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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16 13:45:23
Name 오곡쿠키
Subject [일반] <조커2 : 폴리 아 되>에 관한 옹호론 (1,2편 스포有) (수정됨)
며칠 전 조커2편을 보았습니다. 평이 대체로 좋지 않아 큰 기대 없이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인상은 아마 제가 <조커> 1편을 비롯해 딱히 DC 유니버스의 팬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후술할 글에서 간략히 드러나는 제 예술관 때문인지도 모르겠고요. 어쨌거나 <조커2 : 폴리 아 되>의 예고편이 일종의 '낚시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감독이 관객들을 훈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감상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물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2편이 충분히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좋은 작품인 것으로 보여,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조금 풀어보고자 합니다. 나아가 이 작품에 가해지는 여러가지 비판들이 과연 이 작품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논거가 될 수 있는지도 간략히 논하고자 합니다. 



(스포 주의)



--


1. <조커> 1편의 위험성



 두괄식으로 표현하면 나는 <조커> 1편이 묘한 위험성을 내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부정하기 어렵게, <조커>는 아서플렉이 조커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분출시킨다. <조커>의 큰 줄기는 아서 플렉이 사회로부터 (소위 정상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광범위하게 배제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분노와 울분이 극단적인 범죄로 표출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서사적 구조 하에서, 와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와 점차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관객을 아서의 '통쾌한' 복수극에 쉽게 이입할 수 있게끔 기능한다. 물론 아서의 잔혹한 범죄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은 분명 눈을 질끈 감으며 조커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커> 후반부의 연출은 아서 플렉에게 고담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영웅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게끔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조커>1편 후반부의 아서에게서 빈자들을 위한 영웅의 아우라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오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타인에게서 한 줌의 인정과 공감과 주목을 원했을 뿐, 그에게는 어떤 정치적 동기도 없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주 의미심장하게도 작중의 아서플렉 또한 "나는 그런 정치 같은 것은 모른다"고 둘러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면피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조커> 1편의 후반부는 몇몇 핵심 장면을 통해 아서플렉(혹은 관객)의 시선을 가난한 자 대 부유한 자의 대립구도로 집중시키고 있고(가령 플렉의 감정이 이입된 소피가 부자들을 증오하는 대사, 빈자 대 부자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소요, 플렉과 머레이의 대화), 플렉이 가면을 쓴 군중들로부터 영웅 '조커'로 추앙받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고 폭발적으로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연출적 결과물을 놓고, 감독이 혹은 <조커>라는 영화가 이 같은 정치적 메시지(가령 "부자들을 쏴 죽여라")를 지지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아주 나이브할 것이다. <조커>의 개봉 이후 이 영화가 감정적 울분의 표출과 폭력성을 승인하는 영화라는 식의 논쟁이 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길게 논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구태여 <조커>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감독의 진의가 무엇이냐와 별개로,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정말이지 유력한 해석본이 어떤 것이 될 것이냐와 별개로, 이 영화가 관객을 어떤 식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을 논하기 위함이다.

 나는 <조커> 1편이 단지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커의 탄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안티 히어로물'의 일종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나 예술을 장르적 쾌감이나 유희의 획득을 위한 도구로서 접근하거나,  예술의 자율성 테제를 강하게 옹호하는 평자들은 특히 <조커>를 이런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오락(히어로물)은 오락일 뿐, 괜히 진지해지지 말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예술관을 구구절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와 같은 접근법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독법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커> 1편은 고담시를 배경으로 조커의 탄생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계층의 삶과 연결시키면서 모종의 사회심리학적 드라마의 위상을 획득하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조커>1편이 강한 정치적사회적 함의를 갖는 '르포'의 일환으로 읽혀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커>는 단순히 (예술적)감상과 유희의 대상인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단지 유쾌하게 밈화되어 소비되어야 하는 흔하디 흔한 안티 히어로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나에게 굉장히 기이하게 들린다. <조커>는 아주 정당하게도, 정치적 논쟁의 대상 혹은 매개체이다. 물론, 나는 <조커>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이 영화가 배제된 자들의 폭력성을 은연중 정당화하는지 아닌지의 차원에 머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실제로 <조커>에 대한 개봉 당시의 많은 비평들은 우리가 조커의 탄생과 관련하여 우리 자신 또한 되돌아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조커>라는 영화가 실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아서 플렉의 삶이 정말 불쌍한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소름끼치게 맥락 없는 웃음을 웃는 아서 플렉같은 '광인'을 어디까지 용인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 아니, 반대로 최소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애티튜드를 갖추지 못한 플렉에게 '일반인'들이 반감을 갖는 것이 과연 문제가 되는가? 어쩌면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무제한적 관용도 배제도 모두 답이 아니라고 할 때 그 사이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플렉의 '비정상성'이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복지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혹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에 기인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 말이다.

