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1/04/04 00:12:47
Name 위대함과 환상사이
Link #1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modern-art-was-cia-weapon-1578808.html
Subject [번역] 현대미술은 미국 CIA의 무기였다.(Modern art was CIA 'Weapon') (수정됨)
현대미술은 미국 CIA의 무기였다.(Modern art was CIA 'Weapon')

폭로 : 어떻게 비밀정보기관은 냉전시대 문화전쟁에서 폴락, 데 쿠닝 같은 예술가들을 그들도 모르게 이용했는가?

영국 인디펜던트지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기사

Modern art was CIA 'weapon'
Revealed: how the spy agency used unwitting artists such as Pollock and de Kooning in a cultural Cold War

By Frances Stonor Saunders
Friday 14 June 2013 15:08




For decades in art circles it was either a rumour or a joke, but now it is confirmed as a fact.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used American modern art - including the works of such artists as Jackson Pollock, Robert Motherwell, Willem de Kooning and Mark Rothko - as a weapon in the Cold War. In the manner of a Renaissance prince - except that it acted secretly - the CIA fostered and promoted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painting around the world for more than 20 years.

예술계에서 지난 수십년간 루머 또는 농담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미 중앙정보국(CIA)는 잭슨 폴락, 로버트 마더웰, 빌렘 데 쿠닝, 마크 로스코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미국 현대 미술을 냉전기 동안 하나의 무기로 이용하였다. 비밀리에 수행되었다는 점을 외에는 르네상스시대 군주와 동일한 수법으로 미국 CIA는 전세계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자들의 미술품을 20년 넘게 전파하고 선전했다.



The connection is improbable. This was a period, in the 1950s and 1960s, when the great majority of Americans disliked or even despised modern art - President Truman summed up the popular view when he said: "If that's art, then I'm a Hottentot." As for the artists themselves, many were ex- communists barely acceptable in the America of the McCarthyite era, and certainly not the sort of people normally likely to receive US government backing.

얼핏보면 이 커넥션은 개연성이 낮아 보인다. 1950,60년대는 대다수 미국 대중이 현대미술을 싫어하거나 심지어 멸시했던 시대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만의 발언은 현대 미술을 바라보는 미국 대중의 관점을 잘 요약해준다. "만약 그게 미술이면, 나는 아프리카의 호텐토트 족이다." 많은 수가 전직 공산주의자였던 미국현대미술 작가들은 매카시 시대의 미국에서 거의 수용되기 어려운 인물들이었고 확실히 미국 정부가 그 뒷배가 될 만한 종류의 인물들이 아니었다.

*호텐토트족 - 호텐토트는 네덜란드어로 열등하다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유럽에는 오래 전부터 엄청나게 커다란 엉덩이와 소음순을 가진 호텐토트족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었고, 실제로 그에 부합하는 신체적 특성을 가진 나미비아 출신의 사르키 바트만이란 흑인여성(호텐토트 부족의 여성은들은 엉덩이가 거대해지는 둔부지방 경화증이란 유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데려와 런던과 파리에서 신기한 구경거리로 삼아 전시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이런 전시는 그녀가 죽은 1815년 이후에도 계속되어 그녀의 시신은 조각조각 분해되어 박제가 되어 파리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1950년대 중반이후 그녀의 시신의 전시중단과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2002년 5월 3일이 되어서야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마중 속에 남아공 땅으로 돌아왔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여성 테니스 스타 보즈니아키가 샤라포바와의 경기에서 가슴과 엉덩이에 수건을 집어넣고 경기에 나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는데, 보즈니아키는 친한 동료선수인 세레나 윌리엄스를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을 뿐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고, 세레나 윌리엄스도 재밌는 장난으로 받아들여 큰 소동없이 지나갔지만, 당시의 인종차별논란에는 사르키 바트만과 관련된 역사적인 맥락이 놓여있어 그 논란이 더욱 커진 측면이 있다.)



Why did the CIA support them? Because in the propaganda war with the Soviet Union, this new artistic movement could be held up as proof of the creativity, the intellectual freedom, and the cultural power of the US. Russian art, strapped into the communist ideological straitjacket, could not compete.

그러면 왜 미국 CIA는 그들을 지원하였을까? 왜냐하면 소련과 벌인 프로파간다 전쟁에서 당시 이 새로운 미술운동은 미국의 창조성, 지적 자유, 문화적 힘의 입증 사례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구속된 러시아의 예술은 이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



The existence of this policy, rumoured and disputed for many years, has now been confirmed for the first time by former CIA officials. Unknown to the artists, the new American art was secretly promoted under a policy known as the "long leash" - arrangements similar in some ways to the indirect CIA backing of the journal Encounter, edited by Stephen Spender.

