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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5/25 13:34:07
Name 슬러거
Subject [일반]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6) 현재 "대세" 嵐(ARASHI) - 수정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1) 사무소 설립 ~ SMAP데뷔 전>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2) 일본의 국민 아이돌 SMAP>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3) 밴드형 아이돌 TOKIO>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4) 아크로바틱(?) 아이돌 V6>
<[기획잡담] 일본연예기획사 쟈니즈 사무소에 대해서! (5) 쟈니즈의 엘리트 KinKi Kids>

※윗 링크를 클릭하시면 지금까지 쓰여진 기획잡담글로 자동 이동합니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 KinKi Kids의 글 이후로 아주 오랜 공백이 있었네요. 제가 호주로 날아오게 된지라 그동안의 시간의 공백이 길었던 점 죄송합니다.
  사실 호주로 오기전에 嵐의 글은 완성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영 부족한 면이 많아서 올리지를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있다가 지금에야 업로드 하게 되었네요. 뭐 현재는 한국내에서도 아마 가장 많은 분들이 쟈니즈내에서도 嵐를 좋아하시는지라 저보다도 더 많이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혹여나 틀린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도 넓은 인내심을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嵐(ARASHI) - 1999년 결성&데뷔
- 오노 사토시, 사쿠라이 쇼, 아이바 마사키, 니노미야 카즈나리, 마츠모토 준


1. 嵐 멤버들의 주니어 시절 그리고 느닷없는 결성 그리고 데뷔

   - 일본어로 “폭풍”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룹인 嵐(ARASHI, 이후 嵐으로 서술)는 사무소가 1997년에 데뷔를 시킨 KinKi Kids와 첫 밀리언을 달성한 夜空ノムコウ로 최정상에서 고공비행중이던 SMAP 그리고 꾸준한 인지도와 인기를 확립해가고있던 TOKIO와 V6의 힘에 따라 쟈니즈 사무소가 전에 없이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힘을 발휘하면서 이전 데뷔조들과는 달리 가장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 처음으로 데뷔조로 데뷔한 그룹입이다. 그리고 쟈니즈 사무소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랩”을 사용한 노래를 시작한 그룹이기도 합니다.

