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6/09/22 10:29:07
Name 리니짐
Subject 나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은 이렇습니다.
        - 황제 출동하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몇 해 전 듀얼 토너먼트에서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스타리그로 가기 위해 이름 모를 저그 신인 유저와 최종 진출전에서 만납니다. 기욤 패트리의 캐리어와 강도경의 디바우러 가디언이 결승전 어느 섬맵에서 맞붙는 장관에 매료되어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보게 된 세대의 한 사람으로 임요환이라는 이름은 그의 등장 이후 곧 나에게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립니다. 임요환은 테란이었고, 스타크래프트였고, 스타 방송을 꼼꼼히 챙겨보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간의 슬럼프를 겪었는지 한참만에 듀얼토너먼트를 뚫고 스타리그에 진출하려 합니다. 그동안 서지훈, 이윤열, 최연성 외에도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테란 유저들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지만 늘 내 관심은 임요환의 행보였습니다. 그가 드디어 스타리그로 가는 길에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맵 남자이야기에서 펼쳐진 그 최종진출전, 물론 난 임요환을 응원합니다. 그 바람은 늘 비슷합니다. 한 때 무적이었던 임요환이라는 이름이 주는 선망과, 그 선망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드는 작은 불안과 흥분이 뒤섞인 느낌은, 김동수와의 결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고 난 후, 다음 리그 16강 탈락을 하게 되면서 한결같습니다.
        그 경기, 임요환은 내내 유리했었지만 지고 맙니다. 상대였던 신예 저그 유저의 막판 휘몰아치는 공격에 갈팡질팡하며 병력을 소진하고 저글링 러커에 결국 지지를 칩니다. 허탈한 마음입니다. 임요환의 진출이 결국 막히다니.
        그 후 그 신예 저그 유저는 나에게 혹독한 혹평을 듣습니다.
        - 아, 실력도 없는 저그 유저 하나가 임요환을 떨어트리고 스타리그 물을 흐리는구나.

        그다음 기억은 노스탤지어입니다. 3시 부근, 마린 병력과 저글링 러커의 병력이 이제라도 곧 뒤엉켜 휘몰아칠 듯 위태위태합니다. 서지훈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드는 생각은, ‘정말 단단한 김정민’이었습니다. 먼저 달려든 것이 저글링이었는지 마린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순간 속으로 흠칫 놀라 조금 멍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지훈을 유독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늘 강한 게이머들을 따라 물 흐르듯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했던 내 성향으로 보아 나는 그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도 서지훈을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글링과 마린이 서로 할퀴고 총을 난사하던 그 순간, 저그를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임요환을 떨어뜨리고 나에게 개인적인 미움을 받는 ‘실력도 없는 저그 유저’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 아시다시피 최연성과의 5판 3선승제입니다. 그가 졌던 3, 4 경기는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머큐리에서였던가 올 인 플레이를 한 것만이 언뜻 기억날 뿐입니다. 시종일관 압도하던 5경기 내내 마침내 그의 울트라와 저글링이 5시 앞마당을 지나 본진에 입성하고 지지가 나오던 그 순간의 희열이 생각납니다. 그 승리는 하나의 각인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를 응원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포트 작성 때문에 그 후 결승전은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알코올 중독자로 가장하고 AA(Alcoholics Anonymous) 미팅에 숨어들어 가 알코올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테이프 레코더와 설문지를 가방에 넣고 여기저기 알코올 중독자들을 찾아가 인터뷰와 설문에 응해주기를 조르고 졸랐던 기억뿐입니다. 고통은 얼마큼의 부피일까. 이 세상에는 얼마큼의 고통이 퍼뜨려져 있는 것일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 시간 언뜻 파이터포럼 기사를 읽기는 했었는지, 그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려니 했습니다. 당연히 그랬으려니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때 그를 속으로나마 매도했던 미안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제 와 그를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의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플레이 스타일에 무작정 취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에 무덤덤한 성격이니 말입니다. 여전히 난 가끔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고, 문득 지나간 재미있던 경기가 떠오르면, ‘그래 맞아 난 그때 무얼 하고 있었지.’라며 내 지나간 일상을 떠올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 그를 응원했던 이유는 아마 그의 열정을 존경스러워 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 그는 나보다 네다섯 살은 어린데…….
        하는 생각.
        어쩌면 처음부터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후로 신인들의 경기를 보아도 느긋하고 솔직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촌스럽고 역겹던 나의 케케묵은 편견이 온데간데없어 혼자서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 혼자나마, 한 때나마, 그의 순수한 열정을 바수었던 나의 냉소와 비웃음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요즘도 종종 경기 잘 보고 있습니다, 박성준씨.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자이너
06/09/22 11:23
수정 아이콘
요새 아무리 마재윤이 대세이고 대인배 저그가 날라다녀도 저에게 최강 저그는 역시 박성준 입니다.
역상성 우승은 그가 최초이고 이병민 선수와 결승 5경기때의 감동을 잊을수 없습니다.

