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짜장 썰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쯤은 다 지니고 산다. 그 작은 기계속에는 수많은 기능이 마치 요술처럼 농축되어 있다. 2025년 지금 세기는 천일야화가 현실화된 시대라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몇 번만 누르면, 아브라카다브라의 주문처럼, 또는 알라딘 램프의 마술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내 집 문 앞으로 각종 배불림 수단을 쉽게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다들 간짜장 하나쯤 그거 흔하디흔한 배달 음식 별거 아니라고 여긴다. But 진짜 간짜장은 다르다. “찐 간짜장”은 연륜으로 내공이 깊이 스며든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그 맛의 경지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을뿐더러, 알라딘 요술램프의 화면을 문지른다고 이를 내 집으로 불러내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미식 마니아에겐 어느 요리나 마찬가지로, 레알 간짜장은 그 맛의 섬세한 차이를 추구하거나 이를 아는 자만이 그 깊이와 오묘함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난 “안-단짠맵”의 맹탕 우육탕면은 물론 멀건 란주면, 다양한 건더기가 그득한 팔진탕면도 좋아한다. 내가 전문 맛집 탐사의 수준은 아니지만 가끔은 관심업소를 찾아다니는 간짜장 Foodie임을 글의 도입 이전에 우선 밝혀둔다. “안-단짠맵” 그 맹탕을 왜 좋아하냐구? 그럼 다들 비싼 돈 내고 그 닝닝한 물냉면을 왜 먹는데?
그 썰을 풀어 보자.
간짜장은 우선 간이 강한 것으로 자신의 그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이는 짜장의 기본인 춘장(醬)을 담글 때 소금으로 간을 쎄게하여 담기 때문이다. 이 먹거리의 아이덴티티 또한, “중식인가 한식인가?”가 짜장면 유래의 썰에서 항상 화두에 오르는 질문이다. 요런 거 전문가인 게이오기주쿠대 “이와마 가즈히로” 라는 일본인 연구자 피셜 짜장면은 ‘중국계 한식’이라고 정의된다고 했다. 중국 음식이 이민가서 그 나라로 귀화한 경우인데, 이와 같은 것으론 일본의 라멘과 짬뽕, 베트남 쌀국수, 태국의 팟타이 또는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등... 아님 말구.
(간)짜장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우선 춘장을 기름에 볶(炸-볶을 작)아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중식당이 식용유, 특히 구하기 쉬운 콩기름을 사용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전까지 돼지비계를 잘게 썰고 이를 튀겨내면 비계가 누룽지로 형해화돼 거기에서 우러나 남는 그 돼지기름을 사용했다. 그걸 전문 용어로 라드라고 한다.
사람은 기름의 맛과 향을 기억한다.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을 때 퍼지는 고소함, 씹을수록 느껴지는 부드러움, 그리고 입안을 감도는 진한 향은 기름, 즉 지방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고기에는 언제나 적당한 지방이 함께한다. 고기 가격에서 마블링이 균일하게 포함된 고기는 뭉쳐 있는 부분보다 값을 훨 더 쳐준다. 마블링이란 고기 속에 박혀있는 지방을 말한다. 이 지방이 많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수록 고기는 더욱 부드럽고 풍미가 깊어진다. 그래서 마블링 분포가 뛰어난 소고기 부위는 희소성뿐 아니라, 그 맛의 특별함 때문에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삼겹살이란 단어에 있는 그 “겹”은 지방층을 말한다.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면 하얀 지방층이 녹아내리며 고소한 향을 퍼뜨린다. 이 지방이 고기와 어우러져 씹을 때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낸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방의 맛과 향, 그리고 식감 때문이다. 동물성 기름의 맛을 이야기 하자면 마블링이 촘촘한 소고기나 오도로라고 하는 참치 뱃살 이야기를 뺄 순 없지만, 주제에서 너무 멀고 길어지니 생략하자.