   嵐의 멤버의 모임과 결성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嵐의 멤버들이 주니어 입소를 하던 1995년 즈음부터는 이미 주니어로서 데뷔조를 능가하는 인기와 포스를 누리고 있던 KinKi Kids와 V6에 합류하기 전의 “고켄콤비” 등의 힘으로 쟈니즈 주니어는 당시 상당히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 후에 V6의 데뷔 그리고 선풍적인 인기를 몰면서 데뷔한 KinKi Kids의 뒤로 들어온 주니어들중에 당시에 엄청난 활약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5년에는 쟈니즈 주니어 시절 “대장”으로 불리우며 놀라운 외모와 포쓰를 선보이며 주니어때부터 TV드라마를 휩쓸었던 타키자와 히데아키 그리고 1996년에는 그런 타키자와를 동경하며 들어온 또 다른 최고의 원석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닛으로는 당시 자니어 주니어들중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빠지는 것 없이 실력이 좋았던 최고의 실력파 유닛 [MA]가 있었고 이외에 마츠모토 준, 아이바 마사키, 이쿠타 토마, 니노미야 카즈노리 이 4명으로 이루어진 [MAIN]이라는 유닛이 존재했습니다. [MAIN]은 이후에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활약합니다. [MA]에는 오노 사토시도 소속되어있었는데 당시 [MA]의 지위는 선배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실력과 인기를 함께 겸비한 유닛이였습니다. 따라서 는 곧잘 데뷔조들의 백으로서도 센터에 서면서 많은 인기를 모았었는데 이 많은 인기를 누리던 [MA]가 이들과는 조금은 다른방식으로 인기를 얻어 대중의 힘으로 커서 인기의 자리를 꿰차게 되는 쟈니즈 최대급 인물이였던 타키자와 히데아키와 야마시타 토모히사등의 인기와 그 이외에도 서서히 치고 올라오는 여러 후배들의 인기덕분에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아이돌의 세계도 엄연한 경쟁사회인점을 보여주는것이죠. 이에 따라 [MA]의 멤버였던 오노 사토시는 이러한 상황에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에 쟈니즈 사무소에서 1996년에 처음으로 교토에서 활약할 주니어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본 오노 사토시는 점점 밀리고 있던 자신의 위치에서 타개책을 찾기위해 이 교토 주니어 모집을 신청하게 됩니다. 이 때 오노 사토시는 고등학교까지 자퇴를 하며 교토로 넘어갔고 이후 2년동안 교토에서 무대 및 연극 등을 주로 활동하게 됩니다. 도쿄에서도 뛰어난 실력에 더불어 많은 인기를 누리던 오노 사토시가 한동안 세간의 관심사에서 떨어지게 된 계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쟈니즈 주니어에 이 당시에 다른 여타 주니어 아이들과는 좀 다른 케이스로 특별한 애가 있었습니다. 보통 주니어들이라면 학교 등의 학업보다 당연히 무대나 드라마등의 일에 몰두하면서 주니어 생활을 했는데 이 조금 특별한 주니어 아이는 주니어의 일보다도 학업을 우선한 최초의 주니어였습니다. 바로 이 아이가 현재 嵐의 멤버인 사쿠라이 쇼의 주니어 시절 모습입니다. 사쿠라이는 학교에 시험이 있으면 시험 한달 전부터 하던 주니어 일들을 모두 멈추고 학업에 열중하였는데 이중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 사쿠라이 쇼는 전망이 밝은 주니어였고 굉장히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때 이런 사쿠라이에게 드라마 제의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근데 때마침 그때는 학교의 수학여행이 겹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사쿠라이는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하며 망설였지만 끝내 드라마 제의를 거절하고 학교의 수학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결과였지만 사쿠라이는 사무소 사장인 쟈니 기타가와에게도 직접 학업우선을 보고했을정도로 학업을 우선시했고 수학여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학여행을 가고싶었던 것이 아니라 학교를 빠지기 싫어서 그런 선택을 하였다.“ 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학생때의 모습을 거치면서도 이후 사쿠라이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인 1997년에 그 자신이 주니어시절 최대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잡지 일도 아주 많았고 곧잘 데뷔조들의 백댄서에서도 센터에서 춤을 추는 시절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 역시 학교의 시험기간이 되면 무려 한달전부터 주니어 일을 쉬게 되는 생활의 연속이였습니다. 쟈니즈 주니어는 아무나 선발되는것이 아니고 또한 그 중에서 데뷔하는 인원들은 소수에 불과한 엄청난 경쟁사회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업을 우선하여 1년에 3,4달씩 일을 하지 않았던 사쿠라이 쇼는 곧장 동료 및 후배들에게 인기를 추월당하며 잡지 일도 거의 끊기고 무대에서도 센터에서 가장자리 몰리는 등의 사태를 겪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속에 그는 머릿속에 대학진학을 할 무렵에 사무소를 그만둘 생각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1999년 6월, 이즈음 고3시절이였던 사쿠라이 쇼에게 사무소 사장인 쟈니 기타가와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옵니다. V6의 뒤를 이어서 배구리그 이미지 캐릭터를 찾고 있는데 하지 않겠냐라는 제의였습니다. 당시 사무소를 그만둘 생각이 컸던 사쿠라이 쇼 였지만 이 일이 흔히 있는 주니어 사이에서 유닛을 꾸려하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한나머지 그것을 승낙하게 됩니다. 쟈니 사장은 이 때 사쿠라이 쇼 이외에 당시 주니어 유닛인
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던 니노미야 카즈나리와 마츠모토 준에게도 이것을 제안했고 이렇게 세명은 이후 곡을 레코딩하고 안무를 짜는등의 연습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쿠라이 쇼 처럼 다른 장래희망을 그리며 사무실을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었던 니노미야 카즈나리 역시 또한 이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은 채 임하고 있었고 그것은 마츠모토 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이들 세명은 같이 연습을 하면서도 크게 친해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연습등에만 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느끼고 있던것과는 다르게 사무소에는 이들을 데뷔시킬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성 과정속에서 특히 쟈니 사장은 이 그룹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이 3명이 보컬쪽으로 능력이 꽤나 부족하다는것을 깨달았고 여기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었던 한명의 실력파 주니어를 데뷔시키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쯤 도쿄에서 2년이나 떨어져서 교토에서 활동하던 오노 사토시 또한 도쿄에 돌아와있었는데 이미 자신이 나이로만 따지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주니어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쟈니 사장에게 이 의사를 밝히게 됩니다. 하지만 쟈니 사장은 이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도쿄로 돌아온 오노에게 [MASK][PLAYZONE]등의 연극일을 주게 됩니다. 주니어를 그만둘 것을 거절당한 오노는 일단 사무소에서 준 연극일에 임하기는 하였으나 역시 크게 생각은 바뀌지 않은 채 재차 쟈니사장에게 주니어를 그만두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쟈니 사장은 이마저도 거절한 채 오노 사토시에게 뜬금없이 곡 레코딩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오게 됩니다. 오노는 뜬금없는 부탁에 놀라긴 했지만 단지 도와달라고만 말한 쟈니사장의 말에 응하여 곡 레코딩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99년 7월즈음이였고 이미 오노는 嵐의 프로젝트에 자신도 모르게 합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시간은 약 2달이 더 흘러서 사무소에서는 데뷔 기자회견이 있기 약 3일전쯤에 이를 이 네명의 멤버에게 데뷔 및 데뷔 기자회견에 관한 사실을 얘기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음을 뜬금없이 알게된 그들은 멍때린 상태에서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 때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쟈니 사장에게 같은 유닛활동을 해오기도 했고 집방향이 같아서 늘 집에 같이 갈 정도로 친했던 아이바 마사키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이를 깨달은 쟈니 사장은 데뷔 기자회견 3일전에 아이바 마사키에게 연락하여 여권이 있는지를 물었고 때마침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던 아이바 마사키가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멤버가 되게 됩니다. 본인들에게 거의 고지도 되지 않았을뿐더러 멤버 중 한명은 기자회견 3일전에 합류하여 탄생하게 된 그룹이 바로 嵐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갑자기 고지된 그들이다보니 멤버 중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그나마 같은 유닛활동을 했던 아이바-니노미야-마츠모토 3명이였고 이외의 사쿠라이와 오노는 멤버전원을 포함하여 별로 말조차 해본적 없는 선후배 사이인채 였습니다. 거기다가 마음속에는 그다지 데뷔에 대한 열망이 없던 멤버들이였기 때문에 그룹의 이미지도 확립되지 않은 채였습니다. 이후에 이들이 그룹으로서 이미지를 갖게 되는것은 자신들의 첫 콘서트 투어때였고 이들이 지금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성립하는 것도 약 2002년 2003년쯤이 되게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며 뒤통수를 맞는것처럼 데뷔하게 된 5명의 멤버들과는 달리 이미 쟈니즈 사무소에서는 1999년 9월에 실시된 기자회견을 무려 하와이의 크루저위에서 개최하였고 여기에만 5천만엔(약 5억)상당의 돈을 투자하게 됩니다. 이후 11월 3일 데뷔 싱글 발매전에 악수회를 실시하였고 여기엔 멤버들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팬인원이 운집하게 됩니다. 멤버들이 생각했던것과는 다르게 이미 일본내에서 대놓고 선전중이였고 2년간 교토에서 활동했던 오노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도쿄에서 계속 활동하며 충분히 인지도와 인기를 가지 멤버들이였고 KinKi Kids의 폭발적인 데뷔 이후에 이루어지는 첫 데뷔조였기 때문에 이렇게 그들의 데뷔는 벌써 초미의 관심사였던것이였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1999년 11월 3일에 V6가 데뷔시 맡았던 세계 배구대회 이미지 캐릭터를 물려받으면서 데뷔싱글인 [A?RA?SHI]와 함께 데뷔하게 됩니다. 생각외로 데뷔 싱글은 인기가 정말 좋았고 이는 판매량으로도 나타났는데 첫주에 오리콘 차트 1위와 함께 무려 55만장을 판매하였고 총판매량도 97만장에 달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데뷔가 이루어진 것이였습니다. 이는 데뷔 11년을 맞이하고 있는 嵐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가장 많은 초동판매량과 총판매량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2. 2. 데뷔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嵐의 초중반