 누군가는 <조커>와 같은 대중 오락영화에서 이 같은 성찰이나 교훈의 지점을 운운하는 것은 나이브하다거나,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지 말라거나, 이 같은 문제의식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진부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논평할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영화는 시청각적 의미소들의 총체로 구성되는 '의미'의 총체로서, 거기서 '메시지'를 거세하는 것은 거의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그 의미의 총체에서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정보들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특유하게 갖는 강점이 메시지보다는 시청각적 표현이나 그것으로부터의 체험에 있다고 할지라도, 메시지로부터 자유롭거나 완벽하게 분리된 영상적 완성물 따위를 나는 단 한번도 접한 적이 없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아주 많은 경우에 영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조커>가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르포적 함의를 시각적 형상화의 방식으로 충분히 의미 있고 새롭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점은 <조커>의 작품성을 판가름 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인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플렉의 살인 행위는 그야말로 사이코패스적이고, 끔찍하며, 사회로부터 추방당해야 하는 것이고, 법적으로 유죄임이 너무나 명백하지만, 조커가 탄생하기까지 무언가가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못했음을(그것이 부모나 친구나 동료의 사랑이든, 제도의 지원이든) 또한 돌이켜봐야 한다는 것. 나는 이것이 비록 '진부한' 메시지이기는 해도, 영화 <조커>가 핵심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아서 플렉의 파괴적 복수극, 그리고 그것이 주는 은근한 카타르시스와 충분히 양립 가능하게끔 만드는 연출적 선택지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조커1>은 (내 관점에서 보면) 성찰과 쾌감을 양립시키는 것에 실패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도달하게 되면, 관객은 조커의 탄생에 관한 생애사심리드라마적 탐구의 과정을 시야에서 놓쳐 손쉽게 부자와 빈자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되고, 폭발하는 복수가 자아내는 카타르시스에 매료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되도록 이 영화는 구성되었다. 나는 이 영화의 오락성 혹은 쾌감이 아서 플렉이라는 취약계층을 발생시키는 미시적구조적 기제들로 다시금 눈을 돌리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커>의 전반부 또한 개선의 여지가 더 있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핵심적 실패의 지점은 후반부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2. 보완 : 만화경적 현미경



 <조커2 : 폴리 아 되>는 <조커>1편에서 발생했던 실패의 지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획인 것처럼 보인다. 그 기획은 다음의 슬로건으로 압축된다. 당신, 다시 아서의 목소리를 들어라. 조커가 아닌 아서의 목소리 말이다. 이는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만약 조커가 토크쇼 진행자인 머레이 플랭클린의 머리에 총알을 꽂아넣지 않았다면, 과연 <조커>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 가능했겠냐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질문이 우습다고 느낄 수 있겠다. 당연히, 영화이므로 가능한 그 무자비한 폭력이야말로 <조커>의 매력이자 열광의 포인트인 것이라고 말이다. 조커에 열광하지 말고 아서플렉에 주목하라는 주문은 어줍잖은 선민의식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조커2>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영화는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선은 마치 아서에게 '만화경적 현미경'을 들이미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아서플렉-조커'는 자기분열적 인물이며 제3자의 시선으로 그 성격을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나는 '아서플렉'이나 '조커'나 모두 많은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아서플렉은 정돈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끔하게 표현하는 능력 자체가 결여된 인물이다. 교육의 부재이든, 지속된 학대가 낳은 정신적 피폐상태이든, 모종의 이유들로 인해 그는 소위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든 인물이 되어 있다. 조커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커는 카오스의 화신이다.

 나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목소리를 비추고자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엄밀히 보자면, 특히나 아서플렉의 내적 자기분열상태와 언어능력의 결여로 말미암아, '아서플렉'에 대한 관찰은 '조커'에 대한 관찰과 쉽사리 분리되지 않는다. 초반의 취조실에서 변호사는 아서에게 (아마도)사형죄를 피할 수 있는 전략을 설명한다. 그런데 변호사로부터 연이어 이어지는 질문에 어떤 속시원한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담배를 요구하거나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 사람은 아서 플렉일까 혹은 조커일까?

