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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6 01:40
순장의 목적과 똑같았다고 봅니다.
죽은 통치자들이 저승에서도 군대와 노예를 부릴 수 있게 포로와 노예를 저승으로 보내드리자는 발상.
22/01/16 01:52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단 잡아오고 나니까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보다 너무 많아서 적당히 솎아낼 필요가 있었고 솎아낼 명분을 불같은 효도에서 찾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현실적인 목적이 사라지고 교조화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2/01/16 02:15
확실히 무정연간에만 인신공양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무정연간까지는 지속적으로 인신공양 기록이 늘어나서 피크를 찍고, 이후엔 인신공양이 확 줄어듭니다) 규모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노예노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포로를 언제까지고 계속 먹일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다만 역사를 보면 오히려 현실적으론 큰 손해를 보더라도 인신공양을 감행한 사례도 많기 때문에, 상나라 사람들의 세계관을 좀 더 자세하게 알수있음 좋겠네요
22/01/16 06:07
정글은 보통 열대우림을 의미하는데 중국역사상 지금보다 기온이 높았던 적은 없습니다. 흔히 고대 중국에 코끼리나 코뿔소 같은것들이 살았음을 언급하며 고대 중국이 열대기후 였다고 오해 하는데 그냥 코끼리나 코뿔소등이 온대기후에도 살았다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밀려나서 열대기후대에만 남은겁니다.
22/01/16 12:46
홀로세 최적기에는 전지구적으로 지금보다 기온이 높고 해수면도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이 꽃피우던 시기가 이때죠 중국에서도 이시기 기후가 더 따뜻했습니다
22/01/16 11:01
고대 종교들의 교리에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었지 않나 싶어요.
기독교계열, 이슬람 계열에서 보이는 남녀차별적인 교리도, 여자를 거의 사람취급 안해주니까 '그래도 0.5인분은 쳐줘야 하지 않니?' 하는 의도일 거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공자는 인신공양과 싸운 거군요 ㅠㅠ
22/01/16 17:50
???: 아 마실물도 부족해죽겠는데 술 좀 만들어먹지말라고 ㅠㅠㅠ
생각보다 술 제조하는데 물이 은근 들어간다더라구요..무함마드가 괜히 막은게아닌가싶기도..
23/11/01 14:41
돼지 고기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합니다. 돼지는 고기를 얻기 위해 사람이 먹을 양식보다 더 많은 양식+물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사회 최상층 지배층만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이는 계급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금지했다고 하더군요. 어떤 율법이나 관습이 나올 때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이 있는데 나중에 교조화 되고 무작정이 되는건 인간 사회의 본성인가 봅니다.
22/01/16 17:02
피쟐이었나 어디선가 번 댓글 내용이 기억에 나네요
예수, 석가머니, 공자의 가장 큰 업적이 인신공양을 막은 것이고 그 공은 산업혁명에 견줄 정도로 크다였죠
22/01/16 10:17
貞이 점칠 정이니, "묻다"만으로는 약간 부족하고, "점쳐서 묻다"가 좀 더 정확하게 어의를 번역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즈텍에서는 공양후 잡아먹었기에, 단백질 보충함이 이차적 획득이자 진짜 목적이었다는 해석이 존재하는데, 상육(想肉)이라는 표현이 언제 등장하였는지와 상나라의 경우에도 잡아먹었는지는 좀 불분명하군요.
22/01/16 11:12
참 많은 분들이 현대적문명 시점에 오만한 관점에서만 바라보는군요.. 어디 영화나 게임에서처럼 태초의 인간에게 초월자가 나타나서 가르침 받은 선택된 사람처럼 댓글을 쓰는게 과연 맞는 의견입니까? 님들도 저시대에 태어났으면 똑같이 행동했을터인데..
기록조차 자세하게 남기지 못하는 문명에서 차츰차츰 많은 민족들이 모여서 서로 싸워가며 발전해온 현대의 문명의 혜택을 받은걸 감사하게 여기는 댓글은 하나도 없군요.. (물론 그렇다고 태극기 깃발 앞세우는 우며 빼에에에엑을 옹호하는건 아닙니다..) 글쓴이 의도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텐데..
22/01/16 11:12
근데 인신공양 이러니까 후덜덜 스럽지만 학살이라고 하면 아하 하고 받아들이게 되죠
단어가 주는 늬앙스가 인상을 결정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뭐 나름 문명시대에 들어서서도 몇만단위로 학살을 저지르는데 그거랑 크게 다를바도 없죠
22/01/16 16:51
하지만 국가단위의 학살이 밥 먹듯 일어나던 고대에도 인신공양은 분명히 역겨운 악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타우르스 이야기만 봐도 그렇고 이후에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이유 중 하나로 바알 신에게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꼽았을 정도로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 인신공양은 기피되는 것이었습니다.
22/01/16 11:25
현시대의 자유 평등같은 가치관이 자리잡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관념의 가치는 변화되어 가겠죠.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현시대 관념에 종속되므로 지금의 가치관으로 과거를 예단하겠죠.
22/01/16 11:34
중세이후 동서양 국력이 갈린 이유 중 하나로
백인의 호전성을 꼽기도 하던데 (몽고는 파괴말고 다른 생각이 없었으니 예외로 하고) 고대 역사보면 또 다르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22/01/16 14:13
몽골을 제외해버리고 이유를 호전성이라고 보기엔....