   - 이렇게 선배인 KinKi Kids만큼은 아니였지만 그만큼 훌륭한 데뷔를 이룩한 嵐였지만 이후에 큰 화제성을 나아내지 못하면서 점점 수면위에 있던 그들이 수면밑으로 가라앉아 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데뷔 싱글 이후 한동안 嵐는 대부분의 일들이 자니즈 쥬니어와 함께 하는 일이 많았고 자신들이 끌고 있던 인기 또한 쟈니즈 쥬니어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또하나의 이슈였던 “랩”을 활용한 곡들은 당시 아직 확실한 스타일이 구축되지 않았던 사쿠라이 쇼였기에 크게 대중에게 어필을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2000년에 자신들의 최초 콘서트 투어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러한 초기 콘서트 때는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규모가 아주 큰 돔도 아닌 아리나나 홀에서의 개최임에도 관객석이 비는 공연도 허다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콘서트가 이들 멤버에게 가져가 준 큰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嵐멤버로서 서로서로의 유대감을 시작해나가게 된 것이였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데뷔한 탓에 대화도 적고 호흡도 맞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첫 콘서트 투어를 거치고 마지막에 자신들의 이름을 스스로 嵐라고 자신들이 소개하게 될 때의 기분을 맞보며 자신들이 이 嵐라는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는 소속감을 가져나가기 시작합니다. 현재 어느 그룹들보다도 정말 친구 또는 친구 이상일정도로 사이가 좋게 유명한 嵐의 유대감이 시작된 중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멤버 개개인은 각자의 개인활동에도 충실하게 되는데 리더인 오노는 연극쪽으로 이외의 나머지 네명은 활발히 드라마에 모습을 보이며 연기업에도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2001년 10월에는 그들의 첫 칸무리 방송(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을 [한밤중의 아라시]라는 심야프로로 시작하게 됩니다. 嵐는 이 시간대를 무려 9년동안 이끌며 2009년 까지 방송 타이틀을 여러번 바꾸어가면서 진행해나갑니다.

