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힙 원탑 민희진의 정동의 힘
-미디어는 어떻게 여론이 되는가
<1> 국힙 원탑 민희진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HYBE)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하이브에는 어도어(ADOR)라는 자회사가 있는데, 여기서 배출된 아이돌이 K-POP의 자랑 뉴진스(NewJeans)다. 문제는 어도어의 대표이사이자 뉴진스의 오피스맘인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인데, 정말?
사태가 터지고 나서 한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하이브 주식을 보유한 주주로 속 터지고 있었다. 분쟁 이후 주식은 다이빙을 할 폼이었고, 무엇보다 불확실성을 미워하는 것이 시장이란 동물이다. 녀석은 하이브의 편이었는데, 민희진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건 선을 훌쩍 넘은 것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뉴진스를 하이브에서 빼가는 것이기에 절대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
나는 주주도 아니고, 내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했기에, 그냥 저냥 들어줬다. 그래도 뉴진스의 음악을 즐겨 듣는 1인이라 파국이 되지 않기를 막연히 바랄 따름이었다. 그랬는데, 텔레비전에 민희진이 나왔다. 그래서 친구의 연락도 왔다.
나는 강의가 있어서,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나왔고, 마치고 돌아오니, 친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희진이 자폭을 했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 아이고, 속이 후련하다.” 그려.
어도어의 경영권 분쟁이 워낙 큰 이슈여서 나름 눈팅은 하고 있던 터라, 지배적 여론이 하이브 쪽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즐겨 가던 커뮤니티의 여론도 그랬고, 종종 가던 곳도 그랬으며, 궁금해서 오랜만에 가본 곳도 그런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즐겨 가 던 곳도 종종 가 던 곳도 드물게 가 던 곳도 민희진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야, 넌 뭘 본 거니?”
궁금해서 기자회견 영상을 찾아봤는데, ‘뭐야-이게 몇 시간이야?’ 했기에 편집된 영상을 조회수가 높은 순으로 봤다. 보니, 민희진은 어도어의 대표라기보다는 거대기업에 저항하는 다윗이었고, 국힙의 구세주였으며, 무엇보다 뉴진스의 엄마였다. 변호사가 제지를 하거나 말거나, 그냥 울고, 웃고, 욕하고, 도발하고, 내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록스타 그 자체였다. 그걸 보니, 사실은 모르겠고,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친구 놈은 “에라이, 배웠다는 놈이 그러냐?”고 일갈하면서, 기자회견에서 나온 주장을 반박하는 하이브의 문건을 보여줬다. 나는 “아, 그렇구나” 했지만, 그 문건에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친구는 바뀐 여론이 어이없다면서 남조선 민중에 대한 비하발언을 해댔다. 그러고는 인터넷 급등 동영상이 아니라, 이 문건을 국민들이 봐야한다는 훈장님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걸 사람들이 보게 되면 어차피 여론은 다시 바뀔 거다. 민희진 가증스러운 엑스” 정말?
<2> 정동의 힘
하이브 측도 민희진 측도 나름의 자료를 공개했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이브의 스토리텔링과 민희진의 스토리텔링이 자료의 공백을 틈타 다투고 있고, 우리는 거기서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혹은 더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믿고 싶다. 그 믿음은 추후 법정의 판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더 강화될 수도 있으며, 혹은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 질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친구가 쏟아 내던 팩트체크에 시달리면서도 나의 마음이 민희진의 편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하이브 스토리텔링의 허점에 더 주목하게 되고, 민희진의 오류에 대해서는 그저 말실수로 넘기려는 태도가 생겼다. 이런 인간들이 남조선에는 우글우글하기에 하이브의 팩트 운운은 여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실은 모르겠고, 우리는 민희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난 책이 있는데, 이토 마모루의 『정동의 힘』이다. 여기에는 일본 사회를 뜨겁게 만든 ‘가메다 부자’ 사건에 대한 분석이 있다. 당시 가메다 일가는 침체된 일본 복싱계를 부활시킬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었는데, 2007년 10월 11일에 있었던 가메다 다이키의 WBC 타이틀매치가 문제가 된다. 시합 당시 ‘팔꿈치로 눈을 찔러’라고 한 가메다 고키의 발언과 아버지 시로가 반칙을 사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벌어진다. 이로써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되고, 일본 복싱 위원회는 징계를 내린다. 아버지 시로에게는 ‘세컨드 자격 무기한 정지’, 가메다 다이키에게는 ‘복서 자격 1년 정지’, 고키에게는 ‘엄중경고’ 처분이 내려진다.