 물론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아캄수용소와 법정에서 주로 목도하게 되는 인물이 아마도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임이 유력하다는 증거들이 등장한다. 1편에서보다 더욱 피골이 상접한 이 인물에게는 조커가 보여주던 표독스런 광기가 다소간 거세되어있다. 그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이고, 다시금 타인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통한 새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있다. 이는 누가 봐도 조커라기보다 아서 플렉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위태롭고 나약한 아서플렉은 끊임없이 조커라는 망령이자 유혹에 시달린다. 그는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고, 조커를 연기하는 것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망령). 하지만 동시에 조커를 연기하는 것은 사랑과 주목을, 그리고 자신을 바보취급 하는 사회를 향한 통쾌한 반항을 가능케한다(유혹). 아서는 결국 그 유혹에 굴복하여 조커가 되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자주색 양복을 입고 조커 분장을 한 그는 과연 어디까지 '조커'인 것일까? 엄밀히 말해 우리는 결코 작중 등장하는 아서플렉-조커를 한 가지 모습으로, 한 가지의 자아로 쉽사리 재단할 수 없다. 우리는(관객은) 만화경을 통해 그를 보고 있다. 그는 분열적이고 다층적이므로, 그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필연적으로 다의적이다. 이를테면 아서플렉-조커의 자아는 은밀하게, 혹은 아주 명백하게 착종되어 있다. 이 둘은 무 자르듯이 구분될 수 없다. 일견 아서는 분장과 착장을 통해 이 둘 사이를 분절적으로 넘나드는 듯 보이지만, 내면의 심리의 차원에서 이 둘은 결코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그가 뮤지컬로 표현되는 몽환 속에서 조커의 모습으로 노래할 때조차 거기에는 분명 아서플렉의 울분과 소망이 강하게 녹아들어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를테면 '아서플렉-조커'에게 만화경적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만화경적이라는 것은 아서플렉-조커의 분열성 혹은 다층성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이다. 현미경이라는 것은 아서플렉-조커의 내면에 깊게 파고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과 몽환 사이의 넘나듦, 내면적 자기분열, 변호사와 할리퀸 양자에 대한 믿음과 불신의 혼재상황은  (적어도 플렉의 목소리에 대한 인내심을 갖고 있는 관객에게는) 아서플렉-조커라는 인물을 둘러싼 진실들, 그의 본심(사실 그에게 본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이것 자체가 물음의 대상이다), 끊임없는 분열적 상황 에서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그가 최후에 내리게 될 선택 등에 관하여 이입하고 반추하게 만든다. 요컨대 <조커2 : 폴리 아 되>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또한 강박적으로 아서플렉의 목소리를 들어보게끔(혹은 상상하게끔) 우리를 안내한다.

 물론, 영화의 종반부에 이를수록 우리는 '아서플렉-조커'가 표면적으로 아서플렉으로 등장하든 조커로 등장하든 간에 언제나 갖고 있는 특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어느 경우에든 그가 절박하리만치 '타인'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아서플렉은 말할 것도 없고, 조커 또한 타인의 주목과 권력의지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서플렉-조커'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카오스 그 자체인 '조커'라기보다는 누구보다도 타인을 욕망하는 연약하고도 자연스러운 인간인 '아서플렉'에 더 가깝다는 것이 매우 유력한 설명일 것이다.

 종합하면, 아서플렉-조커는 결국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투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전투이다. 그가 (어쨌든 개념적으로는 구분되는) '아서플렉'이 되기를 선택하든 '조커'가 되기를 선택하든 이는 마찬가지이다. 최후의 변론에서 그는 "조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궁극적으로 인간 아서플렉으로 남고자 하지만, 그는 결코 아서플렉이 될 수 없다. 그는 진실로서의 자신, '더 리얼'로서의 아서플렉을 대면할 수 없다. 현실로서의 아서플렉에게는 학대와 상처의 트라우마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학대와 상처의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가 그에게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그는 조커일 수도 없다. 조커는 단지 타인들로부터 요구되는 이미지이자 기호일 뿐(혹은, 단지 공유된 망상 : 폴리 아 되일 뿐) 단 한 순간도 현실의 아서플렉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커를 연기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신을 숨막히게하고 옭아매기때문이다. 아서플렉-조커는 아서플렉일수도 없고, 조커일 수도 없다. 그래서 그가 어떤 자아를 '선택'하든, 그것은 그 자신을 패배와 저주의 구렁텅이로 이끈다. 이 영화는 아서플렉-조커의 혼란스러운 분열적 내면, 그 사이의 넘나듦 혹은 그 양자의 착종,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 그 딜레마로부터 도달하는 종착역으로서의 철저한 고갈과 파멸을 아주 음침하고 암울하며 충격적인 영상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 <조커2>의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 관하여