결국, 사람은 기름의 맛과 향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그 기억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마블링이 아름다운 소고기와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 그리고 해산물로서는 참치 뱃살을 특별하게 여긴다. 이처럼 육류나 물고기 맛의 비밀은 바로 지방에 있다. 돼지비계에서 추출된 라드가 춘장의 풍미를 배가시키는 핵심 비법이란 것은 더 이상 그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은 아니다.
모든 음식은 입이 먹기 전에 눈이 먼저 먹고 그다음 코가 먹는다. 그 돼지기름에 볶아낸 춘장은 맛은 물론, 한국인들을 인당(per person) 세계 최고의 소비량으로 매일 저녁 소주병과 함께 뒷골목을 홀리고 있는 삼겹살, 그 돼지 삼겹살 기름의 향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특히 상온에서 굳어지는 라드의 특성상 금방 볶아져 나온 간짜장 소스의 매혹적인 반짝임은 눈을 먼저 호강시키고 자극적인 냄새는 코를 자극하기에, 그 소스가 식기 전에 혀의 활동은 더욱 강력하다.
춘장과 채소를 볶고 있는 중국집 주방에 달려있는 팬(Fan)에서 길 밖으로 뿜어내는 이 강력한 라드의 볶음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코끝과 침샘을 자극해 식당으로 들어오게 하는 영업방식임을 우리 모두는 내심 알면서 전혀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눈을 돌려 그 앞을 지나다녔다. 가끔 그 앞을 지나던 아이 엄마는 머뭇거리는 아이의 손목을 세게 잡아당겨야만 했다.

청계천 세운상가 부근의 동해루의 것이다. 양파와 양배추가 듬성듬성.
간짜장은 주문 시 갓 볶아내는 춘장과 채소의 신선함이 핵심이다. 손님이 몰려 바쁠 때를 대비하여 아침에 미리 대량으로 볶아둔 춘장에 양파만 살짝 볶아내는 방식과 모든 재료를 새로 볶는 방식은 맛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
미리 볶아둔 춘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을 잃고 굳어 맛과 향이 변한다. 춘장 특유의 고소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고, 텁텁하거나 짠맛이 강해질 수 있다. 또한, 다시 데우는 과정에서 춘장이 과도하게 익어 기름이 산뜻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내용물에서 불 맛 보다는 탄 맛이 날 수도 있다.
반면, 주문 즉시 웍에 춘장을 넣고 고열에서 빠르게 볶아낸 간짜장은 춘장 본연의 풍미가 살아있다. 갓 볶은 춘장은 고소하고 진한 맛은 물론, 윤기 있고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한다. 여기에 바로 썰어 넣은 양파 등 채소가 아삭한 식감과 신선한 단맛을 더해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이룬다.
돌도 소화를 시키던 젊은 시절 젓가락을 휘저어 깨작거리며 천천히 먹는 친구와 두 절음에 한 그릇 흡입이 끝나는 친구 둘이 서로 바라보며, 다 먹고 난 친구가 아직 반도 못 먹고 있는 친구보고 하는 말이, 너 그거 다 먹을 꺼야? 다 먹을 순 있고? 그런데 그들은 튀긴 만두는 물론 탕슉을 더 주문할 주머니의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짬뽕 국물에 소주는 다음으로 기약할 수밖에 ... 없던 흑역사도 있었다.
내겐 간짜장이란 것의 정의에서 짜장과는 다른 몇 가지 개인적 평가와 기준이 있다.
