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7/28 20:34:26
Name ijett
Subject [좋은글] 바닥 없는 호수
비가 오는군요.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간 롯데월드에서 자이로드롭 결국 못 타고 돌아왔지만,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따뜻한 방 안에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자이로드롭의 재미가   !  의 재미라면, 책 읽는 맛은 .......!....... 라고 할까요.

제가 몹시 아끼는 책 중에서도, 몹시 아끼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 책은 한 쪽, 한 문단, 아니 한 줄도 놓칠 수 없는, 정말 좋은 책이지만 말입니다^^)
비 오는 오늘, pgr 분들과 함께 읽어 보고 싶네요.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요. ^^
(안 어울리게 우아 떤다고... 옆에 있는 룸메이트가 킥킥 웃고 있습니다. ㅡㅡa)

음... 즐 pg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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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잃어버린 채로 있는 월든 호수의 바닥을 되찾을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1846년 초 얼음이 녹기 전에 나침반과 쇠사슬과 측심(測深)줄을 가지고 호수 바닥을 세밀히 측정했다. 월든 호수의 바닥에 대하여 바닥이 있느니 없느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져왔으나 거기에 대한 믿을 만한 근거는 없었다. 사람들이 바닥을 재는 수고를 해보지도 않고 어떤 호수가 바닥이 없다고 오랫동안 믿는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콩코드 주변으로 한나절 산책을 나갔다가 바닥이 없다는 호수를 두 군데나 들르고 온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든 호수가 지구 반대편으로 뚫려 있다고 믿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호수의 얼음 위에 오랫동안 엎드려 이 착각을 일으키는 매체를 통하여 물기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감기라도 들까 두려운 나머지 다음과 같은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즉, 그들은 "한 수레 분(分)의 건초라도 넣을 수 있는" - 만약 그것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 거대한 구멍을 보았던 것이다. 그 구멍은 저승의 강(江)인 스틱스 강의 원천이며 이 근처에서 황천으로 가는 입구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다른 사람들은 마을에서 '56파운드 추(錘)'와 1인치 지름의 줄을 한 수레분이나 가지고 갔으나 호수 바닥을 찾는 데는 역시 실패했다. 왜냐하면 '56파운드 추'가 이미 바닥에 닿아 있는데도 그들은 쓸데 없이 줄을 풀어 넣으면서 경이로운 것을 무한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능력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든 호수는 깊이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며 또 비교적 단단한 바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독자들에게 확언하는 바이다.

나는 대구잡이 낚싯줄과 1파운드 반 정도 무게의 돌을 사용하여 호수 바닥을 쉽게 측정했다. 일단 바닥에 닿아 있던 돌을 다시 끌어올릴 때, 돌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는 훨씬 세게 당겨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가장 깊은 곳은 꼭 102피트였다. 그 후 물이 5피트 불었으니 그곳의 깊이는 이 107피트가 될 것이다. 면적이 이처럼 작은 곳으로서는 놀라운 깊이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상(想像)에 의하여 단 1인치라도 에누리할 수는 없다.

만약 모든 호수의 깊이가 얕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인가? 월든 호수가 깊고 맑게 만들어져서 하나의 상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인간이 무한을 믿고 있는 한, 바닥이 없는 호수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Walde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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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바닥 없는 호수>는 제 마음대로 ^^;;; 붙인 것입니다. 소로우의 원작에는 없습니다.
* 인용한 글은 도서출판 이레에서 나온, 강승영 님이 번역한 소로우의 <월든> 324쪽에서 326쪽까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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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28 21:29
수정 아이콘
뭐랄까, 아주 깨끗한 느낌이 나는 글이네요. 아마도 영국쪽 작가 분이 쓰신 것 같은데, 저는 서양 문학 중에는 그나마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 작가나 러시아 문학 정도 밖에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런 작품도 참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책을 구해서 직접 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일어나는데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3/07/28 22:12
수정 아이콘
허거....-_- 소로우는 미국 작가였군요..... 죄송합니다. ㅎ_ㅎ;; 애교로 봐주세요~
03/07/28 22:34
수정 아이콘
^^;;;;;;;;;;; 네 ^^;

