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 한상재입니다.
4년전의 감동은 이제 끝나, 우리는 안타까운 2006 월드컵의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전 축구인으로서 이 마지막 경기에 대해 몇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오프사이드인가, 온사이드인가?
결론적으로 일단 사진의 상황은 오프사이드가 맞습니다. 수비수에 맞더라도 공격팀 선수가 패스 의도로 공을 찼기 때문에,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볼을 터치한 프라이의 플레이는 100% 오프사이드로 선언됩니다.
물론 부심의 재량으로 수비수의 백패스로 간주(이렇게 판단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만)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간주하여 기(旗)를 올리지 않았다면 우리 수비수들이 그냥 가만히 앞쪽을 보면서 프리킥 준비나 하며 공격수를 놔뒀을리가 없지요.
하지만 일단 부심의 기가 올라간 상황에서, 다시 말해서, 오프사이드가 이미 선언된 하에서 볼을 갖고 플레이한 프라이 선수의 플레이는 오히려 프라이에게 경고가 주어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허나 스위스와 프랑스를 16강에 진출시킬 임무를 부여받은 아르헨티나 주심으로선 이미 경고가 있는 프라이를 차마 경고누적으로 sent-off시킬 순 없었겠지요. 여하튼 이 골이 인정된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 '흐름'이 끊기면 모든 것이 죽는다.
축구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흐름'이라는 것이 눈에 쪼끔 보입니다. (증거를 제시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만,) 한국-이탈리아전에서 후반 43분까지 지면서도 "반드시 역전할 수 있겠다"라는 흐름을 봤고, 2006년의 토고전, 프랑스전도 2-1, 1-1의 스코어로 끝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토고-스위스 경기는 0-1 상황에서 토고 선수들이 경기를 주도하는 가운데서도 이 흐름이라면 스위스가 추가 득점하고 경기는 0-2로 끝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증거를 제시할수도 없고,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흐름]이란 것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70분경에 저는 확신했습니다. 주심이 저런 식으로 판단하더라도, 흐름상 충분히 역전시키고 추가 득점까지 성공할 수 있겠구나.. 이탈리아전과 비슷한 느낌이었고, 2-1 역전승 내지 3-1 쾌승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흐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상황(오히려 프라이가 경고를 받아 퇴장당해야 할 상황)이 득점으로 인정되었고, 이 이후 한국은 완전히 의지를 잃었습니다. 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나온 후 제 방 TV의 브라운관은 약간 깨졌고 핸드폰은 박살이 나있었습니다. 이제 저 있을 수 없는 판정으로 인해 나의 대한민국이 조별예선에서 패퇴할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수로서 이런 있을 수 없는 판정을 당해본 일은 없습니다만- 이것이 2학년 3반과 2학년 6반의 반대항 축구 시합이 아닌, 공을 차는 선수라면 누구나 꿈꿔볼 월드컵 무대라는 점에서 저 허무감을 익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전 분을 참지 못하고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방 문(門)을 부수면서, 완전히 의지를 잃은 태극 전사들에의 감정이입으로 허무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만 프랑스전에서 완벽한 핸드볼 PK 상황 무시(0-0 상황), 토고전에서 완벽한 PK 상황 2회 무시(0-0 상황, 1-0 상황 2회), 한국전에서 코너킥을 골킥으로 선언한 것 3회, 핸드볼 PK 상황 2회 무시(0-0 상황, 1-0 상황 2회) 정도 입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은 바로 [흐름]을 끊어버린 주심의 판정들입니다. offside상황이 돌연 onside로 변해버린 판정 이외에도, (축구를 해보신 분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분위기 자체를 한국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 공세 상황에서 주심은 계속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파울, 혹은 스위스의 골킥을 선언했습니다.
인간은 피의 흐름이 끊기면 살 수 없습니다. 축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이 상대가 우리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흐름에 말려들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라면 패배는 차라리 아름답습니다만, 우리의 흐름이 전적으로 심판에 의하여 바뀌어버린 오늘에 대하여 이것을 실력의 부족이었음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 2002 월드컵의 한국, 인과응보다?
