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1/11 01:04:43
Name Poe
Subject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3 (수정됨)
4. 내 책임이기를
병원들마다 수개월 후에나 오라는 답을 줬지만 자꾸만 두드리니 틈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그 병원이 서울에 있든 다른 지방 도시에 있든, 우리는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디든 예약된 진료가 취소됐다고 연락이 오면 우리는 모든 일을 멈추고 이유식과 기저귀를 싸 자동차에 올라탔다. 아내는 집에 있을 때나 자동차에 있을 때나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전부 병원들이었다. 이미 예약을 걸어둔 곳에는 혹시 빈 자리가 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새로운 병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면 예약을 걸어두려고 항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통화할 곳이 없으면 각종 카페에 들어가 모든 게시물에 달린 모든 댓글들까지 읽고, 자신도 질문을 던지면서 선배(?) 부모들과 소통했다. 단톡방에도 어마어마하게 가입되어 있었다. 아내는 잠긴 문들을 하도 두들겨 전국 소아과에 손자국을 낼 지경이었다.

난 느렸다. 평소 전화 안 받기로 악명이 자자할 정도로 전화기를 등한시 하는 성격이 그런 상황에서도 고쳐지질 않았다. 단톡방이나 인터넷 카페니 하는 낯선 장소들에 노크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대신 자폐나 그 외 뇌와 신경 질환, 대장 질환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읽었다. 병원 대기 시간은 그렇게 긴데, 진료 시간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압축적이었고, 그 압축된 시간을 활용하려면 최소한 그들의 말이라도 한 번에 알아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편에서도 상황 설명이 간결히 나가야 했고, 의사들 편에서 해주는 설명을 되묻지 않고 한 번에 이해해야 같은 시간 동안 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논문을 읽어 전문적인 배경지식을 갖춤으로써 의료진들과 짧은 시간 안에 전문적인 대화를 한다, 는 건 그러나 이상론이었다. 그들이 수년 동안 잠과 싸워가며 공부해 익힌 것을, 아무리 절박한 부성애를 갖춘 자라고 하더라도 논문 몇 편에 습득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의 의대생 시절처럼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만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하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건지,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건지 지금에 와서는 헷갈린다. 새 정보를 습득하느라 바쁜 아내는 이런 나에게 별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왜 애가 아픈데 당신은 그렇게 아무 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가끔씩 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나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어젯밤에 읽었던 논문이 너무 어려웠어,라는 소리를 하면 아내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쉴 것이었다.

아내는 늘 내가 발빠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었다. 자동차를 척 보면 어디가 이상한지 한눈에 파악해 정비소도 혼자 갔다오고, 오는 길에 세차도 좀 깔끔히 하길 바랐다. 이사를 가야할 때면 시세에 따라 알맞은 동네에 탐방도 다녀오고 부동산에서 멋지게 흥정까지 하는 남편이 되어주라고 채근했다. 집에서 뭔가 고장이 나면 뚝딱 수리도 하고, 뭐 필요한 게 있으면 그 물건을 어디서 사야 가격 면에서 가장 유리한지도 꿰뚫고 있기를 희망했다.

나도 내가 그런 남편이었으면 했지만 십년 넘게 실패만 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만 대면 부러트리고 망가트려 어머니마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브로큰핸드’라는 콩글리시로 조롱하며 부르실 수밖에 없던 사람이다. 나는 매번 적극 도움의 의향을 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스스로 집 전구를 가셨다. 거래라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면 난 상대가 부르는 값을 믿어 의심치 않는 편이었고,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도 그날 뭐가 먹고 싶은지가 중요했지, 가격표를 잘 보지 않는 성향이었다. 아내 전에 만났던 어떤 분은 ‘부자도 아닌 사람이 왜케 부잣집 도련님 마인드로 살아가냐’라고 쏘아붙일 정도였다.