 <조커>1편이 후반부에 이르러 은근하게 조커에게 영웅의 아우라를 덧입히면서 '아서플렉'대신 '조커'에 열광하도록 우리를 유도한 반면, <조커2>는 철저하게 '조커'가 아닌 '아서플렉'에게 이입하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혹자는 토드 필립스의 이 같은 선택을 <조커>1편에 대해 가해진 정치적 비판에 대한 수용이자 응답인 것으로 본다. <조커>1편이 소위 '배제된 자들'의 분노를 대리적으로 표출하고 정당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자신(토드 필립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음을 소명하기 위해 속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1편의 진의는 '아서플렉'의 삶에 대한 탐구이자 성찰이었지 폭력적 카타르시스에 대한 탐닉이 결코 아니었다고 변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조커2>에서 조커를 숭앙하는 무리들(할리퀸과 군중들)은 어쩌면 현실의 관객에 대한 유비이고, 토드 필립스는 조커에 열광하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너희들 그러지 말라"고 힐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그래서 이는 광범위한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토드 필립스가 속편에서 보여준 선택에 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것이다. 크게는 왜 우리가 '조커'를 보러가서 '아서플렉'의 추레한 동어반복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부정적 반응과, '조커'에 대한 창작적 해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물의 장르적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낸 이 작품의 의의를 주목해야 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정적 평가의 양상은 다양할 것이긴 한데, 어쨌든 평단의 다수는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 나의 입장은 후자에 가깝다. <조커2>에 대한 앞서의 장황한 서술들은 이 영화의 작품성을 옹호하기 위한 나름의 논변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그 옹호가 꼭 성공적일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나는 <조커2>가 장르적 창의성, 예측되는 연출 의도에 아주 잘 부합하는 전개의 속도와 형식, 탐미적 과감성, 정치적 타당성 혹은 윤리, 전작과의 적절한 메타적 관계, 현실 사회에 대한 논평적 성격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조커>1편의 예술적 완성도를 뛰어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1편이 여전히 더 나은 작품이라는 주장이나, <조커2>에서 발견되는 여러 결함들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이러한 주장(의견)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주장들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내 견해의 어떤 부분이 수정보완되기도 하고 <조커> 시리즈가 갖는 예술적 의미가 한층 더 풍성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전제를 덧붙이고 싶다. <조커2>의 작품성에 대한 논쟁에 있어 우리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인내심 혹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조커2>는 핵심적으로 아서 플렉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아서플렉의 목소리에 주목해주지 않는 관객들을 향해 마치 울분을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의 작품성이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그 '(아서의)목소리'가 얼마나 적절하게 예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그 '울분'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효한지에 관한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온당한 평가의 과정은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것,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에 관한 기본적인 경청을 전제로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거나, 비참한 패배자일 뿐인 아서 플렉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다거나, 아서의 동어 반복(우리는 그가 동어반복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린 존재임을 아주 쉽게 망각한다)이 지루하다는식의 논평은 이 영화에 대한 타당한 평가로서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감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우리가 평론의 영역에서 주관주의로 침몰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대중적 선호의 영역에서도, 작품성에 대한 평론의 영역에서도 아서플렉은 외면받고 있다. 나는 다만 후자의 영역에서, 이 영화에 대한 외면은 그 근거가 부실하다고 생각한다. <조커2>는 토드 필립스가 전작의 맹점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하게 시도하는 예술적 실험으로서 상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에서 관객에게 외면받을지언정, 적어도 평론의 영역에서 아서플렉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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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6 13:53
수정 아이콘
쓰면 제재 받는 단어 쓰셔서 수정 하셔야 될 것 같네요
통합규정
24/10/16 13:57
수정 아이콘
저도 똑같은 단어 사용해서 벌점 먹었고 자유 게시판 운영위원님이 명백하게 혐오워딩이라고 못 박아 말하셨어요.