스타뒷담화에서 나왔듯이 포스트 임요환으로 강민과 같이 거론되었으나...얼굴때문에 안된다고 엄재경씨가 농담했지만, 그리고 신인 선수와 붙어도 상대적으로 응원소리가 작게 들리는 그이지만 이렇게 소리없이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최초의 골든마우스의 주인공이 되세요.
사상최악
06/09/22 12:17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한동안 박성준 선수를 부정했었거든요.
박성준 선수를 인정한 건 질레트 4강이 끝나고도 더 나중이지만...
그래서 지금은 그때의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서 응원하고 있지요.
뒷부분의 내용도 정말 공감입니다.
예전엔 왜 그렇게 (특히 임요환 선수를 이기는) 신인 선수가 미웠는지.
괜히 그 선수들을 깍아내리느라 그 선수들의 경기를 즐기지 못한 게 많이 후회되더라구요.(서지훈, 강민, 박성준 기타 등등)
이제는 모든 선수를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까지 생기네요.
극렬진
06/09/22 12:50
수정 아이콘
아직도 질레트배 최연성선수와의 마지막경기와의 희열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욕심인줄 알지만 예전에 박성준 그 모습으로 요즘 테란들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탄산고냥이
06/09/22 13:05
수정 아이콘
박성준...
박태민과의 양박시절 참 많이 붙었었죠...
결승상대로 박성준-박태민-이윤열이 돌아가면서 할때니...

그당시 프리미어리그 결승전, 박태민선수가 2:3으로 패하고 나서
소위 넘 잘해, 사기야 라는 심보로 괜시리 미워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투신 박성준에게도, 운신 박태민도 슬럼프가 찾아오고,
결승급에서 겨루어야할 두선수가, 듀얼토너먼트 최종진출전에서
겨루었던적도 있고, 뭐 그당시에는 박성준선수가 이기긴 했지만ㅋ
박성준선수는 한동안(?)저의 미움-_-을 독차지했던것같네요...;;

말이 길어지는군요...;;
여하튼, 투신, 운신 그 둘이 다시 정상에서 맞붙기를 기원해봅니다 :D
06/09/22 15:17
수정 아이콘
저도 저그하면 생각나는 선수 '투신' 박성준선수 군요.
케스파1위,온겜결승3회진출,2회우승...
그리고 동시대에 투신과 항상 비교되던 '운영의마술사' 박태민이라는 라이벌도 존재했었고..(박태민선수가 있어서 더욱더 빛났던것 같습니다.)

최고의 저그가 되려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뚜렷한 스타일이 있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박성준선수는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로 한때 스타계를 휩쓸었죠. 그래서 경기하나하나에 열광을 했고 박성준선수 덕분에 테란들이 강해졌다는 소리가 나올정도가 되어버렸고요.