   쟈니즈 사무소는 嵐에게 매 싱글에 타이업을 붙이고 개개인의 활동에도 힘을 쏟아주고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러한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끝내 이들의 데뷔때의 판매량과 인기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감소해나가기 시작했고 개개인의 활동이 활발하며 5명이서 매년 콘서트 투어을 도는 등 嵐로서의 활동에도 충실했지만 큰 화제성을 일으키지는 못하면서 점점 하향세로 치달아가기 시작합니다. 데뷔싱글을 97만장을 팔았던 嵐였지만 이후 2번째 싱글부터 절반인 40만장대로 감소하더니 8번째 싱글부터는 20만장대에 머물게 됩니다. 랩에 힘을 줄곧 쏟아오던 사쿠라이 쇼의 랩 또한 자신이 직접 작사를 하게 되고 스타일을 확립해가면서 7번째 싱글인 [a Day in Our Life]부터 활용하게 되었지만 큰 효과는 보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이때는 嵐에게는 부정적인 멤버 개개인들의 일들이 있었는데 바로 2002년에는 멤버 아이바 마사키가 폐기흉 수술로 인해 약 5개월 여간 멤버 4명으로 활동하였고 2003년에는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이미 1999년에 한번 소동이 있었던 시이나 노리코와의 열애 사진등이 주간지에 게재되면서 한번 부침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아이바 마사키의 수위 높은 열애가 담긴 사진들이 주간지에 실리면서 한번 더 부침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嵐는 자신들의 이러한 침체기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을 활약들을 비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 침착하게 수면상에서 그룹 및 개개인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룹활동으로는 매년 꾸준히 전국 콘서트 투어를 돌았고 2002년과 2003년에 자신들 5명이 주연한 [피칸치]시리즈를 개봉하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2001년 10월에 처음 시작하였던 자신들의 심야 예능방송인 [한밤중의 아라시]가 2002년에는 [Cの嵐]하여 계속하게 됩니다. C는 Claim의 약자로 자신들에게로 제보된 사회에서 일어난 국민들의 불평·불만을 멤버들이 직접가서 해결하는 특이한 방송이였습니다. 이 방송 당시 지금처럼 편하게 스튜디오에서 녹화하는 레귤러 방송을 진행하는 그들과는 달리 몸을 던지고 때론 욕을 먹어가며 갖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 심야방송은 약 1년을 이어가다 타이틀을 2003년 7월경에 [Dの嵐]로 변경하면서 개편되게 됩니다. D는 Documentary의 약자로서 여러 가지 시청자들이 제보한 일본내의 특이한 일이나 특이한 사건, 특이한 사람, 특이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방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Dの嵐]는 이 프로그램안에서 또 멤버별로 포맷이 나뉘면서 여러 가지 재미를 줌으로써 팬들이 지금도 많이 아끼는 방송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자신들의 레귤러 방송을 운영해나가는 한편 2004년 부터는 멤버 중 아이바 마사키가 주말 골든 시간대의 방송인 '天才!志村どうぶつ園(천재! 시무라 동물원)' 에 레귤러로 합류하며 첫 멤버 개인의 레귤러에 합류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嵐는 자신들에게 힘든 시기에서도 방송을 종영시키는 사태를 겪지않으며 끊임없이 방송을 이어갔고 이는 이후에 지금까지 그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는 레귤러 방송의 토대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 2004년에 그들은 24시간 TV의 메인 퍼스너리티를 맡게 되었고 여기서는 팬들에게도 유명한 <아이바의 편지>로 자신들의 멤버들에게 마음을 전하면서 데뷔 5년째 그들은 그 어느 그룹보다도 친해지며 멤버간에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의외로 드문 가족같은 그룹의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게됩니다. 이외에 개개인적인 활동으로는 특히 사쿠라이 쇼, 니노미야 카즈나리, 마츠모토 준은 드라마에서 눈에 띄게 매년 꾸준하게 작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었는데 사쿠라이 쇼는 [키사라즈 캣츠아이]로 인기를 끌고 [착한 아이의 편]으로 첫 단독주연작에 나서고 있었고 이미 2000년에 드라마 [눈물을 닦고]부터 연기력에 큰 호평을 얻었던 니노미야는 2001년 [한도쿠]를 거쳐 2003년에 [스탠드업]으로 첫 드라마 주연을 맡았고 특히 같은 해에 [푸른 불꽃]으로 첫 영화주연을 맡게되는데 이 영화에서 니노미야의 연기력은 평범한 아이돌과는 다르다며 스태프 및 연예계 그리고 대중들에게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정을 받아가기 시작합니다. 마츠모토 준 또한 많은 한국팬들을 嵐로 이어준 창이였던 2002년의 [고쿠센]을 시작으로 2003년 [너는 펫]에 제2주연으로 출연하며 호평을 받아갑니다.