빨리 수정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13:58
수정 아이콘
아마

'인~'

단어를 말하시는 것 같군요. 수정하겠습니다.
불쌍한오빠
24/10/16 13:58
수정 아이콘
저는 조커2가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아서 플렉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영화가 조커2 였다는게 아쉽고 대부분의 관객들도 그걸 바라지 않았다고 보고요

사실 영화 이름이
<조커 : 폴리 아 되> 보단
<아서 플렉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가 더 어울립니다
오곡쿠키
24/10/16 14:09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대다수 관객의 기대에 반하고 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다는 점에는 아마 반박의 여지가 없겠지요.

적어주신 제목과 관련해서도, 이 영화에 기대를 한 관객들이 영화를 '미안해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라는 변명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짜증난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 작품을 '변명'이라기보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더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특히나 1편과의 연속성(보완관계)과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고려하면 <조커 : 폴리 아 되>라는 제목은 충분히 일리 있는 제목일 것이겠구요.
24/10/16 14:19
수정 아이콘
뮤지컬 부분이 조커&할리쇼에서만 국한되어서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었습니다. 너무 잦은 노래의 개입이 극의 흐름을 계속 끊어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곡쿠키
24/10/16 14:25
수정 아이콘
말씀해주신 평(뮤지컬이 너무 잦다, 과하다)이 지배적인데 저는 애초에 이런 평을 알고 봐서 그런지 과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몰입이 잘 됐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다만 저는 노래가 활용된 장면들은 충분히 아서가 공상(뮤지컬)을 실행시킬만한 상황이었다고 봐서, 지루하거나 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것과 별개로 작품 내적인 정당화는 충분히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라멜로
24/10/16 14:21
수정 아이콘
메세지에 대해 고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게마저 좋은 평을 못 듣는 이유는
오히려 그 메세지가 특별하다거나 신선하다거나 상상하지도 못 했던 반전이라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조커를 비튼다고 생각했을 때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클리셰에 가깝습니다 관객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수준도 아니에요
반면 그 메세지를 전달하는 과정은 너무 지루했고 특히나 뮤지컬 부분은 대부분 평론가 관객들이 불호로 꼽는 부분이고
오곡쿠키
24/10/16 14:32
수정 아이콘
저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딱 적어주신 반응만을 접했는데요. 의견에 대한 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실 영화에서 메시지를 추출하자면 우리가 어떤 걸작을 들고와도 그것이 진부하지 않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은 사실 이런 의미에서 유효한 것이기도 하겠죠. 글에서도 밝혔듯이, 영화의 핵심은 메시지보다는 시청각적 표현물(및 그것이 자아내는 효과)에 가깝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본문에선 명료하게 서술하지 못한 바이기도 한데, 저는 어쨌든 궁극적으로 시청각적 효과 + 메시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커2>도 메시지 자체는 진부하겠죠. 다만 그것의 시청각적 표현으로서의 결과가 꽤 완성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자.

"지루"나 "불호"의 부분은 그렇게 느끼셨다면 당연히 존중드리는 바입니다. 다만 반대로 소수이지만 이 영화를 재밌게, 몰입해서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요. 본문은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라멜로
24/10/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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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생각이에요 저도 메세지보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마 대부분 영화 평론가 분들도 그럴거에요 메세지가 진부하지 않기란 굉장히 어려우니까
특히나 영화를 몇천 편을 보신 분들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메세지가 불호여서 반응이 안 좋다는 관점은 반의 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글쓴 분께서는 그 시청각적 효과에 만족하셨다고 하지만 저도 그랬고 해외 평론가들의 평들도 대부분 지루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더라고요
결국 전달과정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사람들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거고
Rorschach
24/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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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제일 큰 문제는 예고편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기는 그냥 대놓고 관객 대상으로 영화 외적으로 사기 친 거라서 논외로 하고,

