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10/13 19:05:35
Name 식별
Subject [일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병대장의 최후
 1390년,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대한 두 세력, 피렌체와 밀라노가 맞붙었습니다. 이 전쟁은 말하자면 이탈리아 내에서의 세계대전에 비견될 수 있었습니다.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은 곤차가 가문, 에스텐세 가문, 말라테스티 가문 등과 동맹을 맺었고, 피렌체는 얼마 전까지 존 호크우드가 복무했었던 카라라 가문, 그리고 로마냐에서 존 호크우드와 다툼이 있었던 만프레디 가문 등과 연합했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용병들도 양 쪽에 가세했습니다. 일전, 카스타냐로 전투에서 어깨를 함께했던 우발디니는 존 호크우드의 상대편인 밀라노 측에 있었는데, 가장 껄끄럽고 유능한 용병이었던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체리를 먹고 독살되었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잔혹했습니다. 더이상 포로는 없었습니다. 이쪽이 한 명 죽으면, 상대쪽 한 명을 죽이는 식이었습니다. 간첩들이 횡행했고, 건축물들의 벽에는 치욕화 프로파간다가 그려졌습니다. 

 1391년 1월 11일 해 뜨기 두 시간 전, 점성술사에게 받은 길일 길시에 존 호크우드와 피렌체 연합군은 출진했습니다. 군대는 저항없이 진군했으나 현지 지성의 포위에서는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세종말점은 만토바였습니다. 로마냐에서부터 악연을 이어온 아스토레 만프레디는 존 호크우드와 같은 피렌체 진영에 있었는데, 그가 존 호크우드와 프란체스코 노벨로 모두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현지 지휘부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밀라노 공세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피렌체는 혹여라도 존 호크우드가 계약을 파기할까 종신 연금을 비롯한 갖가지 혜택을 퍼부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비스콘티 가문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진군해 마침내 산 마르티노 계곡을 통과했고, 여름에는 밀라노 영토의 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존 호크우드의 진격은 북쪽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의 일원으로서 프랑스군을 이끄는 아르마냑 백작의 남하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곧 그가 올 것으로 예측됐고, 밀라노인들은 절망에 빠져 매일 밤 촛불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아르마냑 백작의 밀라노 진격은 병사들의 반란 및 작은 요새들의 공략 등으로 인해 계속해서 지체되었고, 존 호크우드는 결국 숙련된 기술을 활용해서 후퇴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상대 지휘관에서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 전장에 나오지 않는 것을 힐책했고, 깃발을 높게 올려 세우고 횃불을 늘려 마치 병사들이 가득 들어차있는 것처럼 속였으며, 트럼펫 연주자들에게 전투 함성을 울려 기만하도록 지휘하고, 퇴로에는 일부러 전리품을 남겨두어 추격이 늦어지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적들이 존 호크우드의 진영에 도착했을 때엔, 그곳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마 삼국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익숙할 그런 전형적인 기만작전인데, 이런 작전은 그 특성상 노련하지 않다면, 그리고 적 지휘관의 특성들에 익숙하지 않다면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성격의 것들입니다. 

 존 호크우드는 천신만고 끝에 훌륭하게 후퇴하여 병력의 대부분을 보존했습니다. 그러나 젊고 용감한 아르마냑 백작은 결국 밀라노에 의해 고용된 용병, 달 베르메에 의해 요격되어 포로가 되었고, 거의 동시에 사망했습니다. 열사병으로 죽었거나, 독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장은 남쪽으로 내려왔고, 이제 역으로 피렌체인들은 달 베르메의 공세에 대항해야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피렌체인들은 강박적으로 호크우드의 용병단을 증강시키려고 했습니다. 대규모 징집이 이루어저 일만 명의 농민들이 전장으로 흘러들어왔고, 용병단에 합류하여 용맹을 떨치는 범죄자들에게는 사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전쟁은 지루한 공방전을 오가며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평화협상이 시도됐고, 결국 승자없는 전쟁 전 상태(status quo ante bellum)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파도바의 영주 프란체스코 노벨로는 50년간 일만 플로린의 세폐를 바쳐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존 호크우드 또한 약탈자들을 물리치는 사소한 작전 수행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은퇴한 존 호크우드는 마지막 고용주, 피렌체에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 때 몇몇 피렌체인들은 호크우드를 '이탈리아화'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실제로 행동과 관습 면에 있어서 외국인들의 문화를 완벽하게 체화했던 것으로 보였고, 당대의 어떤 피렌체인은 호크우드의 '피가 온화한 이탈리아인의 환경을 통해 건강하게 재생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탈리아인 호크우드'에 대한 이미지는 존 호크우드가 사망한 시점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관념은 19세기까지 이어져, 역사가 에르콜레 리코티(Ercole Ricotti)는 그를 두고 "마지막 외국인 용병대장이자 첫번째 이탈리아인 용병대장"이라고 격찬했습니다.