긴 시간 동안 소문만 무성하고 논란이 되어온 이 정책의 존재여부가 이제 전직 CIA요원에 의해 처음으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예술가들도 모르게 새로운 미국 미술은 "기다란  목줄("Long Leash")"- CIA의 간접적인 지원이란 점에서 스티븐 스펜더가 편집자인 Encounter란 잡지에 대한 공작과 유사한 - 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정책아래 비밀리에 육성되었다.



The decision to include culture and art in the US Cold War arsenal was taken as soon as the CIA was founded in 1947. Dismayed at the appeal communism still had for many intellectuals and artists in the West, the new agency set up a division, the Propaganda Assets Inventory, which at its peak could influence more than 800 newspapers, magazines and public information organisations. They joked that it was like a Wurlitzer jukebox: when the CIA pushed a button it could hear whatever tune it wanted playing across the world.

문화와 예술을 냉전기 미국의 무기로 삼은 결정은 1947년 CIA가 설립되자 마자 이루어 졌다. 공산주의가 여전히 서구의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낙담한 CIA는 전성기에 800개 이상의 신문, 잡지, 공적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프로파간다 자산 목록(the Propaganda Assets Inventory)이란 부서를 설립했다. CIA가 버튼을 눌렀을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논조라도 전세계 모든 곳에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농담삼아 이를 오르간 주크박스(Wurlitzer jukebox)라고 불렀다.



The next key step came in 1950, when the International Organisations Division (IOD) was set up under Tom Braden. It was this office which subsidised the animated version of George Orwell's Animal Farm, which sponsored American jazz artists, opera recitals, the Boston Symphony Orchestra's international touring programme. Its agents were placed in the film industry, in publishing houses, even as travel writers for the celebrated Fodor guides. And, we now know, it promoted America's anarchic avant-garde movement, Abstract Expressionism.
  
CIA의 프로파간다 정책은 톰 브랜든의 지휘하에 국제조직부(International Organizations Division)가 설립된 1950년에 다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지급한 이 부서는 미국 재즈예술가들, 오페라 리사이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해외투어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후원하였다. 그 부서의 요원들은 영화산업, 출판사, 심지어 유명한 관광지 소개를 주로 하는 여행작가 주위에도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의 무정부주의적 전위예술운동(Avantgarde movement), 즉 추상표현주의도 육성했다.



Initially, more open attempts were made to support the new American art. In 1947 the State Department organised and paid for a touring international exhibition entitled "Advancing American Art", with the aim of rebutting Soviet suggestions that America was a cultural desert. But the show caused outrage at home, prompting Truman to make his Hottentot remark and one bitter congressman to declare: "I am just a dumb American who pays taxes for this kind of trash." The tour had to be cancelled.

최초에는 미국 미술에 대해 보다 공개적인 지원을 시도했다. 1947년에 미국 국무부는 미국은 문화적 불모지라는 소련의 공세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으로 "진보하는 미국미술"("Advancing America Art")이란 이름의 국제 순회전시회를 조직하고 비용을 부담했다. 그러나 그 전시회는 미국 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트루만의 호텐토트족 발언을 이끌어냈으며, 격노한 어떤 미 하원의원으로 하여금 "나는 그저 이런 쓰레기 같은 것에 세금을 갖다 바치는 얼간이 미국놈이다."라는 발언까지 불러 일으켰다. 결국 순회 전시회는 취소될 수 밖에 없었다.




The US government now faced a dilemma. This philistinism, combined with Joseph McCarthy's hysterical denunciations of all that was avant-garde or unorthodox, was deeply embarrassing. It discredited the idea that America was a sophisticated, culturally rich democracy. It also prevented the US government from consolidating the shift in cultural supremacy from Paris to New York since the 1930s. To resolve this dilemma, the CIA was brought in.

미국정부는 이제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전위적이고 이단적이라면 무엇이든 신경질적 비난을 보내는 조제프 매카시류의 기질과 결합된 이런 속물근성은 심히 난처한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세련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믿음의 근거를 없애 버리는 일이었다. 또한 이는 1930년대 이후로 문화적 패권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공고하게 이행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CIA가 불려왔다.



The connection is not quite as odd as it might appear. At this time the new agency, staffed mainly by Yale and Harvard graduates, many of whom collected art and wrote novels in their spare time, was a haven of liberalism when compared with a political world dominated by McCarthy or with J Edgar Hoover's FBI. If any official institution was in a position to celebrate the collection of Leninists, Trotskyites and heavy drinkers that made up the New York School, it was the CIA.

