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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1/10/03 17:02:06
Name Farce
Subject 힌두교에서 가장 위대한 쇼: '릴라' (수정됨)


오늘 가져온 이야기와 정말로 어울리는,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제가를 틀어놓고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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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사람을 항상 흥분시킵니다.] 과거 동굴에서 사던 인류가 벽면에 불을 지피고 첫번째 쇼를 시작했을 때부터,
'쇼'라는 것은 사람을 하품하고 졸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흥분시키고 전율시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해주며,
웃음이나 슬픔같이 일상에서도 느낄 감정을 몇배로 증폭시키거나 새삼스럽게 다시 알려주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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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쇼는 항상 '스펙터클', 그러니까 진풍경을 동원합니다.]
잔잔하게 진행되는 쇼가 있을지 몰라도, 가슴을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 만지다마는 쇼는 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나쁘고 재미없는 쇼에 대해서 다시는 보러가지 않고 주변에도 보지 말라고 권합니다.

어떤 종교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신들의 쇼가 펼쳐지는 곳이라고 봅니다.

힌두교의 '릴라'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듯이, 힌두교는 수없이 많은 신을 모시는 다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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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주신'이라고 부를 중요한 신은 세 명을 따로 모시지요.]

머리가 여러 개이고 태초에 현실을 창조한 창조신 '브라흐마',
현재를 지배하며 질서를 수호하는 푸른 피부의 '비수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해서 때가 된 모든 것을 부수는 파괴신 '시바'입니다.

이 중에서 비수뉴와 시바는 힌두교의 많은 종파에서 중요한 신으로 모십니다만,
브라흐마만은 예외입니다. 왜냐면, 말로는 창조신이라고 하지만, 실상 세상의 '재료'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멋진 작품을 보면서, 장인이나 감독을 보고 칭찬하지, 찰흙이나 소품을 보고 섬기진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신 중에서 하나를 '구성 물질'로 치부해버리듯이 (이 경우엔 '브라흐만'이라고 부릅니다),
힌두교의 세계관은 세상의 구성요소를 분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멋대로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만들어진 규칙과 형태에 따라서 이에 제약받는 신들의 형상을 만듭니다.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힌두교에는 수 많은 신이 있지만, 결국 이들조차도 필멸자보다 조금 길게 '존재했다 사라지는 형상'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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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을 힌두교에서는 '릴라'라고 부릅니다.]
참으로 장대하고 그래픽 쩔고, 또 동시에 허무하고도 세상의 모든 것인 인생게임을 묶은 개념입니다.

'릴라'는 산스크리트어 (힌두교의 경전이 쓰인 옛 언어)로 '신들의 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놀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덧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연극'이나 '춤'이라는 뜻도 되며, '컴퓨터 게임'이라는 뜻도 되고, '쇼'이자 '유튜브'와 '넷플릭스'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힌두교의 세상은 신들의 오징어 게임입니다.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서사시로 불리는 '마하바라타'는
다양한 인간 왕국들의 역사적인 전투를, '인드라의 화신 아르주나'와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의 우정과 활약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이야기, 현 시대의 마블 영화처럼 세계관을 깊게 버무린 인도 고대 문학의 최고 작품이라고 다들 부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성직자(브라만)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스승님 스승님. 마하바라타는 실제로 신들이 일으킨 일이었나요? 아니면 사람들이 신화를 받아적은 소설에 불과한가요?'
브라만은 잠시 생각을 하는 것처럼 참았다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의미 없는 질문이구나. 둘다 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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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에서 진지하게 연기를 하는 것은 '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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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것 또한 릴라'입니다. 릴라와 릴라를 구분하려고 구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그걸 앉아서 모니터 넘어로 구경하고 있는 우리 또한 '릴라'에 참가해서 세상에 릴라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피지알 자유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는 것도 릴라고,
롤에서 연승해도 릴라, 연패해도 릴라입니다.

'릴라' 안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아트만' 즉 '내'가 실존한다는 것입니다.

서양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결론이 동일합니다.