작가로서의 소로우도 훌륭하지만 ( '월든'의 자연 묘사는 정말 너무 아름답지요) 저는 한 인간으로서의 소로우의 모습이 더 멋져 보이더군요. 스무 살에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업 대신 목수일이나 측량일 같은 노동으로 자신의 생계를 꾸려 나갔고, 21살 때는 일체의 구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보적인 학교를 설립, 운영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28세 때 월든 호숫가에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 친화라기보다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미국의 노예 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했다가 투옥당한 일도 있었구요.(친척이 몰래 대납해서 결국 풀려났지만.)
서른 살에 월든 호반 생활을 끝낸 후에는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강연을 했는데, 후에 글로 정리된 이 강연은 세계의 많은 저항 운동 지도자들에게 큰 자극과 감동을 주게 됩니다. 4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임종을 지켜본 사람 중의 하나가, "그처럼 행복한 죽음을 지켜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참 치열하게, 열심히, 알차게, 진지하게 살았고, 그래서 그처럼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끝까지 성실한 학생이었고, 끝까지 끈질긴 구도자(求道者)였죠.
음... 반만 닮아도 원이 없겠습니다. ^^
03/07/28 22:53
수정 아이콘
작가 지망생인 주제에 추태를 보여서(모르셨다면 더 추태로군요) -_-;; 송구스럽습니다. 핑계일 뿐이지만 서양 문학은 정말 거의 접하지 않아서 짧은 지식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ㅠ_ㅜ
만회를 위해서 저도 하나 추천을 하자면, 랭보의 시집을 들 수 있겠네요. 제 자신의 문학의 폭이 좁은 탓이겠지만,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시는 랭보, 가장 즐겨던 건 이정도가 아니었나 싶네요. 아마 제작년이 랭보의 100주기 였기 때문에 전기나 시집의 재간이 많이 나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역시 시집을 추천하고 싶네요. 랭보의 생애는 짧았고 소로우와는 비교되는 점도 많겠지만, 그의 시집에 녹아있는 기묘한 미학은 역시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하게 하죠. 나이에 비해서는 다작이 아닌가 싶지만 넘치는 재능을 표현하기에는 다작이야 말로 또한 가장 그에게 올바른 표현이 아니었나 싶네요.
PS : 이렇게 추천했건만 이미 읽으셨다면 대략 낭패 -_-;;;
물빛노을
03/07/29 00:42
수정 아이콘
ijett님//소로우가 살던 콩코드에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늘 느낍니다^^
Bar Sur님//외국 시는...원문으로 읽어야해!라는 관점을 갖고 있는 터라^^ 소설조차도 사실 전 원문으로 읽어야한다고 느끼지만, 제 언어실력에 한계가 있는지라...시의 미묘한 각운이나 두운 같은 것, 그 오묘한 시적허용등을 우리말로 보기엔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요:)
03/07/29 00:52
수정 아이콘
인간이 무한을 믿고 있는 한, 바닥이 없는 호수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사실 무한맵도 자원의 끝은 있는데 다 케질 못해서 무한맵이라는 이름이
붙은것 같네요 ^^ (퍽! -_ㅜ) 죄.. 죄송 합니다..
felmarion
03/07/29 01:27
수정 아이콘
상관없는 이야기 이지만, 저 오늘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척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였습니다.
어떤 분과 이야기 중에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말이 나오기에, '아, 쇼팽이요..'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더군요. 쇼팽이 아니라 바그너 였더군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바서님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03/07/29 01:36
수정 아이콘
Bar Sur 님 작가 지망생이셨군요 +_+ !
MasTerGooN
03/07/29 05:56
수정 아이콘
대략 낭패 << 왜이렇게 웃긴지.. ^^ 고영님의 댓글도 원츄입니다 ㅎㅎ 저도 책을 나름대로는 좋아라~ 하는데 외국 소설은 그리 즐겨읽는 편이 아니거든요.. 제 고등학교 문학선생님께서 유명한 외국소설을 읽기전에 한국의 위대한 작가들의 글부터 섭렵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항상 새기고 있거든요 ^^;; 전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파트리스 쥐스킨트의 소설들을 추천합니다 특히 향수는 압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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