2002 월드컵의 한국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 대만, 중국, 이탈리아인들이 [매수]니, [오심]이니 주장하니까 "정말 그랬나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 아닌, 선수 입장에서 말하겠습니다. 2002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최초로 불합리한 판정을 받지 않은 대회일 뿐, 오심의 혜택을 입은 대회가 아닙니다.
조별 예선 3경기와 2라운드 이탈리아전에선 그 어떤 오심도 없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문제 삼는 몇가지의 판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포르투갈전의 주앙 핀투의 퇴장은 논할 여지 없이 다이렉트 레드카드가 맞습니다. 그것이 레드카드가 아니었다면 레드카드는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이탈리아전도 적당히 깨끗한 시합이었습니다.
프란체스코 토티는 전반 김남일의 안면을 팔꿈치로 가격하여 옐로 카드를 선적(先積)하지 않았다면, 시뮬레이션에 의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할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엘보잉 (비에리의 팔꿈치는 김태영에게 전치 4개월의 코뼈 부상을 입히기도 했던)에도 불구하고 그에 의해 레드 카드 한장 받지 않은 사항에 대해 이탈리아는 모레노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스페인전의 '파울 이후 득점'과 '엔드라인 아웃 이후 득점'이 '득점 취소'라는 주장도 들어 볼 가치가 없는 말입니다. 애초에 '인정'되지 않은 득점은 '취소'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경기에서 한국에 유리한 판정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것은 스페인의 코너킥 선언 이후 연장이 종료된 점인데, 물론 룰에 어긋나지는 않습니다만 관습적으로 타임이 오버되어도 코너킥 공격까지는 인정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사항은 연장 전반 모리엔테스가 포스트를 맞은 슛이 득점으로 인정되었더라면,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이 승리했더라면, 그 누구도 기억해지 못했을 내용입니다.
여러분 중에 포르투갈전 전반전에 설기현 선수가 득점한 것을 기억하는 분이 계십니까? 터키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득점한 것을 기억하는 분이 계십니까? 설기현 선수는 최진철 선수의 골키퍼 차징 선언 이후에 골을 넣었고, 안정환 선수는 오프사이드 선언 이후에 골을 넣은 일이 있습니다(특히 안정환의 골은 판독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기도 했죠).
엔간한 축구팬이 아니시라면 이런 장면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다만 이러한 플레이가 만일 한국의 상대팀의 플레이로 옮겨가면 무엇인가 '찜찜한' 장면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찜찜한 이유는 단지 '남들이 뭐라고 하니까', 그 하나 때문입니다. 이제 저라도 말하겠습니다. 전혀 찜찜해하지 마십시오, 월드컵 4위는 충분히 깨끗하고 감동적인 이벤트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이탈리아는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걔들은 축구.. 축구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시합을 몇번 해봤기 때문에 피상적으로나마 그들의 축구 사랑을 압니다. 걔네가 음모론 제기한건 2002년이 유일하지 않습니다. 20세기로 거슬러 갈 필요 없이 유로 2004 조별 예선 탈락했을 때도 그랬고, 2006 월드컵 조편성 됐을때도 그랬습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주리에 대한 프라이드가 지나칠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뭐 그럴만도 합니다만..) 죽어도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근데 얘들이 떠든다고 찜찜해하는 것도 한국인 밖에 없습니다. 이탈리아 대신 유로 2004 8강에 진출한 뒤 '승부조작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 그 누구도 이탈리아의 그런 말 따위에 찜찜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선 찜찜함을 넘어 '진짜로 부당했나보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탈리아가 그러면 유럽 애들은 그냥 "쟤네들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적어도 오늘과 같은 수준의 판정은 결코 아니었으니 '2002년때는 우리가 그랬으니까..'라는 말로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폄훼치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급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일본인, 대만인, 중국인들의 반응은 그냥 단순한 질투심입니다. 원래 덜떨어진 녀석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합니다.