물론 아트만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도 함부로 알지 못합니다.
촉수괴물일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떤 아트만의 꿈 속에 존재하는 덧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나'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나'를 아십니까? 어떤 형태를 가졌습니까? 어떤 본질을 지녔습니까?
정말로 힘든 질문이지요.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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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트만'은 존재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릴라'라는 위대한 쇼 자체는, 한 줌의 본질인 '아트만'과 나머지인 '마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마야는 그 자체로 나쁜 요소는 아닙니다. 본질과 상관이 없어서 큰 문제일 뿐이지요.
그래도 마야는 매트릭스가 아니여서 우리에게 거짓을 먹이고 속이려고만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삶의 릴라에 충실하다보면, 쓸때 없는 마야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진실인 아트만이 고개를 들고 당신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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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뉴신을 중요하게 모시는 힌두교도는 매년 8월 말에 '크리슈나 잠아쉬타미'라는 축제를 엽니다.
이때, 신실한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모두 비수뉴의 화신 크리슈나처럼 입힙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크리슈나처럼 행동해야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할로윈 파티나 코스프레 행사와 동일한 방식으로 축제가 진행됩니다.
누가 복장을 잘 갖춰입었는지, 행동이나 '컨셉'이 누가 더 그럴싸한지 자랑하고 등수를 매기고 상품을 나눠주지요.

그리고 나서 축제가 이틀만에 끝나버리면, 주최측에서는 항상 선언합니다.
'우리가 즐겁게 축제를 열자, 이번 릴라 안에서도 크리슈나께서 직접 머무시다가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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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봤던 그 옆집 소년말이지요. 어쩌면 그 아이처럼 형태를 숨긴 크리슈나가 아니셨을까요?]

힌두교에서 신들을 공경해야하는 이유는 이들이 '암리타'이기 때문입니다.
암리타는 이들이 마시는 음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신화 같은 작품에서는 그냥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서 힐링포션처럼 마구잡이로 쓰입니다.

하지만 보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암리타의 본래 의미는 '영원'입니다.
마야와 함께 춤추는 릴라 속에서도, 신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형태를 고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암리타'라고 부릅니다.

크리슈나의 축제 역시

릴라 속에서 웃다가 울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달고나 뽑기를 하고 오징어 게임을 하는 당신에게
크리슈나가 그 모습 그대로 다가와서 속삭이는 정신 없는 쇼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울지 마라. 웃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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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직도 너다."]

'너 또한 나와 같이 아트만이 아니더냐?'