CIA와 새로운 미국예술의 커넥션은 겉으로 보이는 것 만큼 매우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당시 많은 재학생들이 예술품을 수집하거나 여가시간에 소설을 쓰는 예일과 하버드 졸업생 출신인 CIA요원들에게 CIA는 매카시나 에드가 후버의 FBI가 지배하는 정치세계와 비교하면 자유주의의 피난처였다. 만약 어떤 공공기관이 레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뉴욕파 추상표현주의 예술가 그룹에 속한 술주정뱅이의 무리를 환영한다면, 그것은 CIA 뿐이었다.




Until now there has been no first-hand evidence to prove that this connection was made, but for the first time a former case officer, Donald Jameson, has broken the silence. Yes, he says, the agency saw Abstract Expressionism as an opportunity, and yes, it ran with it.

지금까지 이런 커넥션의 존재를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당해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요원인 도날드 제임슨이 침묵을 깨고 증언했다. 그는 말하기를 "맞아요. CIA는 추상표현주의를 좋은 기회라고 보았어요.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았죠."




"Regarding Abstract Expressionism, I'd love to be able to say that the CIA invented it just to see what happens in New York and downtown SoHo tomorrow!" he joked. "But I think that what we did really was to recognise the difference. It was recognised that Abstract Expression- ism was the kind of art that made Socialist Realism look even more stylised and more rigid and confined than it was. And that relationship was exploited in some of the exhibitions."

"추상표현주의에 대해서 나는 뉴욕과 런던 소호(SoHo)에서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싶은 마음에 CIA가 그걸 발명했다고 말하기를 좋아했어요"라고 제임슨은 농담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실제 한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차이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추상표현주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제보다 더욱 형식화되고 경직되며 속박된 것으로 보이게 끔 하는 미술양식이었다고 생각되었죠. 그리고 추상표현주의 미술은 몇몇 전시회에서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었어요."



"In a way our understanding was helped because Moscow in those days was very vicious in its denunciation of any kind of non-conformity to its own very rigid patterns. And so one could quite adequately and accurately reason that anything they criticised that much and that heavy- handedly was worth support one way or another."

"어떤 측면에서는 그 무렵 모스크바는 자신들의 매우 경직된 예술양식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어떤 예술이든 매우 집요하고 악랄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발상에 도움이 되었었죠. 그래서 그들이 집요하고 가혹하게 비판하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지원할 가치가 있다는 걸 매우 적절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있었죠."



To pursue its underground interest in America's lefty avant-garde, the CIA had to be sure its patronage could not be discovered. "Matters of this sort could only have been done at two or three removes," Mr Jameson explained, "so that there wouldn't be any question of having to clear Jackson Pollock, for example, or do anything that would involve these people in the organisation. And it couldn't have been any closer, because most of them were people who had very little respect for the government,  in particular, and certainly none for the CIA. If you had to use people who considered themselves one way or another to be closer to Moscow than to Washington, well, so much the better perhaps.

미국 좌익전위예술운동의 반체제적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CIA는 후원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제임슨 씨는 "CIA의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둘셋의 중간 단계를 걸쳐야만 했죠. CIA가 직접 잭슨 폴락같은 예술가들에게 보안 허가를 내주는 일이 없게끔 말이죠."(*텅트님의 지적으로 오역된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텅트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미술가들 대다수는 정부를 별로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이상 접근할 수도 없었어요. 특히 CIA라면야 더 말할 나위조차 없죠. 그들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 워싱턴보다 모스크바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인물들을 이용해야 한다면, 글쎄요. 이런 방식이 훨씬 더 낫지 않겠어요?"라고 설명했다.



This was the "long leash". The centrepiece of the CIA campaign became the Congress for Cultural Freedom, a vast jamboree of intellectuals, writers, historians, poets, and artists which was set up with CIA funds in 1950 and run by a CIA agent. It was the beach-head from which culture could be defended against the attacks of Moscow and its "fellow travellers" in the West. At its height, it had offices in 35 countries and published more than two dozen magazines, including Encounter.

