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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26 18:34:30
Name 유유히
File #1 DSC015732.jpg (543.3 KB), Download : 73
Subject [일반] 아직도 부족한 우리나라의 장애인 배려


얼마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사 상품이라 자유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리스본, 살라망카, 꼬르도바 등등 유명한 관광지들은 다 돌았으니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습니다. 한국과의 시차 여덟 시간, 암스텔담 경유 열일곱 시간의 비행. 다리와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 나는 언제나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 볼까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대한항공 기내식은 꽤나 먹을 만 하더군요. ??)

위쪽 사진은 공항에서 촬영한 스페인의 버스입니다. 스페인의 버스는 차체가 상당히 낮습니다. 거의 땅바닥에 스칠 정도입니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도로의 턱을 고려하면, 인도와 거의 높이 차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휠체어가 쉽게 오르내리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여행하는 도중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별다른 도움 없이 쉽게 버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야 과속방지턱이라는 큰 변수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운 시스템이기는 했지만, 신경쓰지 않으면 쉽게 구축할 수 없는 시스템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가운데 사진은 공항에 내렸을 때, 인포메이션 데스크 옆에 약 여덟명 정도,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한 구석의 데스크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해서 찍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장애인들의 수화물 취급과 비행기 탑승을 돕는 도우미들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하는 일 없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열명 가까운 사람들이 단지 장애인을 돕기 위해서 월급을 받으며 공항에 상주한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조중동 같은 신문이 '무의미한 관공서의 세금낭비'어쩌고 하면 가카께서 당장 '실용주의!' 한마디 하시고, 저렇게 할일없는 사람들이 우수수 잘려 나갈텐데... 하도 궁금해서 데스크에 가서 영어로 물어봤습니다.

"영어 할줄 아세요?"

"조금요."

(스페인은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국가입니다. 공항에서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손에 꼽죠. 다행히 도우미라 그런지 영어를 짧게나마 할 줄 알았습니다.)

"여기 장애인 도우미라고 되어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요? 장애인들이 자주 와요?"

"그렇게 자주 오진 않는데, 특별한 날에는 사람들이 다 필요할 때도 있어요."

눈치를 보니 어떤 장애인 복지시설 같은 데서 단체관광을 오는 경우가 있는 모양입니다. 또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그런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행사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월급 꼬박꼬박 줘가며 고용한단 말인가? 단지, 장애인들을 안 기다리게 하려고? 제가 보기에도 이건 낭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니까 저도 위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은 참 장애인들을 잘 배려하는 것 같다고, 최고라고 말해주니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스페인은 국민소득 4만달러가 넘는 부국입니다. 주요수입은 관광사업입니다. 스페인이 전세계 관광수입 2위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위는 미국. 가이드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간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려, 거의 출근시간 신도림역을 방불케 하는 인파도 심심찮게 마주쳤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런 관광지 중의 하나인 바르셀로나 파밀리아 대성당 옆에서 찍은 것입니다.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은, 휠체어를 탄 관광객을 꽤나 자주 마주쳤다는 것입니다. 오전 3시간 가량 관광하는 동안 약 20명 정도? 태어나서 하루 동안 그렇게 많은 장애인을 거리에서 마주친 기억은 없습니다. 당장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1년 동안 거리에서 휠체어를 본 기억이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데, 이렇게 사람 복작거리는 곳에서 그렇게 많은 휠체어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휠체어가 한번 나타났다 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좍 하고 갈라집니다. 무슨 호각을 분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그게 하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더니 휠체어에 앉으신 분이 "그게 뭐 신기하다고 사진까지 찍고그래." 하는 듯이 보고 계십니다. 그제야 알것도 같았습니다.

"이렇게 배려가 잘 돼 있는데다, 사람들도 앞장서서 배려를 해주니, 장애인들이 불편없이 거리에 나오고, 내 눈에 자주 들어오는 거구나."




우리나라에서 볼 약 10년치 휠체어를 한꺼번에 보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지하철역 리프트 설치, 건물 우회로 등 과거에 비해 장애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띄긴 하지만, 차량진입방지턱이나 도로의 심한 요철, 버스차체의 높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페인의 장애인 복지는 일종의 컬쳐 쇼크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들,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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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6 18:44
수정 아이콘
현재 업계종사자로써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열악한건 맞습니다.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공원, 유원지를 가보아도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안타까운건 경제와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사회복지가 너무 싫습니다.
인간으로써 받아야할 최소한의 권리가 정책에 따라 움직여야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후원에 대해 사회적으로 신뢰가 무너져가는 모습에 현직 사회복지를 하고 있으며 후원을 관리하는 자로써 그런 내용들을
사실과 루머를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깝습니다.

그나저나 멀리도 가셨네요;;
나두미키
10/01/26 18:47
수정 아이콘
방지턱이나 버스 높이 등도 중요한 문제지만, 일단은 의식이 바뀌어야.........
유유히
10/01/26 18:51
수정 아이콘
제논님// 사회복지에 종사하신다니 좋은 일 하시는군요. 말만 앞서는 저 대신 장애인들을 위해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너무 멀었습니다. -_-;
어진나라
10/01/26 19:12
수정 아이콘
버스에 관한 글은 쓸까 말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괜시리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그나저나 멀리도 가셨네요;; (2)
나비고양이
10/01/26 20:52
수정 아이콘
장애인을 휠체어에 태우고 가다보면 참 답답한 적이 많습니다. 인도와 인도 사이에 건널목이 있는데 그 부분은 턱을 낮추어서 휠체어가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 곳에 불법 주정차를 하더군요. 물론 턱이 없으니 그 곳에 주차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위해 그 곳에 주차만은 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주차되지 않은 낮은 턱을 찾아 건물을 빙빙 돈 적도 있답니다.
LunaticNight
10/01/26 21:33
수정 아이콘
유럽은 이런 쪽으로는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부분들까지 하면 넘사벽이고요..
가끔씩 지하철에서 장애인 분들 보면 정말 힘들어보입니다. 서울에서도 그랬는데, 지방은 더하구요.
저상버스 같은 것도 서울에서야 가뭄에 콩나듯 보이지만 지방은 그나마도 없죠.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기는 한데, 너무 느리네요.

그나저나.. 거기까지 가셨는데 포르투를 안가보셨군요..!
스페인 포르토갈 합쳐서 제일 좋았던 곳인데...
Go_TheMarine
10/01/27 10:13
수정 아이콘
영국에 있을때 휠체어 타시는분이 버스타시러 오면
버스기사분이 직접 내리셔서 휠체어 타시는 분을 태워주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물론 버스안에 휠체어 전용공간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컬쳐쇼크를 느꼈죠..
한국이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하고 말이죠.

p.s 스페인 그라나다 갔을때 기차역 티켓창구에서 직원들이 영어를 못하는 건지 안쓰는건지는
모르겠는데 종이에 적어서 티켓샀던 기억이 나네요..
코알라이온즈
10/01/27 13:52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계급제 사회라서..장애인이라도 돈만 많으면 뭐..왕이죠.
가진 재산에 따라서 계급을 나누고..상하관계 철저히 따지고..이런 기준, 저런 기준으로 사람과 사람을 꼭 위아래로
나누는게 당연시 되고 있지 않나 싶네요.
10/01/27 22:4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뭔가 많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Love.of.Tears.
10/01/28 11:16
수정 아이콘
한국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고 또 그 일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저로서는 대단히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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