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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3 10:42
이런 흐름으로 보니 재밌네요 잘 봤습니다
씨야하면 구두로 상징되는 슬픈 발라드도 참 좋은데요 그 마지막은 블랙스완의 마지막 구두가 한듯한데 블랙스완은 어떻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18/10/03 10:55
브아걸 1~2집을 참 좋아했었는데 3집부터 분위기 바뀌면서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떠버리니 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특히 1집 혼잣말은 정말 좋아했던 곡중하나였습니다. ㅜㅡ
18/10/03 12:07
1집은 성공인데 2집이 너무 심하게 망해서. 브아걸이 2집당시에 이미 20대 후반으로 가던중이죠. 생존을 위해 대변신 한것. 뭐 1집 리팩 홀더라인부터가 댄스곡이었죠. 이름만 브아걸이지 브아솔과는 첨부터 다른길로 갔고.. 오히려 블아걸이 더 맞았...
18/10/03 12:02
댓글 많이 달아주셨네요. 전부 읽었는데 하나하나 달려니 그래서..
본문은 동의할수도 못할수도 있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건 씨야보다 브아걸이 더 나이도 많았고 브아걸은 비주얼가수도 아니고 인기도 적었었다는것이죠. 둘이 차이나버린것은 결국 프로듀싱의 차이었죠. 남규리의 유무라고 하기엔 남규리가 핫걸활동을 했기때문에 씨야라는 그룹의 수명이 다한 이유는 되지만...
18/10/03 12:16
씨야 서로 디스하던것만 기억나네요,씨야인기는 사실 100중 120퍼가 남규리 인기다란말이 있을정도였는데 막 기자회견에서 규리씨가 그럴줄몰랐다 막 그러던데, 그영상은 어디서 보나요?
18/10/03 12:37
원더걸스 텔미가 가요계에 준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기서도 나오네요.
원더걸스 나오기 1년전 멜론 연간차트와 나온 뒤 멜론 연간차트를 보면 아예 패러다임이 확 바껴있거든요. 브아걸 제작진은 이 시류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확고히 가져갔고, 씨야는 그 변신이 늦었고. 결국 두 그룹의 수명을 결정짓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18/10/03 13:01
얼마전 눈팅하며 인조 재평가 논란을 봤는데 다른 이야기지만 씨야 2집의 성공과 빅뱅 거짓말 원걸 텔미가 나온게 같은해거든요. 씨야가 늦게 바꾼게 당시 잘못된 선택인지는 좀 애매한것 같아요. 너무 어렵네요.
18/10/03 13:23
사랑의 인사가 2007년 5월, 텔미가 2007년 9월, 그리고 브아걸 러브가 2008년 1월, 쥬얼리 원모어타임이 2008년 2월, 쏘핫이 2008년 6월, 핫걸이 2008년 9월.
진짜 텔미가 나오고 천지가 개벽했죠.
18/10/03 13:15
브아걸은 당시 인기 있는 보컬그룹들을 따라 데뷔하긴 했는데 1집을 보면 미디엄템포의 음악을 했던 건 아니었죠.
그리고 브아걸이 변신할 수 있었던 건 2집 폭망도 있지만 애초에 다른 보컬그룹들보다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는 멤버 구성이긴 했습니다. 1집 때 가장 인기 있었던 곡도 조피디와 함께했던 홀더라인이었고요. 이게 좋은 프로듀싱과 만나 시너지를 냈던 거 같네요. 제 생각엔 다른 보컬그룹들이 러브나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노래가 어울렸을 거 같진 않아요. 그리고 다른 분들 말씀처럼 2집의 실패나 초기의 여러가지 열악한 환경 등이 나중에라도 잘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거 같네요. 씨야랑 비교하니 브아걸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친분으로 시작된 팀이라 멤버들 사이도 좋았고요.
18/10/03 13:31
브아걸은 시작부터 하이브리드소울인가 뭔가 저도 잘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소몰이랑 노선이 달랐죠. 정이란 노래처럼 프로젝트때 소몰이형으로 노래 내기도 했지만 말씀하신것 처럼 기본은 달리갔었습니다. 다만 더 약점은 데뷔당시 이미 20대 중반이었다는 점. 그리고 얼굴없는 가수로 비주얼이 뛰어나지않았다는 점 등..
18/10/03 14:22
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이후 'X세대'가 등장했고, 2007년 원더걸스 텔미이후 '걸그룹'이라는 호칭이 쓰여졌죠.
