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의 2020-21 시즌 정규리그가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 스포츠, 아니 그 중에서도 특히 NBA는 정규 시즌이 예선전의 느낌이라면, 플레이오프가 되어야 비로소 본선전인 느낌이 강합니다. 따라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각 팀들의 해당 시즌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또한, 스타 선수들에게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는가 주요 업적 지표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워싱턴 위저즈의 포인트가드 러셀 웨스트브룩의 이번 시즌은 정말 다사다난 했습니다. 조금 더 MSG를 보태서 이야기 하자면, 이번 시즌 MVP의 영예는 덴버 너게츠의 센터 니콜라 요키치가 가져가겠지만, 이번 시즌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골든 스테이트의 스테픈 커리와 더불어 러셀 웨스트브룩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웨스트브룩은 시즌 내내 무서운 기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해 나가더니 오스카 로버트슨이 보유하고 있던 통산 최다 누적 트리플더블 기록(181개)을 경신하였습니다. 2017-19년에 이어 통산 4번째로, 남들은 선수 생활 내내 단 한번도 하기 힘든 트리플더블을 시즌 평균 기록(22.2 득점, 11.5 리바운드, 11.7 어시스트)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자연스레 최하위권이었던 팀 성적은 어느덧 동부리그 8위까지 올라서며, 플레이인(Play-in Tournament) 입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웨스트브룩의 이번 시즌은 근래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성공적인 시즌이었습니다. 또한 근래들어 누구보다 많은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이번 시즌은 그가 NBA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선수임을 확실하게 증명한 시즌이 될 것입니다.
러셀 웨스트브룩은 시즌 MVP 출신에,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2017년 MVP 수상 이후 그의 커리어는 완연한 하강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11시즌을 헌신한 OKC에서 휴스턴 로케츠로, 그리고 단 한 시즌만에 곧바로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된 점은 많은 점을 시사했습니다.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의 기량이 정상궤도로 오른 이후엔 OKC는 항상 대권에 도전하는 팀이었습니다. 2016년에 케빈 듀란트가 떠나는 부침이 있었지만, 1년 만에 다시 올스타급 선수들이었던 폴 조지와 카멜로 앤써니가 합류하였습니다. 카멜로 앤써니가 완벽한 노쇠화를 보이며 재차 1년 만에 팀을 떠났지만, 폴 조지는 MVP급 선수로 성장해서 다시한번 우승에 도전할만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휴스턴 로케츠는 제임스 하든을 중심으로 골든 스테이트를 2시즌 동안 가장 괴롭혔던, 이미 완성된 팀이었습니다. 여기에 러셀 웨스트브룩의 가세는 휴스턴의 입장에선 하든의 전성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기 충분한 시도였습니다. 결국은 이 모든 도전들이 모두 실패로 끝이났습니다. 장기 부상으로 인해 이미 트레이드 가치를 상실한 존 월과 웨스트브룩이 맞트레이드(+1R Pick) 된 점, 그리고 여태까지 우승 도전팀에서 뛰어온 그가 우승과 전혀 관계가 없는 팀에서만 원하는 선수가 된 점에서 이미 그의 커리어는 벼랑 끝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독하게도 안들어갔던 슈팅 떄문에, 림에 벽돌을 던지는 것을 묘사한 인터넷 밈
바로 직전 시즌인 2019-20시즌, 휴스턴 로케츠에서 웨스트브룩은 무려 All-NBA 3rd team을 수상한 선수였습니다. 시즌 초반엔 2점슛보다 3점슛을 더 많이 던지는 모리 단장-댄토니 감독의 휴스턴 로케츠에서, 샤프 슈터(Sharp Shooter)와는 거리가 먼 웨스트브룩은 홀로 겉도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팀에서 본인이 무엇을 해야할 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팀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골밑에서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했지만, 수 년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던 센터 클린트 카펠라를 애틀랜타 호크스로 보냅니다. 이로써 휴스턴의 모든 선수들이 3점라인 바깥에 위치하게 되자, 골밑은 무주공산이 됩니다. 그야말로 골밑이 웨스트브룩이 자유자재로 돌파하는 놀이터가 됩니다. 웨스트브룩이 확률이 떨어지는 점프슛대신 골밑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득점 효율이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웨스트브룩의 돌파를 막기 위해 상대팀에서 골밑을 틀어잠그면, 특유의 넓은 시야로 킥 아웃 패스로 외곽으로 빼줍니다. 휴스턴 로케츠의 팀 특성상 3점 폭죽쇼가 터지기 매우 좋은 환경이 됩니다.