한 마디로 둘의 성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거였는데, 부부 사이의 이런 어긋남은 특별할 것이 없다. 어느 부부라도 비슷한 충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내도 자신의 남편상에 날 억지로 맞추려 하지는 않았고, 나 역시 못하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 옷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병원과 통화한 후 그 결과를 짤막하게나마 공유해주면 나는 그것에 맞춰 내 업무와 일과를 조정해가며 늘 운전할 준비를 마쳤다. 대기조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아내가 추진력이라면, 나는 기동력이라도 되어주어야 했고, 우리는 아이 상황 이전에도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쌓이는 응어리들,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좋게 말해 독특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생각의 방향성이나, 그 생각을 표현할 때 고르는 단어들이나, 일반인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난 거기에야말로 동의할 수 없었다. 말이 좀 어눌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 아내는 ‘제발 누군가 우리의 심판관이 되어줄 수 없나’라고 하소연을 했다. 이제 조금씩 커지는 첫째와 둘째가 살짝 엄마 편을 더 들긴 하는데, 나는 애들이 뭘 알겠냐며 간단히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심판을 원하는 아내의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 일이 터졌고, 우린 각자의 속도로 아이의 상황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폐에 관한 한 전문가의 강의를 듣게 됐다. 아내가 먼저 발견해 둘이 같이 보게 됐는데, 그 분의 이론 중 우리 부부의 귀에 딱 하고 꽂히는 게 있었다. 많은 경우 자폐라는 게 부계를 따라 대물림 된다는 내용이었다. 즉 아빠가 자폐 성향이 있을 때, 아이가 자폐 성향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거기서 영상을 보다말고 아내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 다 ‘어?’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먼저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 멈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문제라고?”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했었던가.
아마 아내는 무릎을 탁하고 쳤던가, 아니면 그런 분위기와 뉘앙스를 물씬 풍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리네” 정도의 대사를 하며.
“내가 항상 말했잖아. 당신 좀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나는 당신이 외국에 살다 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런 거 치고도 좀 이상했어. 그런데 이제 왜 그런지 알겠네.”
글로만 보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의 이 대화는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우리는 심지어 웃고 있었다. 나를 자폐라고 하는 아내가 어이 없어서? 아내는 그토록 염원하던 심판의 결론을 받아든 것 같아서?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같은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나나 아내나 제발 그 사람의 이론이 맞기를, 그래서 내가 자폐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다시 말해 우리 막내도 나 정도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일 테니까. 기계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는 지식 수준에, 손재주는커녕 아예 손이 없는 수준인 사람이어도, 혼자 자기만의 세상에서 부잣집 도련님 같이 살아가느라 늘 옆 사람이 불안불안하게 하더라도, 고르는 단어가 좀 이상해서 소통에 어려움이 다소 있더라도, 어찌됐든 자기 몸 건사하고 식구들까지 먹여살릴 정도는 되니까. 아내의 기동력으로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늘 불만족과 실망감을 선사하던 내가, 의외의 자폐 성향 가능성 때문에 처음으로 아내의 희망이 되는 묘한 순간이었다.

며칠 있다가 오랜 고등학교 동창에게 왓츠앱으로 말을 걸었다. 당시 한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 염색체 이상을 가진 사람의 이름을 나에게 붙여 부르던 놈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미안해 하기는 개뿔, 지금도 ‘그 때 내가 좀 심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심한 건 그 때의 너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놈이면 나에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거라, 우리의 희망에 쐐기를 박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나 고등학교 때 이상한 편이었지?”
“갑자기 왜 그래?”
“잘 생각해봐. 나 자폐 성향이 있다고 봐도 될 정도 아니었냐?”
“그냥 외국에 와서 문화 충돌을 심하게 겪은 거지 뭘 그렇게까지...”
“우리 막내가 좀 아파. 자폐 같아.”
“혹시 너한테서 자폐가 옮겨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이론이 있긴 하더라. 나 그 때 친구도 없고 그랬잖아. 너도 내가 이상했으니까 그렇게 불렀던 거고.”
“내가 너네 나라에 갔으면 더 심했을 걸?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어느 정도 자폐 스펙트럼에 걸치고 있어. 너만 그런 거 아냐. 나도 이상한 면이 많아.”

