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생
스파르타는 군국주의 국가였고, 모든 스파르타인 소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전사의 운명을 지녔습니다. 국가를 위해 태어났고, 국가를 위해 죽어야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소년들은 태어난 즉시 목욕을 하게 됩니다. 목욕물은 물이 아니라 포도주였습니다. 이 와인 목욕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게루시아Gerousia라고 불리는 장로회에 불려져 검사를 받았는데, 이 곳에서 만일 "허약하거나 기형"이라고 판별된 경우 그 즉시 타이게토스산 골짜기에 던져졌습니다.
이 원시적 형태의 우생학은 사실 스파르타만의 독특한 풍습은 아니었으며, 수렵채집인 시절부터 이루어지던 인류의 유구한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고학 증거들은 타이게토스산 골짜기에서 영아의 유해 대신 성인의 유해, 특히 범죄자로 추정되는 자들의 유해만을 발굴하고 있기에 이 풍습은 적어도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사례를 따르자면, 그냥 주변 들판에 살포시 놓여졌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얼어죽거나 굶어죽게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주변을 지나가던 외국인에 의해 거둬졌을지도 모릅니다.
2. 아고게
선별 검사를 통과한 스파르타의 아이들은 일곱살이 되기 전까지 엄격한 공포 면역 훈련을 받으며 길들여지다가 아고게(Agoge) 과정에 돌입했습니다. 이 과정은 21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것인데, 매우 폭력적이고 끔찍하여 중간에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아고게는 소년기(7-12세), 청소년기(12-20), 청년기(20-)의 세 연령대로 나뉘었습니다.
소년들은 청년 감독자 선배의 지휘하에 공동 식당에서 똑같은 양의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이 음식은 딱 배부르기 전의 적당히 부족한 정도로 제공되었습니다. 소년기 단계에서부터 스파르타 소년들은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을 했는데, 궁핍한 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수렵채집 기술을 배웠고, 극기 훈련을 했으며(이 과정에서는 타인의 음식을 훔치는 것도 용납됐는데, 다만 걸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맨손 격투를 배웠습니다. 이 외에도 읽고 쓰는 법, 음악, 그리고 춤을 공부했는데, 질문에 간결하고 재치있게 답하지 못하면 별도의 처벌이 있었습니다.
소년들에게는 작은 적의(赤衣) 한 벌이 제공되는 의복의 전부였고, 살이 찌면 몸을 전부 가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뚱뚱하거나 약한 소년들은 극심하게 차별받았고, 상급자들은 종종 약한 하급자들끼리 싸움을 붙여 그 광경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항상 부족한 식사와 고된 훈련은 전투 중 보급이 열악한 상황에 놓였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습니다.
20세가 되면 청년은 각각 열 다섯으로 구성된 식사 모임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모든 스파르타인들은 이러한 그룹의 일원이 되어야만 했는데, 이 자그마한 공동체에서 청년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상대방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공직 선출 자격이 없었는데, 나이많고 성공한 전사들이 어리고 경험없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품는 것이 자유 시민으로 가는 덕목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 당대부터 여러 학자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플루타르코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크세노폰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스파르타 남성들은 보통 결혼을 스무살 전후로 했는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군 복무를 해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역을 한 뒤에도 60세까지는 예비군으로 남아있어야 했었습니다.
3. 여성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다른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춤, 체조, 창던지기 훈련을 받았지만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몸을 튼튼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몸을 튼튼하게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건강하고 적을 잘 죽이는 미래의 전사들을 최대한 많이 낳는 것이었습니다.
"왜 스파르타의 여자들만이 남자를 다스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스파르타의 왕비 고르고가 "남자를 낳는 자들이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도덕론, 플루타르코스.)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그 어느 여타 고대 그리스 정치체들의 여성들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스파르트 외부인들이 그녀들을 두고 문란하고 통제적이라 비난한데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녀들은 합법적으로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었으며 다른 그리스 여자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년들과 달리 어릴 때 '선별'되는 것으로부터도 더 자유로웠습니다.
여자가 읽고 쓸 줄 알았다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동료 남성 시민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고, 플라톤은 스파르타 여성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소녀들은 군사 훈련을 하지 않았고, 고영양의 식단을 먹고, 달리기, 원반 던지기와 창 던지기, 그리고 레슬링과 말타기 등의 운동을 하며 길러졌습니다. 결혼은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서야 이루어졌는데, 고대 사회치고는 늦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늦은 결혼은 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몸의 대부분을 가리고 항상 집 안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아테네 여성들과 다르게, 스파르타 여성들은 옆이 트인 페플로스를 입고 전차를 몰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운동할 때 나체가 되었던 것은 소년들뿐 아니라 소녀들도 마찬가지였고, 알몸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알몸체육대회, 짐노페디아에도 참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이 가장 경악해할만한 관습은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번식 행위는 가장 건강한 남녀에 의해 주관되어야한다는 그들의 신념 하에, 나이든 남성들은 젊고 건강한 남성들이 자신의 아내를 임신시키도록 허용해야 했습니다. 또한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젊고 건강한 남성들 또한 이전에 아이를 건강하게 잘 낳았던 다른 남성의 아내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 중 사망이 빈번했고, '선별' 과정이 강도 높았기에, 아이는 계속해서 낳아져야만 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스파르타의 결혼 첫날밤 관습에는 신부의 머리를 빡빡 깎아서 마치 '소년'처럼 위장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신랑은 과음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그녀를 '소년'으로 착각한 것처럼 행동해야합니다. 이것은 아고게 과정에서 만연했던 소년애 풍습을 암시합니다.
4. 음식
끔찍하게도 스파르타인들은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습니다. 포도주를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은 오로지 태어난 직후에 목욕할 때만 허용됐고, 과음은 나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식사와 함께 포도주 한 잔을 곁들이는 것 정도만이 가능한 음주의 한계선이었습니다. 대신 스파르타인들은 노예들에게 술을 강제로 먹여 만취하게 하고 조롱하며 서로 싸움을 붙이고는 소년들로 하여금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의 식단은 주로 보리, 포도주, 치즈, 무화과, 그리고 여타 잡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식량은 대체로 노예(헤일로타이)들에 의해 시민 농경지(kleros)에서 경작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이렇게 수확한 것의 일부를 공동체에 기부해야했고, 다시 기부된 모든 식량은 중앙에서 재분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