당연합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깨끗하게 인정할만큼 대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약한 것입니다. 헌데 저는 오히려 이런 3국의 질투를 보며 기분이 좋습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인생에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뒤떨어진 인간이 앞서가는 인간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만, 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거 아십니까? 축구팬의 수준은 축구의 수준과 놀랍게도 비례합니다. 전 그런 일본인, 중국인들의 반응을 보며 "너희들이 한국 이기려면 10년은 이르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뿐, 그것 때문에 찜찜해하지는 않습니다.
오르비스 옵티무스 회원 여러분께서는 공부를 '좀 한다'는 분들이실테니,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보고 "나도 니만큼만 공부 열심히하면 니만큼 성적 나온다"고 말하는 동급생중 공부 잘하는 사람 있었습니까? 저도 선수가 되기 전 공부..라는거 어느정도 했었습니다만, 꼭 공부 못하는 친구들 중에 "니가 공부 잘하는건 그냥 존나 많이 하니까 그런거잖아"라는 식으로 말하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 공부 시간은 그들보다도 더 적었는데도 불구하고요.
방법의 차이, 열정의 차이, 혹은 지능의 차이 등은 결코 인정하지 않고, 그냥 "나도 니만큼만 하면 니보다 잘할 수 있는데,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했을 뿐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들 말이죠. 제 인생에서 그런 녀석들은 죽어도 발전이 없었습니다.
물론 기분이 나쁠 수는 있습니다. 기껏 백일장에 나가 열심히 써서 제출했더니, 단지 '고교생 수준 이상으로 잘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디서 베꼈냐?"는 소리를 듣는 기분일테니까요.
근데 그런 반응에 "시.발.. 내가 진짜 어디서 베낀거 아니야?"라며 찜찜해 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쓸데없이 길게 떠들었습니다만, 요는 2002 월드컵은 충분히 정당했으며, 그 때의 정당한 판정을 꼬투리삼아 어떻게든 우열을 인정치 않으려는 모 국민들의 질투심 따위에 오늘의 불의(不義)를 '인과응보' 따위로 전락시켜 그대의 조국을 위해 싸웠던 23인의 선수들의 영혼을 모욕치 아니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4. 終
이제 2006 독일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구제될 방법이 없으며, '개소문닷컴'등을 즐기시는 분들은 "역시 한국의 4강은 심판 매수였다"며 기뻐하는 동북 아시아권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며 열받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축구를 하면서, 혹은 보아오면서, 사람을 죽이고 싶어진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J리그 유소년 팀 소속일 때였습니다. 이런 말을 스스로 하는게 몹시 쑥쓰럽습니다만, 당시 저는 J리그 U-18리그의 득점왕이었고, 저보다 한 살 많은 네덜란드인 선수 마이크 하프나(당시 요코하마 F마리노스 소속)선수와 함께 J리그 최고의 유소년 중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전 제가 진짜로 엄청나게 대단한 선수인 줄 알았습니다. 주위에서 모두들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근데 이탈리아에서 친선 경기가 한번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맞붙는 유럽팀과의 경기에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상대는 AC밀란의 유소년 팀이었죠. 전 "비록 상대가 최고 명문이긴 하지만 그것은 성인팀의 얘기다. 어차피 유소년 레벨은 국적에 관계 없이 거기서 거기다. 이녀석들도 내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밀라노에 향했습니다.
그리고 1-6으로 참패했습니다. 생애 최악의 패배였습니다. 전 어떻게 하다가 한 골 넣긴 했습니다만, 그들의 패스웍과 피지컬과 테크닉에 철저하게 농락당했습니다. 그들은 6골을 넣자 웃으면서 패스를 돌리며 재미있게 경기를 했습니다. 전 심장이 터질 정도로 압박하고, 뛰고, 태클해도 경기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우리편 모두는 필사적으로 그들에게 대항하고, 뛰다가 두 명은 다리에 쥐가 나서 교체되고 저도 다리가 풀려서 혼자 뛰다가 고꾸라지기도 했습니다. 최고라고 자만했던 내가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 정도의 선수가 이 경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내 머리와 심장이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끗이 인정할 때, 전 이런 보잘 것 없는 능력만을 가지고 자만했던 저를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이 나카무라 슌스케가 브라질전에서 소위 '관동 대지진 스텝'을 밟았을 때 웃지 못하고, 그의 비참함을 뼛 속 깊이 함께 느끼며 한숨짓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바로 오늘입니다.
