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왜 놀면 안돼?
새벽 2시의 피시방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중에서도 흡연석은, 또 그중에서도 가장 코너의 세 자리는 어김없이 ㄹ과 ㄱ, 그리고 나의 지정석이다.
우리는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한다. 4년째다. 그러니까 참 여전한, 우리의 게임 인생. ㄹ은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ㄱ은 작년에 회사가 사라졌고, 나는 작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크래프트를 한다. 왠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래서다. 문제 없냐고 그런대로, 아직까지는. “형,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애들이 많지” 목둘레의 땀을 닦으며 ㄹ이 말했다. “수능이 끝났잖아.” 수능이 끝난 날의 북적임에 순응하려 모쪼록 노력했지만, 결국 우리는 자리를 일어선다. 하아, 입김이 피어오르는 새벽 2시의 밤하늘에 -질럿의 시체 같은 오리온자리 선명하다.
주변의 감자탕집에 우리는 들어섰다. “마시자!” 벙커에 숨어든 세 명의 마린처럼, 우리는 잔을 기울인다. 오랜만의 술자리와, 오래고 오랜 서로의 침묵. “말 좀 하지” “말은 무슨.” 우리는 요즘 현실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할 일이 없는 인생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맵이 유한이란 걸, 또 이곳의 미네랄이 점점 줄어만 간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부글부글. 감자탕 속의 감자를 말없이 응시하며,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우리의 낯도 붉어져 간다. 다들, 잘 되어야 될텐데 …. 유한 맵의 미네랄처럼, 감자탕의 국물이 졸아만 간다. “형, 한 게임만 더 하자!” 또다시 우리는 피시방으로 몰려간다. 밤하늘의 복판에 누운 불탄 질럿의 시체를,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뭐해 형, 에스시브이(SCV·테란 종족의 일꾼 유닛)가 놀고 있잖아.” 왜 놀아선 안 되는지, 왜 입구가 뚫려선 안 되는지 …. 게임을 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번번이 어둠 속의 적들은 맵핵을 사용하고, 우리에겐 베슬이 없다. “아, 뚫렸어.” 이미 입구가 뚫린 ㄱ의 3시를 우리는 포기한다. “아, 짜증이야.” 9시의 ㄹ이 리버 드롭을 당했다. “일꾼 없니” “없어.” 절반은 포기한 마음으로, 나는 에스시브이를 뽑아댄다. 지금, 멀티를 뛰어야 하는데…. 등뒤에선 수능을 마친 아이들이 몹시도 서성이고, 미네랄은 자꾸, 떨어져만 간다. “그때 지원을 왔어야지.” “그래도 막판은 이겼잖아.” ㄹ과 ㄱ의 쉰소리를 들으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놀다가 들킨 -그 한 구의 에스시브이가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놀면 안 되지. 에스시브이가, 놀면 안 되는데 …. 그런데 우린, 왜 노는 걸까 ㄹ과 ㄱ에게 나는 물었다. “글쎄, 그러고 보니 그렇군.”
하하. 왠지 좋은 기분이라고 ㄱ이 얘기했다. 곧 미네랄 채취를 지정해주겠지 앞날의 걱정이 사라진다고도, ㄹ은 얘기했다. 더 초조한 건, 실은 배틀크루저에 타고 있는 -바로 저 인간들이겠지. 수능이 끝나 더 북적대는 미네랄의 광산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야, 한 게임만 더 하자. 이번엔 에스시브이 러시야!” 시작과 동시에 열다섯 구의 에스시브이가 적들의 진영 한 곳으로 달려간다. 지지직 지직. 상대의 진영 하나가 파괴되고, ‘미- 친 -놈- 들!(mi chin nom dle)’ 모니터 좌측 중단에 블러드워 잉글리시가 떠오른다. 커맨드센터를 띄운 우리가 한 잔의 커피를 비우고 나자, 부랴부랴 적들의 드라군이 센터를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멜롱(melong). 잽싸게 단어를 띄운 후, 우리는 나와 버린다. 생각해 보니, 러시야말로 에스시브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들키기 마련이다. 미네랄 채취는 울고 불며 당신이 원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울고 불며 원해야 할 일이다. 자, 자, 그러니 러시나 가자. 입구는 이미 뚫린 지 오래고, 배틀의 인간들은 -에스시브이의 소중함에 대해 더 깊이, 훨씬 더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한다. 왜 할말 있냐 너 설마, 마린이냐?
박민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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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를 소재로한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던 분의 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