불호에 가깝지만 막 영화가 엉망이라거나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2편이 감독이 1편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그럴 거라면 아서의 상승과 하강이 이렇게 5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나올 것이 아니라 한 편에 몰아서 완결성 있게 끝이 났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렇게 됐으면 아서플렉이라는 인물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광기가 고담을 사로잡고, 그 광기에 휩싸여버린 고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조커가 등장할 수 있었겠구나 하고 사람들이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요. (물론 감독의 의도는 조커의 등장 그 자체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어쨌든 개인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이유는,
첫째는 이 영화가 'inspired by'가 아니라 'based on'이면서 '조커'라는 제목을 전면에 달고 나온 것이라는 부분과,
1편의 마지막 씬(경찰차 씬 말고 상담 씬)에서 아서가 이제 더 이상 아서가 아니라 조커라는 존재가 된 것 처럼 이미 표현을 했었던 부분 때문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제가 기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은 것이 제일 아쉽긴 했었습니다. 할리 퀸젤이 조커에 의해 할리 퀸이 되는 과정을 토드 필립스 감독이 어떻게 그릴 지가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크크
오곡쿠키
24/10/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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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의 경우는 일종의 반전효과를 노린건지, 그냥 흥행을 좇은 기만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도 있는 것으로 보아 좋게 해석하긴 어렵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불호인 2가지 근거에 대해선, 일단 속편이 based on의 성격을 갖는다고 해도 "폴리 아 되"라는 부제가 있기 때문에 조커라는 단어를 쓰는게 이상한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만, 이게 관객에게 묘한 기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거의 전적그로 수긍하는 바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네요. 전편의 엔딩에 저는 (도저히 아서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의미의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조커적인 혼돈을 긍정하는 농담으로 봤습니다) 갸우뚱 했던 것인데요. 저는 그런 엔딩을 속편에서 부정하기에 오히려 좋게 본 것입니다. 다만 연결의 정합성으로 본다면 박하게 평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할리 퀸이 어떤 캐릭터인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에, 온도차가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4/10/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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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보고 나와서는 너무 실망하고 굳이 이런식으로 만들어야 했나 그 순간엔 너무 별로였는데,
시간도 지나면서 이런저런 평과 해석도 보다보니
그래 뭐 이런 조커 영화도 있을 수 있지로 바뀌었습니다. 비판 받을 부분은 여전히 많지만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다만 제 기대치에 충족 못한 것은 맞기에 처음 매겼던 개인적인 별점은 올려주진 않았네요.
24/10/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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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걸 잘 풀어쓰셨네요. 조커2는 조커1의 수정본으로 해석하면 나름 이해는 되는데 어쨌든 제작진이 아차차 하면서 핸들을 너무 과격하게 꺽다 보니 관객들은 멀미를 느끼는 상황 같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4/10/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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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과 조커2가 별로라고 하시는 분들이.. 서로 완전 다른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닌가.. 싶어요.. 논의의 지점이 형성되어야 서로간의 토론이 되는데,,,,, 어차피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의 포인트에 딱히 '조커2가 나쁘다고 하시는 분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반대로 '조커2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은 걍 영화를 영화자체로 봤을 뿐이고 '조커2가 나쁘다고 하시는 분들'은 영화자체로만 보기에는 내가 쓴 돈과 시간이 너무 억울한 것이고..
오곡쿠키
24/10/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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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래서

'정말 이 작품의 작품성이 정말 그렇게 나쁜 것이냐' 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조커2가 좋았다는 사람들의 포인트에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맞다면, 적어도 평단의 평가가 왜 이리 박한지는 설명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씨네21에 올라온 기고문 정도를 읽어봤는데, 이 작품이 왜 구린지에 대한 속시원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지루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겠냐', '쓸데없이 가르치려 든다' 등은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라고 보이진 않거든요(그게 의미 없는 의견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위 댓글에서 1편의 마무리랑 연결 지어 2편의 스탠스는 정합적이지 못하다 정도의 비판 등이 제시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24/10/1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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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또 이동진씨의 파이아키아 댓글을 보면 딱히 그런것만 같지도 않은것도 사실입니다. 반론제기는 양반이고 온갖 인신공격도 난무하던 지경이라…
24/10/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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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전제하고 말하자면(1은 개봉때 보았고 그 뒤로도 몇 차례 vod에서 정주행하기도 했습니다)…

전 대중의 냉대는 그렇다 치고 평단에서도 대체적으로 폴리아되의 평가가 박한 건 결국 평단에서도 이 영화를 [히어로물]로서 해석하는/보는 시각이 강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 밀씀해 주신 부분 인용하면