3. 반전과 부활의 계기, 고마운 막내의 [꽃보다 남자] 시리즈 그리고 그들의 정상정복


   - 여러 역경들속에서 물론 꾸준히 활동을 해나가던 嵐였지만 데뷔때만큼의 관심을 다시 이끌어내는것까지는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嵐에게 최고의 반전기회를 잡아내게 되는데 바로 막내인 마츠모토 준이 일본 대중들에게 원작으로도 아주 인기가 많았던 로맨스만화 [꽃보다 남자]에서 도묘지 츠카사 역을 따내게 된 것입니다. 이 원작은 일본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몰았던 국민 로맨스 만화였고 이것이 드라마화는것또한 큰 화제였습니다. 여기서 마츠모토 준이 배역을 따내고 그에 따라서 주제곡을 자신들이 부르는 타이업까지 이루어내게되는데 이렇게 2005년 말에 방송된 [꽃보다 남자]는 준수한 시청률을 내주었고 자신들이 동시에 발매한 주제곡인 싱글 [Wish] 또한 아주 오래간만에 그들에게 총판 30만장이라는 결과를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상 떨어질 구석이 없었던 그들에게 다시금 대중의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그들의 노력이 수면위에 본격적으로 들어나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2005년 연말부터 2006년은 그들에게 있어서 재도약의 첫번째 시기가 되어준것이죠. 그리고 2006년에는 아이돌 사상 최초로 사쿠라이 쇼가 보도방송인 [뉴스Zero]라는 프로를 통하여 뉴스캐스터를 레귤러로 맡게 되기도 합니다. 이후 전작인 시즌1의 흥행세로 인하여 2007년 초에 같은 배우진들로 후속편인 [꽃보다 남자 리턴즈]가 방송되기 시작하였고 이 드라마의 주제곡또한 嵐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발매된 싱글인 [Love So Sweet]는 그들에게 40만장이라는 총판매량과 더불어 그에 부합하는 대중의 관심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후 2007년에 嵐는 싱글 데뷔 이후 무려 8년 만에 처음으로 도쿄 돔 공연을 성사시키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2007년에 니노는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며 아이돌 답지 않은 연기력을 또 한번 과시해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마츠모토 준이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嵐의 인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다시 떠오르는 정도였고 자신들의 사무소 후배이자 2006년에 데뷔한 KAT-TUN이 2년간 뜨거운 관심에 뛰어난 판매량과 함께 지니고 있던 ‘대세’라는 타이틀에는 명함을 내밀기 힘든것도 사실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한해가 지나 그리고 2008년의 문을 싱글인 [Step And Go]로 연 그들에게 느닷없는 초동 30만장 판매량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됩니다. 특별히 타이업이 눈에 띄게 된 것도 아니였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2008년부터 불어닥칠 그들의 폭풍을 짐작케 하는 표시였습니다. 이후 꽃보다 남자의 최종판인 영화 [꽃보다 남자 파이널]이 개봉되었고 이는 이전에 있었던 2편의 드라마보다 더 큰 흥행세를 몰아오며 2008년 일본 영화 최고 흥행 수익을 가지게 되는데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서 그들이 발매한 [One Love] 역시 총판 50만장을 돌파하는 무서운 기세를 보여줍니다. 嵐 자신들로서도 데뷔 싱글이후에 거의 처음으로 가져보는 50만장이라는 판매고였습니다. 이 때부터 각 방송국에서 늘 로케지를 전전하며 고생하던 그들의 방송이 스튜디오 레귤러 위주로 다시 프로그램이 주어지는 등 그들이 갖는 기세를 대변해주는 일들이 펼쳐집니다. 그들이 현재 진행하는 레귤러인 [vs嵐], [비밀의 아라시짱] 모두 이때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는 요만큼도 등장하지 않았던 멤버인 리더 오노 사토시가 처음으로 [마왕]을 단독주연으로 촬영하게 되었고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Truth]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일본 음반판매 불황기에 단연 빛이되면서 총판 60만장을 넘게 팔아버립니다. 2007년까지는 그 해의 최고 판매 싱글 TOP10에서 이름을 찾아보려고 해도 2007년을 제외하곤 이름도 올려본적 없었던 그들에게 嵐가 무려 2008년에 연간차트 싱글 1,2위를 독점하게 된것입니다. 이 기록은 자신들의 사무소 선배였던 히카루겐지 이후 무려 십여년이후 다시 기록된 놀라운 기록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 무서운 기세는 이때가 시작이였습니다.

  이후의 인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바입니다. 2009년은 그들에게 있어서 10주년이자 최고의 한해여름에 발매한 자신들의 세 번째 베스트 앨범이 여지껏 자신들에게 앨범 최고 초동판매량이였던 26만장을 3배로 넘어서는 초동판매량인 75만장을 기록하였고 이후 단 몇주를 거치며 자신들에게 있어 첫 밀리언 샐러라는 영광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베스트앨범을 들고 전국투어를 돌게 되었고 이 전국 투어에서 쟈니즈 사무소에서는 선배인 SMAP과 KinKi Kids에 이어서 세 번째로 5대 돔투어를 달성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SMAP과 Dreams Come True이외에는 아티스트가 공연한 적이 없었던 국립경기장에서의 콘서트 또한 작년에 이어 다시 치러내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한해는 그들에게 있어서 기록의 한해이기도 했는데 무려 연간 싱글 차트 1,2,3위 그리고 연간 앨범 차트 1위 그리고 아무리 잘 팔려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30만장 이상을 파는걸 잘보기 힘든 DVD를 자신들의 PV클립집 모음으로 60만장을 돌파시켜버리면서 연간 DVD차트 1위까지 석권하게 됩니다. 연간 싱글 차트 1,2,3위를 한 그룹이 모두 독점한것은 약 20여년만에 벌어진 일이였고 싱글+앨범+DVD+총판매수익을 포함한 오리콘 4관왕에 등극하게 됩니다. 현재 嵐는 SMAP에게 늘 붙어오는 국민 아이돌이라는 명칭에 근접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그들의 인지도 또한 근 2년 사이에 모든 국민들에게 인식되게 됩니다.