현재 걸그룹의 포맷은 이후 걸그룹 전성시대인 2009년에 대부분 완성되었다고 보는데..(전시대 걸그룹 브아걸을 비롯해 원걸, 소시, 카라, 티아라, fx, 애프터스쿨, 포미닛, 투애니원, 씨크릿등 엄청났죠..) 2006년 텔미 전 데뷔한 씨야와 브라운 아이드걸스인데, 씨야는 나름 걸그룹 변곡점에서 자신이 해왔던 색깔을 지키려다 타이밍을 놓치고 그 후 어설픈 변화를 꽤한게 악수가 됐지만, 잃을게 없었던 브아걸은 과감하게 변하면서 타이밍을 잡고 승승장구 했던거죠. 마치 소니와 삼성이 가전업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꾼 것처럼요.
18/10/05 09:18
네 저도 님과 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씨야를 위한 변명을 좀 하자면 운이 나빴다고 보는것이죠. 물론 다른분의 의견처럼 개성면에서 브아걸이 더 나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건 멤버추가로 가능한 일이기에..
18/10/03 14:27
씨야의 저 멤버는 프로듀싱의 역량이라기 보다 본인들의 한계라고 보입니다. 단순 브아걸과 비교만 해봐도 제아는 이미 재학시절부터 이영현과 묶이는 탑클래스였고 나머지 멤버들의 솔로 활동을 보면 넷을 이용해 보여줄 수 있는 컨셉의 커버리지 자체가 씨야에 비해 압도적이죠. 씨야의 멤버 세명 모두 실력은 각자 평가가 다르겠으나 보컬톤이 하나씩이라서 무슨 노래를 하든 같습니다. 프로듀서가 붓을 들고 이리저리 하려 해봐도 같은 색깔이라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렇다고 셋이 조합하면 색다른 시너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창법도 세명이 유사하고요
18/10/05 09:36
씨야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멤버를 추가하면서 더 확실히 빨리 망하고 재기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운게.. 생각해보면, 굳이 남규리 탈퇴라는 이유뿐 아니라 다비치나 티아라 같은 확실한 후속가수가 있었죠
18/10/03 14:38
쥬얼리가 08년에 원모어타임을 히트시켰는데 09년에 나온게 버라이어티였던 걸 생각하면,
브아걸이 아브라카다브라를 히트시켰지만, 같은해 나온 사인도 빅히트였냐면 좀 애매한데다 이후의 브아걸의 행보를 생각하면, 결국 '아이돌'로써의 생명력은 거기가 끝이었다고 봅니다. 1,2년 더 하냐 아니냐, 이후 연예인으로써 좀 더 활발하게 행보할 수 있느냐의 차이를 낳은 정도죠. 전 그래서 씨야와 브아걸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변하는 시장판도에 잘 맞췄느냐 아니냐보다 소속사가 어디냐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씨야의 세 멤버는 아이돌로써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시장가치가 있었습니다. 소속사가 거기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죠. '아이돌' 생명력은 상실한 상황은 바로 파악했는데, 소속사는 씨야 멤버들을 비아이돌로서 가치를 필요없어했고 그저 다비치와 티아라를 위한 디딤돌로서의 가치만 봤을 뿐이죠. 다른 연예기획사들도 그런 곳 많지만, 어쨌든 그 소속사는 확실히 그러하니까요.
18/10/05 09:40
이부분은 브아걸이 너무 늦게 꽃피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이들이 1세대 걸그룹급이었죠.
아브라때도 이미 29살. 가인은 아브라이후 우결도 있었고 시트콤, 솔로로 좀 더 오래 잘 나갔긴 합니다. 님 말처럼 씨야는 소속사내의 대체자원이 훌륭히 성장해버려서 예전같은 대우를 못받았던것이기도 한듯 브아걸도 사실은, 전담팀이 아이유로 넘어가 버린것도 있고..
18/10/03 19:00
씨야는 여자아이돌계가 황량하던 시절 아이돌스러움으로 흥했던 아티스트형 그룹이었고
브아걸은 여자아이돌계가 한쪽으로 쏠렸던 시절 아티스트스러운 모습으로 흥했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각각의 시대에서 상대적으로 이득보는 포인트들이 있었던 그룹이라고 생각해요
18/10/03 19:55
씨야를 피지알에서 보니 너무 반갑네요.
SG워너비 빠돌이인 저는 씨야가 그렇게 마무리 된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정말 다비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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