이것이 "기다란 목줄"이란 이름의 공작이었다. 이제 CIA 공작의 중심은 CIA의 자금으로 설립되고 그 요원들에 의해 운영되는 지식인, 작가, 역사가, 시인, 그리고 미술가들의 광범위한 모임인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라는 기구가 되었다. 그 기구는 모스크바와 서구의 "(소련)지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문화를 방어하는 교두보였고, 전성기에 35개국에 사무실을 설치하였으며, Encounter라는 잡지를 포함하여 20여개 이상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The Congress for Cultural Freedom also gave the CIA the ideal front to promote its covert interest in Abstract Expressionism. It would be the official sponsor of touring exhibitions; its magazines would provide useful platforms for critics favourable to the new American painting; and no one, the artists included, would be any the wiser.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는 또한 CIA에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대한 은밀한 관심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관이 되었다. 그 기구는 순회전시회의 공식 스폰서가 되었고 ; 그 산하 잡지들은 새로운 미국 미술작품에 호의적인 비평가들에게 기고문을 발표할 수 있는 유용한 창구가 되었다. : 미술가들을 포함하여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This organisation put together several exhibitions of Abstract Expressionism during the 1950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The New American Painting", visited every big European city in 1958-59. Other influential shows included "Modern Art in the United States" (1955) and "Masterpieces of the Twentieth Century" (1952).

이 조직은 1950년대에 몇몇 추상표현주의 미술 전시회를 조직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새로운 미국 미술"이란 이름의 전시회가 1958년과 59년 사이에 유럽의 모든 대도시에서 열렸다. 또 다른 영향력이 큰 전시회는 "미국에서의 현대 미술"(1955년)과 "20세기의 걸작들"(1952년)이었다.



Because Abstract Expressionism was expensive to move around and exhibit, millionaires and museums were called into play. Pre-eminent among these was Nelson Rockefeller, whose mother had co-founded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As president of what he called "Mummy's museum", Rockefeller was one of the biggest backers of Abstract Expressionism (which he called "free enterprise painting"). His museum was contracted to the Congress for Cultural Freedom to organise and curate most of its important art shows.

추상표현주의 미술품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시하려면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에, 부유한 자산가와 박물관이 동원되었다. 이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인물이 바로 그의 어머니가 뉴욕 현대미술관(역자 - MOMA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매우 유명한 미술관)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넬슨 록펠러였다. 그가 엄마 미술관이라고 불렀던 MOMA의 회장으로서, 록펠러는 추상표현주의 미술(록펠러가 자유로운 기업미술이라고 부르곤 했던)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그 미술관은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가 주최하는 주요 미술품 전시회의 작품 대부분을 선정하고 전시회를 조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The museum was also linked to the CIA by several other bridges. William Paley, the president of CBS broadcasting and a founding father of the CIA, sat on the members' board of the museum's International Programme. John Hay Whitney, who had served in the agency's wartime predecessor, the OSS, was its chairman. And Tom Braden, first chief of the CIA's International Organisations
Division, was executive secretary of the museum in 1949.

MOMA는 또한 몇몇 다른 접점을 통해 CIA와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 CBS방송국 회장이자 미 CIA의 설립자인 윌리엄 팔레이는 MOMA의 국제 프로그램의 이사 중 한 명으로 재임하고 있었고, 세계 제2차대전 당시에 CIA의 전신인 OSS의 국장으로 일했던 존 해이 휘트니는 MOMA의 국제 프로그램 이사회의 의장이었다. 그리고 CIA의 국제조직부의 초대 부서장인 톰 브랜든은 1949년에 MOMA의 사무총장이었다.



Now in his eighties, Mr Braden lives in Woodbridge, Virginia, in a house packed with Abstract Expressionist works and guarded by enormous Alsatians. He explained the purpose of the IOD.

이제 팔십대의 연령인 브랜든씨는 버지니아 주, 우드브리지에 있는 추상표현주의 미술품들로 가득찬 집에서 덩치가 큰 독일산 셰퍼드와 같이 살고 있다. 그는 국제조직부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We wanted to unite all the people who were writers, who were musicians, who were artists, to demonstrate that the West and the United States was devoted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to intellectual achievement, without any rigid barriers as to what you must write, and what you must say, and what you must do, and what you must paint, which was what was going on in the Soviet Union. I think it was the most important division that the agency had, and I think that it played an enormous role in the Cold War."

"우린 서구국가들과 미국은 반드시 어떤 걸 써야 하고, 말해야 하고, 행해야 하고, 그려야만 하는 - 당시에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 -  경직된 장벽없이 표현의 자유와 지적인 성취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서 문필가, 음악가, 미술가인 사람들을 모두 통합하고 싶어했죠. 내 생각에 국제조직부는 CIA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였고, 냉전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어요."