2020년 2월, 웨스트브룩이 41득점을 기록하며 우승후보 0순위 LA 레이커스를 격침시킨 경기는 변화된 팀 환경에 따른 웨스트브룩의 활약의 정점이었습니다. 드와이트 하워드, 자베일 맥기 등 키가 큰 빅맨 위주로 팀을 운영했던 레이커스는 정반대의 '스몰볼'을 구사하고 있던 휴스턴 로케츠와 웨스트브룩의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웨스트브룩이 리그에서 가드와의 미스매치를 가장 잘 버티는 빅맨인 앤써니 데이비스마저 농락하는 모습은, 두 팀의 상성 관계까지 재고가 필요한 듯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활약들을 계기로 All-NBA 3rd team 수상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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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참동안 리그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보였던 웨스트브룩의 폼도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되지요. 아니나 다를까, 휴식기 동안 웨스트브룩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습니다. 이후 재개된 버블 리그에서 코로나는 완치 되었지만, 이전에 보여준 지배력은 온데간데 없이 한심한 경기력으로 일관합니다. 친정팀 OKC와의 플레이오프에선 클러치 상황에서 어이없는 에어볼과 패스미스로 한 경기를 날렸습니다. 제임스 하든의 투혼의 블록슛이 기억에 남는 시리즈였지만, 그만큼 웨스트브룩이 시리즈를 접전으로 끌고가는데 큰 몫(?)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오프내내 이름 값과 거리가 먼 부진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플레이오프 2Round에서 재회한 LA 레이커스에게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습니다.
이 때의 부진에 대해 웨스트브룩은 코로나로 인한 컨디션과 훈련량의 저하, 그로인한 허벅지 부상을 달고 뛰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마 이 고백은 단순한 핑계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경기 내에선 기분파 돌격대장의 이미지가 강한 웨스트브룩이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규칙적인 루틴에 큰 영향을 받는 선수 입니다. 바뀐 자유투 규정으로 인해 루틴이 무너지면서 자유투 성공률이 급락한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훈련과 가족과의 연락, 식사시간 등의 배분을 초단위로 쪼개는 '루틴 강박'이 있는 그에게, 코로나 자가격리로 인한 훈련 부족과 루틴의 파괴는 다른 선수들보다도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와 부상에서 회복될만한 충분한 시간이 지난 워싱턴 위저즈 이적 직후에도 버블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부진한 활약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이제 웨스트브룩은 가파른 내리막 길만 남은 선수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매년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꾸준히 참가했었던 올스타 선정에도 제외되었습니다. 주특기인 트리플더블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었지만, 팀 승률과의 연관성 하고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머릿속엔 '웨스트브룩의 트리플더블은 하루의 개인 숙제와 같은것이야. 팀의 승리와는 큰 상관이 없지.'으로 인식되는 것에 그쳤습니다. 슈퍼스타였던 선수가 이처럼 점점 더 팬들에게 외면받는 순간, 이를 드라마틱하게 반등시킨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위대한 코비 브라이언트도,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복귀하여 '니갱망(니가 갱기를 망치고 있어)'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후엔, 점점 사그라지는 별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비도 피해갈 수 없었던, 선수경력의 내리막 길
"Why Not?"