슬럼프로 주춤하긴 했지만 아직도 투신이 최고의 저그라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투신이 스타계의 정상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구김이
06/09/22 15:42
수정 아이콘
쉐보님//
박성준 선수 온겜 결승 4번 올라갔습니다.
이윤열 선수와 최연성 선수에게 져서 2번 준우승 하였고 박정석 선수와 이병민 선수에게 이겨서 2번 우승하였죠.
작년 WCG 예선사진이 떠오르네요. 박성준 선수 게임하는데 뒤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수많은 저그선수들...
박성준 선수 화이팅입니다.
06/09/22 15:44
수정 아이콘
구김이// 4번이나 올랐군요^^;; 박성준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사고뭉치
06/09/22 17:28
수정 아이콘
박성준 선수는 인정받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 선수중에 한명일것입니다.
지금까지처럼 꾸준히 그 모습을 잃지 않기를 팬으로서 바라고 있습니다.

박성준 선수 16강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글루미선데이
06/09/22 18:32
수정 아이콘
남자이야기...이유없이 앞마당 언덕으로 올라갔던 바이오닉들
(대체 왜 왜 왜 왜 왜 아직까지도 생각만하면 화가 대체 뭐하러 올라간거냐!!!-_-;;)
멋들어지게 달려들던 저럴...
그리고 패배 황제의 스타리그 탈락...그리고 투신의 탄생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5854 탐원공정. [10] 호시4343 06/09/24 4343 0
25850 내일 벌어지는 프로리그 기대되는 매치....... 한빛 VS MBCgame! [24] SKY923735 06/09/23 3735 0
25848 짤막한 에이스결정전 5경기 리뷰 [6] Ace of Base4375 06/09/23 4375 0
25847 미스테리한 그녀는 스타크 고수 <다섯번째 이야기> [12] 창이♡3816 06/09/23 3816 0
25846 나의 생각이 옳다 [11] 그래서그대는3660 06/09/23 3660 0
25845 오늘의 2탄 팬택 EX VS 삼성 Khan 엔트리! [365] SKY926584 06/09/23 6584 0
25843 울산은 e-sports의 '소외지'인가? [69] paramita5144 06/09/23 5144 0
25842 CJ VS 스파키즈 엔트리 나왔네요. [681] 호시7690 06/09/23 7690 0
25841 캐리어 뭉치기 팁 [36] 니가가라하와6918 06/09/23 6918 0
25836 [격투기 이야기] 현대의 거인 설화.. Tales of Titan [3] Copy Cat5323 06/09/22 5323 0
25835 어려운맵의 승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은 어떨지~ 특히 오늘 순위 추첨 아쉽네요 [17] jjune3884 06/09/22 3884 0
25834 엠비시게임 스타리그의 우승자는 어디서부터 따져야할까? [65] SEIJI6852 06/09/22 6852 0
25832 [축구] 이번주는 어떤 경기가?! [15] 초스피드리버4107 06/09/22 4107 0
25831 16강 토너먼트 조지명식 시작되었습니다! [408] SKY926683 06/09/22 6683 0
25830 boxer와의 기억들... [13] sliderxx4159 06/09/22 4159 0
25829 천재의 마지막 벌쳐 [20] 마술사얀5933 06/09/22 5933 0
25828 OSL 와일드 카드전 A조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64] herocsi4642 06/09/22 4642 0
25827 이용훈 대법원장, 당신 말이 맞습니다! [39] malicious4998 06/09/22 4998 0
25826 '황제'란 자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10] 가루비4700 06/09/22 4700 0
25825 나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9] 리니짐3587 06/09/22 3587 0
25822 아카디아에서의 테저전을 즐겁게 지켜보며.. [8] theo3952 06/09/22 3952 0
25821 팝송 추천 좀 해주세요... [25] 케케케나다4428 06/09/22 4428 0
25820 또다시 마재윤인가.. [47] 사라진넥서스8049 06/09/21 804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