He confirmed that his division had acted secretly because of the public hostility to the avant-garde: "It was very difficult to get
Congress to go along with some of the things we wanted to do - send art abroad, send symphonies abroad, publish magazines abroad. That's one of the reasons it had to be done covertly. It had to be a secret. In order to encourage openness we had to be secret."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대중적 적대감 때문에 그의 부서가 비밀리에 활동했다는 점을 확인하여 주었다. : "우리가 하고 싶어했던 일들 가운데 몇몇은 미 의회의 동의를 얻기에 너무 어려웠죠.* - 미술품, 교향악단 등을 해외에 보내고, 해외에서 잡지를 발행하는 일들 말이에요. 그것이 그 일들이 비밀리에 수행되어야 했단 이유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건 기밀이 되어야 했죠. 세상에 개방성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는 비밀스러워야 했습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은 메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리면서 엄청나게 경직된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단적으로 당시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의 폴 새뮤엘슨은 대학원 졸업 당시까지는 케인즈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강하게 받아 하버드에서 교수직을 얻지 못하고 당시만해도 경제학과는 거의 무관해 보이던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겨우 교수직을 잡게 되었고, 공대생들의 경제학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종 수식과 그래프로 가득찬 새로운 형식의 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하게 되는데, 이 교과서가 불후의 히트를 기록하여 폴 새뮤엘슨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한다.(물론 이런 형식상의 새로움뿐 아니라, 신고전파적 종합이라는 내용상의 새로움도 있었다.)
  


If this meant playing pope to this century's Michelangelos, well, all the better: "It takes a pope or somebody with a lot of money to recognise art and to support it, " Mr Braden said. "And after many centuries people say, 'Oh look! the Sistine Chapel, the most beautiful creation on Earth!' It's a problem that civilisation has faced ever since the first artist and the first millionaire or pope who supported him. And yet if it hadn't been for the multi-millionaires or the popes, we wouldn't have had the art."

만약 이것이 금세기에 미켈란젤로에게 교황의 역할을 하는 걸 의미한다면, 모든 게 미켈란젤로 시대보다 더 뛰어났다. : "미술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교황이나 돈 많은 인물이 필요하죠. 그리고 수 백년 후에 사람들은 '오, 이것봐! 시스티나 성당*이야,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지!'라고 말하겠죠. 이건 최초의 미술가와 그를 지원하는 최초의 부자 혹은 교황이 있었던 이후로 인류문명이 계속 직면한 문제예요. 그 예술품이 그 부자와 교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우린 그 예술품을 갖지 못했을 거에요."

*시스티나 성당 - 성베드로 성당과 함께 바티칸에 있는 대표적인 성당으로 성당 내부의 4면의 벽과 천장이 건축당시 대표적인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찬 걸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도 이곳을 장식하고 있다고 한다.



Would Abstract Expressionism have been the dominant art movement of the post-war years without this patronage? The answer is probably yes. Equally, it would be wrong to suggest that when you look at an Abstract Expressionist painting you are being duped by the CIA.

추상표현주의는 이 후원자 없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배적인 미술운동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아마도 그렇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추상표현주의 미술품을 보았을 때, 당신은 CIA에 의해 사기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일 것이다.



But look where this art ended up: in the marble halls of banks, in airports, in city halls, boardrooms and great galleries. For the Cold Warriors who promoted them, these paintings were a logo, a signature for their culture and system which they wanted to display everywhere that counted. They succeeded.

하지만 이 미술작품이 귀착된 장소를 한 번 살펴보자. : 은행들의 대리석이 깔린 출입구, 공항, 시 청사 입구, 기업 중역 회의실과 멋진 미술관 등이다. 이 미술작품들을 선전한 냉전시대의 용사들에게 이 미술품들은 하나의 상징,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 전시하고 싶어했으며 사람들이 미국의 문화와 체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도록 하고 싶은 대표적 상징이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In 1958 the touring exhibition "The New American Painting", including works by Pollock, de Kooning, Motherwell and others, was on show in Paris. The Tate Gallery was keen to have it next, but could not afford to bring it over. Late in the day, an American millionaire and art lover, Julius Fleischmann, stepped in with the cash and the show was brought to London.

1958년에 "새로운 미국 미술"이란 이름의, 잭슨 폴락, 데 쿠닝, 마더웰과 그 밖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순회 전시회가 파리에서 열리던 때였다. 테이트 미술관은 파리 다음 순서로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지만, 그들은 이 작품들을 가져오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그날 늦은 밤에 미국인 거부이자 미술 애호가인 줄리우스 플레슈만이란 인물이 현금을 가지고 테이트 미술관에 찾아왔고 그 전시회는 런던에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The money that Fleischmann provided, however, was not his but the CIA's. It came through a body called the Farfield Foundation, of which Fleischmann was president, but far from being a millionaire's charitable arm, the foundation was a secret conduit for CIA funds.