==

정신 없고 변덕이 심한 현상세계의 '릴라' 속에 살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그 와중에 무엇에도 바뀌지 않는 존재인 '암리타'를 만나셔서
자신과 세계의 본질인 '아트만'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미 보신적이 있다면, 경험을 댓글로 나눠주시면 어떨까요?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9-1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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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21/10/03 17:29
수정 아이콘
힌두교는 여러모로 참 흥미로운 종교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가장 위대한 소로 보고 클릭했네요. 힌두교가 소를 신성시하는 계기가 된 소 이야기 인줄...크크크
21/10/03 18:07
수정 아이콘
저도 크크크
21/10/03 23:03
수정 아이콘
제가 만나본 인도인도 소 자체가 딱히 맘에 드는건 아니고 많은 신들의 상징으로 쓰여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크크
다만 제가 고기 먹을때 마다 자꾸 꿍얼거리는 채식주의자였는데요. 힌두교에서는 확실히 소고기도 안 건들게 채식주의자 많이 발달했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술친구이자 김치친구(?)였습니다. 으음 다음 이야기는 한번 소를 조사해서 가져와보겠습니다! 언젠가는요...
발이시려워
21/10/03 17: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고맙습니다.
21/10/03 23:04
수정 아이콘
종교 설정글에 가까운 내용을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불교나 기독교의 이야기라면 좀 다양하게 이야기를 섞을수 있을텐데, 이질적인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다보니 그것에만 충실하는게 났겠다 싶더라고요. 히말라야 건너편에서는 사람들이 이런걸 믿는다니 참 신기하지 않나요?
트루할러데이
21/10/03 19:01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제가 경험한 인도랑 글이나 웹에서 만나는 인도는 참 다른 것 같아요. 여러모로 Incredible India 라구요
21/10/03 23:05
수정 아이콘
저도 계획이 하나 있다가 코시국으로 날아갔습니다 흑흑. 저는 오히려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중국(광둥)계 미국인이랑, 인도계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있어서 지금도 가끔 써먹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피지알에서도 가끔 정리가 되면 조사를 조금 더 해서 써서 올리고 있습니다. 흐흐... 인도 여행이 쉽다는 이야기는 잘 안들리던데요.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간접적으로 들은 저보다 더 진실된 이야기를 조금은 나눠주실 수 있으실련지요?
aDayInTheLife
21/10/03 19:22
수정 아이콘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크크크크
저는 참 '본질'이란 단어만큼 확실하면서 허상인 단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어요. 사회적 관계를 맺다보면 자아가 아가 아니고, 만들어진 형태의 가면을 쓰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21/10/03 23:27
수정 아이콘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국 떡밥은 이렇게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질이 있다, 없다!?"
저는 개인적으로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에 이런 힌두교의 해석을 가져왔고요. 아무리 세상이 본질과 1대1이 안되는 요지경 만화경 속이라고 해도, 결국 어떤 본질이 있으니 그것에 감응해서 거짓부렁도 파생되어서 만들어지고 세상을 가득채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페르소나의 가면이나 릴라의 가면이나 비슷한 점이 꽤나 있다고도 저도 생각합니다. 특히, 힌두교에 대항해서 나온 불교가 '아니 아타만(아) 같은거 없고 다 고통스러운 거짓부렁들이라니까!? (무아)'라고 주장했지만, 힌두교는 지금도 이에 대항해서, 릴라는 참으로도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징어 게임이랑 마찬가지죠.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안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저기 멀리있는 본질이요? 찾으면 좋긴 하겠지만, 괴력난신과 같아서 함부로 논할 시간에 현실에 충실한 것이 나은 것이지요. 매트릭스가 스테이크를 맛 볼수 있다면 통 속의 스테이크 없는 몸을 찾는건 소수의 구도자 선발대나 몰두하면 될 일입니다. 구도자와 쾌락주의자를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는 사상이라니 고민 좀 해본 것 같습니다 흐흐
21/10/03 19:48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셨다면 인도 신화를 모티브로 한 네이버 웹툰 쿠베라도 보세요.
플라톤
21/10/03 20:24
수정 아이콘
너무...너무 길어요...보다가 나가 떨어짐...
21/10/03 23: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쿠베라는 저도 몇번 도전했지만 제가 생각하는 힌두교 덕질과는 주안점이 많이 달라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게 또 그림체가 아니겠습니까, 이게 또 잘 안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래도 인도 문화도 슬슬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해져가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저도 향상된 요즘 접근성의 혜택을 많이 입고 있습니다.
12년째도피중
21/10/03 22:26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이야기로군요. 개인적으로 힌두교는 낯설어서 PGR에 무언가 올라올 때마다 그저 경청만 하게 됩니다.
인도 2년간 살다와서는 인도 얘기만 나오면 그저 똥 얘기랑 마리화나 얘기만 하던 제 친우 놈은 대체 뭘 보고 온건지.
.... 그 또한 릴라겠군요.
21/10/03 23:42
수정 아이콘
제가 듣기로는 인도 여행을 가면 한국인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보게된다더군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로요 흐흐흐!
아시아라고 거창하게 하나로 묶이지만 어쩌면 중동보다도 더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이질적인 곳이 인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릴라의 위엄이겠지요. 저도 미국에서 한국에서 보지 못할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한국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그냥 사는 것'에 있었고요.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가장 생각이 많고 힘들게 릴라의 춤을 추는 집단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moonland
21/10/03 22:39
수정 아이콘
힌두교의 이야기는 늘 재밌은 것 같습니다.
혹시 힌두교 관련된 책 중 추천해주실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21/10/03 23:47
수정 아이콘
힌두교 관련해서 직접 서적을 읽은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흑흑. 대부분 소설 같은 다른 창작물이나, 직접 당사자에게 간접적으로 술마시면서 듣거나 한게 대부분이라서 추천을 드리기가 힘드군요.