몽골을 논외로 쳐버린다면 당시 동양의 타이틀인 송이 몽골을 붙들고 끈질기게 버텨줘서 유럽이 살아남은 수준이죠. 개인적으론 몽골이 제국을 세웠음에도 행정력은 기존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제국에 비하면 유치원 놀이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남인을 사회 최하층으로 찍어눌러서 오히려 중국문화권의 문화력이 뒤로 후퇴해버린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22/01/16 17:03
그런 식으로 인식된 경우가 많은데 그건 사실 잘못된 인식에 가깝습니다. 유럽이 너무 멀어서 거기까지 못 갔고 남송과의 전쟁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40년에 걸쳐 혈전을 벌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수차례에 걸쳐 유럽 쪽을 공격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유럽측에 패배한 거에 가깝게 결말이 맺어졌습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당시 유럽에선 변방이었던 폴란드나 헝가리에서의 싸움이었고 헝가리의 경우엔 사조강 전투에서도 지긴 했지만 수부타이가 빠르게 도하해서 헝가리군 후방을 급습해서였지 그 직전까지는 헝가리군이 숫적으로도 열세하고 기사도 모자란 상태에서 근접전을 강요하면서 몽골군을 몰아붙이던 상황이었죠.
30년이 더 지나서 헝가리군은 더더욱 서방식으로 중장화 했는데 이 땐 몽골군을 확실히 격퇴했습니다. 몽골군이 진짜 유럽의 강자인 독일이나 프랑스와 맞붙었으면 어땠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22/01/16 12:31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해서라는 썰이 있던데.. 맞는진 모르겠네요. 단순 제의식 목적으로 보기엔 인신공양된 인원이 너무너무너무도 많았다고 하죠
22/01/16 17:12
현대에는 부정하는 추세입니다. 일단 인신공양 자체는 당대 중남미에 걸쳐서 메이저한 문화이긴 했는데 최소한 아즈텍만 놓고 봤을 때는 수산자원도 충분하고 개나 칠면조를 키워서 먹었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단백질 부족에 시달렸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속국들에 요구한 공물도 사치품 공예품이지 식료품은 아니었고요. 그리고 인신공양도 추수감사절 언저리에 먹을 게 많았을 시기에 더 많았습니다.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속국들의 인구를 조절하여 자신들에게 대항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한 것에 가깝다 봐야죠.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제의식을 넘어서 당대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이 오히려 축소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나간 게 하도 많아서
22/01/16 13:41
어떤 자들은 건축물의 기둥 아래나 문간 아래에 산채로 묻혀 문신門神의 먹잇감이 되었고: 이거 얼마전에 신라 유적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나요?
이 글 읽으니 에밀레종 이야기가 더욱 참말 같습니다.
22/01/16 14:08
그 시대 사람들에겐 소나 양을 제물을 올리는 거나 이민족을 제물로 올리는 거나 똑같은 거였을 겁니다.
이민족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일테니까요.
22/01/16 15:15
제신(주왕)도 제위 초기 갑골문을 보면 인신공양을 동물로 바꾸려고 하는 등 인신공양을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이죠. 중, 후기 갑골문은 소실됐지만 상나라가 계속 됐어도 결국 인신공양 자체는 조금씩 소멸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상의 조상신 '제'가 인본주의적 의미인 '천'으로 바뀐건 엄청 큰 일입니다만...
22/01/16 14:22
위에는 안나오지만 백성 민(民)자의 유래도 무릎을 꿇린 후에 눈을 멀게한 노예를 형상화한 단어라고 하죠. 단어에도 흠좀무한 의미가 담겨져있단걸 생각하면 기록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당시의 모습이 잔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2/01/16 16:32
육림이 헐벗은 사람들이 숲처럼(숲에서) 난교하는것이란 해석부터 나무에 주렁주렁 고기를 매달아놨다 그리고 더 나아가선 심지어 그 고기가 저기서 나온 묘형을 받은 사람고기였다까지 해석이 다양하더군요
22/01/16 22:44
춘추전국 때까지도 소위 야만성이랄까, 사람 목숨이 마구 죽어나가는게 이상하지 않았다죠. 당시 형벌이나 포로 죽여서 경관을 쌓는다거나 하는 등의 행위가 꽤나 잦았던걸로. 한나라 이후 유학이 통치학문이 된건 당시 상황에선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 여겨집니다.
22/01/16 23:48
인신공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죠
매우 정교한 역법까지 만들었던 그네들이니 만큼 상나라류의 원시적 그것과 비교하는 건 실례(?)라고 봅니다 . 극도로 단순하게 도식화 시켜서 보자면 , 1. 똑똑한 최상위계층이 인신공약의 당위성을 종교와 결부시킴 . 2. 일반 아즈텍인들 입장에선 종교뽕&축제뽕 충족 + 인육냠냠 . 3. 주변 부족의 항구적 약체화 . 4. 이런 구조하에 인신공양은 하나의 국가운영 시스템으로 기능 . 아즈텍 입장에선 위아래 할 것 없이 해피하고 좋았죠 . 오로지 아즈텍 입장에선 말이죠 .
22/01/18 15:57
사람을 글자그대로 잡아먹었냐, 아니면 비유적으로 잡아먹었냐의 차이지 사실 식민지 피빨아먹는 건 서구열강과 별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22/01/17 23:14
예전에 중국 고대사 관련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죠
[현대인이 어떻게 같은 사람을 저렇게 함부로 죽일 수 있냐고 상나라 사람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상나라 사람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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