하지만 플레슈만이 제공하였던 그 돈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CIA의 것이었다. 그 돈은 플레슈만이 회장으로 있지만, 어떤 갑부 개인의 자선단체와는 거리가 먼 파필드 재단이라고 불리는 단체를 통해 나온 것이었고, 그 재단은 CIA공작자금의 집행을 위한 비밀 통로였다.



So, unknown to the Tate, the public or the artists, the exhibition was transferred to London at American taxpayers' expense to serve subtle Cold War propaganda purposes. A former CIA man, Tom Braden, described how such conduits as the Farfield Foundation were set up. "We would go to somebody in New York who was a well-known rich person and we would say, 'We want to set up a foundation.' We would tell him what we were trying to do and pledge him to secrecy, and he would say, 'Of course I'll do it,'  and then you would publish a letterhead and his name would be on it and there would be a foundation. It was really a pretty simple device."

그래서 테이트 미술관, 대중과 예술가들은 알지도 못한 채, 그 전시회는 미국인 납세자들의 비용부담 하에 교묘한 수법으로 냉전시대 정치선전 목적에 이용되기 위하여 런던으로 옮겨갔다. 전직 CIA 인사인 톰 브랜든은 파필드 재단과 같은 비밀 자금전달 통로가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묘사했다. "우리는 뉴욕에 있는 유명한 갑부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재단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게 뭔지 그에게 말하고 그에게 기밀 유지에 대한 서약을 받죠. 그러면 그는 '당연히 난 그 일을 할거에요.'라고 말하죠. 그리고 나서 재단의 이름과 그 갑부의 이름이 인쇄된 편지봉투를 만들면 재단이 생기게 되는 거죠. 이건 아주 간단한 방법이죠."



Julius Fleischmann was well placed for such a role. He sat on the board of the International Programme of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 as did several powerful figures close to the CIA.

율리우스 플레슈만은 그 역할을 매우 잘 수행했다. 그는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의 국제프로그램의 이사로 재임했다. - CIA와 가까운 여러 유력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 부족한 영어실력이기에 오역이나 어색한 표현에 대한 지적은 항상 감사드립니다.


2. 사실 저는 미술에 대해서는 완전 무식한 편이라서 추상표현주의 미술이나 잭슨 폴락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이 기사는 추상표현주의 사조나 잭슨 폴락 등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냉전기 미국 CIA가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에 대한 폭로기사이고 그 내용이 일종의 자부심에 가득찬 내부고발(?)이어서 그 신뢰성과 흥미가 크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3. 이 글을 보면서 개인적인 에피소드 한 가지가 생각났는데, 저의 한 대학후배가 새내기시절 광고동아리에 가입해서 그 동아리 선배들 앞에서 무심결에 선전(propaganda)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 중 어떤 선배가 매우 불쾌해 하며, 광고(advertisement)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지적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이 글에서 소개하는 냉전기에 CIA등에서 맹활약하던 프로파간다 요원들이 냉전이후 민간의 광고업계로 대거 진출하였고 냉전기에 사용하던 다양한 각종 프로파간다 기법들을 기업광고에 크게 접목, 응용하였다고 하더군요. (즉, 우리는 이미 부지불식 간에 기업광고형식 프로파간다의 꼭두각시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 대학동아리 선배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제 후배의 잘못된(?) 용어사용에 그렇게 불쾌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4. 인터넷의 발명과 확산 및 대중화 이후로 정보의 수평적 공유가 가져올 민주주의의 심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 대표적인 논의가 전자민주주의니 정보경제니 하는 것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인터넷 혹은 정보화 시대에 대한 비관론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고, 공유, 확산되는 세상에 사람들이 이처럼 페이크 뉴스와 음모론에 휘둘릴 거라고는 당시의 비관론자들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즉, 과거의 비관론자들은 지나치게 덜 비관적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낙관론자들이 예측하였듯이, 정보 그 자체가 의미있는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적으로 보편적인 이익이 되는 세상이라기보다는 그릇된 정보를 맹신하는 광신자, 추종자들이 선동가들에게 권력이 되고, 그들에게만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사실 이건 인터넷시대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기는 합니다.)