[나는 <조커> 1편이 단지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커의 탄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안티 히어로물'의 일종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나 예술을 장르적 쾌감이나 유희의 획득을 위한 도구로서 접근하거나,  예술의 자율성 테제를 강하게 옹호하는 평자들은 특히 <조커>를 이런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제가 보기에 평단에서도 대체적으로는 이 시각에서 조커1도 그렇고 폴리아되도 보는 입장들이 많았거든요. 이것인 즉슨 기존 히어로물의 문법 안에서 이 영화를 평가하는 셈이고 다른 부분 인용하면 장르의 외부에서 이 영화를 볼 때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물의 장르적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낸] 이라고 평가가 가능하겠으나, 슈퍼맨/배트맨 등 전통적인 dc유니버스나 얼마 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마블 유니버스가 만들어낸 히어로물의 문법에서 이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저런 해석을 하기가 어려워지겠죠. 
+ 24/10/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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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가진 메세지나 표현 방식에 중심을 두고 관람한 사람들은 좋은 평을 하는 것 같고,
그 메세지나 표현 방식을 왜 조커 라는 제목으로 해야 하느냐 생각하는 사람은 악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후자의 생각을 갖는 것 같구요.
시드라
+ 24/10/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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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는 조커 1을 재미있게 봤고 조커 2는 부제를 듣는순간 느낌이 좋지 않아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고
유튜브나 리뷰어 글 등으로 조커2 스포일러를 다양하게 접한 후 관람을 포기한 사람으로
수많은 조커 2 비평글을 본 후에 내린 이 영화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조커 시리즈는 예술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목적관객층에 있어서는 상업영화가 일반대중을 목적관객층으로 삼는 반면 예술영화는 특정 마니아 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생산주체의 부분에서 상업영화는 프로듀서 중심의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했고 예술영화는 감독이 중심역할을 하면서 제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간극 -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 DBpia

상업 영화는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플롯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를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한 영화고, 돈을 벌기 위해 일반인들이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가져 온다는 뜻이지요

조커 1은 그런 의미에서 상업 영화로써의 성격을 만족함과 동시에 예술 영화로써의 영역까지 일부 가져간 대작입니다
조커 1편을 극장에서 보기로 선택한 관객 대부분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재해석 했을지 기대하면서 들어왔는데
기존의 역대급 조커에 전혀 밀리지 않고, 기존 조커들이 보여주지 못한 조커의 탄생을 맛깔나게 보여주면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만화 속 조커를 영화로 그대로 옮겼다는 극찬을 받았고,
히스 레저의 조커는 조커 특유의 광기 카리스마를 자기 식으로 재해석을 멋지게 해서 극찬을 받았죠
이 두 조커를 본 관객들은 역대급 조커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심리를 가지고 조커 영화들을 보러오는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1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서 플렉이 어떻게 조커가 되는지를 멋지게 묘사하면서 역대급 조커가 또다시 탄생했습니다

조커 1 마지막은 조커의 탄생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관객들은 이 작품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동시에
후속작이 나온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리고 조커 2 : 폴리 아 되 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관객들은 호아킨의 조커를 또 볼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감으로 극장에 찾아왔는데
그들이 본건 조커가 아닌 인간 아서 플렉의 이야기 였고 갑자기 1편에서 보이지도 않던 뮤지컬이 시도 떄도 없이 등장하면서 산만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에 인간 아서 플렉은 조커를 자기 반성 하면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조커 시리즈는 예술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고 무수한 후원을 받고 감독이 만든 상업 작품입니다
그리고 조커라는 캐릭터는 자기 반성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가졌지만
뛰어난 지능과 악마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적으로 보이는 초인들을 농락하는 악당 오브 악당이지요

특히 코믹스로 조커를 접한 서양인들은 조커 하면 이런 이미지가 확고하고 그걸 기대하고 갔는데
감독은 응 니가 기대하는 조커는 없어 너네가 관심없는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를 난 만들꺼야 그리고 뮤지컬로 아서의 감정을 표현할꺼야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조커는 죽었어 인간 아서 플렉만 남았어 라며 조커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빅 통수를 날립니다

이 영화는 다시 말하지만 상업 영화고, 상업 영화면 관객들은 기존 플롯과 설정이 유지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길 기대하는데
감독은 상업 영화를 예술 영화로 만들어 버리면서 1편의 스토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이 재 해석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 시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만듬새와 무관하게 욕을 먹고 흥행도 참패했고,
감독은 커리어를 스스로 망쳤고, 쩐주는 감독을 믿었다가 돈을 못벌어서 화가나고,
관객은 기대를 배신당하면서 헛돈을 날렸다는 생각과 강제로 주입당한 스토리에 기분 나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년 간 지겹도록 봤습니다 PC, 페미들에게서요
물론 그들 대부분은 토드 필립스만큼의 능력이 안되지만 그들이나 토드나 관객에게 내 얘기를 들어! 라고 강제로 주입한건 똑같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안되서 기존 시리즈 작품에 강제로 영향력을 행사해서 멀쩡한 작품을 망쳤고, 토드 감독은 제 손으로 조커 시리즈를 끝냈습니다