23인 젊은이들의 심장이 죽을만큼 갈망해오던 바로 오늘이, 스위스가 이기게끔 경기를 만들어야 했던 심판에 의해 망쳐졌습니다. 그들이 심장이 터질듯 뛰며 흘린 4년, 48개월, 192주의 땀이, 그저 1시간 30분동안 스위스를 위해 휘슬을 불었던 한 인간에 의해 무엇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전 이제 내일이 되면 누군가에게 살의(殺意)를 품었던 오늘의 나를 나의 신께 회개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주심을 죽이고 싶을 만큼 저주한다는 것을 또한 내 입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말하고 싶은 것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심판에 대해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은 선수들과 붉은 악마에 대한 칭찬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 선수들이나 붉은 악마가 저 심판에 대해 어떠한 위협 행위를 했다면, FIFA는 해당 선수들에 대하여 선수 자격의 박탈을, 대한민국에 대하여 차기 월드컵 예선 참가 불허 조치를 내렸을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 전 혹시나 우리 선수들이 저 말도 안되는 판정에 행여나 심판을 건드릴까봐 그것을 또한 걱정했습니다. 잘 참았습니다.
둘은, 네티즌이란 이름으로 익명성에 기대 비열하게 선수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탁입니다.
(벌써부터 박주영, 김진규가 집중 포화를 받고 있던데.. 할 말을 잃게 합니다.)
그대에겐 그냥 이기면 박수치고 지면 욕하는 경기일지 모르지만, 그대가 욕하는 그들에겐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대의 분노보다 그들의 분노가 크며, 그대의 상심보다 그들의 상심이 큽니다.
그것은 그대가 그대의 삶을 즐겁게 살아오며 수주에 한 번씩 축구를 유희할 때, 그들은 그것에 자신의 영혼을 모두 바치며, 지난 4년의 한 달씩을, 한 주씩을, 하루 씩을, 한 시간씩을, 그리고 매 일초씩을, 오늘을 꿈꾸며 뛰고, 쓰러지고, 뒹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냥 '4년을 또 어떻게 기다려?'라고 생각하며 짜증부리면 그만이지만, 그들에겐 살아온 지난 모든 과거를 불사르는 현재였으며, 인생을 살아오는 목표였습니다.
더구나 본인의 모든 것을 펼쳐보이지도 못한 채, 공정해야 할 제3자의 비열한 편향에 의해 좌절했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위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의 좌절이 '좋은 경험이었다' 따위의 말로 위로될만한 자그마한 좌절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의 그 좌절감을 당신의 그 잘난 키보드를 두드려 더욱 크게 키워주진 않길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길었던 4년이었습니다.
몸을 뒤집지도 못하던 사촌 동생이 이젠 말하고 뛰어다니며 열심히, 열심히 놉니다. 군대에 갔던 삼촌은 제대하고 벌써 예비역 2년차입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고교 신입생 동창들은 이제 대학에 다니거나, 일을 하거나, 군대에 있습니다. 나이가 같았던 중학생 친구들은 벌써 고3 수험생입니다. 제 농담 한마디에 바닥을 뒹굴며 웃던 제 친구 한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언제나 40대 초반인줄 알았던 저희 아버지는 50대가 되셨고, 아직 젊다고 생각했던 할머니 칠순 잔치를 치른지 벌써 3년입니다. 일본에 있어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점, 눈물나도록 죄송합니다. 전 선수 생명의 끝을 알리는 부상을 입고, 재활에 연이어 실패하며 결국 축구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던 15세의 선수로부터, 지금은 아무런 소속도 없고 직업도 없는 우울한 19세에 있습니다.
이제 이만큼의 4년이 지나야 또 있을 다음의 월드컵은 너무나도 멉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을 긴 글을 홀로 남기며, 부당에 의해 조롱된 대한민국 축구의 지난 4년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르비라는 사이트에서 글을 퍼오게 되었습니다.
pgr에도 꼭 있어야 할 글이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퍼오게 되었습니다..
몇몇 님들 꼭 이 글 새겨 읽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