5. 정치에 관한 글이 아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어느 정파를 지지하건, 이번 보궐선거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거짓 프로파간다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는 길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아울러 음모론을 조장하자는 건 절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정보가 팩트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국제적 차원에서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프로파간다 공작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것 같기는 한데, 왜냐하면 많이 들키거든요, 그렇다고 전통적인 프로파간다 강국인 미국이 냉전이후로 이런 프로파간다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믿기만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고차원적인 프로파간다 전략과 기술로 인해 그들처럼 쉽게 들키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앞서 이야기했지만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이런 프로파간다도 정부기관으로부터 민간의 시장과 기업으로 민영화(?)하지 않았을까?하고 뇌피셜적 추측을 던져 봅니다.


6. 허접한 번역과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7-11 09:0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아이군
21/04/04 00:41
수정 아이콘
훨퀴....

저는 그냥 단순하게 미술품 가격이 높으니깐 공작에 쓰는 뇌물조로 이용했다 뭐 이런 걸 생각했는데 좀 더 본격적이네요.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0: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렇다고 보아야겠죠? 개인적으로 본문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말은 과거 안기부를 상징하던 말이었던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와 유사한 내용의 브랜든의 진술이었어요. "세상에 개방성을 가져오기 위해 우리는 비밀스러워야 했다."라는 말이요.
스위치 메이커
21/04/04 00:53
수정 아이콘
냉전의 끝은 미술이 아닌 아폴로 11호였죠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0:58
수정 아이콘
사실 본문은 냉전을 끝내는데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기여한 바에 대한 것은 아니라서......
스위치 메이커
21/04/04 01:09
수정 아이콘
그만큼 CIA가 돈 낭비를 엄청 한 거죠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미니멀리즘이나 팝 아트도 등장하고...

사실 자본주의 뽕맛을 알리려면 팝 아트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1:17
수정 아이콘
그런가요? 저는 미술에 관해서는 잘 몰라서 CIA가 돈낭비를 얼마나까지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에 가담했던 전직 요원들은 꽤나 만족하는 기색이긴 한데, 모르죠. 자신들의 업적을 과대하게 부풀리고 있는 건지도. 제가 미술, 특히 미국현대미술에 대해 좀 더 알았다면, 더 재밌는 대화가 되었을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아쉽게도 추상표현주의미술의 미술사상 위상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미안하네요.
멍멍이개
21/04/04 04:13
수정 아이콘
그렇다고 아폴로11호 이외의 모든 것이 헛수고로 부정될 필요는 없죠.
추상표현주의가 있었기에 팝 아트가 나왔던 것이고 차라리 있어보이기라도 했던 추상화보다 팝아트는 더욱 더 없어보였습니다.
근본도 역사도 아무것도 없던 미국의 예술이 유럽 예술에 뭔갈 비비는 것 부터가 문화승리고 장사죠.
그냥 님이 추상표현주의를 극혐할 뿐인게 아닌지..
스위치 메이커
21/04/04 09:16
수정 아이콘
정확히는 폴록이 극단적인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술에 우열은 없습니다만 폴록에 대한 평가는 예술에 대한 헤게모니를 미국이 잡아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사례라고 봅니다.
멍멍이개
21/04/04 13:46
수정 아이콘
그걸 cia가 만든 걸지도 모른다는게 충격인거죠.
실제 냉전에 막타를 뭐가 쳤냐보다.. 바르샤바에서 총 안맞았다고 1차대전이 안 일어났을까 뭐 이런 얘기긴 한데 저에겐 최소 돈낭비로 보여지진 않네요.
나주꿀
21/04/04 00:57
수정 아이콘
번역글러는 언제나 추천입니닷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0:59
수정 아이콘
허접한 번역인데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술라 펠릭스
21/04/04 01:2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1:35
수정 아이콘
과분한 추천 감사합니다.
2021반드시합격
21/04/04 02:07
수정 아이콘
군사정권 시절
건전가요가 생각나네요.
정권의 입김을 받은
체제유지‐선전용 예술은
역사가 아마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가지 않으려나 싶군요.
3번 에피소드도 흥미로웠습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21/04/04 03:45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재밌어!!!
장고끝에악수
21/04/04 05:55
수정 아이콘
어디서 얼핏 들었던 얘긴데 팩트체크까지 됐네요 잘읽었습니다
21/04/04 08:25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글이네요. 번역 퀄리티도 좋고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 하나만 지적하자면
To pursue its underground interest in America's lefty avant-garde, the CIA had to be sure its patronage could not be discovered. "Matters of this sort could only have been done at two or three removes," Mr Jameson explained, "so that there wouldn't be any question of having to clear Jackson Pollock, for example, or do anything that would involve these people in the organisation.
CIA는 그들에 대한 후원자를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하여야 했다. 제임슨씨는 "이런 종류의 일은 낮은 수준의 공작만으로도 가능한 것이라서, 예를 들어 잭슨 폴록을 제거해야 한다거나 이 미술가들을 조직에 참여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있을 수조차 없었죠.
-> CIA는 후원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제임슨 씨는 "CIA의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둘셋의 중간 단계를 걸쳐야만 했죠. CIA가 직접 잭슨 폴락같은 예술가들에게 보안 허가를 내주는 일이 없게끔 말이죠."

