었던가요 흐흐
솔로몬의악몽
25/10/15 13: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방금 이 글의 신뢰도가 10정도 떨어졌군요 크크크크크 저 중학교 때부터 삼국지를 읽고, 관우를 가장 좋아했는데 저 부분을 만들 때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어요 크크크크 심지어 저 책을 산 이유도 관우가 좋아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산거였는데!!!! 방금 깨달았습니다 크크크크크 읽으면서도 관우가 왜 제왕학을 열독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두꺼비
25/10/15 13:11
수정 아이콘
판타지 소설의 용사들처럼, 세상이 어지러울 때 철학자들은 빛나는 법이죠.
하지만 일단 난세가 평정되면, 철학자는 사람들에게 별 쓸모가 없습니다. 괜히 진시황이 땅에 묻은 게 아니겠지요.
어쩌면 그동안 세상이 나름대로 평화로워서 철학자들이 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3:14
수정 아이콘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문학 공부가 쓸모 있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와이프가 왜 맨날 돈도 안되는 책 읽고 있냐며 핀잔 주거든요 크크크크 (그래도 제가 사달라는 책은 잘 사줍니다)
25/10/15 13:18
수정 아이콘
동양이 서양에 밀린 이유가 과학기술 뿐만은 아니죠
처음에 이걸 인정할 수 없었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우린 기술문명은 딸려도 정신문명은 안 딸린다며 동도서기니 뭐니 했던거지만 결국 이길은 아닌걸 다들 알게되어 폐기한거고 지금 세계의 사고방식과 체제의 틀을 유지하는 건 [서양인들의 철학]이 본류가 된 것이고...
솔로몬의악몽
25/10/15 13:30
수정 아이콘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어느 정도는 뻗대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유교철학과 출신이라서요 크크크크) 다만, 지금 이 시대에 결국 동양철학은 세상의 조미료 같은 위치라 생각하기는 합니다.
25/10/15 13:39
수정 아이콘
중국 쪽도 사상적/제도적으로 영향을 준 것들이 있고 한중일대는 서양처럼 아주 발달한 국가가 되는데 성공했으면서도 조금 다른 양상이 보여지니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크게 봐서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쓰면 길게 늘어질까봐 생략하고 대충 쓰긴 했습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3:41
수정 아이콘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
일반상대성이론
25/10/15 13:1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인슈타인이야말로 최후의 자연철학자가 아닐까 싶네요.
일반상대성이론은 정말 그당시 기준으로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딱하나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것만으로 중력이란 것이 질량-에너지의 분포에 의한 시공간의 왜곡이 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 사변이었으니까요 크크
전기쥐
25/10/15 13:21
수정 아이콘
닉부터 신뢰감이 100%.. 정말 희대의 천재죠. 특수상대론, 일반상대론,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솔로몬의악몽
25/10/15 13:34
수정 아이콘
아인슈타인은 아니고 파인만 평전을 구매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천재들은 뭔가 생각하거나 눈에 보이는게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읽으면서도 머리에서 따라가지를 못하겠더군요.
Wiesengrund
25/10/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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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연구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된 이름으로 꼽은 게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었죠.

"당신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사상의 흐름[실증주의]은 내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E. 마흐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데이비드 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는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 직전에 흄의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열정적으로 연구하며 깊은 감탄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철학적 연구가 없었다면 나는 그 해답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You have also correctly seen that this trend of thought [positivism] was of great influence on my efforts, and specifically E. Mach and still much more Hume, whose treatise on understanding I studied with fervor and admiration shortly before the discovery of the theory of relativity. It is very well possible that without these philosophical studies I would not have arrived at the solution."