1. 춘장은 좋은 기름으로 충분히 볶아야 제맛이 산다. 그냥 기름도 아니고, ‘좋은’ 기름! 이때 춘장이 과잉된 기름과 만나면 간짜장 소스의 표면에 투명하게 유리되어 살짝 흘러내리는 기름이 보인다. 특히 라드로 볶은 간짜장은 향이 한층 더 살아난다. 콩기름에 비해 라드는 소스에 덜 흘러내리지만, 그 고소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간짜장 소스에서 살짝 배어나오는 기름은 면을 비빌 때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면이 술술 잘 비벼지는 건 다 이 기름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간짜장에 기름이 흘러도 이를 인식하며 “느끼하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2. 간짜장의 아이러니는 간짜장은 짜장과 다르다는 독자적 아이덴티티에서 출발한다. 간짜장의 소스에 전분기가 있거나 또는 그릇에 국물이 고여 소스가 비비며 묽어져도 절대 안 된다. 면은 춘장을 볶은 과잉 기름의 윤활성으로 비벼져야 한다. 그래서 뻑뻑하며 꾸덕하고 기름진 것 바로 그것들이 간(乾-마를 건)짜장의 바른 정체성이다.
3. 간짜장의 식감을 책임지는 건, 바로 잘게 썰린 양파다. 방금 서빙된 간짜장의 양파는 사실 식감의 핵심이다. 주문 후 바로 볶은 양파의 알싸한 존재감과 생양파의 형태를 어느 정돈 유지해서 신선한 맛을 올려야 한다. 프렌치 어니언 스프가 아닌 이상, 양파를 너무 오래 볶으면 물러져 버린다. 정신없이 볶다 보면 양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씹을 때마다 이거 뭐지 하며 원판 요리의 아삭했던 그리움만 남는다. 그러면 그저 그런 옛날짜장이 되어버린다. 가끔은 양배추가 있는 듯 만 듯 랜덤으로 함께 한다.
그러니 양파는 적당히, 후다닥 딱 알맞게 볶아야 한다.
4. 양파 이외의 건더기로는 육해공, 뭐든지 환영이다. You name it! 잘게 썰어 바삭하게 튀긴 고기도 좋고, 삼선 간짜장이라 하여 새우, 오징어, 조개 등 해산물 모듬을 듬뿍 넣으면 맛의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간짜장은 그릇 위의 작은 축제다. 고기, 해물, 채소 – 육해공 모두가 춘장과 어우러져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 젓가락에 담긴 다양한 맛과 식감, 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기름. 고소한 기름에 볶은 춘장과 양파, 그리고 다양한 건더기가 만들어내는 맛의 하모니, 눈코입을 즐겁게 해주는 이것이 바로 간짜장이 주는 행복이다.
짜장과 간짜장은 사실 같은 집안 출신의 형제간이지만, 어느 중식당이건 이 둘 간의 대접은 뉘집의 장남과 차남의 대우처럼 급을 달리한다. 밀려올 손님을 대비해 오전에 잔뜩 끓여 놓는 짜장 소스보다 주문 후 따로 볶아야 하는 간짜장을 우대하여 대부분 소스를 작은 그릇에 따로 내어준다. 그렇게 손이 한 번 더 가야 하는 것이 간짜장이다. 이런 수고스런 이유로 점점 간짜장이 많은 중식당 고정 메뉴에서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 이야기에 의하면, 간짜장 소스의 양이라면 짜장 두 그륵을 맹근다고 한다. 내 장담하는데 짜장보다 간짜장 가격을 더 싼마이로 취급하는 곳은 아마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 내엔 없으리라.
좌간 그 형제간 색깔이 오징어 먹물처럼 꺼매도 세상에 이처럼 맛있게 꺼먼 음식이 또 있을까.

그래도 사람들이 더 찾는 건 짜장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결정장애 없이 “나도 짜장”이란 말 한마디로 앞사람과 같은 마음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그런 경로의존성의 간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산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뭘먹을까 고르느라 심각해져 머리털 쥐어뜯을 만한 일은 아니니까.
반면 “난 간짜장”이라고 세 마디로 주문할 때 주목받는 것의 무의식적 번거로움의 차이, 그리고 날 바라보며 "넌 왜 짜장으로 통일 안해?"라며 눈치주는 이들이 생각하는 천원에서 오는 무게의 다름 아닐까.