가메다 일가의 장남인 고키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악역’을 가장하던 인물로 특히 더 많은 비난을 받는데, 징계 처분 후 회견을 갖는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보게 된 고키는 기존의 자신만만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정면을 응시하며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불쌍한 20세의 청년이다. “눈에 가득 머금은 눈물을 꾹 참는 표정, 때로는 그 눈물이 흘러 떨어질 것 같은 표정, 입술을 앙다물며 참는 표정, 가혹한 질문을 받고 궁지에 몰려 당황하고 곤혹스러워하는 표정, 의표를 찌르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무표정”해지며 멍이 나가는 얼굴까지 보인다.
당시 신뢰받던 한 리포터가 고키의 회견에서 가메다 일가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한 질문과 추궁을 하게 되는데, 그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할수록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 회견은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상한 반응이 나온다. 회견을 지켜 본 네티즌들은 리포터가 말하는 방식과 어조, 목소리 톤 등을 문제 삼으며 비난을 하는 것이다. 리포터가 사실을 기반으로 혹은 합리적 추론을 토대로 추궁을 하면 할수록 고키는 궁지에 몰려 허둥지둥했고, 네티즌들은 그럴수록 리포터의 신상을 털려고 한다. 리포터의 언변이 탁월해 갈수록 점점 비호감이 되가고, 그에 비례하여 영혼이 갈려나가는 고키는 점점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회견 이후 가메다 부자를 둘러싼 분위기가 역전된다. 70%를 훌쩍 넘던 ‘가메다 부자’에 대한 비난여론은 온데 간데 없고, 고키에 대한 동정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일본 복싱 위원회 사무국도 징계가 가혹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가메다 부자가 겪어야 했던 문제는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지속될 자신들의 불명예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해야 했던 회견이 이들에게 전하위복의 계기가 된다. 이것은 고키의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국 “잘못한 것은 맞지만, 사과도 했고, 또 아직은 미숙한 청년이 아닌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는가?”라는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토 마모루는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가능하게 된 효과라고 분석한다. 만약 이 회견이 신문으로만 보도 되었다면, 리포트는 훌륭히 자기 일을 했고, 가해자인 고키는 역시 잘못한 놈으로 남았을 것이다. 또는 텔레비전으로만 보도 되었어도 기껏해야 함께 시청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해 볼 것이고, 압도적 여론을 뒤집을 힘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 즉 실시간으로 인터넷 영상화가 되고, 이것을 보면서 네트즌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또 밈을 만들어 유포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그럭저럭 질문을 받아 넘기던 고키는 리포트의 추궁이 탁월해질수록 멘탈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그렇게 탈탈 털리는 얼굴은 스스로도 컨트롤 할 수 없는 진심을 담게 된다. 부끄러움, 당혹스러움, 죄스러움, 순진함, 어리석고 어린 소년의 모습.
당시의 회견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고키의 피땀눈물을 보았고, 이것은 힘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민희진의 피땀눈물을 보았고, 이것은 힘이 있다. 나는 하이브의 주주도 아니고, 그저 뉴진스의 베스트를 계속 보고 싶은 1인이기에 친구의 논리에 동의하다가도 마음은 딴 데 간다. 정동(affect)이라는 개념을 꽤나 읽어 왔지만,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하이브 사태를 경험하면서 느끼게 된다. ‘아, 이게 정동의 힘인가?’
아무쪼록 이 사단이 잘 정리가 돼서 하이브 주식도 오르고, 어도어도 망가지지 않고, 무엇보다 뉴진스가 무탈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