이 놈이 뭘 잘못 먹었나. 사과가 필요할 땐 뺀질뺀질 더 놀리던 놈이, 정작 그 놀림(즉 진단)이 필요할 때 갑자기 진지해진다. 이 놈의 정체성은 그냥 듣고 싶은 말을 죽어도 해 주지 않는 것이었던가. 그러더니 놈은 “네가 아빠로서 죄책감을 갖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좀 더 생산적인 방법을 찾아라” 따위의 설교까지 늘어놓았다. ‘나 지금 희망을 찾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것도 충분히 생산적인 거라고’라고 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다면 힌트를 너무 노골적으로 주는 꼴이 될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친구가 ‘그래, 너 자폐 성향이 있던 거 같아’라고 인정해준다 한들 큰 의미가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결국 영상 속 그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닥터페인
24/11/11 01:49
수정 아이콘
이럴때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폭주기관차처럼 삶을 몰아붙이는 곳인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조금 느리다고,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고, 틀리다고 단정지어 버리고 몰아붙이죠. 더구나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겪어보셨기에, 더 잘 와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행복이라는 건 다른 이가 가져다주지도, 또는 이런 거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기에, 오롯이 가족분들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4/11/11 04:38
수정 아이콘
저도 아기안고 혼자 기차 타고 서울 병원 가던 날이 잊혀지지가 않는데... 글쓴 분도 지독했을 나날이 행복한 기억으로 덮이기를 바래봅니다
에이치블루
24/11/11 07:10
수정 아이콘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희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감히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그 마음이 너무 먹먹하네요...
24/11/11 07:53
수정 아이콘
여러 가지로 어려우신 와중에 오히려 희망을 보시는 대목에서 무언가 뭉클했습니다. 말씀처럼 아내분 정도로 기민하지는 못하시더라도, 아이를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해답이 나오고 달릴 수 있게 되는 때부터는 작성자님의 시간이 될 거예요. 화이팅입니다.
윌슨 블레이드
24/11/11 08:03
수정 아이콘
저도 무슨 수필 문학인냥 글이 술술 읽혀서
글 잘쓰신다고 말하려다가 내용들이 너무 막막해서 읽고 그냥 지나갔는데 오늘은 댓글을 달아봅니다

나의 자식이 행여나 작은 생채기만 나도 너무 가슴 아플텐데 자폐(?)를 겪고있는 부모의 심정을 짐작 조차 할 순 없지만 두분이 그런 문제 속에서 현명하게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이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드네요


"네가 아빠로서 죄책감을 갖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좀 더 생산적인 방법을 찾아라” 따위의 설교를 해준 친구를 저는 모르지만 좋은 친구를 두신 것 같네요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은목서
24/11/11 08:44
수정 아이콘
잘 읽고 있습니다. 이 리플을 달기 위해 잃어버린 계정을 찾았습니다. 다음 글이 올라왔나 수시로 들어와 찾아봅니다.
소이밀크러버
24/11/11 08:58
수정 아이콘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Pelicans
24/11/11 09:05
수정 아이콘
내책임이기를 이라는 소제목만 보고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그렇지가 않네요.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만큼 성장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록타이트
24/11/11 09:59
수정 아이콘
가슴아파오면서도 묘현 긍정이 묻어나오는 글 감사합니다. 너무 멋진 남편, 너무 멋진 아빠세요.
24/11/11 10:21
수정 아이콘
소통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니요, 글을 이렇게 잘 쓰시는 걸요. 나이 들수록 괜시리 속상해지는 글은 일부러 피해다니는데, 마음이 아프면서도 Poe님 글이 올라오면 바로바로 읽게 됩니다. 자제분들과 함께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Cazellnu
24/11/11 11:29
수정 아이콘
내려놓는다는거 받아들인다는거 이게 가장 쉽고도 어려운길같습니다.
더불어 전과 바뀌어야 하는 내 삶의 방식도 어렵지만 바뀌어야 합니다.