 그러나 존 호크우드가 영국인 정체성을 버렸거나, 스스로를 이탈리아인으로 여겼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렌체 시는 용병대장인 그를 흠모하는 만큼이나 두려워했습니다. 차라리 존 호크우드는 피렌체보다는 루카에 더 애정을 느꼈을 수도 있는데, 그 도시에 있는 막대한 재산 및 연금, 그리고 영국인 동료들과 그곳에서 꾸준히 은행업무를 보았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기실, 호크우드는 죽는 날까지 고향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의 용병 고용 계약에는 으레 영국 국왕 및 그의 동맹과 대적하지 않을 권리가 삽입돼있었고, 말년에 이뤄진 고용 계약에는 심지어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바다 건너 고향에 돌아갈 권리 조항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호크우드 본인이 공직에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1377년 즉위한 리처드 2세는 외국에서 명성을 떨치는 이 용병대장에 대사 업무를 맡겼고, 존 호크우드는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 황제, 교황 사이에서 각종 조약, 동맹, 투자에 관한 협상을 중개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평생에 걸쳐 영국 왕실에 대해 충성심을 내비쳤고, 해외에 거주하는 영국 교민단체의 지도자격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영국 출신 용병단도 존 호크우드의 용병단에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이미 당대부터 영국 용병들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던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존 호크우드였지만, 말년에는 그 또한 고향, 영국 에식스에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이미 에식스에 돌아가 살던 여러 고향 친구들을 수탁자로 하여 막대한 양의 현금을 보냈고, 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프랑스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코게샬 가문의 토마스 코게샬이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에식스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기 위해 여러 부동산을 구매했고, 런던의 상업지구에도 투자하는 등 돌아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존 호크우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 직전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고향인 에식스, 그리고 영국에서 세세토록 이어졌고, 15세기의 저명한 출판업자이자 근대 인쇄술의 아버지인 윌리엄 캑스턴은 존 호크우드를 랜슬롯이나 갤러해드와 같은 고결하고도 명예로운 기사들의 반열에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Paolo_uccello,_Monumento_equestre_di_John_Hawkwood,_1436,_01.jpg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병대장의 최후

 파울로 우첼로의 존 호크우드 초상화에는 가묘 위에 자리한 존 호크우드의 청동 기마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묘에는 "존 호크우드, 영국 기사, 이 시대 가장 신중한 지휘관이자 전쟁 기술에 가장 정통한 인물"이라는 비문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한니발을 상대했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연상시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를 찬양했듯, 밀라노에서의 신중한 후퇴로 피렌체를 구해낸, '공화국에 의해 유순하게 길들여진' 존 호크우드의 이미지를 선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훑으면 알 수 있듯, 존 호크우드는 단 한 번도 어느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여우의 미덕을 지닌 사자였고, 그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피렌체를 떠나 새로운 용병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Pluralist
25/10/13 19: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o o (118.235)
25/10/13 20:43
수정 아이콘
고향 사랑은 역시 호크우드햄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 선거게시판 오픈 안내 [30] jjohny=쿠마 25/03/16 37845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7] 오호 20/12/30 314908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69088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75406 4
105199 [일반] 댄스 필름 촬영을 이어오면서의 소회. [5] 메존일각427 25/10/14 427 5
105198 [정치] 12월 3일 계엄의 밤, 국무회의실 CCTV 대공개 [78] 빼사스3204 25/10/13 3204 0
105197 [정치] 이준석이 까이는 이유와 이준석을 까면 PGR 모두가 행복한 이유 [91] 유동닉으로3622 25/10/13 3622 0
105196 [일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병대장의 최후 [2] 식별2083 25/10/13 2083 16
105195 [정치] 흥미로운 지점들 [265] 한강두강세강11644 25/10/13 11644 0
105194 [정치] 이준석의 존재는 '거대담론 시대'의 종언이라고도 봅니다. [171] petrus8697 25/10/13 8697 0
105193 [일반] 닉네임 변경 기간 연장 공지 [26] jjohny=쿠마3544 25/10/13 3544 2
105192 [정치] 국민의힘 해산론 국민 54.2% 공감 외 [시사IN-한국갤럽 2025 신뢰도 조사] [196] 전기쥐13424 25/10/12 13424 0
105191 [일반] 비트코인 좋아하시나요?? 비트코인에 몰빵한 이야기 [73] Bitcoin9316 25/10/12 9316 19
105190 [정치] 이준석은 '여성XX에 젓가락' 발언을 사과했는가? [228] 방구차야10324 25/10/12 10324 0
105189 [일반] [팝송] 에드 시런 새 앨범 "Play" [1] 김치찌개3388 25/10/12 3388 1
105188 [일반] 노스포] 달리는 인간들의 찬가 - 영화100m가 보여준 ‘나다움’의 진짜 의미. [13] 대장햄토리3334 25/10/12 3334 2
105187 [정치] 한국의 중산층과 사다리-중산층이 늘어나서 중산층이 붕괴된다 [115] 유동닉으로10163 25/10/11 10163 0
105186 [일반] 트럼프 "APEC서 시진핑과 회담? 그럴 이유 없는 듯" [92] 빼사스15986 25/10/11 15986 2
105185 [정치] 다이나믹 재팬, 골라봐 다카이치 지옥불 or 용광로 쇳물 or 식물총리 [62] 후추통14634 25/10/10 14634 0
105184 [정치]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기각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73] SkyClouD10147 25/10/10 10147 0
105183 [정치] 2025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두두두두두두두 [56] Janzisuka10569 25/10/10 10569 0
105182 [일반] 한국 대중가요 전성기라 불리는 1990년대의 어두운 점: 표절 시비 [150] Quantumwk10346 25/10/10 10346 17
105181 [일반] 日 공명당,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에 자민-공명 연립 이탈 표명 [41] 전기쥐5643 25/10/10 564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