우파니샤드가 그렇게 좋은 철학서라는데 아직 저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본문에 언급된 마하바라타의 경우에는 워낙 다양한 창작물에서 변주가 되었기에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세계관 자체에 친숙하시다면요 꽤나 재밌겠습니다만 입문용으로는 좀 힘들것 같습니다. 좀 더 내공을 쌓아오겠습니다!
잠이온다
21/10/03 22:49
수정 아이콘
뭔가 불교와 비슷한 느낌을 받네요. 하지만 불교랑은 다른 것같기도 하고...
힌두교의 교리에서도 불교처럼 '좋고 나쁜 것은 없다'라고 가르치지는 않는 것같은데...
21/10/04 00: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힌두교의 종파 안에서는 브라흐만, 아트만, 릴라 등의 개념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트만이라는건 사실 없는게 아닐까?'라면서 떨어져나간 사상이 불교의 뿌리가 되었다고 종교학은 기록합니다.

불교에서는, 힌두교의 브라흐만으로 만물이 만들어져있으며 아트만이라는 본질을 찾아야한다는 사상을 '범아일여'라고 옮깁니다.
범은 세상에 가득한 것 즉 브라흐만의 번역어이고, 아는 자신 그러니까 아트만의 번역어입니다.
둘이 합쳐서 우주적인 실체를 구성하며, 자신이고 타인이고, 결국 진리의 움직임이 만든 춤추는 그림자인 릴라에 불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불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범아일여'를 부정하고, '무아 (안아트만, 곧 아트만이란 없음)'를 주장합니다.
어떤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헛고생이고 고통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마치 공산주의가 생각납니다만 크크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근본이치를 찾아내서 깨부수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불성'이라는 것은 매트릭스를 깨부술 수 있는 각성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덧없는 윤회의 고리에서 '해탈'하여, 밑도 끝도 결론도 없는 무한한 자아 찾이에서 자유로운 초월자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야말로 '참나 (한자로 '진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비록 힌두교에서 '해탈', '열반'의 개념을 빌려오긴 했지만, 힌두교에서 사용되는 의미는 불교와 전혀 다릅니다.
힌두교에서의 해탈(모크샤)은, 릴라를 즐기고, 요가를 하고, 고행을 한 끝에 마침내 암리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낮은 존재들이 다음 윤회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꼭두각시나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과 달리,
신과 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어서 2회차를 시작하고,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의 형태를 고정하는데 성공한 수 많은 아트만의 조각들은 '지반묵타'가 됩니다.
그러나 지반묵타들은 다시 자신을 채찍질하여 '파라마트마'에 도달해야합니다. 제가 글에서 흘린 이야기이지만,
과연 어느 아트만이 진짜 아트만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흐흐, 지금 제가 느낀 '제'가 진짜 아트만일까요?
다른 아트만은 어떤 우월한 아트만이 꾼 꿈이거나, 릴라에서 길을 잃은 아트만의 착각이 쌓인 존재가 아닐까요?
'파라마트마'는 가장 날것의 아트만, 세상의 눈이 자신의 눈과 자아와 하나가 된 태초의 아트만입니다. '내가 우주다'라고 할 수 있는 경지죠.
이게 힌두교에서의 가장 높은 경지라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자, 역시 발달과정을 공유해서 그런지, 참으로 비슷하면서도, 참으로 서로 반대되려고 노력하는 디테일이 보이시지 않나요?
한쪽은 정말로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고, 한쪽은 자신이 있다고 우기는 시스템을 부수는 것으로 진정한 자신을 만날려고 하니까요.
잠이온다
21/10/04 00:14
수정 아이콘
결국 모든 종교에서 방향은 다르지만 '초월'에 관한 논의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원초적으로 그런 갈망을 가지고 있나 싶기도 하네요. 세계의 메인 종교 중에서 기독교정도만 이에 벗어나는 것같고요.(기독교의 천국 개념은 나와 하나님이 일체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상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
23/09/20 17:30
수정 아이콘
2년 전 글이지만 이제 읽었네요. 문득 로저 젤라즈니가 쓴 신들의 사회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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