한가닥이라는 것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긋날때의 후폭풍 감당하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쪼록 잘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24/11/11 11:46
수정 아이콘
이 정도 글을 쓸 수 있는데 자폐는 무슨놈의 자폐... 라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글쓴분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일거 같네요.

그사람 이론이 두분에게 해당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좀 보이네요 화이팅 입니다!
24/11/11 12:05
수정 아이콘
참 자폐가 유전이길 바라는 부분부터 너무 감동적이네요. 놀리던 친구도 진짜 찐친이구나 라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뭐라고 무슨 말을 하겠냐만은, 앞으로 글을 더 써주셨으면 합니다.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24/11/11 12:36
수정 아이콘
계속 보고만 있었는데... 다들 생각하는게 비슷한가 봅니다. 둘째가 좀 느린데 일단 지적장애 3급이라고는 받아놨는데...내년에 다시 웩슬러 지능검사해서 경계선 나올듯 하긴 한 상황입니다. 일년전쯤에 와이프랑 싸우고 속상하고 문득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엄마 혹시 나 어릴때 좀 떨어지지 않았냐고... 기억도 잘 안나는데 친구도 없고 공부 못하지 않았냐고... 그때 참 바라면서 물어봤어요 그랬다고 말해주길... 근데 안그러셨고 오히려 너 공부잘했고 등등 막막한 심정이되더라고요...엄마한테 짜증도 냈고요 문득 그때 생각이 납니다
아델라이데
24/11/11 13:35
수정 아이콘
자폐도 정도가 있는데 그냥 그 아이를 중증 자폐로 규정해버리고 자폐아처럼 교육하고 치료하는게 맞나 싶더라구요.. 그냥 평범하게 똑같이 할수 있는만큼은 해보고 다른 방안을 찾는게 좋을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응원합니다.
질럿퍼레이드
24/11/11 16:43
수정 아이콘
본인도 마음이 힘드실텐데 와이프까지 보듬으셔야되는.. 모든 아빠들 존경합니다. 두 부부께서 애쓰시는 만큼 자녀분께 좋은일 계속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앙금빵
24/11/11 18:19
수정 아이콘
아이가 말이 느리고 시각추구 행동을 하길래 자폐가 의심되서 여러 책과 유튜브를 보다가 여러 현상이 가리키는 종착점이 자폐라고 여겨 심하게 멘붕이 온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판정을 받고 조금 다른 자녀를 키우는 분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도 안잡히네요. 부모님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김삼관
24/11/11 21:52
수정 아이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엔 전문가분과 만난 이야기가 올라오겠네요. 필요하신만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소식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느새
24/11/11 22:36
수정 아이콘
친언니와 저는 외모 성격 취향 생활습관등이 아주 극과 극으로 달라서 어릴적부터 둘이 친자매라 하면 다들 깜짝 놀라며 두세번씩 꼭 되묻고 진짜 못믿겠다 할 정도였어요.

그와중에 지금으로 치면 아마도 대문자 E와 대문자 I가 코딱지만한 방을 같이 쓰니 싸우기도 옴팡지게 싸워댔죠.방의 물건 진열부터 지나치게 결벽적인 나와 뱀허물을 매일 벗는 자매가 같은 방을 쓰니 안싸울래야 안싸울수가 없었고 그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내게 언니는 애늙은이라며 진저리치기 일쑤였어요.
게다가 밖에도 잘 안나가고 매일 혼자 음악이나 듣고 글을 끄적거리는 어린애가 이상하기도 했는지 어느날 진지하게
"넌 애가 꼭 자폐증있는 애 같아"라고 했더랬죠 저 13살때.