  어찌보면 단 한순간의 발판 이후에 급성장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嵐이지만 그들에게는 2008년 이전까지 8년간 수많은 고생과 노력을 해온 과거를 보상받아온 통과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 또한 嵐를 처음알게 된것은 2005년 그들이 레귤러로 진행하던 한 코너인 [마고마고 아라시]라는 방송이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嵐가 이토록 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嵐는 멤버간의 밸런스가 참 좋은 그룹이였고 그들이 각각 가진 재능이 많았기에 지금의 위치에 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嵐의 이 기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기대해볼만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4. 嵐의 간단한 현재


  - 嵐는 쟈니즈내에서 제일 먼저 랩을 유행시키며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그룹입니다. 또한 선배 데뷔조들인 SMAP과 V6처럼 노래의 장르를 크게 따지지 않고 곡을 부를 수 있는게 가능한 그룹이기도 합니다. 현재 5명이 함께 진행하는 레귤러 버라이어티는 ‘아라시니 시야가레’ 와 ‘VS 아라시’, 그리고 ‘비밀의 아라시짱’ 이 있으며 각 멤버들은 뮤지컬+연극+영화+드라마+버라이어티 및 뉴스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중입니다. 싱글+앨범 총판매량은 약 1400만장으로 최근 2년의 놀라운 활약으로 쟈니즈 사무소에선 현재 SMAP과 KinKi Kids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반을 팔고있는 그룹이기도 합니다. 멤버들간의 친밀도가 가장 좋은 그룹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고 그리고 부정할 사람도 없고 부정당할수도 없는 현재 일본 아이돌그룹 및 연예계 인기의 ‘대세’ 입니다. 2005년부터 줄어들었고 2007년부터는 정말로 50만장을 넘기는 싱글을 보기가 힘들정도로 불황인 현 일본가요계에서 초동판매량만으로 50만장을 넘기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가수이기도합니다.

   팬의로서의 의견은 아마도 嵐의 이 인기는 못해도 2년간은 더 이어지리라고 봅니다. 리더인 오노 사토시가 올해 생일을 지나면 30살이긴 하지만 여전히 멤버전원이 20대이고 2년 사이에 KAT-TUN보다도 밀리던 인지도에서 지금은 각 설문조사 및 랭킹에서도 늘 수위에 멤버전원이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인지도까지 확보해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레귤러 방송을 무려 3개나 함께 진행하고 있고 드라마쪽에서도 흥행요소를 다분히 지닌 멤버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반판매량또한 물론 첫주인 초동의 비율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꽤나 롱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약 2년전부터는 거의 모든 싱글이 대부분 30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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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10/05/25 13:41
수정 아이콘
아라시는 정말 대세가 되었죠.;;; 제가 좋아하던 시기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는 지금 노래보다는 아직도 예전 곡들이 더 좋긴 하지만요 ^^; 니노는 외모때문에 연기 폭이 넓어지지 않는 것 같아 좀 아쉽긴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나, 유키호..
10/05/25 13:58
수정 아이콘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님좀짱.
아라시에서 니노미야 카즈나리와 사쿠라이 쇼를 좋아합니다. 유성의 연인과 허니와 클로버에서
모습이 굉장인 인상적이였거든요. 그런데 노래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요.

ps. 두번째 단란에서 안나오는 글자가 있는듯 하네요.

'~니노미야 카즈노리 이 4명으로 이루어진 이라는 유닛이 존재했습니다. 은 이후에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활약합니다. 에는 오노 사토시도 소속되어있었는데 당시 의 지위는 선배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실력과 인기를 함께 겸비한 유닛이였습니다. 따라서 는 곧잘 데뷔조들의~'
슬러거
10/05/25 14:13
수정 아이콘
달덩이 // 니노는 외모의 한계를 연기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 ^