-아인슈타인, 모리츠 슐리크에게 보내는 편지
은때까치
25/10/15 13:30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았습니다. 뇌과학 전공자로서 항상 철학에도 어느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오래된 철학 아이디어들은 현대뇌과학과 꽤 잘 맞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가령 부처님의 prediction error 이론이라던가) 간만에 제대로 된 인문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솔로몬의악몽
25/10/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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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글을 올린 것이 헛된 일은 아닌 것 같은 마음입니다. 저도 과학책 열심히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
25/10/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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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점심 때 행사 하나 끝내고 돌아와서 피지알 들어왔다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일 마치고 한 번 더 정독하겠습니다.
노고가 많이 들어간 파일을 잔뜩 올려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3:43
수정 아이콘
어휴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issNothing
25/10/15 14:02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결국에 드는 생각이, 기술은 문명과 생활을 바꾸지만, 결국엔 사람과 사람이 모든걸 이끌어 가기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가면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느낍니다.
아주 뛰어난 과학자들이나 기술자들도 가면 갈수록 정치감각 같은게 없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힘든것처럼 말이죠.
영화 오펜하이머가 마치 정치싸움처럼 보이는게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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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합니다. 결국 일은 인간이 인간과 하는 것이더라고요. 나이 먹으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 그것입니다. 후임들에게도 시간 있을 때 가벼운 책을 좀 읽어보라고 말은 해주네요 (듣는 후임은 한 명도 없지만요 ㅠㅠ)
25/10/15 15:15
수정 아이콘
요즘 과학과 AI 시대에 인문학과 철학의 역할과 중요성 재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자료와 글 감사합니다. 올해 봤던 책, 강의, 세미나 등 정보글 중에 이 글이 저에게는 탑입니다.
제가 꽂혀 있는 키워드 중에 '메타인지'가 있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철학, 인문학과 밀접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5:30
수정 아이콘
어휴 졸문에 너무나도 과찬이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속역노화
25/10/15 16:25
수정 아이콘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정신도 점점 설명 가능해지고 있죠. 근데 까고보니 부처님 말에서 벗어난 게 없네? 띠용.
잘봤습니다
솔로몬의악몽
25/10/15 16:51
수정 아이콘
많은 분들께서 뇌과학과 부처님 말씀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네요. 너무나도 흥미가 생겨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원숭이손
25/10/15 16:34
수정 아이콘
이 책을 읽으면 이게 맞는 말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저게 맞는 말 같고... 전데요
다음 주 강의 기대하겠습니다!! 아무튼 기대
솔로몬의악몽
25/10/15 16:51
수정 아이콘
끼이에에에에엑 10년 공부해서 이런거 한 번 썼으면, 주기상 2035년이 적당하지 않을까요...ㅠㅠ
이그나티우스
+ 25/10/15 20:08
수정 아이콘
인문학의 가치(비판적 독해, 창의적 사고, 리더쉽 등)는 사실 조직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중요하고, 반면에 이과적 능력(계산능력, 연역적 사고능력, 특정 기술 도메인에 관한 지식 등)은 취업이나 실무레벨 단계에서 중요하다가 갈수록 중요도도 낮아지고 본인의 엣지도 무뎌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취준-사회 초년생 단계에서는 이과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쭉쭉 잘 나갈 수밖에 없고 사회도 걔네들을 우대하는 거죠. 하지만 생존자들을 기준으로 보면 리더쉽을 발휘하는 레벨이 되면 그 격차는 점점 좁혀지다가 결국에는 개인의 순수 포텐셜로 승부가 나게 됩니다. (물론 의사나 순수 기술직 같은 특수한 영역은 다르겠지만...)

문제는 사회적으로 "젊고 이과적 능력이 필요한 인재"가 집중적으로 필요하다보니 걔네들에게 푸쉬를 줄 수밖에 없는거고, 그 반대급부로 인문학은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문제는 노동수요-노동공급을 정당화하는 헤게모니 담론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성장을 위해 연역적인 이과적 사고와 비판적, 귀납적인 문과적 사고를 모두 장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벌칸족처럼 모든 지식을 다 논리적, 연역적으로 추론 가능하다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여전히 인문학적 직관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다 봅니다. 보통 문과 지식은 얄팍해서 책한권만 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삼국지연의나 난중일기 같은 흔하게 읽히는 고전을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제대로" 독해하는 사람은 독자의 5%도 되지 않을 겁니다. 인문학도 과학처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야이고,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과적 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내용과는 별로 관련이 없지만 평소 관심있는 주제여서 좀 길게 댓글을 적어보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임전즉퇴
+ 25/10/15 21:26
수정 아이콘
귀한 노트가 이렇게라도 빛을 보는군요.
임의요약은 아니고 그냥 예전 생각으로, 인문학은 맥락 찾기가 아닌가 합니다. 맥락을 수학으로 통일해서, 수식이 중하지 썰로 푸는 건 큰 의미도 없을수록 과학 ↔ 각자 체험이 맥락이라 결국 자신조차 시간지나면 잊을 개똥철학. 그 사이에서 가닥을 잡아 지성 간 중재역을 하는 거죠. 베르그송 선생은 스스로 그걸 했어야 하는데 차라리 아인슈타인의 반응이 맞았습니다. 이거야말로 맥락을 찾아야겠죠. 아니면 아인슈타인 친구(?) 말마따나, 역대 학자와 문헌이라는 우표의 컬렉션 꾸미기만 남죠.
혜왕vs맹자 얘기도 맥락이 크게 생략됐을 겁니다. 사실 혜왕 말은 당연한 거고 맹자가 꼬아서 배로 되받는 게 사회성 안 좋아 보이는데(유교사이다이긴 함) 정작 중용이 아닌 것 같은 일화를 맨 첫장 대표썰로 올렸고 크크.. 아마 분위기라는 게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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