에어조던에서 출시하는 웨스트브룩 시그니쳐 신발 명이기도 하지만, 그 기원은 웨스트브룩의 좌우명에 있습니다. 웨스트브룩은 가공할 운동능력 때문에 항상 주목받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때까지 덩크도 할 수 없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습니다. 리그에서 큰 신장을 가졌거나, 운동 능력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대체로 13~15세에 덩크가 가능한 점과, 현재 웨스트브룩이 리그 최고의 인게임(In-game) 덩커 중 한 명인 점을 생각하면 꽤나 의외의 사실입니다. 또한 NBA 무대에 입성한 후 MVP에 등극하기 전까지 끝없는 의심의 시선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OKC 시절에는 케빈 듀란트의 든든한 동료가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 선수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그런 의심의 순간마다 웨스트브룩은 "Why Not?"이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습니다. 비록 우승반지는 없더라도 이미 MVP수상자 출신이며, 수 없이 많은 횟수의 올스타 무대와 All NBA 선수로 선정된 선수입니다. 워싱턴 위저즈 이적 후엔,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곧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웨스트브룩 스스로가 '더 이상 난 증명할 것이 없다'라고 선언을 하더라도 결코 이상하지 않은 커리어입니다. 그러나 웨스트브룩의 "Why Not?"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으며, 그러한 열정의 위대한 결과물이 이번 시즌의 찬란한 반등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자기자신을 향한 이 물음은 그의 성향상 은퇴하기 직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승부에 관해서는 독함을 넘어선, '악독함'으로 유명한 마이클 조던,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Mamba Mentality'의 코비 브라이언트 모두 은퇴 이후 현역 선수 중 가장 자신과 가까운 선수로 웨스트브룩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찰스 바클리는 러셀 웨스트브룩을, '내가 30년 동안 그 처럼 매경기 열심히 뛰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조던이라 하더라도.'라고 평가 했습니다.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웨스트브룩은 불평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당장 눈 앞에 있는 경기를 마지막 경기처럼 몸을 날리며,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 빅맨들 사이에서 리바운드를 낚아채고, 가장 먼저 반대편 코트를 향해 빠르게 달리며, 동료들을 살려주는 패스를 뿌립니다. 이 놀라운 에너지는 기록지에 화려한 수치로 남겨집니다.
이러한 웨스트브룩의 열정은 본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팀동료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리더쉽이며, 팀 전체에 엄청난 사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 줍니다. 그 증거로 웨스트브룩의 전 동료들 중 이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를 찾기 힘듭니다. SNS 이중계정으로 이전 팀원들과 감독을 모두 찰지게 디스한 케빈 듀란트마저 웨스트브룩 만큼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고향이자 빅마켓인 LA 팀으로 가고싶은 열망을 결코 비밀로 하지 않던 폴 조지는 웨스트브룩과의 우정만으로 스몰 중의 스몰마켓 팀인 OKC에서 1년 더 도전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실패한 결합으로 끝이났지만, 제임스 하든은 웨스트브룩과의 관계를 결코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며, 웨스트브룩의 트리플 더블 기록 작성에 기꺼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현 동료인 브래들리 빌은 웨스트브룩을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치켜세웠습니다.
조던과 코비 모두에게 직속 후계자로 인정받은 선수
아직도 웨스트브룩은 경기 도중 열정 과다로 인해 클러치 타임에서 턴오버 파티를 하며, 응원팀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합니다. 낮은 슈팅 효율은 아마 은퇴하는 순간까지 개선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웨스트브룩의 가장 큰 장점인 에너지와 운동능력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기 가장 어려운 항목들입니다.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들 때문에 안타깝지만 팀의 최고 선수로 웨스트브룩을 기용하는 팀은 우승하지 못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고집불통 웨스트브룩은 그런 외부의 편견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 오늘도, 내일도 "Why Not?"을 외치며 매번 한결같은 자세로 임할 것입니다. 그것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웨스트브룩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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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7-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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