사실 그때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어요.그 시절이 그렇기도 했고 끽해야 "혼자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유별난 사람" 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내 딸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1년여간을 멀쩡(?)하게 효도하다가 퇴행이 왔을때 병원서도 아니라 했지만 무슨 초능력자라도 되는양 전 단번에 알겠더군요.아 우리딸은 다른길을 가고있구나.내가 할일이 많겠구나...

굉장히 일찍 치료를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유난떤다 소리도 엄청 들었고 심지어 너만 애키우냐 소리도 들었더랬어요.딸 낳았던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는 치료방향을 묻는 제게 자기가 의사생활 25년에 애들 얼굴만 봐도 안다고 아주 똘망똘망한데 얘가 무슨 자폐냐 했었죠.가족들 조차도 늦은 나이에 애를 낳더니 멀쩡한애를 가지고 유난떤다 했어요...그런데 엄마인 내가 하루종일 애와 같이 있는데 애가 어느날 갑자기 정말 다른아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몰라요.자폐가 어릴때 그렇더라구요.자주 안보는 사람들은 정말 외형만 보고,잠깐 같이 있는걸로는 모를정도로 구별하기가 쉽지않아요
암튼 그 덕분(?)인지 3년정도 지난후 진단을 확정 받았을때 어떤 절망감이나 보통의 부모들이 겪는 감정적 어려움은 없었던것같아요.

갑자기 이 긴 댓글을 쓰게된게 아마도 정확하게 글쓴분과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네요...
굳이 우리딸이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을 따진건 아니었지만
'울 언니가 나 어릴때 자폐증 같다고 했었어.'
'얘도 아마 날 너무 닮아서 그런거 아닐까'(아빠 붕어빵)
'나중에 스무살까지 키워놓고보면 좀 유별나고 날 닮아 단지 승질머리 좀 더러운 멀쩡한 사회인이 되있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뜨문뜨문 하곤 했었죠


이미 다 아시겠지만 어디에서 이런게 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죠.그저 지치지말고 한걸음 더 나아갈뿐...
나름 아이의 장애에 대하여 담백하게 받아들였고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살아왔는데 중딩되고 사춘기오니 올 한해 좀 많이 지치고 힘들었어요.다들 지치지말고 나아가보죠
24/11/12 10:04
수정 아이콘
이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리스펙을 받칩니다 ..
착한아이
24/11/12 11:58
수정 아이콘
아이를 데리고 19개월부터 센터 치료 다녔습니다. 다들 유난하고 예민하다고 했죠.
빅5중 한 곳에 갔고, 지능이 85는 될거라고 위로(?)를 해주시더군요. 그 이후로 미친듯이 센터 다니며 그냥 열심히 키웠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적응을 못하니 치료실에 들어와 있으란 말에 신생아인 둘째를 아기띠에 안고 벽을 보며 40분동안 서 있곤 했네요.

작년에 다시 검사를 받으니 지능은 정상, adhd 소견. 다른 빅5중 한 곳에서는 자폐 소견.
병원이름 말하기 뭣한데 자기들끼리 서로 못 믿는다고 연고전을(...)
서울대는 김붕년 교수님 진료가 돌아왔으나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이미 로컬에서 adhd 약을 처방받아 먹이는 중이고...
처방받은 약이 매우 잘 듣기도 하거니와 자폐 진단 나온다고 약이 달라지지도 않거든요.