이제 조커3 만든다고 누가 보러 올까요? 토드 감독은 피쟐에서 표현할 수 없는 그 단어의 왕으로 불리는게 정말 싫었다고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아니면 자기 커리어를 걸고 이렇게 관객들 통수를 칠 수 없어요

조커 2 : 폴리 아 되는 단독 작품으로만 보면 뮤지컬 파트가 과하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업 영화의 시리즈 영화고, 조커 1에서 이어졌던 모든 기조를 제 손으로 반박하고 박살냈다는 점에서 라오어 파트2와 매우 비슷합니다

라오어는 제 인생게임 중 하나이자 많은 사람들의 인생 게임으로 라오어 2 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떄 전세계 모든 게이머가 기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파트2는 제 손으로 게임의 아이덴티티를 박살내고 자신의 사상을 강제로 주입시키면서 망했습니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못 판 작품은 아닌데 라오어1 판매량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죠

저는 라오어 파트2를 안했지만 이걸 굳이 찍어먹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스토리는 쉣인데 게임성은 좋다 특히 로프 액션은 이게 가능한 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등 스토리 외적으로는 좋은 평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라오어 시리즈의 정체성은 조엘과 엘리의 여행 스토리이고 그 스토리를 박살내면 아무리 게임을 잘 만들어도 의미가 퇴색되는 겁니다
중앙 가지를 박살냈는데 겉가지 잘만든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조커 2 : 폴리 아 되 도 조커라는 캐릭터를 박살내고 감독이 인간 아서 플렉을 관객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킨 순간 사실상 망한 겁니다
영화 조커 시리즈의 정체성은 조커라는 캐릭터고 조커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대하고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감독은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를 강제로 주입하면서 영화의 정체성인 조커를 제 손으로 박살내는데
이런 모습은 라오어 라는 걸작을 만들고 파트2에서 스스로 박살낸 닐 드럭만하고 다를바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예술 영화였다면 조커 2는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조커의 또다른 일면을 재조명하는 좋은 영화로 평가 받았을 껍니다
예술 영화에서는 뭐가 나와도 문제 없고 어떤 신선함을 받을지 기대한 관객에게 인간 아서 플렉 이야기는 정말 새로울 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스폰서의 후원을 받는 상업 영화이자 기존에 이미 조커라는 확고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조커 1에서 조커의 탄생을 마지막에 본 관객들이 새롭게 탄생한 조커가 2편에서 어떻게 활약할지를 기대하고 왔는데,
감독은 관객의 이런 마음을 알면서 무시한건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부정하고 죽이면서 인간 아서 플렉을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망했고 조커 시리즈는 끝났습니다
토드 감독은 제 손으로 조커를 만들었고 제 손으로 조커를 끝장 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이제 막을 내렸고 더 회생할 여지도 없습니다
밤가이
+ 24/10/16 17:54
수정 아이콘
전 말이 안되는 부분을 다 아서의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니 1편에서 전혀 진행된 이야기가 없는 상태가 되네요.
5~6명을 살해한 사람을 정신병원의 일반 환자들과 같이 노래수업을 받게하는 것, 리 퀜젤이 독방에 들어올수 있다는 것, 재판을 조커분장을 하고 받을 수 있는 것, 폭파가 일어나고 폭파의 가장 앞에 있던 아서는 다치지 않은 점, 계단을 올라가 이야기나 올라가는데 알아서 켜지는 전등, 면회올 사람도 없지만 면회를 가면서 복도에 방치한 점 등 말이 안되는 부분을 다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니 그냥 1편에서 감옥에 갇혀 망상을 한것을 그냥 본 느낌이라 이야기는 없고 분위기 좋은 쇼만 구경한 느낌입니다. 색감이나 분위기 연기가 좋아서 지루하진 않았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없었네요. 감독이 전작의 비판을 고려하여 후속편을 만들었다기 보다 이야기는 끝났는데 호아킨 피닉스의 꿈이라는 단하나의 장면 아니디어로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조커가 부르는 노래만 남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롤격발매기원
+ 24/10/16 19:23
수정 아이콘
메시지 전달이 잘됫으면 흥행이 망하지도 않았겠죠
10명중에 9명이 메시지에 흥미가 없으면
전달방법이 잘못된거고요
아빠는외계인
+ 24/10/16 19:25
수정 아이콘
조커2를 보지는 않았지만 조커1에 대한 평가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는 그 단점이 굉장히 치명적이라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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