반은 의아하고 반은 납득이 되는 내용이네요.
원래 역사적으로 권력의 예술에 대한 지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죠.
기본적으로 예술을 소비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고요.

추상표현주의와 CIA의 관계가 특출난 점은
일반 미국 국민들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감 (+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 역시 반정권, 반매카시즘 성향이 강함)으로 인해
정부가 대놓고 지원을 할 수 없어서 우회해서 몰래 했다는 사실이겠네요.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4/04 09:1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잘못된 번역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그 부분을 수정하고 텅트님이 올바르게 교정해 주셨다고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꾸벅
antidote
21/04/04 08:37
수정 아이콘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소련의 붕괴이고 소련의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입니다.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유도한 것이 CIA의 공작이었다는 점에서 CIA의 (비인간적인 윤리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실소가 나오는 수준의) 거의 모든 삽질은 결과적으로 실드를 받을 자격이 생겨버린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Je ne sais quoi
21/04/04 08:53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21/04/04 13:22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퀀텀리프
21/04/04 15:12
수정 아이콘
덕분에 추상미술 작가는 잘 먹고 살았군요.
아스라이
21/04/05 10:59
수정 아이콘
파면 팔수록 미국 상층부의 대전략은 놀랍기만하네요. 당장의 이익과 크게 연관없어 보이는 이런 프로젝트를 뚝심있게 끌고 가는 추진력하며... 이 정도의 넓은 시야와 장기적인 안목을 지녀야 패권을 행사할 수 있나 봅니다. 좋은 글 , 좋은 번역 너무 감사합니다! ^^
Valorant
23/07/11 14:42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05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불러 올 나비효과 [80] cheme14557 21/07/15 14557
3304 백수생활 두달째 [91] 녹용젤리8524 21/07/19 8524
3303 나는 운이 좋았지 [36] ItTakesTwo8375 21/07/16 8375
3302 홈짐을 만들 때 유용한 장비들 [17] chilling10201 21/07/15 10201
3301 <스포> 풍수지리 스너프 필름: "미나리" [23] Farce7147 21/07/14 7147
3300 중국 반도체 굴기의 위기 [136] cheme15943 21/07/12 15943
3299 포경수술과 성기능과의 상관관계 [125] 그리움 그 뒤14440 21/07/05 14440
3298 코로나 병동... 벌써 반년 [57] WOD13843 21/07/05 13843
3297 죽어 보지도 않은 자들의 말과 글을 믿지 말라 [38] 아루에9923 21/07/04 9923
3296 영화 1600편을 보고 난 후, 추천하는 숨겨진 수작들 [128] 최적화11407 21/07/02 11407
3295 한라산 국립공원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4) [44] 영혼의공원6847 21/07/02 6847
3294 현대인이 범하기 쉬운 대체역사물 실수 몇가지 [78] 아리쑤리랑18072 21/06/28 18072
3293 편파 중계 지역사: 남인도 시점에서 보는 인도사 [44] Farce8304 21/06/27 8304
3292 (삼국지) 삼국지의 호족은 어떤 자들이었나? [41] 글곰10052 21/06/24 10052
3291 [역사] 치킨 복음 / 국내 치킨의 역사 [54] Fig.110689 21/06/23 10689
3290 응급실 체험기 [22] ohfree7906 20/06/12 7906
3289 한강에 우뚝 솟은 구름 산 [45] 及時雨10118 21/06/21 10118
3288 중세에서 전쟁을 해봅시다. [67] Farce9978 21/06/10 9978
3287 [축구] 선수 '유상철'을 추억하며 [9] 라울리스타7721 21/06/08 7721
3286 아이는 과연 행복인가- 아이 낳지말라 글을 읽고. [53] Hammuzzi9452 21/06/03 9452
3285 [역사] 가라오케는 왜 한국에서만 노래방이라고 부를까? / 노래방의 역사 [57] Fig.19826 21/05/31 9826
3284 자아도취에 빠져버린 오늘날의 과학계 [40] 위너스리그11637 21/05/29 11637
3283 현대 개발도상국은 과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63] 깃털달린뱀13105 21/05/28 1310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