지금 그 아이가 74개월이 되도록 말못할 시간이 흘러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사실 힘듭니다. 이제 초등학교 가려면 착석이고 뭐고 적응 시키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냥 고통스러워요.
저는 애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서 솔직한 말로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었습니다.
내가 신생아 때 이걸 못해줘서 그런가 후회, 내가 지금 이걸 안해줘서 그런가 후회, 종일이 후회로 점철되지요.
요즘엔 나 어릴 때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마저 들며 죄책감으로 마음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저 키워나갈 뿐이지요. 아이는 자라고, 나는 아이를 낳은, 아이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니까요.
글쓴 분께서는 저처럼 너무 스스로를 갉아 먹지 마시고, 지치지 않으시길 기도드립니다.
24/11/13 23:49
수정 아이콘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같은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나나 아내나 제발 그 사람의 이론이 맞기를, 그래서 내가 자폐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다시 말해 우리 막내도 나 정도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일 테니까.

이 부분에서 반전영화 본 것 마냥 띵했네요 부디 Poe님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아이에게도요
사부작
24/11/14 00:42
수정 아이콘
에고.. 막내도 그리고 다른 아이도 모두 자신의 행복을 찾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길러내는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으시기를..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662 [정치] 수능 지문에 나온 링크에 정치적 메세지를 삽입한 건 [34] 설탕물10335 24/11/14 10335 0
102661 [일반] 4만전자가 실화가 됐네요 [184] This-Plus12318 24/11/14 12318 4
102660 [정치] 이준석 : "기억이 나지 않는다" [427] 하이퍼나이프21362 24/11/14 21362 0
102659 [일반] 100년 전 사회과부도 속의 유럽을 알아보자 [26] 식별6508 24/11/14 6508 18
102658 [일반] 올해 수능 필적 확인란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 [26] 해바라기6844 24/11/14 6844 35
102657 [일반] PGR게시판의 역사(2002년~지금까지) [13] 오타니2411 24/11/14 2411 13
102655 [일반] 우리나라는 서비스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34] 깃털달린뱀4704 24/11/14 4704 5
102654 [정치] 尹 골프 갑작 방문에 10팀 취소시켜…"무례했다" [91] 전기쥐8140 24/11/14 8140 0
102653 [일반] 글래디에이터2 감상평(스포무) [11] 헝그르르3037 24/11/14 3037 1
102652 [일반] 바이든, 임기 종료 전 사퇴해 해리스를 첫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76] 뭉땡쓰10812 24/11/13 10812 12
102651 [일반] 유게 폐지 내지는 명칭 변경을 제안합니다 [221] 날라9761 24/11/13 9761 20
102650 [정치] 조국, 증시 급락에 “금투세 폐지하자던 분들 어디 갔느냐” [185] 갓기태11161 24/11/13 11161 0
102649 [일반]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 + 적립식 S&P500 투자의 장단점 [83] SOXL9986 24/11/13 9986 50
102648 [일반] 맥주의 기나긴 역사 [6] 식별3400 24/11/13 3400 20
102647 [정치]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대통령 욕하는 사람의 정체는?? [112] 체크카드11982 24/11/13 11982 0
102646 [일반] [속보] 트럼프, '정부효율부[DOGE]' 수장에 일론 머스크 발탁 [124] 마그데부르크10918 24/11/13 10918 0
102645 [일반] 서울사립초 규정어긴 중복지원 논란 [17] Mamba5452 24/11/13 5452 2
102643 [일반] 위스키와 브랜디의 핏빛 역사 [14] 식별4316 24/11/12 4316 37
102642 [일반] 경고 없는 연속 삭제는 너무 한 거 아닌가요? [210] 지나가던S14417 24/11/12 14417 95
102641 [일반] 코리아보드게임즈 "완경기" 번역 논란 [233] 마르코12841 24/11/12 12841 36
102639 [정치] 페미 이슈 관련 운영진의 편향적인 태도 [119] 굿럭감사12154 24/11/12 12154 0
102638 [일반] 피지알 정치글에 대한 기준 [53] 방구차야4656 24/11/12 4656 18
102637 [일반] 동덕여대 공학전환 논란과 시위 , 총장 입장문 (수정) [152] 유머10870 24/11/12 10870 1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