[더 그레이트 홍연]의 ₩57,000 원짜리 송로버섯 짜장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간짜장은 그만큼 존중받아야 할 우리 서민들의 먹거리 문화유산이다. 이런 고귀하고 품격 있는 문화적 취향의 가치를 아는 나는, 모두가 짜장 보통으로 통일시킬 때, 난 손을 번쩍 들고 "간짜장"이라고 크게 외친다.

사내 최고의 프로불평러만 우연찮케 모인 우리 팀, 그 불평이 자신의 짧은 식견 때문이란걸 자신만 모른다. 이 덤앤더머들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간짜장을 앞에 두고 신나게 흡입하던 마침 그때, 식당으로 들어온 우리 팀장님... 레이저 빔이라도 쏘는 듯한 그의 시선은, 간짜장 면발에 집중하던 팀원들의 젓가락질을 일시 정지시켰다.
그러나 잠시 이 상황을 마주친 그분의 머릿속도 복잡해진다... 나(팀장)를 씹기 위해 나만 빼고 모인 우리 팀원들. 괘씸해도 머쓱하지만 같이 앉을까, 아니면 탕슉이라도 하나 시켜주고 얼른 빠질 까??? 아니면 저걸 내가 계산하고 나가며 폼을 한번 재야 하나??? 때론 법인 카드 없는 중견 간부가 마주친 얼떨결의 면구스러움에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폼은 순간이지만... 그 용감함에 가벼워진 주머니로 쓰라린 아픈 가슴은 오래간다).
이처럼 간짜장은 환상적인 맛에 아울러 합리적인 가격으로 접할 수 있어, 소박한 나의 입에 넉넉한 여유와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그래서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맛의 진품명품”이란 존재 중 하나가 되었다.

잠시 의학적 유아생리학적 면에서 살펴보자. 짜장 소스는 달달하며 코끝으론 기름 냄새가 다가온다. 겉보기엔 검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 속 건데기지만 맛보면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게임. 탱탱하고 찰기 있는 밀가루 면은 당 떨어진 그들에게 급격히 혈당을 올려준다. 어디엔가 숨어 있는 글루타민산은 어린아이의 혀마저 사로잡는다. 이 조합은 당연히 엔돌핀과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여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려서 맛 들여진 이 경험은 성인이 되어도 또는 디아스포라가 되어도 어릴 적 짜장은 이들에겐 갈망의 음식이 된다. 그게 뭐라고.
수십 군데의 Well-known 간짜장 맛집 중 내게 가장 좋은 기억을 심어 준 곳은 마포 신성각도 아니고, 청계천 골목의 동해루도 아니고 인천 차이나타운의 어느 유명한 집도 아니다. 바로 숙대 앞 중식당과 학동 부근의 홍명이다. 사진 없음. 다만 학동 홍명은 옆 사람이 난자완스 먹는 걸 보면 못 본 체 피해라. 덩달아 먹다가 부어라 마셔라 하며 기분이 넘치다 그날 폭삭 속아 털린 유경험자다.
부록 : 명칭이 간짜장이 아니고 쟁반짜장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짜장도 아닌 것이 간짜장도 아니다. 바로 쟁반짜장이라고 한다. 요즘 말이 많아 곤욕을 치루고 있는 홍콩반점의 대표메뉴이다. 무차별 긁(?)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글쓴이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보면, 매번 재료를 달리하는 만용을 부리는 내용물들도 충실한데다 불향도 나는 것이 그 맛이 매우 훌륭한 경지에 올라와 있는 대륙요리과(科) 산동족(族) 짜장속(屬) 면 메뉴 종(種)중 하나이다.
어느 업소가 짜장을 주메뉴로 하려면 『홍콩반점』보다, 홍콩보다 비교적 국제 유명세에서 밀리기는 하지만 연고로 보면 『산동반점』이 적당할 것이다. 딤섬의 본고장인 홍콩은 광동성이며 대두콩으로 만든 춘장의 본고향은 아니라 그렇다. Hong Kongers(Cantonese-speaking) feel strange about Korean Jajangmyeon because it is more delicious than what they have in Hong Kong. 이건 최소 2인분 주문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