나, 유키호 // 수정했습니다. 바보같이 <>이게 태그로 인식될수있다는 것을 여지껏 몰랐네요;; 다른글들도 그것때문에 안보이는 글자들이 있었던거였다고 생각하니 순간 힘이 쫙 빠졌네요 ^ ^ ;;. 감사합니다 ~
아류엔
10/05/25 15:00
수정 아이콘
지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아라시님들....
저는 우리나라 라시팬들에게 쌓이고 쌓인게 많아서
안 좋아합니다.만 아라시는 좋습니다.
니노가 출현한 드라마는 정말 다 재밌더라고요
10/05/25 15:07
수정 아이콘
전 남자인데 왜 이렇게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좋은지 -_-;;
사신아리
10/05/25 15:14
수정 아이콘
기다리고 있던 글이군요. 수고하셨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 8년간 수많은 고생과 노력을 해온 과거를 보상받아온 통과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부분에 격하게 동감 합니다!!!
그 C노 아라시때의 고생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좀더더더 오래 잘나갔으면 해요!
제 best는 PIKA☆☆NCHI DOUBLE 과 言葉より大切なもの 이고,
추가로 니노의 스페셜 드라마는 "마라톤,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수 있다면, 조금은 보은할수 있었는지, DOOR TO DOOR..."
팬심 가득 담아서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드라마 입니다.
이상 니노를 사랑하는 남팬-_-이었습니다. 금년에는 제발 와다오...
10/05/25 15:30
수정 아이콘
피지알은 정말 좋은 사이트같아요..
접하기 어려운 이런 정보도 요약해서 연재해주시는분도있고..
잘봤습니다~ 저는 아라시에서 박명수닮은 아이바 괜찮게 생각해요..크크
10/05/25 15:36
수정 아이콘
드디어 나왔군요 아라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쟈니즈중에서 가장 아끼는 게 아라시입니다. 특히 사토시군을^^
꽃보다 남자로 상승세이던 아라시가 2006년 아시아투어를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터뜨렸다고 많은 한국팬들은 생각하고 있더라고요-(일본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言葉より大切なもの 입니다...
저에게 노래로서 거의 어필을 하지 못했던 아라시의 곡을 처음으로 인상깊게 듣기 시작해서 일까요.
초기 아라시의 대표곡들은 기존 쟈니즈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안들었었거든요. 그만큼 어필포인트가 부족했다고 할까;
물론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여하튼 대세는 아라시!! 최근 모닝구가 가지고 있던 역대 음악DVD 총판매량을 뛰어넘기도 하고-
요즘 싱글이나 앨범도 그렇지만 DVD판매를 보면 후덜덜하다는-

참, 얼마전부터 쇼군은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국립콘 부분에서 SMAP과 Dreams Come True이외에는 아티스티 -> 아티스트로 수정을..
10/05/25 15:46
수정 아이콘
아 아라시 굉장히 옛날그룹인줄 알았는데 요즘 대세군요..

글 재밋게 잘봤습니다 ^^
아일랜드스토
10/05/25 15:59
수정 아이콘
오노의 노래는 정말이지.. 무대보면서 저게 라이브야 립싱크야라고 느낀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목소리도 정말 좋고 노래도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진짜 잘 부르죠.
그래도 전 니노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더 좋네요. 그가 들려주는 보물음원을 너무 사랑합니다.
마고마고에서 기타치며 불러줬던 곡들이 제 스타일이기도 했구요. 가끔 베이스톰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들려주는 곡들 또한.
아라시 곡들은 정말 다 좋아하는데
台風ジェネレ-ション 와 風の向こうへ는 니노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부분이 좋아서 특히 더 좋아하고
still이란 곡을 너무 좋아해서 벨소리로도 해두었죠.
season은 이 곡이 삽입되었던 그들의 휴대폰 광고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특히 아끼는 곡입니다.
とまどいながら란 곡도 빼면 섭하고.

아이바가 천연보케라면 쇼는 인공보케란 생각이 들어요.
의외로 겁이 많은 몸치의 모습이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랄까...
게이오보이가 그렇게 망가져주니 더 재밌기도 하고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하죠.

아라시 레귤러는 확실히 로케가 없어지면서 재미없어졌어요. ㅜ.ㅡ
역시나 얘네는 밖으로 굴려야 제 맛인데...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Aisiteita
10/05/25 16:25
수정 아이콘
얘네가 이렇게까지 뜰 줄은 몰랐습니다. 국내 아이돌중 샤이니를 보면 참 아라시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과연 샤이니는 데뷔 10주년 쯤에 아라시와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요..
슬러거
10/05/25 17:16
수정 아이콘
아류엔 // 늘 꾸준히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칸쟈니글을 열심히써보고싶은데 너무도 아는게 부족해서 안타깝네요.. 단기로라도 공부해볼께요!

티티 // KinKi Kids의 쯔요시군의 팬인 저는,,,,

사신아리 // 니노군 남자분들에게도 인기 많군요! 니노가 4분기에 게츠구 소문이 있던데 게츠구보다는 니노에게 맞는 드라마였으면합니다!

theory! // 박명수 닮은 아이바에서 좀 뿜었습니다~

둥이 // 11년차이지만 일찍 데뷔들해서 나이는 아직은 20대들이죠. 요즘은 정말 잘나갑니다.

아일랜드스토리 // 부족한 글에 감사합니다. 아마 여지껏글들보다 다음글부터 약 두세개 남은글이 더 큰일이라죠,,,,

Aisiteita // 아라시만큼 되려면 샤이니도 부단히 노력해야될듯 ! 저도 아라시가 이렇게까지 될줄을 예상을 못했었죠.
마음이
10/05/25 17:16
수정 아이콘
나의 가족의 역사에 나오는 마츠모토준의 연기 좋더군요 나가사와 마사미와 잘되길 빌었습니다만
나가사와가 마지막에 종적을 감춰서..
swflying
10/05/25 17:44
수정 아이콘
아이바 마사키.. 제가 일본에있을떄
닮았다는 소리를 꽤 자주 들었다는..(팬분께 죄송;;ㅠ)
물론 아이돌이기에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응원하게 되더군요. 앞으로 드라마도 많이 출연하길~!
10/05/25 20:18
수정 아이콘
저도 오랫동안 팬을 해 왔지만 이렇게 정리된 것을 보니깐 새삼 뿌듯하네요. 진짜 콘서트표가 헐값에 옥션에서 나가던게 생각나는데ㅠㅠ 요즘은 표 구하려면 하늘의 별따기가 된 것만 봐도 인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멤버들의 노력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아라시니깐 더욱 오래도록 잘 나가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씨노 아라시할때 속이 쓰려서 죄다 스킵하고 봤던걸 생각하면..그래도 심야 레귤러 하나라고 꼬박꼬박 챙겨봤었는데 벌써 골든 레귤러 3개라니. 첫 골든진출작인 히미쯔노 아라시짱이 좀 더 다양한 재미있는 포맷을 해 주면 좋을텐데요. 이제 마네킹 5도 슬슬 지루한데... 라고 해도 다우트 액션보다는 훨씬 재미있지만요. 안정적인 시청률 기록하고 있으니 좀 더 재밌는 포맷을 늘려준다면 시청률상승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뭐, tbs 는 목요일 시청률 보면 아라시한테 감사해야하긴 하지만 ^^; 여튼, 얼른 니노 드라마나 하나 더 봤으면 좋겠네요. 딱 한도쿠같은 역할 하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3분기 마츠준 게츠구도 얼른 확정 났으면 하고. 무엇보다 국내 내한 한번만 더 했으면 좋겠네요. 올해는 캇툰 내한이 결정되어서 무리지 않을까 싶지만 ㅠ_ㅠ 콘서트 너무 보고싶어요.

아, 그리고 오늘 아라시 위클리 1위 한 거 축하합니다. 몬스터가 트러블메이커보다 많이 나갈줄을 생각도 못했는데 또 초동 하프를 넘었네요. 대세긴 대세나봅니다. 으하하하;;
10/05/25 22: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라시 팬으로서 이런 글을 볼때마다 제가 다 뿌듯해지고 그렇네요 !! ^_^
예전엔 콘서트를 해도 낮공연 같은 경우에는 자리가 다 차질 않아서 앞쪽으로 가서 앉고 그랬다는 소릴 들은거 같은데 요즘은 표 한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난리죠 ㅠ_ㅠ 이제 돔,국립이 아닌 아레나 공연은 해외가 아니고서는 볼 수도 없게 되었고..;; 진짜 아라시의 인기가 날로 좋아지니 팬질도 하기 힘들어집니다.. 하하하;
댓글을 읽다보니 ! 위에 sin-ya님 말씀처럼 저도 몬스터가 트러블보다 많이 나갈 줄 몰랐는데 (사양도 꽤 단순히 나온편이라;;) 트러블보다 몬스터가 초동이 더 많이 나갔더라구요. 올해도 오리콘 상위권 또 휩쓰는거 아닌가.. 하는 설레발이 벌써.. ^_^;;;;
저는 쇼 팬으로서 전 쇼의 카리스마있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 뉴스에서의 바른모습, 버라이어티할때의 보케 모습. 요렇게 요즘 이미지가 굳어가고 있는거 같아서 말이죠. 밤비(키사라즈)시절, 츄(피칸치)시절 그 모습이 보고싶습니다 !! ㅠ_ㅠ

아차 ! 본문에 쇼가 이렇다할 취미생활이 없다고 하셨는데.. 음.. 지금도 하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쇼는 디제잉이 취미였죠 ^^
10/06/10 17:14
수정 아이콘
쇼는 요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서.. 드디어 취미가 생겼다고 했죠..하하^^:; 귀엽습니다 쇼~
그리고 아이바는 연극을 해년마다 한편씩 하고 있습니다.
아라시는 저의 분신 같은 애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짠합니다.
진짜 이번해에는 콘서트 보러 가고 싶은데..ㅠㅠ
해외 팬들에게 쟈니스는 너무 힘든 팬질입니다.
어찌 이렇게 콘서트 표 한장을 정가로 못산단 말입니까..ㅠㅠ
또 얼마나 표 값이 올라갈지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네요..


춤실력에 빵터졌습니다..그렇죠... 백턴도 못하는 쇼..하하..^^:;
10/06/10 20:13
수정 아이콘
연재가 없으시길래 관심을 끊고 있었는데 하고 계셨었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배우중 하나가 니노미야 카즈나리 입니다.

출연한 작품들도 좋아하고요.

소심한 성격 역할로는 따라올자가 없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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